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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순교

Posted June. 12, 2019 07:45   

Updated June. 12, 2019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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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미와 떨어지거든 하늘이 찢어지도록 울어라. 울어서 네가 살아 있음을 알려야 한다. 그래야만 네가 산다. 그 울음을 주께서 들을 것이고 사람의 귀가 들을 것이고 종국에는 인정이 움직일 것이다.” 김소윤의 소설 ‘난주’에 나오는 말이다. 아이를 떼어놓는 어미는 정약현(다산 정약용의 형)의 딸 난주이고, 아이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참수당한 천주교인 황사영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두 살배기 아들이다.

 신유박해는 백서(帛書) 사건이 단초였다. 백서는 황사영이 종교 탄압과 관련하여 베이징의 천주교 주교에게 보내려고 비단(帛)에 쓴 밀서였다. 그 사건으로 황사영은 능지처참을 당하고 부인은 관비가 됐다. 그런데 그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만, 역사는 관비가 된 부인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영웅의 자리는 남성의 몫이었다.

 소설은 그 사실에 주목한다. 남편과 달리 부인에게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순교(殉敎)는 일종의 사치였다. 신앙심이 덜해서가 아니라 두 살 된 아이 때문이었다. 배교(背敎), 즉 종교를 배반해서라도 목숨을 보전해 젖먹이를 거둬야 했다. 그녀는 예수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위안을 삼았다. “성모께서 처녀의 몸으로 잉태한 예수를 기쁨으로 낳았으며, 그 아들의 마지막 길까지 묵묵히 곁을 지켜주지 않았던가.” 난주가 택한 길은 ‘살아 있는 순교’였다.

 그녀는 제주도로 끌려갈 때 배가 추자도에 정박하자 모래밭에 있는 소나무에 아이를 묶어놓게 했다. “하늘이 찢어지도록 울어라.”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양민의 삶을 살도록 하려는 배려였다. 그렇지 않으면 노비가 될 터였다. 노비는 대물림이었다.

 그녀는 제주도에서 37년을 관비로 살았지만, 신앙의 가르침대로 낮은 자들에게 헌신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추자도에 버린 아들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소설은 그녀가 노년에 아들을 만나 살아가는 것으로 묘사한다. 그렇게라도 그녀의 상처와 응어리를 풀어주려는 배려에서 나온 상상이다. 이럴 때 소설은 애도의 한 형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