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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고교 사태의 ‘공범’

Posted August. 31, 2018 07:30   

Updated August. 31, 201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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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딸은 당신 딸의 들러리가 아니다.’ 30일 서울 강남 A고교 정문에 성난 엄마들이 벽보를 붙였다. 이 학교 교무부장이 나란히 문·이과 1등을 차지한 쌍둥이 딸이 볼 시험지와 정답을 사전 검토했다는 감사 결과가 발표되자 집결한 것이다. 엄마들은 혹시 딸의 수업에 방해될까 구호를 외치는 대신 침묵을 지켰다. 경찰 수사로 밝혀질 테지만 시험지와 정답 유출이 사실이든 아니든 우리 교육은 사망선고를 앞두고 있다.

 ▷시험지 유출이 사실로 드러나면 공교육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 A고교는 한 해 수십 명씩을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에 보낸다. 이런 명문고에서 교사가 직접 반칙을 했으니 그동안 시험지 유출 사건과는 파장이 다를 것이다. 가뜩이나 학교의 실력을 믿지 못해 학원을 찾는다는데 공교육의 ‘마지막 보루’인 교사의 직업윤리조차 무너진다면 학교는 그야말로 불신지옥(不信地獄)이다. 경찰 입회 아래 시험 출제와 배포가 이뤄지고, 교실마다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라는 요구가 빗발칠 것이다. 고교 내신을 반영하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등 현행 대입도 위태로워진다.

 ▷교사의 배신도 뒷맛이 쓰다. A고교 교무부장은 딸들이 “고교 입학 후 학원을 보냈더니 성적이 올랐다”고 해명했다. 해당 학원에서 딸들이 속한 레벨로는 전교 1등이 어렵다는 반박이 나오면서 ‘쉬쉬’하던 사건은 더 커졌다. 처음 교육 분야 취재를 시작했을 때 서울 강남에서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엄마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기사는 실리지 않았다. 하마터면 교사도 보내는 학원을 보내지 말라고 할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재차 만난 교사들은 “선행학습이 일상이 되면서 교실이 붕괴됐다”고 했다.

 ▷반면 사실이 아니더라도 해당 교사와 쌍둥이 자매는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어렵게 됐다. 성적이 쑥쑥 올랐는데 열심히 했다고 칭찬을 받기는커녕 혹독한 질타를 받았다. 친구 공책까지 훔친다는 피도 눈물도 없는 내신 경쟁의 제물이 된 셈이다. 우리 교육의 참담한 모습이다. 미리 가르친 학부모가 문제인지, 안 가르친 교사가 문제인지, 정치로 왜곡된 교육행정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모두가 A고교 사태의 ‘공범’은 아닌가.


우경임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