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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워싱턴 주미 대한제국공사관서 강진희가 그린 '승일반송도' 공개

1888년 워싱턴 주미 대한제국공사관서 강진희가 그린 '승일반송도' 공개

Posted April. 30, 2019 09:02   

Updated April. 30, 2019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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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조선 개국 497년 7월 25일은 곧 우리 임금님의 만수경절(萬壽慶節)입니다. 소신은 주미수원(駐美隨員)이기 때문에 워싱턴 공서에서 상고하여 엎드립니다.”

 1888년 8월 30일(음력 7월 25일) 미국 워싱턴의 피셔하우스. 주미 대한제국공사관이었던 이곳에서 박정양(1842∼1905) 초대 주미공사 등 관원 10여 명이 고종의 생일을 기념한 조촐한 연회를 연다. 뛰어난 외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박정양의 수행원으로 함께 미국에 갔던 청운(靑雲) 강진희(1851∼1919)는 이 자리에서 붓을 들었다.

 국왕을 뜻하는 붉은 해와 장생을 의미하는 영지, 구름 등을 화면 곳곳에 그려 넣었다. 화면 중심에 위치한 뿌리를 드러낸 소나무는 고종이 어릴 적 타고 놀았던 운현궁의 ‘정이품 대부송’과 매우 유사하다. 이것이 서양 종이에 조선의 전통 화풍이 결합된 독특한 매력의 ‘승일반송도(昇日蟠松圖)’다.

 최근 초대 주미 대한제국공사관원으로 활동한 강진희가 미국 현지에서 그린 그림이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16일 개막한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근대 서화, 봄 새벽을 깨우다’에 강진희의 작품 승일반송도와 ‘삼산육성도(?山六星圖)’가 출품된 것. 삼산육성도는 1888년 순종의 생일(음력 2월 8일)을 기념해 신선들과 불로불사의 선약(仙藥)이 있다고 알려진 전설 속의 삼신산(三神山)을 표현한 그림이다.

 김승익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구한말 조선인이 미국에서 그린 작품 가운데서 가장 앞선 시기인 1888년 그림들로 근대서화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며 “강진희 타계 100주년을 맞은 올해 시민들에게 첫 공개한다는 점에서 뜻깊다”고 설명했다.

 강진희는 일본어와 영어, 글과 그림에 모두 능통했던 구한말 지식인. 그는 1888년 미국에 도착한 직후부터 그림으로 역사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화차분별도(火車分別圖)’는 워싱턴 공관에서 멀리 두 열차가 오고가는 풍경을 표현해 낸 작품이다. 미국의 풍경을 담아낸 최초의 기행견문화라 할 수 있다. 강진희는 미국에서 박정양 공사와 함께 대한제국의 자주 외교를 꿈꿨으나, 당시 청나라의 노골적인 간섭과 방해로 인해 결국 1889년 2월 12일 강제로 귀국했다. 이후 대한제국의 관료로 일한 그는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모든 관직에서 물러나 서화에 전념하며 서화미술회, 서화협회 등을 이끌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강진희 작품을 다음 달 22일 재개관 1주년을 맞는 워싱턴의 주미 대한제국공사관 옛 청사에서 전시할 계획이다. 강임산 재단 협력지원팀장은 “1893년 공사관 내부를 찍은 사진을 최근 분석한 결과 강진희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확인되는 등 워싱턴 곳곳에서 그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유원모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