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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 속 개구리’로 있다간 20년 전 외환위기 또 당해

‘냄비 속 개구리’로 있다간 20년 전 외환위기 또 당해

Posted November. 04, 2017 07:21   

Updated November. 04, 2017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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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 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는 우리사회에 길고 깊은 후유증을 남겼다. 많은 기업과 금융기관이 문을 닫고 대량 실업으로 직장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고통과 좌절에 시달렸다. 갓 출범한 김대중 정부의 개혁조치와 국민들의 금 모으기 등 민관이 합심해 국가부도 위기 탈출에는 간신히 성공했다. 98년 -5.8%였던 성장률이 이듬해엔 11.3%로 뛰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졌다’고 모두가 믿었다.

 그러나 다시 우리사회에는 IMF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중산층 붕괴와 심각한 양극화, 안보와 경제 복합위기가 한꺼번에 닥친 엄혹한 상황이다. 일각에선 ‘제2 IMF’를 우려하는 경고음까지 발한다. 나라가 흥하는 데는 수십 년의 축적이 필요하지만, 주저앉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긴 안목으로 사회 경제구조와 민관의 의식을 개혁하고 쇄신하지 않으면 선진국 문턱에서 주저앉을 수 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외화유동성 위기로 닥쳤다. 하지만 그 본질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였다. 연간 200억 달러가 넘는 경상수지 적자와 정부주도의 고성장정책, 기업의 과도한 차입 경영, 국제 경쟁력 상실이 겹쳤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이 해외투자자들의 신뢰를 떨어뜨렸다. 그런 점에서 ‘신뢰의 위기’였다. 위기에서 빠르게 벗어난 것은 다행이지만 탈출에만 급급하다보니 근치(根治)에 실패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경제전문가 489명 조사결과 88%가 한국 경제가 ‘냄비 속 개구리’ 라고 답했다. 뜨거워지는 물 속에서 서서히 죽어간다는 뜻이다. 전문가 60%는 경제 회생의 골든타임이 1∼3년 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도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정규직화, 고용유연성 악화 등 반(反)기업 친(親)노동 정책만 쏟아진다. ‘사람중심 경제’ 역시 규제개혁과 좀비기업을 걸러내야 성과를 낼 수 있다.

 미완인 노동·공공 개혁에 문재인 정부는 주춤거리거나 외면한다. ‘철밥통’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손조차 못 대는 형국이다. 나라 곳간을 텅 비게 만들 복지 포퓰리즘 위기를 직시하지도 못 한다. 위기 자체보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 하는 것이 더 문제다. 문재인 청와대는 지난달 ‘외화 보유액과 기업부채, 경상수지 수치가 양호하다’며 위기 가능성을 일축했다. 현 상황은 여러모로 20년 전과 빼닮아 있다.

 나라 안팎의 상황이 엄혹한데도 정부는 97년 IMF 위기 때처럼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아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역량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걸고 과거에 쌓여있던 문제들을 한꺼번에 정리하려는 개혁 조급증에 빠져있다. 국회에서 여야가 사사건건 대립하고 충돌을 빚으면 개혁 민생입법 처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문 대통령부터 ‘제2 IMF’ 위기를 막는 통합의 리더십을 선보여야 한다.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 경제를 살리려면 패러다임부터 바꿔야 한다. 지금은 국가주도 고도성장기가 아니다. IT기업의 천국 실리콘 밸리를 보라. 정부의 규제와 간섭은 줄일 필요가 있다.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는 일류 기업이 혁신과 변화를 하도록 지원하면 된다. 정부가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부터 가려야 한다. 차라리 “정부가 아무 일도 안 하는 게 낫다”는 대표 기업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문 대통령부터 시장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갖고 정부개혁 사회분야 개혁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어느 대통령인들 당대에 실패한 대통령이 되고 싶겠는가. 고 김영삼 대통령은 집권 초기에 개혁 드라이브로 혁혁한 성과를 냈지만 집권 말기 국민을 고통스럽게 만든 IMF 사태로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멍에를 썼다. 한국이 다시 위기를 맞게 된다면 그것은 일차적으로 구조개혁을 외면한 정부와 대통령 책임이다.



최영훈 tao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