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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해변’

Posted July. 28, 2017 11:29   

Updated July. 28, 2017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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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파리에는 해변이 없다. 2002년 당시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 시장은 ’없으면 만들자’고 과감한 발상전환을 했다. 센강 주변을 달리는 도로를 막고 수천t의 모래를 퍼와 인공 해변을 만들었다. ’파리 플라주(plage·해변)‘다. 물살이 빠른 센강에서의 수영은 금지돼 있지만 모래사장에 누워 샴페인이나 와인을 마시며 망중한을 즐길 수 있다. 파리특파원 시절 궁금해서 가봤는데 어울려 사교댄스를 추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지금은 메츠 같은 프랑스의 다른 도시들과 벨기에 브뤼셀, 이스라엘 예루살렘에도 전파됐다.

 ▷‘포장 블록을 거둬내라. 해변이 나타날 것이다.’ 프랑스 68혁명의 유명한 구호 중 하나다. 68혁명에는 강압적인 권력에 대한 저항과 함께 도시에서 잃어버린 공동체성을 회복하려는 시도가 어우러져 있었다. 들라노에 시장이 도로 포장재를 거둬낸 것은 아니지만 도로 위에 모래를 깔아 해변을 만든 것은 68혁명의 구호를 반 정도는 실현한 것이나 다름없다.

 ▷30일까지 서울 잠수교에 차량통행을 막고 약 500m 구간에 모래사장이 설치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들라노에 시장의 아이디어가 좋은 모양이다. 2015년에는 공공자전거 ‘벨리브’를 본따 ‘따릉이’를 만들더니 이번엔 파리 플라주를 본따 ‘잠수교 비치’를 만들었다. 지난해 한강 둔치에 모래사장이 마련됐지만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올해 잠수교로 바뀌면서 관심을 끈 것은 차량이 주인이었던 다리가 처음으로 온전한 인간의 공간이 된다는 사실에 통쾌함이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파리 플라주는 한달이고 서울플라주는 사흘이다. 한달도 아니고 고작 사흘간을 위해 800t이 넘는 모래를 퍼 나르나 하는 생각도 든다. 센강 주변은 대중교통수단으로 접근이 수월하지만 잠수교는 어떨지 모르겠다. 아이들만 바글바글한 놀이터만 된다면 해변 같은 느낌은 줄어든다. 파리 시민은 노출에 익숙한데 한국 성인들은 어떨까. 빌려온 아이디어가 우리 처지에 꼭 맞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그곳에서 색다른 도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기대는 충분히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