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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독립운동가 헐버트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빼어난 민족”

미국인 독립운동가 헐버트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빼어난 민족”

Posted October. 29, 2019 09:15   

Updated October. 29, 2019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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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을 각오한 길이었다. 1909년 8월 30일 호머 헐버트 박사(1863∼1949)는 기차를 타고 압록강을 건넜다. 품속에 베를린에서 산 호신용 리볼버 권총이 있었지만 그 무게도 불안함을 덜어주지는 못했다. 미국의 아내에게는 이미 자신의 유고 시 재산 정리와 아이들의 양육을 당부하는 유서도 남겼다. ‘서울에 가서 남겨둔 집안일도, 책도 정리해야 한다….’ 무엇보다 박사는 서울이 그리웠다.

 일제는 2년 전 ‘헤이그 특사’ 사건의 주모자로 박사를 지목했다. 박사는 고종의 밀명을 받고 특사증과 각국 원수에게 보내는 황제의 친서를 소지한 채 한국을 떠났다. 당시 박사의 일거수일투족은 서울의 통감부, 일본 외무성 등의 집중 감시 대상이었다. 미국에 가서는 일제의 침략을 알리는 여론전을 폈다. 스티븐스 저격 사건으로 반한 여론이 상당한 가운데 박사는 뉴욕타임스(NYT) 등을 통해 외롭게 한국을 옹호했다. 황후를 살해하고, 황제를 폐위한 일본이었다. 박사가 미국인이라고 해도 이번에 한국에 돌아오면 신변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었다. 박사의 한국 입국 뒤 NYT는 “박사가 암살 표적이 됐다”는 전언을 보도했다.

 신간 ‘헐버트의 꿈 조선은 피어나리!’(김동진 지음·참좋은친구)를 통해 들여다본 박사의 삶 가운데 한 장면이다. 저자가 ‘파란 눈의 한국혼 헐버트’(2010년) 이후 10년 가까이 자료를 추적해 보완한 박사의 삶이 촘촘하게 담겼다. 유서도 박사의 외손녀로부터 입수한 것이다.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빼어난 민족 중 하나다(Koreans are among the world’s most remarkable people).”

 저자가 찾아낸 1949년 7월 미국 ‘스프링필드유니언’지에 실린 헐버트 박사의 인터뷰다. 찢어지게 가난한 작은 신생 독립국 국민을 평가하는 표현이었으니 ‘황당한 소리’ 정도로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박사는 확신했다. “한국인은 가장 완벽한 문자인 한글을 발명했고, 임진왜란 때 거북선으로 일본군을 격파해 세계 해군사를 빛냈으며, (조선왕조실록같이) 철저한 기록 문화를 지니고 있다”며 사례를 거론했다. 무엇보다도 “3·1운동으로 보여준 한민족의 충성심(fealty)과 비폭력 만세 항쟁은 세계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애국심의 본보기”라고 강조했다.

 박사가 1905년 고종의 특사로 미국에 파견돼 을사늑약의 무효를 주장할 당시 고종과 박사가 눈물 어린 전보를 주고받았다고 보도한 NYT 1905년 12월 기사도 새로 찾아냈다. 고종은 “나 대한제국 황제는 … 조약이 무효임을 선언하노라. … 최상의 방책으로 미국과 이 조약의 종결을 이끌어내길 바라오. …”라는 전보를 박사에게 보냈다. 저자는 “황제가 늑약이 무효라고 선언한 실체적 증거가 이 전보”라고 했다.

 부인 메이 헐버트가 일제의 침략을 고발한 인터뷰 기사도 책을 통해 공개했다. 메이 헐버트는 뉴욕트리뷴 1910년 5월 기사에서 “한국의 상류층은 일본 상류층에게 굴욕을 당하고, 한국 노동자들은 일본 노동자에게 좌우로 두들겨 맞으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증언했다.

‘헐버트의 꿈…’에는 목숨을 걸고 한국을 사랑한 박사의 삶이 드러난다. 독립운동가이자 외교관, 한글 전용의 선구자, 한국어학자, 역사학자, 언론인, 민권운동가 등 박사의 다양한 면모를 각종 기고문과 편지, 저서, 회고록을 통해 재조명했다. 박사가 출간한 최초의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의 출간 시기가 1891년 1월이라고 확인하기도 했다.


조종엽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