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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독립운동가

Posted August. 16, 2018 07:41   

Updated August. 16, 2018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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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들은 각처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만세를 부르는데…무지몽매하고 신체가 허약한 여자의 일단(一團)이나 같은 국민, 같은 양심의 소유자이므로 주저함 없이…동포여, 빨리 분기하자.’ 1919년 3·1 독립선언보다 한 달 앞서 썼다는 대한독립여자선언서다. 중국 서간도에서 활동하던 애국부인회가 여성들의 독립투쟁을 독려하기 위해 쓴 격문이었다.

 ▷3·1운동은 남녀 구분 없이 온 국민이 단결했던 민족운동이었다. 여성으로는 주로 유관순 열사만 기억되지만 17살 나이로 3·1운동에 참여했다 옥중 순국한 동풍신 열사도 있다. 이듬해 이를 재연했다 옥고를 치른 배화여학교 김경화 박양순 성혜자 소은명 안옥자 안희경 등 ‘제 2유관순’도 적지 않았다. 2014년 몇몇 고교 한국사 교과서가 유관순 열사를 삭제했는데 유관순 대신 두산 교과서가 소개한 인물이 강주룡이다. 남편과 서간도에서 항일무장운동을 하다 남편이 숨지자 귀국해 노동운동을 했다.

▷독립운동가 남편을 둔 아내, 아들을 둔 어머니의 희생과 의연함은 끈질긴 독립운동의 밑거름이이자 무기였을 것이다. 1909년 3월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며 사형을 앞둔 안중근 의사와의 면회는 끝내 하지 않았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 안 의사 사후에도 임시정부 뒷바라지를 했던 어머니 역시 독립운동가였다.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우당 이회영 선생의 아내인 이은숙 여사는 어떠한가. 양반가 외동딸로 태어나 타지에서 독립운동가들을 밥해 먹이고 삯바느질로 군자금을 대면서 ‘서간도 시종기’라는 기록까지 남겼다.

 ▷그럼에도 여성 독립운동은 잊혀진 역사다. 전체 독립유공자 1만 5000명 가운데 여성은 3%에 불과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여성의 독립운동은 깊숙이 묻혀왔다”며 강주룡과 제주 해녀 항일 운동을 주도했던 고차동, 김계석, 김옥련, 부덕량, 부춘화 등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불렀다. 나라를 뺏긴 데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삶은 이중, 삼중 가혹했을 터다. 더 늦기 전에 그들의 치열한 삶이 온전히 빛을 보기를 바란다.


우경임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