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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같은 세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일신상의 안일을 택했다는 마음의 부재는 세월이 가도 지워지지 않는 그 무엇으로 남아 있다.
그 때문에 지금 이렇게 바삐 살고있는지 모른다.
나의 20대는 ‘참으로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기억한다. 20대에 나는 사랑을 했고, 큰 좌절 없이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행운을 얻었으며
,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해 두딸의 아버지가 됐다. 내 인생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몇 가지 일들을 20대에 해낸 셈이다.
내가 사법고시 준비를 시작한 것은 대학 3학년 때였다. 입학 때부터 사법시험을 보겠다는 목표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 나는 그 전까지는
공부보다는 대학입시로부터의 해방감을 즐기면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연애도 떠들썩하게 했다. 그녀(지금의 아내)와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함께 과외를 받던 친구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지금과는 달리 당시만 해도 우리 학교(고려대)에는 얼굴을 외울 수 있을 만큼 여학생이 적었기 때문에 줄곧 붙어다니는 우리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소문난 캠퍼스 커플로서 선후배들의 눈총도 많이 받았다.
그러면서 난 3학년이 됐고, 주위 친구들이 서서히 고시 준비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며, 드디어 나도 해보겠다고 작심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행운의 여신은 내 편이 되어주었다. 사법시험 합격의 비결을 보통 ‘운칠기삼’이라고 한다. 운이 일곱, 기술이 셋이라는 뜻으로,
모두 다 열심히 공부하므로 결국 당락은 시험운과 기술이 좌우한다는 뜻이다. 어쨌든 나는 최대한 경제적으로 사시 준비를 했다고 할까.
다른 동료들에 비해 크게 고생하지 않고 사법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동료들 중에는 지금도 사법시험을 치르는 꿈을 꾼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그런 악몽을 꾼 기억이 없다. 몇 년씩 지독한 열병을 앓으며
재도전을 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할 만큼 시험운이 따라 준 덕에 너무도 순조롭게 좋은 결과를 얻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지금 돌아보니 행복한 시절이었지, 얼마나 처절하게 공부했던가. 고시를 준비한사람이면 누구나 그랬겠지만, 1차에 합격한 나는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밥을 먹으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못했고, 몇 번인가 엉덩이가 짓물러 수술까지 받아야 할
정도로 책과 씨름했다.
시험을 볼 때까지는 그런대로 운이 따라 주었지만 그 다음은 별로 그렇지 못했다. 남들은 2년에 마치는 연수원을 난 3년 동안 다녀야 했던
것이다. 며칠 간격으로 10여 개 과목의 시험을 치르던 연수원에서의 마지막 시험날 난 그만 식중독으로 병원에 실려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고,
생각지도 않았던 재수를 하게 됐다.
연수원에 들어가던 해 1월 결혼을 한 아내는 평소 즐기던 요리실력을 발휘해 내게 융숭한 상을 차려주었지만, 배점이 가장 높은 민사재판 실무
시험을 치르는 그날 새벽부터 난 토사곽란을 일으키며 병원으로 실려갔다.
단 한 과목의 시험을 못치렀다는 이유로 서울지검에서 검사 실무수업을 받던 중 연수원 재입소 통보를 받았고, 의욕을 상실한 나는 그 후의
1년을 힘들고 우울하게 보냈다.
또, 스물다섯이라는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한 덕에 겪어야 했던 경제적인 어려움도 만만치 않았다. 3년간의 연수원 시절이 그랬고, 법무관으로서의
3년에 걸친 군복무시절이 그랬다.
양가에서 생활비를 보조받기는 했으나 벌이가 시원치 않은 남편과 두 아이를 키우며 살아야 했던 아내의 고생이 적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만약 내게 이러한 시련기가 없었다면 과연 오늘의 내가 존재할 수 있을까 싶다.
지나고나서야 깨달은 일이지만, 특히 젊었을 때는 어떤 상황과 만나더라도 일희일비(日喜日悲) 하지 말고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당시에는 괴로웠던 시련이 어느 만큼 세월이 흐르면 기쁜 일의 계기가 되고, 기쁨에 들떴던 일들이 어느 순간 재앙이 되는 모습을 길지 않은 삶을
사는 동안 수없이 보아왔다.
내 나이 서른일곱. 지금 나는 무엇을 위해, 어디를 향해 이렇게 뛰는가? 나를 이렇게 쉴 새 없이 밀어부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생각해본다.
구호 한번만 외쳐도 다음 순간 어디론가 끌려가 버리던 암울한 시대, 울분으로 피가 끓고 마음 속으로 눈물을 흘려야 했던 그 시대에, 젊은 혈기로
넘쳐나던 나는 사법시험에 합격만 하면 사회의 부정을 바로잡을 수 있으리란 짧고 거친 생각으로 운동이 아닌 고시를 선택했던 것같다.
그러나 결국 일신상의 안일을 선택했다는 마음의 부채는 지워지지 않는다. 내 세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어쩌면 난 그런 채무감 때문에 지금
이렇게 바삐 살고 있는지 모른다. 오랜 세월 마음 속에서 자라온 사회에 대한 부채를 갚기 위해서….
그래도 내 기억 속의 20대는 행복하다. 아픔은 아픔대로 가슴에 묻혀 있지만 아무런 잡념 없이 한 가지 일에 몰두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난 안다. 이 사회에 누구도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소외돼선 안된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선 명예나 공명심을 앞세워서는 안되는 것이
우리 몫의 과제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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