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유럽서 자본주의 꽃피우던 18세기... 조선은 어땠을까

유럽서 자본주의 꽃피우던 18세기... 조선은 어땠을까

Posted June. 16, 2018 09:19   

Updated June. 16, 2018 09:19

中文

 “‘담배 사려!’ 외치는 소리 끊어졌다 이어지고, 행랑에는 등불 밝혀 골목길이 환하다. 한가로운 네댓 사람 팔짱 끼고 말하네. ‘밤새 군칠이 집에 술을 새로 담갔다더군’”(서명인의 ‘취사당연화록’ 중)

 1766년 어느 봄날. 한양에 살던 선비 서명인(1725∼1802)은 친구와 종루(鐘樓·지금의 종로) 거리를 거닐다 이 같은 시를 남긴다. 여기서 ‘군칠’은 종로에서 가장 유명한 술집이었던 ‘군칠이집’을 뜻한다. 직접 빚은 술맛이 일품일 뿐 아니라 개장국을 주 안주로 하는 각종 어육(魚肉)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18세기 한양은 당시 조선 인구 800만 명 중 30만 명이 모여 사는 거대한 도회지였다. 특히 술집이 가장 번성한 업종이었는데, 이로 인해 조선의 조종에선 금주령을 자주 내리기도 했다.

 같은 시기 유럽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17세기 ‘튤립 광풍’을 겪었던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 이 도시는 한 세기가 지나면서 오늘날의 선물 거래와 비슷한 금융 제도와 각종 거래소가 생겨나는 등 자본주의가 꽃피웠다. 그러나 유럽 각지의 빈민들이 모여들면서 심각한 빈부 격차와 계급 차별이라는 부작용을 앓기도 했다. 오늘날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 당시 이곳엔 원주민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실제로 성벽(wall)이 존재했다고 한다.

 이 책은 ‘한국18세기학회’에서 활동하는 인문학자 25명이 조선의 한양부터 유럽과 북미, 아시아 각 도시의 18세기 사회상을 조명했다. 이들은 “18세기는 유럽에선 산업혁명이 시작됐고, 동아시아는 정치적 안정 속에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뤄낸 시기로 현대적 도시의 성장에 가장 중요한 때였다”고 설명한다.

 머리말에서 정병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수천 년 역사의 옛 도시 구도심에 내려 호텔에 짐을 풀고 천천히 시내를 걸어 다니다가 노천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 마시는 자세로 읽히기를 바란다”고 독서 가이드를 제시한다. 천천히 18세기 도시들을 음미해 볼수록 읽는 맛이 좋아지는 책이다.


유원모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