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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발림 친서와 낭만적 평화론, ‘대화 위한 대화’는 안 된다

입발림 친서와 낭만적 평화론, ‘대화 위한 대화’는 안 된다

Posted June. 13, 2019 07:50   

Updated June. 13, 2019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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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받았다고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개인적이고 매우 따뜻하고 매우 멋진 친서였다”며 “매우 긍정적인 뭔가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3차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그 시기에 대해서는 “추후 어느 시점”이라고만 했다.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도 3차 회담에 대해 “전적으로 가능하다. 열쇠는 김 위원장이 쥐고 있다“고 했다.

 김정은 친서를 계기로 2·28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100일 넘게 사실상 연락두절 상태인 북-미가 다시 대화의 시동을 걸 수 있을지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일단 그렇게 물꼬가 트인다 하더라도 3차 정상회담이 이뤄질지, 나아가 합의를 만들어낼지는 알 수 없다. 하노이 결렬에서 봤듯 두 정상이 아무리 ‘좋은 관계’라도 그것으로 합의가 이뤄질 수는 없다. 비핵화 해법을 둘러싼 양측 입장차는 전혀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은 미국의 일괄타결식 빅딜 요구에는 응답하지 않은 채 미국의 태도 변화만 촉구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주 발표한 싱가포르 1주년 담화를 통해 “우리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 미국은 셈법을 바꿔 하루빨리 우리 요구에 화답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다. 1주년이 된 어제도 노동신문을 통해 “전쟁은 외교나 구걸이 아니라 강력한 힘으로만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이런 협박조 언사가 김정은 친서에는 어떻게 윤색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래선 실무협상이 시작되더라도 시간을 벌기 위한 ‘대화를 위한 대화’만 계속될 뿐이다.

 북한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 장례에도 조문단을 보내지 않고 판문점을 통해 조의문과 조화만 전달했다. 하노이 결렬 이후 남북관계마저 단절시키면서 남측을 향해 ‘어느 편인지 확실히 하라’고 윽박질러온 북한이다. 남북 대화의 기회마저 거부하면서 미국엔 입에 발린 친서를 보내는 김정은의 태도에선 그 어떤 변화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노르웨이 오슬로대 연설에서 “평화란 힘에 의해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평화는 오직 이해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는 아인슈타인 어록을 인용하며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주문했다. 백번 지당한 얘기겠지만, 냉엄한 국제정치 현실에서 그런 낭만적 평화론으로 북핵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지 답답할 뿐이다. 북-미는 각자 셈법에 따라 또 다른 ‘외교 쇼’를 준비하는데, 우리 정부는 들러리나 서겠다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