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번호 |
제38호 1970년 12월 30일 황혜성(黃慧性, 1920년생) |
조선왕조 궁중 음식이란 조선시대 궁궐에서 차리던 음식을 말한다. 따라서 좋은 재료로 온갖 솜씨를 발휘하여 만든 음식이고 전문 조리사가 요기 기술을 개발하고 전수하여 역사성 또한 유구하다. 더욱이 폐쇄성이 강한 궁궐에서 전승되어 왔기에 그 전통성이 잘 계승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왕조의 몰락과 함께 궁중 음식은 사라지게 되었고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급격한 정치·사회적 혼란 속에서 우리 고유의 음식 문화도 크게 변질되어 갔다. 따라서 조선시대 궁중에서 차려졌던 음식 문화를 오늘에 계승할 수 있었던 것은 기능 보유자들의 부단한 노력에 의한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조선시대 궁중의 식생활은 『경국대전(經國大典)』,『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각종『진연의궤(進宴儀軌)』,『진작의궤(進爵儀軌)』그리고 『궁중음식발기』등에 기록해 놓은 기명(器皿), 조리 기구, 상차림 구성법, 음식명과 음식의 재료 등을 통해 상세하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조리법은 직접 궁중 음식을 조리하였던 마지막 주방 상궁 한희순(韓熙順, 1889∼1972년)만이 알고 있었다. 따라서 오늘날의 궁중 음식은 그에게 기능을 전수받은 이들에 의해 재현되고 있다.
궁중에서의 일상음식에는 이른 아침의 초조반상(初朝飯床), 아침과 저녁의 수라상과 점심의 낮것상 등 네 차례가 있다. 이른 아침(일곱 시 이전)에는 초조반으로 죽과 마른찬을 차린 죽상을 마련하며 수라상은 12첩 반상 차리므로 원반과 곁반, 전골상으로 구성한다. 또한 팥수라(팥물밥)와 백수라(흰 쌀밥)에 육류, 채소류, 해물류 등 다양한 재료로 여러 가지 조리법을 고르게 활용하여 찬물을 마련하고 김치류와 장류 등을 차리는 등 식사 예법도 세련되었다. 점심상이나 간단한 손님상은 면상으로 차린다. 궁중의 연회식은 왕과 왕비의 탄일, 회갑, 세자 책봉 등 왕실에 경사가 있을 때나 진찬(進饌), 진연(進宴), 진작(進爵) 등 궁중의 잔치, 그리고 외국 사신을 영접할 때 차려졌다.
잔치를 기록한 의궤(儀軌)의 찬품조에는 차린 상차림의 종류와 음식명, 재료 등이 적혀 있다. 대전(大殿, 임금이 거처하는 궁전)과 중궁전(中宮殿, 왕비가 거처하는 궁전), 대왕대비전에는 고임상〔進御饌案진어찬상〕을 차리고 종친 및 여러 신료, 관원, 군사에게도 상을 차려서 대접하였다.
기용(器用)조에는 잔치에 쓰이는 상과 그릇, 기구, 상화〔床花, 잔칫상 따위에 꽂는 조화(造花)〕등의 그림이 실려 있다. 궁중의 연회 음식은 반기(잔치나 제사를 지낸 뒤에 여러 사람에게 돌라 주는 음식)라는 풍습으로 사대부에 전해지고, 이는 다시 서민에게까지 전달되어 우리의 음식 문화에 영향을 주었다. 민가에서 혼례나 회갑 때 고배 상차리믕ㄹ 하는 것도 궁중 연회의 고배 상차림이 전파된 것으로 여겨진다.
중요무형문화재 조리 기능으로 지정된 종목은 12첩 반상 차림의 수라상과 면상에 차려지는 찬품들이며 궁중 음식 가운데 진연상과 제례음식은 아직 지정되지 않았다.
궁중 음식의 조리 기술은 궁중에서 그 소임을 맡은 내인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승되어 온 것이다. 따라서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히 전수된 것이 없다. 이러한 궁중 음식을 기본 바탕으로 한국 음식 문화의 기본틀을 보존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한희순 상궁의 궁중 음식 조리 기능은 조리 기술, 상차림, 기명, 주방 제도 등 여러 면에서 조사되어 197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로 인정되었다. 한희순에 이어 1973년 제2대 기능 보유자로 인정된 사람은 황혜성이다. 황혜성은 궁중 음식을 포함한 전통음식의 전승 보호를 목적으로 사단법인 궁중음식연구원(1971년)을 설립하고 전수생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전수 교육을 실시하여 궁중 음식 연구의 중흥을 이루었다. 현재 그의 기능은 한복려와 정길자에게 전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