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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부품 키우려면 상속세도 손봐야

Posted August. 12, 2019 07:32   

Updated August. 12, 2019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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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부품 기업을 키우자는 논의가 한창인 요즘 막상 오너들을 만나보면 “현재의 논의는 반쪽짜리”라고 말한다. 취약한 산업을 키우자는 논의가 의미 있는 일이긴 하나 그렇게 키워놓은들 한 세대만 지나면 회사가 찌그러들거나 인수합병(M&A) 시장에 나와 자칫하면 외국계로 넘어가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부담이 큰 상속세법 때문이라고 했다.

 어떤 글로벌 수준의 전자 소재부품 기업의 오너는 자식에게 지분 상속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때가 되면 지분을 제로로 만들겠다고 했다. 지분을 물려주자니 얼마 안 되는 현금이나 부동산을 세금으로 내야 하고, 지분을 내다 팔자니 다른 주주들에게 욕먹는 ‘무책임한 경영자’가 되겠다는 생각에 짜낸 아이디어였다. 본인 지분을 0으로 감자하면 다른 주주들의 지분이 올라가니 욕은 덜 먹고 현금자산은 챙길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상속세가 너무 세다 보니 아직 애가 어리지만 이런 편법까지 미리 생각해두는 거지요.”

 실제 우리나라 상속세율은 세계에서도 가혹할 정도로 센 편이다. 일단 상속세율은 50%이고 여기다 최대주주 할증으로 주식 지분의 30%까지 더 내야 한다(세법 개정안 국회 통과 시 내년부터는 최대 할증률이 20%로 낮아지지만 부담은 여전하다). 여기다 농어촌세까지 붙으면 지분 1억 원어치를 물려주기 위해 내야 하는 세금이 7000만 원을 넘는다.

 현재 중소기업에는 할증세금을 면제할 뿐만 아니라 일정액을 공제해주고 있지만 그 기준도 너무 낮다. 할증을 면제받으려면 자산총액이 5000억 원 미만이고, 매출액은 금속 및 전기제조업 기준 1500억 원 미만이어야 한다. 요즘 웬만한 중소기업 매출액은 1500억 원을 넘는 경우가 많다. 공제 대상이 되려면 매출액이 3000억 원 미만이어야 한다. 또 가업 승계 이후 10년간(세법 개정 시 7년간) 업종을 바꾸거나 고용인원을 줄이거나 자산액을 떨어뜨리면 혜택을 토해내야 한다.

 우리가 키우고자 하는 소재부품 산업은 고부가가치라 매출액은 1조 원을 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더구나 업종, 인원, 자산에 손을 대서는 안 되니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신사업 구상도, 업황에 따른 인원 및 시설 구조조정도 하지 말라는 뜻으로 중소기업 사장들은 받아들인다.

 이러다 보니 많은 60, 70대의 중소기업 오너가 평생 공들여 키운 회사를 ‘찌그러지게’ 만들고 자녀가 만든 새 회사를 지원해주는 방법을 고민하고 공유한다고 한다. 한 증권업계 프라이빗뱅커는 “세금을 내고 물려주고 싶어도 너무 과하다 보니 엄두가 안 나는 겁니다. 이들을 어떻게 욕만 할 수 있겠어요”라고 했다.

 가업상속세에 대해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라는 관점을 넘어설 때가 됐다. 미국 영국 독일 등이 가업상속 시 기본 상속세가 우리나라보다 낮고 매출액, 종업원 수, 기업 유지 조건 등에 유연한 기준을 적용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업을 유지하는 한 상속세를 이연하는 나라도 있다. 건강한 기업이 태어나 국가에 부가가치를 보태고 고용을 창출하면 그 기업을 이어가게 하는 게 징벌적 세금으로 오너를 손떼게 만드는 것보다 낫다고 보는 것이다.

 안 그래도 불황에, 승계 고민에 회사를 내놓는 중소·중견기업 오너들이 늘고 있다. 이들과 거래가 많은 어느 금융사는 M&A 중개회사와 협약을 맺기까지 했다. 이 중개회사가 반드시 한국 기업을 매수자로 데려오리란 보장도 없지 않은가.

 “세계적 수준의 소재부품 기업을 키우자는 건데, 그런 기업이 어떻게 20∼30년 만에 됩니까. 독일처럼 100∼200년 된 기업이 나오려면 조건을 만들어 줘야죠.” 한 중소기업 사장의 호소다.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