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영화촬영으로 분주한

장 동 건

다시는 카메라 앞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글/고영주기자 ●사진/신석교기자

대학 졸업을 포기하면서 시작된 제2의 연기인생. 그는 변하고 있다. 외모가 아닌 연기로서의 평가를 받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이다. 드라마 두편과 영화 두편. 연기력을 갖춘 배우로 인정받기 위해 그가 선택한 작품들이다. 그만의 인생을 만들어가며 연기하는 각기 다른 네명의 주인공 그리고 자기자신.

의가형제 …… 김수형

촬영장이 있는 강릉으로 가는 차안에선 대부분 잠을 잔다. 앞으로 사나흘동안은 한숨도 잘 수 없기 때문에 일찌감치 자두는 게 상책이다. 모든 스태프들이, 선배 연기자들이 날밤을 새며 촬영하는데 까마득한 후배인 내가 달리 잠을 잘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리 없다. 사실 잠을 잔다고 해서 숙면을 취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덜컹거리는 차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다른 캐릭터들을 다 잊어버리고 김수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번 잠을 자면 여러가지 꿈을 꾸기 마련인데 이때만큼은 한번은 장동건이었다 한번은 김수형이었다 한다. 이때는 나조차도 어떤 모습이 진짜 내모습인지 가려내기 힘들 정도다. 그만큼 내가 김수형이란 역할을 좋아하고 또 좋아하는 만큼 부담이 커서 그러리라. 강릉이라는 푯말을 지나 매니저가 잠을 깨울때 쯤이면 대부분 난 장동건이 아닌 김수형이 되어 있다.

30세.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두뇌와 실력을 가진 흉부외과의. 하얀가운과 은테안경 속의 차가운 눈빛을 가진 김수형. 그로 변신하는 게 정말 행복하다. 사람들은 처음 해보는 악역이라 힘들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건 나를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2년여동안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으로 생활하며 내가 집중적으로 공부했던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악역이다.

남들은 연기자로서 70점은 그냥 얻을 수 있다는 외모를 가졌다고들 부러워 하지만 솔직히 난 착하게 생긴 내 얼굴이 맘에 들지 않는다. 지금까지 역할도 내가 가진 연기력보다 착하게 보이는 외모 때문에 주어졌던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학교를 그만두고 새로운 연기생활을 시작하려는 때에 지금까지와는 판이하게 다른 역할을, 그것도 가장 하고 싶었던 악역을 할 수 있다는 건 분명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김수형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끔은 대본에도 없는 오버액션을 하는 경우가 있다. 출생의 비밀을 확인하는 장면에선 스스로 감정을 자제하지 못해 눈물을 흘렸던 건 잊혀지지 않는 에피소드 중 하나다.

냉혈한 의사인 김수형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NG로 처리돼 방송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의료사고로 죽은 어머니와 그 때문에 의사집안에 양자로 들어갔다는 비밀을 알게 된 후 복수를 결심하는 김수형 역을 하는데 있어 내가 조심하는 건 눈빛과 표정이다. 읽기도 힘든 의학용어를 외워야 하는 것도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여기에서 내가 제일 신경쓰는 부분은 눈빛이다. 아무리 머리를 올백으로 넘기고 은테안경을 쓰며 이미지 변신을 추구하더라도 눈빛이 변하지 않으면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의가형제를 보는 시청자들이 많다는 건 알지만 팬레터나 구경나온 팬들의 숙덕거림으로 시청자들이 나를 아니 김수형을 ‘나쁜 사람’이라며 욕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다. 악역을 하면서 욕을 먹는다는 건 그만큼 내가 김수형 역을 잘 소화해내고 있다는 뜻일테니까. 하하하.

패자부활전 …… 민규

6개월만 더 있으면 학교의 허락하에 연기활동을 할 수 있음에도 모든 것을 버리고 처음 선택한 작품이 바로 <패자부활전>이다. 조금 웃기고 조금은 감동적인 이 작품은 내 인생에서 영원히 기억될 첫번째 영화출연작이기도 하다. 여기서 나는 민규라는 20대 후반의 수의사 역할을 맡았다. 동물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남자. 사랑하는 여자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고도 다른 여자의 떠나간 사랑을 위해 어설픈 복수극에 동참하고야 마는 착한 남자가 바로 민규의 캐릭터다. 지난해 말 모든 촬영이 끝나 개봉을 기다리는 <패자부활전>에서의 민규를 생각해 보면 아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건데 아마도 부담감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연기를 하는데 부담을 가지면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민규로 생활하는 건 처음 기대만큼 쉽지않았었다.

2년여의 공백끝에 복귀작품으로 선택했던 MBC 드라마 <아이싱>은 촬영당시의 기대보다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었다. 내심 상심하고 있을 때 들어온 제의가 바로 영화출연. 지금까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하이틴 스타’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그러면서도 부담없이 출연할 수 있는 작품이란 판단에 흔쾌히 응낙했다.
하지만 시작하자마자 처음의 내 생각이 착각이었다는 걸 알았다. 역시 영화는 드라마와 많이 달랐다.

감정을 길게 끌어가는 드라마와는 달리 호흡이 짧은 영화는 순간순간 다른 감정으로 작업을 해야 한다. 학교를 다니면서 많은 연습을 하고 습작에 출연했지만 아무래도 많이 부족했나 보다. 힘들었다. 상대역은 알려진대로 김희선과 함께 였다. 그녀 역시 이 작품이 영화 데뷔작이라 힘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자기표현에 솔직해서 일하면서 부딪힌 적은 없다.

촬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물을 많이 먹었던 일. 대공원 수의사라는 직업상 물속에서 진행되는 장면도 많았지만 그보다는 충무 앞바다에 빠진 김희선을 구하기 위해 이틀동안 수십번 물에 빠졌던 일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영화를 알게해준 첫작품이라는 점에서 애착이 가지만 개봉을 며칠 앞둔 지금 걱정이 앞선다. 영화를 보면서, 잘한 부분보다 부족한 부분이 훨씬 눈에 잘 보일 것이며, 그런 모습을 보고 스스로 얼마나 자괴감에 빠질 지도 안다. 왜 저렇게 연기했을까, 왜 표정이 굳어 있을까…하며.

홀리데이인 서울 …… 택시 드라이버

‘이젠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이 그때의 고민 아닌 고민이었다. 하지만 이젠 그런 고민 하나는 해결된 셈이다. 제대후 난 택시를 몰게 됐고, 최소한 어디를 가야 할지 망설일 필요가 없게 됐으니까…’ 불면증에 시달리며 어두운 서울 시내를 내달리는 택시운전수. <패자부활전>에 이은 두번째 출연한 영화에서 맡은 역할이다. 촬영기간도 짧고 다른 영화와 달리 뮤직비디오 같이 속도감있는 작품이라 두말없이 섭외를 받아들였다. 자신을 소비하고 싶어 애쓰는 호텔의 전화교환수이자 택시를 타는 손님역인 최진실 선배와 호흡을 맞춘다. 현재 촬영은 80% 이상 진행된 상태로 <의가형제> 촬영 중간중간 서울로 올라와 남은 부분을 밤새 촬영하고 있다.

두번째 영화인데다, 대사가 많지 않고 분위기 위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주인공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서 솔직히 시작할 때 부담이 적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역시 힘들긴 마찬가지다.
오히려 어설퍼도 용서받을 수 있는 첫번째 작품보다 두번째가 더 힘들다는 걸, 많은 대사보다 표정과 눈빛으로 연기한다는 것과 많은 주연들 사이에서 돋보여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속이 바싹바싹 타는 일인지를 지금 절감하고 있다.

그렇다고 중간에서 포기할 순 없다.

처음 영화보다는 훨씬 성숙한 연기력을 보여준다는 평을 듣기 위해서, 아니 그보다는 스스로 완성된 작품을 자신있게 감상할 수 있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다.

모델 …… 이정 혹은 제임스리

SBS에서의 데뷔작. 어디서건 첫번째라는 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방송국을 바꿔 출연하는 것도 첫번째가 주는 긴장감을 없애주진 못한다. 김남주 염정아 한재석 등 데뷔나 연배가 비슷한 또래의 연기자들과 함께 연기를 하는데 한편으론 편하기도 하지만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올 5월 방영을 목표로 지난해 여름부터 촬영을 시작했는데 촬영을 하면서 계속 대본이 바뀌어 정확한 결론은 아직 알 수 없다. 단 내가 맡은 역할은 야심만만한 사업가 기질을 갖고 있는 직업모델 이정 역이다.

지금까지 했던 모든 역할을 더한 것보다 많은 다양한 스타일의 옷을 입어본다는 게 재밌는 일 중 하나다. 패션쇼 장면도 있어 워킹을 별도로 공부해야 하는 등 진짜 모델이 된 것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나 …… 장동건

네가지의 서로다른 인생, 그리고 진짜 나 장동건의 모습까지 합하면 지금 나는 다섯종류의 색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궁금해 한다. 혹시 다섯인물이 서로 헷갈리지는 않느냐고.

연기자가 연기와 실생활을, 그리고 서로 다른 연기를 하며 역할을 혼동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나역시 마찬가지. 비슷한 역할도 아니고 배역마다의 특징이 달라 혼동하진 않는다. 진짜 나 장동건은 지금 25세. 우연찮게 시작된 연기자 생활도 벌써 햇수로 6년째. 학교를 다니느라 2년여 공백기간을 제외하더라도 신인이라는 명칭이 내게서 멀어진지 오래다.
연기가 뭔지 제대로 모르고 시작했을 때와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어려워지고, 연기에 욕심이 생기는 걸 보면 나도 진짜 연기자가 돼가는 것 같다. 다섯가지 역할을 함께 하느라 생활화되어버린 수면부족과 피곤한 몸을 거의 약으로 해결하고 있지만 이런 생활이 정말 좋다.

2년여의 학교생활을 접으면서 고민을 안했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삼수를 했고 누구보다 어렵게 들어간 학교였기에 눈 딱 감고 3년동안은(3학년 2학기부터 연기자생활 가능) 학생으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하려고 했었다.
그럴 각오를 하고 들어간 학교였다. 하지만 카메라 앞을 떠나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그리고 학교측의 배려로 2년여만에 컴백했던 <아이싱>을 촬영하면서 한가지 분명한 걸 깨닫게 됐다. 연기는 학교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 촬영장도 또하나의 학교요 실습장이라는 걸 알게된 것이다. 졸업장은 포기했지만, 난 내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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