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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드라마 ‘여성 시대’

Posted January. 08, 2018 08:41   

Updated January. 08, 2018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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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독점의 시간은 끝났다.”

 할리우드 여배우와 작가, 감독, 프로듀서 등 300명이 결성한 직장 성폭력 대응 단체 ‘타임스 업(Time’s up·시간은 끝났다)’이 뉴욕타임스 전면 광고를 통해 한 선언이다. 배우 리스 위더스푼이 제안해 만든 이 단체에는 내털리 포트먼, 오프라 윈프리, 메릴 스트립 등이 참여했다.

 페미니즘 바람이 거세다. 지난해부터 할리우드, 실리콘밸리의 직장 내 성폭력을 폭로하는 발언이 이어지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성차별적 발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작자들은 이를 예견이라도 한 듯 여성을 중심에 내세운 콘텐츠를 내놓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SF 드라마인 BBC ‘닥터 후’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스페셜 에피소드에서 54년 만에 여성 닥터를 깜짝 공개했다. 570만 명이 시청한 이 에피소드에서 12대 ‘닥터’ 피터 캐팔디의 몸이 재생성을 위해 사라지자 13대 닥터 조디 휘태커가 등장한 것. 1963년 방영을 시작한 ‘닥터 후’에 나온 첫 여성 닥터다. 새로 태어난 그는 “오, 멋진데?”라며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닥터 후’ 시즌11의 제작자 크리스 칩널은 “오래전부터 13대 닥터는 여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왔고 오랜 토론과 오디션을 거쳐 최고의 닥터를 선보이게 됐다”고 했다. 휘태커는 “페미니스트, 여성, 배우이자 인간으로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게 돼 말할 수 없이 기쁘다”고 밝혔다. 여성 닥터의 등장에 오랜 팬들 사이에서는 닥터 고유의 매력이 사라질까 걱정된다는 불만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6대 닥터 콜린 베이커는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 닥터가 가진 여성적 측면을 보여주기로 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며 환영했다. 

 넷플릭스 ‘블랙 미러’는 모든 6개 에피소드에서 여성이 주인공인 새 시즌을 지난해 12월 29일 공개했다. ‘블랙 미러’는 2011년 영국 채널4에서 시작한 단편 드라마 시리즈.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발달에 따른 암울한 미래를 적나라하게 그려 주목받은 뒤 지난해부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되고 있다.

  ‘블랙 미러’의 새 여성 주인공들이 화제가 되자 제작자 애너벨 존스는 말했다.

 “처음부터 주인공의 성별을 정하지 않았지만 공교롭게도 모두 강한 캐릭터를 지닌 여성이 전면에 나섰다. 훌륭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블랙 미러’의 새 시즌은 여성이 가진 감정과 에너지가 이야기에서 신선하게 드러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자신의 과거를 숨기기 위해 살인을 하게 되는 에피소드 ‘악어’의 주인공은 처음에는 남성이었다. 하지만 오디션 과정에서 여성 배우가 주연을 맡음으로써 메시지가 더 강력해졌다고 존스는 설명했다.

 조디 포스터가 연출한 ‘아크엔젤’도 여성이 주인공이 되면서 서사가 풍부해졌다. 이 에피소드는 자녀의 몸에 칩을 심어 감정과 시각을 관찰하는 프로그램인 아크엔젤이 개발된 미래가 배경이다. 아크엔젤을 중심으로 한 엄마의 집착과 딸의 저항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비틀어 비뚤어진 모성애와 욕망을 부각시켰다.

 국내에서도 KBS2 ‘마녀의 법정’, ‘고백부부’처럼 여성의 출세욕, 모녀 관계를 신선하게 그린 드라마들이 주목받았다.

 올해에도 이런 흐름은 이어질까? 12대 닥터 캐팔디는 새 닥터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혐오는 언제나 멍청하고, 사랑은 늘 현명하다.”




김민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