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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통해 민간기업 조종하면 사회주의 아니고 뭔가

국민연금 통해 민간기업 조종하면 사회주의 아니고 뭔가

Posted November. 28, 2017 08:44   

Updated November. 28, 2017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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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 노후자금 600조 원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이 정부 방침에 따라 주주권을 행사하려는 조짐을 보이면서 관치(官治)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은 이달 20일 KB금융지주 주주총회에서 대통령 공약인 노동이사에 찬성표를 던진 데 이어 내년 1월에는 기업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의결권 행사지침인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할 예정이다. 정치적 외압에 흔들리는 의사결정구조를 방치한 채 추진되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확대는 연금가입자나 주주의 이익을 외면한 정권과의 코드 맞추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연기금이 의결권을 제대로 행사하면 기업의 경영 투명성과 기업 가치를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국민연금 지배구조는 정치 논리에 좌우될 수 있는 취약한 구조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임명하고, 기획재정부가 국민연금의 경영을 매년 평가하는 현행 구조에서 가입자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의결권 행사는 어렵다. 기금운용본부가 복지부에 종속돼 있고 투자결정이 정치 사회적 의도에 종속돼선 안 된다는 ‘신인(信認) 의무’를 보장하는 사람도 없다. 그동안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없었던 근본적 한계가 있었던 셈이다.

 신중한 투자를 담보하기 힘든 상황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만 성급하게 도입한다면 정부 입맛대로 주요 기업의 경영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다. 국민연금은 275개 상장기업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삼성전자 포스코 등 한국 대표 기업의 최대주주 자리를 꿰찬 매머드급 기관투자가다. 노동이사 1, 2명씩 민간 기업 이사회에 진출하고 다른 중소규모 기관투자가들이 증시의 큰손인 기관투자가의 움직임에 동조하기 시작하면 기업은 스스로 정부 눈치를 보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지낸 김영주 국민연금 이사장은 ‘코드 관치’를 실행에 옮기는 창구가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노동이사제 도입이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어서 여당은 공공기관의 노동이사 도입을 추진하는 법을 제정하려고 한다. 노동이사제는 올해 서울시를 시작으로 공공기관에 이어 민간 금융기관, 더 나아가 민간기업까지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민연금이 막강한 의결권으로 민간기업에 노동이사를 심어 경영까지 좌지우지한다면 그게 바로 민간기업의 정부의 입김 따라 움직이는 사회주의가 아니고 뭔가.

 더구나 국민연금 자금으로 국정과제를 추진하는 것은 국민의 노후자금을 갉아먹을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이미 정부는 장기 임대주택 건립, 보육시설 확대, 요양사업 등에 국민연금 재원을 끌어다 쓰기 위해 방안을 준비 중이다. 국민연금도 공익사업에 투자할 수 있지만 재정의 안정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법에 명시돼 있다. 지난해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4.8%로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이나 캐나다 공적연금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2060년이면 기금이 고갈되는 상황에서 수익률보다 공익성을 우선시하는 투자는 2200만 가입자의 반발에 직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