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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을 든 화가

Posted July. 09, 2020 07:36   

Updated July. 09, 2020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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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난 아버지를 향해 총을 쐈어요. 내가 총을 쏘는 이유는 총 쏘기가 재밌고 나를 최고의 기분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죠.” 아버지를 살해한 패륜아의 자백 글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사격 회화’로 명성을 얻은 니키 드생팔이 한 말이다. 그녀는 왜 붓이 아닌 총을 든 걸까? 그 총구는 왜 아버지를 향했던 걸까?

 미술 교육을 받은 적 없는 드생팔은 일명 ‘사격 회화(Shooting Painting)’로 프랑스 화단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물감 주머니를 감춘 흰색 부조에 총을 쏘아 물감이 사방에 튀고 흐르게 하는 전위적인 추상화로, 작가의 어릴 적 트라우마에서 기인한 작품이었다.

 드생팔의 아버지는 프랑스 귀족이었고, 어머니는 아름답고 부유한 미국인이었다. 빼어난 미모로 유명 패션잡지 모델로 활동했던 드생팔은 일찌감치 결혼해 아이도 낳았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남모를 고통이 늘 자신을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급기야 우울증이 심해져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겉보기엔 유복하고 귀하게 자랐을 것 같지만 사실 그녀는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남편의 바람기로 우울증이 심했던 엄마는 어린 그녀를 종종 때렸고, 아빠도 딸을 호되게 대했다. 그러다 열한 살 때 끔찍한 비극이 벌어졌다. 아버지가 그녀를 범했던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는 이후 20년간 그녀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서른한 살이 되던 해 ‘사격 회화’를 시작하면서 그녀는 비로소 끔찍했던 과거를 공개적으로 털어놓기 시작했다. 총 쏘기는 아버지뿐 아니라 자신을 억눌러왔던 가부장제에 대한 복수이자 분노의 표출이었다. 또 자신 안에 잠재된 폭력성을 미학적으로 해소하는 치유의 방법이었다.

  ‘사격 회화’의 성공 이후 드생팔은 영역을 확장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예술에 도전했고 성취했다. 만약 그녀가 총 쏘기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치유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20세기를 빛낸 중요한 여성 미술가 한 사람을 결코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