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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 재벌들의 전쟁
인터넷-전자-신약…"돈 되는 사업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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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 현명관 대표이사 부회장은 지난 15일 2000년 사업구상을 밝히는 자리에서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최근 삼성물산의 주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인터넷 사업분야를 삼성 SDS로 이관하는 것 아니냐는
시중의 소문에 대해 “절대 사실이 아니다”고 강하게 부인한 것이다. 이보다 1주일 전쯤 삼성측이
삼성SDS에서 PC통신 유니텔 분야를 독립시켜 분사한 뒤 독립법인을 만든다는 구상을 내놓았을 때만
해도 ‘공황’에 휩싸인 것은 삼성SDS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삼성물산이었다. 독립법인으로 재출범하는 유니텔의 최고 경영진에 이건희 삼성회장의 장남인 이재용씨(미국 유학중)를 앉힐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삼성물산의 인터넷 사업 분야를 떼어내 유니텔과 합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고, 이에 따라 삼성물산의 주가가 곤두박질치기 시작한 것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들은 서둘러 이 보도를 부인하면서 오후 늦게서야 수직하강하던 주가를 붙들어 매는 데 겨우 성공할 수 있었다. 당시 삼성측의 해명은 두 갈래였다. “절대 그럴 리 없다.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부담을 가진 유니텔측에서 거짓 정보를 흘렸을 가능성이 크다.”(삼성물산 관계자) “이재용씨가 학위과정을 마치려면 아직도 1년 가까이 남았다. 지금 당장 이재용씨가 유니텔 사장을 맡아 귀국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다.”(삼성 구조조정본부 관계자) 삼성가(家)의 사실상 ‘적자’요, 1순위 승계자인 이재용씨가 유학을 마치고 국내에 들어올 무렵 안정적인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정석’을 만들어 놓을 것이라는 추측은 오래 전부터 재계에 강하게 나돌았다. 게다가 삼성으로서는 편법 증여 논란으로 이미 상처를 입은 이재용씨에게 더 이상의 구설수를 막아야 한다는 절대절명의 과제도 부여되어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다른 그룹들에서는 삼성측의 ‘이재용 연착륙’ 전략에 대해 ‘결국 돈 되는 사업만을 골라놓고 있다가 이재용씨가 귀국할 때쯤 무임승차시키려 하는 것 아니냐’는 냉소 섞인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주요 그룹 내년 6조원씩 투자 삼성그룹과 삼성물산을 둘러싼 일련의 해프닝은 대우를 제외한 4대그룹이 2000년 이후의 사업 구상을 내놓는 과정에서 똑같이 경험했던 고민의 일단을 압축해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고민에는 2세 체제에서 3세 체제로의 승계 문제, 차세대 주력 사업분야 선정 문제, 공기업 인수 여부 등 극히 민감한 2000년 재계 판도의 알파와 오메가가 모두 담겨 있다. 재벌기업들은 99년 한해 동안 정부 눈치보며 구조조정하랴, 부채비율 맞추랴, 정작 수익성을 극대화할 사업들을 발굴하고 여기에 집중 투자하는 데는 신경쓸 여유가 없다고 하소연해 왔다. 게다가 ‘전문 경영인론’이라는 정부의 가이드라인 때문에 내심 염두에 두고 있는 ‘경영권 승계’ 같은 것들은 더더욱 엄두도 내지 못할 형편이었다. 그러나 ‘부채비율 200%’ 시한인 연말이 다가오면서 사정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부채비율 약속에 발목이 잡혀 신규 투자를 망설이던 기업들도 호전된 경영 환경을 바탕으로 과감한 21세기 투자 전략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삼성 현대 LG 등 주요 그룹은 내년도 투자 규모를 각각 6조원 안팎으로 잡아놓고 있다. 2005년까지 1조3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세계 10대 인터넷쇼핑몰을 만든다는 삼성물산의 야심에 찬 계획은 단적인 사례다. 삼성물산이 이를 위해 투자하는 금액은 2000년 한해 동안만 100억원에 이르는 등 2005년까지 모두 700억원이나 된다. 우여곡절 끝에 자동차를 포기한 삼성이 삼성생명을 실질적 지주회사로 삼으며 인터넷 사업에 비중을 두고 있는 반면 ‘신가치 경영’을 내세운 현대는 자동차 전자 중공업 등을 핵심업종으로 키워나간다는 내부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LG도 이미 주력 사업분야로 △화학-에너지 △전자-통신 △서비스 △금융 등을 선정해 놓고 있다. 이밖에 LG의 미래 승부산업으로 생명과학, 정보전자소재, 디지털, 정보통신, 인터넷 등도 손꼽히고 있다. LG측은 ‘핵심 역량에 집중하고 돈 되는 사업이 아니면 과감하게 걷어치운다’는 전략을 밀어붙일 태세다. 창업주 구인회씨와 구자경회장에 이어 일찌감치 3세 경영인으로 재계에 입문한 구본무회장은 취임 일성을 통해 이러한 LG 경영 전략의 일단을 내비친 바 있다. SK는 정보통신이나 생명공학 등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술 집약산업에 그룹의 역량을 총집결한다는 방침이다. 정보통신 분야에 대한 SK측의 집착은 더욱 필사적이다. 지난 17일에는 지분매각 의사를 밝힌 코오롱과 포철을 상대로 신세기통신 인수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혀 업계에 일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신세기통신 지분을 인수해 최대주주가 되면서 011가입자와 017가입자를 모두 SK측이 확보할 경우 이동통신 업계에 독점 논란이 일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SK측이 정공법을 택한 것을 보면 SK가 정보통신사업에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SK에는 IMT-2000(차세대 이동통신) 사업권 획득 등 굵직굵직한 현안들이 놓여 있다. SK가 또하나 주목하고 있는 분야는 바로 신약 개발. 국산 신약 1호인 항암제 ‘선플라’를 개발한 저력을 기반으로 21세기형 유망산업으로 꼽히는 신약 분야에서 시장 선점을 위해 박차를 가한다는 전략이다. 4대그룹의 2000년 투자 계획서를 보면 현대를 제외하고는 너도나도 정보통신 에너지 생명공학 등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후장대’(重厚長大)형 산업에서 ‘경박단소’(輕薄短小)형 산업으로 좌표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주력 산업의 이동이라는 현상을 단순하게 보여주는 것 말고는 별로 특별할 것이 없다는 시각도 있다.
“부가가치 창출 여부는 지켜봐야” 매년 ‘30대 기업 분석’을 내놓고 있는 자유기업센터 최승노 기업연구실장은 “30대 그룹 안에 드는 대부분 기업 설비투자액의 70∼80%가 신규투자보다는 유지-보수에 들어가는 점을 감안해 보면 4대그룹이 내놓고 있는 내년도 청사진 중에도 부실한 부분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넷 분야에서 다른 기업들보다 먼저 출발한 삼성을 제외하고는 실제로 기업들이 의도한 만큼 부가가치를 창출해낼지는 지켜봐야 한다”며 유보적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민간경제연구소의 한 관계자도 “인터넷 사업은 재벌기업이 거대자본으로 뛰어든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대기업이 자본을 대고 벤처기업들의 창의력을 부추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옳은 길이다”고 꼬집었다. 물론 4대그룹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분야가 단지 인터넷 사업이나 생명산업 등 몇 개 산업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차세대 산업이 아니더라도 눈독들일 만한 우량기업은 한둘이 아니다. 바로 정부가 최대 주주로 되어있는 대부분의 공기업들. 이미 정부는 공기업에 주인을 찾아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정책을 내세웠기 때문에 재벌들은 정부가 신호를 보내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걸림돌은 ‘재벌 특혜설’. 더구나 ‘세계 1등 기업’ 을 강조하면서 ‘돈 안되는 사업은 때려치우라’고 종용한 마당에 다시 재벌들이 담배사업이나 가스사업을 하겠다며 공기업 인수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이율배반 현상에 대해 정부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도 신경쓰이는 대목이다. 한국전력처럼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지 않아 민영화 일정이 지체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한국중공업 민영화와 관련해서는 삼성과 현대가 이미 눈독을 들이고 있고, 공모주 청약 당시 이상 과열 현상을 보일 정도로 기업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됐던 담배인삼공사의 경우 롯데그룹이 욕심을 내고 있으며 신세계백화점도 한때 참여를 검토했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담배인삼공사는 2000년 말까지 지분 한도를 풀고 정부 지분 이외에 산업은행 지분까지 민간에 넘겨 민영화를 끝낸다는 계획이다. 재계 의 한 관계자는 “대우를 제외한 5대그룹 모두 공기업 민영화 과정에 어떤 형태로든 참여하고 싶어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민영화의 구체적 밑그림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라 적극성을 보이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의도만 구체화하면 ‘공기업 따먹기’ 경쟁에 뛰어들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문제는 분명해진다. 99년이 재벌그룹들에 ‘살아남기 경쟁’의 한 해였다면 이제 2000년은 본격적으로 ‘돈벌이 경쟁’의 한 해가 되는 것이다. 이제 재벌들은 ‘실질적인’ 해체의 운명을 맞는 동시에 ‘실질적인’ 경쟁의 시대로 진입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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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재벌 “1999년은 악몽”
98년 10월 발표된 7개 산업 분야의 사업구조조정 계획, 즉 빅딜도 우여곡절 끝에 99년 한 해 내내 진행되었다. 그러나 대우전자와 삼성자동차의 맞교환이 실패한 것에서 보듯 정부가 구상한 대로 빅딜이 이뤄진 것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최근에는 한화와 대림산업이 7개월 동안의 실사와 협의를 거친 뒤 유화부문의 자율 빅딜을 성사시켜 모범 사례로 평가되기도 했다. 전경련은 정부의 빅딜 방안이 발표된 지 두달만인 지난 98년말 ‘사업구조조정으로 인해 약 0.64% 정도의 국내총생산(GDP) 증가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은 적이 있다. 그 당시만 해도 재계에서는 빅딜의 긍정적 효과에 주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99년 한해 동안 당초 구상했던 빅딜이 변질되고 왜곡되어간 과정을 보면 그 경제적 효과는 상당히 반감됐을 것으로 보인다. 군부가 주도한 80년대 산업합리화 정책이 사업포기를 주요 수단으로 했다면 90년대식 사업구조조정에서는 양도나 합병, 출자전환 등 보다 ‘시장적인’ 방법이 동원했다. 김대중정부의 빅딜도 마찬가지. 그러나 형식만 시장 자율이지 그 배후에 실질적인 정부와 관료의 개입이 있었다면 이는 충분히 신관치 논쟁을 일으키고도 남을 만한 일인 것이다. 전경련 김각중 회장대행이 취임한 뒤 대국민 사과성명을 내자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3년 동안 기다리는 것밖에 별 수 있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이 관계자의 말이 복수의 칼을 갈겠다는 것인지, 정부의 개혁정책에 승복하겠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최근 재계의 정치세력화 선언을 놓고 본다면 전자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듯한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정녕 정권은 유한하고 재벌은 영원한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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