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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원리

Posted July. 31, 2019 07:39   

Updated July. 31, 2019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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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죽으면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이 참기 힘들다.’ 조선 후기 문인 심노숭(沈魯崇)이 쓴 짧은 글 ‘무덤 옆에 나무를 심으며(新山種樹記)’의 마지막 문장이다. 그가 31세에 죽은 동갑내기 아내를 그리며 무덤가에 나무들을 계속 심자, 죽으면 아무것도 모른다며 사람들이 만류했던 모양이다. 그와 사이가 좋던 동생 노암(魯巖)마저도 형이 애도의 감정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에게 죽음은 소멸이 아니었다.

 심노숭이 살았던 조선시대는 애통한 감정을 글로 드러내는 걸 금기시했다. 아내의 죽음을 과도하게 슬퍼하면 비웃던 시대였다. 그는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었다. 그는 아내를 잃고 느끼는 상실감과 고통을 표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반찬으로 올라온 쑥을 보고도 아내를 떠올리며 목이 메었고 그 감정을 시로 표현했다. ‘나를 위해 쑥을 캐던 사람, 그 사람의 얼굴에 덮인 흙 위로 쑥이 돋았다.’

 그는 아내의 죽음을 애도한 50편에 가까운 시와 산문을 남겼다. 그중에서 눈물에 관한 글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집약하여 보여준다.

 그는 애도의 대상이 감응해야 눈물이 난다고 생각했다. 곡을 해도 눈물이 나지 않거나 곡을 하지 않아도 눈물이 나는 건 그래서라고 했다. 그는 제를 지내면서 눈물이 나면 제를 지냈다고 느끼고, 눈물이 나지 않으면 제를 지내지 않은 것이라 느꼈다. 세월이 흘러도 마찬가지였다. 거문고와 피리 소리를 들을 때, 책상 위에 서류가 수북이 쌓여 있을 때, 술에 취해 정신이 없을 때, 바둑이나 장기를 둘 때, 즉 그가 슬픔과 전혀 관련 없을 때 속절없는 눈물이 흐르는 것은 아내의 혼이 감응한 결과였다. 그렇다면 눈물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타자의 것이기도 했다. 다소 감상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누원(淚原), 즉 눈물의 원리였다. 그립고 아린 마음이 닿고 통해서 흐르는 게 애도의 눈물이라는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