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와 향수 이야기





알라딘의 요술 램프'를 연상시키는 로메오 질리 컬렉션

젊은 시절 10년간을 고향인 이탈리아를 떠나 세계 각지를 떠돈 로메오 질리. 그는 늘 기존 틀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추구해온 디자이너다. 동양적인 신비, 머나먼 나라에 대한 동경 등 그의 패션 이미지는 향수에도 그대로 담겨 있다.

자료제공/태평양화학 미용과학 연구실 글/계수미 기자 사진/지재만, 도형탁 기자

'부재중인 여인의 초상화', '동양을 꿈꾸는 서양 여인-'. 광고에서 내세우는 로메오 질리의 향수 테마다. 머나먼 나라, 닿을 수 없는 멀리 있는 것에 대한 동경은 그가 줄곧 추구해온 이미지.
이는 그의 남다른 성장기, 청년기 체험과 무관하지 않다. 10대 후반부터 여행의 묘 미에 빠져들어 10년 가까이 세계 각지를 떠돈 독특한 생활 이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 그는 각국의 민속의상이나 공예품들을 두루 접하면서 젊은 시절 감수성을 키워갔는 데, 특히 인도, 중국 등 동양 문화권에서 큰 영향을 받았던 것같다.
그가 패션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도 동양 옷감과 인연이 있다. 중국을 여행한 후 그곳에서 산 실크로 여자친구 에게 재미삼아 옷을 만들어줬는데, 의외로 호평을 듣자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로 마음을 굳 혔던 것이다.

78년부터 그는 역시 여행을 통해 알게 된 뉴욕의 이탈리아계 디자이너 피에르 드미트리를 찾아가 문하생이 됐다.
당시 그의 나이 28세. 83년에는 자신의 이름으로 첫 컬렉션을 가졌 다. 하지만 주목받지 못하다가 87년 이탈리아의 유명 기성복 회사인 잠마스포트사와 손잡고 선보인 여성복 컬렉션으로 갑작스레 명성을 얻었다.

데뷔 3년의 신참 디자이너가 기라성같은 선배들과 나란히 톱디자이너로 이름을 떨치자 그는 적잖은 질시를 받았다. "이탈리아가 정책적인 차원에서 그를 스타로 만돌고 있다"는 억측 이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독특한 선과 분위기를 가진 그의 옷들은 세계 무대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왔다. 이제 보수적인 패션계 인사들도 그의 영향 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은 물론이다.
그의 작품 특징은 한마디로 '동서양의 절묘한 조화'라고 할 수 있다.
인도, 중국, 아프리카 등지의 토속적인 이미지가 현대 감각과 멋지게 어우러지는 것이다. 그의 옷들은 '똑 떨어지 는' 딱딱하고 규격화된 실루엣에서 벗어나 있다.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느낌을 강조하는 그는 천을 굳이 자르지 않고 몸 전체를 휘감는 스타일을 과감하게 등장시키기도 했으며, 다채로 운 민속풍 문양을 정교한 수공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나름의 빛깔로 유행을 창조하는데 당찬 면모를 보여왔음에도 정작 그는 자신의 존재를 드 러내는 데는 소극적인 편이다.

컬렉션 피날레 무대에도 잘 오르지 않는 그는 자신을 내세우 는데 익숙치 않다. 때문에 그에 관해 사적으로 알려진 정보는 많지 않다. 측근들 중에서도 그의 나이가 정확히 몇살인지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

이국적인 향취 과감히 담아

그는 이탈리아의 카스텔볼로네제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고서(古 書) 매매업을 해왔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방대한 책들 속에 묻혀 살았다. '책으로 접한 세계 를 직접 경험하기 위해' 15세 때 이미 그리스 여행을 떠나기도 했던 그는 대학 전공으로 건 축을 선택했지만 자유로운 여행을 위해 학교도 중퇴하고 말았다.

어린 시절 고풍스런 집안 분위기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레는 호기심은 그의 향수에 그대 로 반영돼 있다. 89년 그는 향수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그의 향수들은 독특한 용기 디자인이 우선 눈길을 끈다.

첫번째 향수인 '로메오 디 로메오 질리'는 뚜껑을 여는 순간 섬세한 향이 대기 속으로 퍼져 나가는 듯한 반투명 굴곡 장식이 신비스런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둥그스름한 몸통 디자 인은 밀라노의 한 골동품 가게에서 발견한 18세기 베네치아 크리스탈로 만든 문진(책장이나 종이쪽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누르는 물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두번째 향수인 'G.질리'의 용기는 그가 동양을 여행한 후 그 여운을 담아 만든 것이다. 동그 란 몸통에, 끝을 둥글린 선홍빛 삼각 기둥 모양 뚜껑은 알라딘의 요술 램프를 연상케 한다. 호박색 유리 속에 맺혀 있는 작은 공기 방울들은 그 옛날 장인들이 입으로 불어 만들던 고 대의 유리병 느낌을 그대로 재현한 것.

다음으로 만든 '로메로 질리 ㅃ르 워모'도 그의 옷에서 보이는 둥근 어깨선처럼 역시 모나 지 않은 형태. 동그란 뚜껑 아래 잘록한 몸통 입구는 철사줄로 감겨 고풍스런 조형물의 멋 을 전하며 그 아래로 투명한 액체를 담은 유리병은 마치 A라인으로 퍼진 롱스커트같은 느 낌을 준다.

향기는 모두 상큼한 플로럴 계열. 처음에는(톱노트) 달콤한 과일향이 곁들여지며 20-30분이 흐른 후에는(미들 노트) 다양한 꽃향이 조화를 이룬다. 2-3시간이 흐른 후 은은하게 이어지 는 잔향(베이스 노트)은 부드럽고 신비스런 수목향과 사향(무스크향)이 펼쳐진다.

'로메오 디 로메오 질리'는 작열하는 태양빛 아래서 따는 오렌지향에서 출발해 야생백합, 장 미, 흰 카네이션, 쟈스민, 여러 종류의 과일꽃들이 어우러져 화려한 꽃향을 풍부하게 전개하 며 오리엔탈 계열의 백단향과 이끼, 수풀 등 익숙한 자연향이 잔향으로 이어진다.

패션에 있어서 여성은 여성답게, 납성은 남성답게 확연히 구별돼야 한다고 믿었던 로메오 질리는 어느날 '모든 이들이 남녀 구별없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다. 이를 위해 젊은 남녀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함께 입을 수 있는 일상 생활복 들을 새롭게 디자인하게 됐는데, 이것이 바로 G. 질리 라인이다. 'G.질리'의 'G'는 영어로 게 임을 뜻한다. 남녀가 서로 옷을 바꿔 입고 믹스시켜 입는 일종의 게임과 같은 즐거움을 준 다는 것이다.

향수 'G.질리'도 한층 젊고 발랄한 유니 섹스향을 지향한다. 야생무화과의 다소 씁쓸한 향과 녹차의 정제된 향이 어우러져 신선한 아침 이슬에 젖은 나뭇잎 냄새를 연상케 한다. 산딸기, 체리, 건포도 등의 과일향이 바이올렛, 쟈스민 등의 꽃향에 살짝 스며들어 있으며 마무리는 역시 산사나무, 사향 등 은근하고 깊이있는 향으로 여운을 남긴다.

지중해의 온화한 분위기 를 담는 '로메오 질리 뻬르 워모' 역시 로즈마리, 발삼향 등이 어우러져 상쾌하면서도 흙내 음처럼 친숙한 자연향을 내뿜는다. 이들 로메오 질리의 향수들은 90년 향수 아카데미가 주는 카테리나 드 메디치상을 수상했 으며 91년에는 미국 향수협회상을 받아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알라딘의 요술 램프를 연상시키는 'G.질리'의 싱그럽고 감미로운 향이 당신을 찾아갑니다. Let's 11월호 애독자 카드의 '받고 싶은 선물란'에 'G.질리'라고 적어 11월5일까지 보내주시 면 30명을 추첨해 오드 투왈렛(50ml 3만5천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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