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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상 방어권 침해하는 휴대전화 비밀번호 강제해제법 추진

헌법상 방어권 침해하는 휴대전화 비밀번호 강제해제법 추진

Posted November. 14, 2020 07:31   

Updated November. 14, 2020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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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그제 “피의자가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악의적으로 숨기거나 수사를 방해하는 경우 법원의 명령 등 일정 요건 하에 그 이행을 강제하고 불이행 시 제재하는 법률 제정을 검토하라”라고 지시했다. 비밀번호 해제를 법으로 강제하겠다는 발상인 것이다.

 추 장관의 지시는 법치를 책임진 주무 장관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인지 귀를 의심케 할 정도다. 아무리 범죄 혐의를 받는 피의자라 하더라도 방어권을 행사하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국민 기본권이다. 헌법 12조2항은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수사기관에 출석해 묵비권을 행사하고 증거를 인멸하더라도 자신과 관련된 행위는 처벌받지 않는 것도 이런 헌법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개인의 비밀정보가 가득 들어 있는 휴대전화의 비밀번호를 내놓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헌법정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초법적 행위가 될 수 있다.

 휴대전화 비밀번호는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개개인의 머릿속에 기억하는 것인데 이를 강제로 말하라는 것은 헌법상 양심의 자유도 침해한다는 지적이 많다. 피의자가 휴대전화 비밀번호 제공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수사기관이 몇 달씩 프로그램을 돌려 잠금 해제를 시도하는 것도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불가침의 사적영역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휴대전화 속에 들어 있는 증거를 확보하는 일은 수사기관의 몫이지 당사자가 협조해야 할 의무는 없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추 장관이 외국 입법례로 거론한 영국의 ‘수사권한 규제법’은 테러 방지 등 국가안보에 한정된 것이어서 일반 형사사건을 염두에 둔 듯한 추 장관의 발상과는 제정 목적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영국 법안의 휴대전화 비밀번호 강제 해제 조항은 테러리스트를 대상으로 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발효가 7년간이나 유보될 정도로 인권침해 논란이 거셌다.

 민주화 이후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는 사생활 침해를 막기 위해 그 범위를 가급적 제한해왔다. 법무장관이 인권옹호의 수장이 되지는 못할망정 인권침해 소지가 다분한 위험천만한 ‘빅브라더법’ 제정을 추진하는 것은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다. 오죽했으면 민변과 참여연대까지 추 장관을 강하게 비판했겠는가. 막말과 아들 관련 의혹, 검찰장악 시도 등 그동안 드러난 흠결에 추가해 법무장관에게 요구되는 인권과 헌법에 대한 기본적인 의식과 소양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