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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창작가요 ‘낙화유수’서 ‘IDOL’까지 190곡 노랫말 전시

최초 창작가요 ‘낙화유수’서 ‘IDOL’까지 190곡 노랫말 전시

Posted May. 15, 2020 07:39   

Updated May. 15, 2020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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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달이밝아서 님의놀든곳/구름속에그의얼골 가리워젓네/물망초핀언덕에 외로히서서/물에 ㅼㅡㄴ이한밤을 홀노새울가”

 무성영화 ‘낙화유수’(1927년)의 동명 주제가다.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대중가요로 알려져 있다. 무성영화 변사(辯士)였던 김서정(1898∼1936)이 곡과 노랫말을 지었는데 큰 인기를 모아 1929년 음반이 정식 발매됐다. 당시에는 노랫말을 ‘가요시’ ‘노래시’라고도 불렀을 만큼 시가 곧 노랫말이고 노랫말이 곧 시가 될 수 있었다. ‘물에 ㅼㅡㄴ(뜬)’, ‘ㅺㅐ울 ㅼㅐㅺㅏ지(깨울 때까지)’처럼 오늘날 사용되지 않는 표기 방식이 쓰인 것도 알 수 있다.

 국립한글박물관(서울 용산구)은 기획특별전 ‘노랫말―선율에 삶을 싣다’를 15일부터 10월 18일까지 개최한다. 대중가요 노랫말을 본격적으로 다룬 전시다. ‘낙화유수’부터 방탄소년단(BTS)의 ‘IDOL’까지 대중가요 190여 곡의 노랫말과 함께 각종 음반과 가사지(歌詞紙), 가사책, 축음기 등 222점을 선보인다.

 “미아리 눈물고개 님이넘던 이별고개/화약연기 앞을가려 눈못뜨고 헤메일때…”

 반야월 작사 ‘단장의 미아리 고개’(1957년 추정)다. 한글박물관에 따르면 1950년대에는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위로한 이 같은 노래와 ‘미8군 쇼’ 등을 통해 들어온 ‘늴리리 맘보’(1957년) 같은 노랫말이 사랑받았다. ‘슈샤인 보이’(1954년)의 “헬로 슈-샤인 구두를 닦으세요”라는 경쾌한 노랫말 뒤에는 직업 전선에 뛰어든 전쟁고아들의 아픔이 숨어 있다. 1960, 70년대에는 도시의 화려한 성장과 이상을 표현한 ‘임과 함께’(1972년)나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오는 소외감이나 향수(鄕愁)를 표현한 ‘고향역’(1972년) 등이 유행했다. 이처럼 노랫말의 변화와 시기별 특징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조종엽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