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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밥상

Posted October. 03, 2017 08:31   

Updated October. 03, 2017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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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20년 전인 1998년 ‘최고의 밥상’이란 프로그램이 있었다. 요리에 관심 있는 동호인들이 출연해 자신들이 만든 요리로 우열을 가리는 형식이었다. 지금은 ‘먹방’이 오락과 교양 프로그램의 대세로 자리 잡았지만 당시에는 획기적 시도였다. 낮 시간대 시청률은 괜찮았지만 저녁 시간대로 옮기면서 시청률이 떨어졌고 1년이 못 돼 폐지됐다.

 1994년 ‘꼬마 요리사’를 시작으로 ‘최고의 밥상’ ‘결정 맛 대 맛’으로 요리 프로그램 연출에서 선구자 역할을 한 SBS 최영인 PD는 최고의 밥상을 찾았을까. 자연스럽게 여러 고수(高手)의 맛을 접했지만, 그들에게서는 답을 못 찾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맛과 시청률에 관한 그의 해석이 흥미롭다. “아는 맛, 예측 가능한 맛이 나와야 침샘이 고이고 시청률이 뛰어요. 모르는 맛은 요리가 화려해 보여도 남의 맛이죠. 그래서 사람들이 추억이 있는 엄마의 손맛을 최고의 밥상으로 자주 꼽는 것 같아요.”

 정서적인 측면을 빼면 조선시대 최고의 밥상은 수라상, 즉 ‘왕의 밥상’이다. 전국 각지에서 진상된 최상의 재료로 최고 수준의 요리사가 만들었으니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그 밥상이 지금도 최고일지는 미지수다. “‘가장 맛있다’는 기준이 무엇인가에 따라 달라지죠. 당시 좋은 재료라고 해도 지방에서 서울로 오기 때문에 절이거나 말려야 했으니까요. 왕의 밥상은 ‘육해공’ 재료를 골고루 살려 예법에 맞춰 올린 건강식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산지에서 가공하지 않고 즉석에서 먹는 요즘 사람들의 밥상이 최고 아닐까요?”(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장)

 왕의 밥상은 건강뿐 아니라 메시지를 담은 정치적 행위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그 밥상은 자신의 입과 위장을 통해 한 해 수확을 가늠하고 백성의 밥상머리 속사정까지 미루어 짐작해야 하는 통찰의 기회였다. 그래서 역대 왕들은 기근이 심해 백성이 굶주릴 때는 물에 만 밥, 수요반(水요飯)만 먹기도 했다.

 기록에는 왕의 밥상과 관련한 용어들이 나온다. 철선(撤膳)은 백성들이 오랜 가뭄과 홍수에 시달릴 때 반찬을 거두는 것을 가리킨다. 각선(却膳)은 신하들의 당파 싸움을 다스리는 등 여러 이유로 왕이 아예 수라를 들지 않는 것이다.

 감선(減膳)은 왕이 근신하는 뜻으로 반찬의 가짓수나 식사 횟수를 줄이는 것이다. 감선 기록을 보면 영조가 79회로 압도적으로 많은 가운데 정조(29회), 중종(28회), 성종(21)의 순이었다. 특히 영조는 민생이나 정치적 이유로 식음을 전폐하는 ‘수라 스트라이크’로 조정을 곧잘 뒤흔들었다.

 우리 정치권에서 추석의 밥상머리 민심은 전통적으로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요즘은 신문 등 뉴스 매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여론이 형성된다. 하지만 과거 추석은 민족의 대이동이라는 말에 어울리게 부모와 형제는 물론이고 친척, 지인이 모처럼 어우러지는 집단적 소통의 장이었다. 아무리 “정치 얘기하지 말라”는 불문율이 생겼다 해도 소주 한잔을 나누다 보면 정치 훈수가 빠질 수 없다.

 올해 밥상머리 이슈의 메인 메뉴는 북핵을 둘러싼 안보 문제와 갈수록 골이 깊어지는 나라와 집안 살림살이, 협치는 실종된 채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정치권, 내년으로 다가온 지방선거 등으로 다양하게 차려져 있다.

 각 정당은 추석 민심을 잡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지만, 중요한 것은 홍보가 아니라 경청이다. 이번 추석은 정치권이 자신들의 상차림을 겸허하게 평가받고 점수를 매겨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독선이 아니라 열린 가슴이 최고의 밥상을 만든다.



金甲植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