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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탑 그림자의 위로

Posted January. 22, 2020 07:49   

Updated January. 22, 2020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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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가는 슬픔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한다. 아르헨티나 설치미술가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최근작은 그러한 속성을 멋지게 보여준다. 그는 불국사 석가탑에 얽힌 슬픈 전설을 우연히 들었지만 그냥 넘기지 않았다. 북서울미술관에 전시된 ‘탑의 그림자’가 그 결과다.

 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은 누가 얘기하느냐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달라지지만 그래도 스토리의 골격은 크게 다르지 않다. 1200여 년 전, 백제의 석공 아사달이 불국사에 와서 다보탑을 완성하고 석가탑을 쌓을 때였다. 아사녀가 백제에서 신라까지 남편을 찾으러 왔다. 몇 해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불국사에서는 탑 쌓는 일에 방해가 된다며 남편을 만나게 해주지 않았고, 그녀가 왔다는 것도 남편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녀는 절망했다. 그러자 누군가가 아랫마을 저수지 옆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 저수지 이름이 영지(影池), 즉 그림자 못이니 탑이 완성되면 거기에 그림자가 비칠 것이라면서.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그림자는 비치지 않았다. 석가탑은 무영탑, 즉 그림자가 없는 탑이었다. 아사달은 탑을 완성한 후 그곳에 갔지만 그녀는 이미 죽고 없었다. 그림자를 기다리다가 물에 빠져 죽은 것이었다.

 에를리치는 그림자를 드리워 그들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만든 게 ‘탑의 그림자’다. 그의 작품은 위에서 보면 석가탑이 물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형상이다. 그런데 아래에서 보면 그림자는 실제가 아니라 거꾸로 붙여 놓은 탑이다. 작가는 두 개의 탑 사이에 3cm 두께의 투명한 아크릴판을 설치하고 그 위에 물을 채워 놓았다. 그래서 위에서 보면 아래의 탑이 물에 비친 그림자로 보인다. 착시 효과다. 그는 어딘가를 떠돌고 있었을 아사녀의 슬픈 영혼과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에 속절없이 무너졌을 아사달의 마음을 그런 식으로나마 위로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방인 예술가가 남의 나라 전설을 사유하는 방식이 무척 따뜻하다.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