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하시마 탄광과 세계문화유산의 조건

Posted May. 22, 2015 07:16   

中文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2월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불참했다. 우리나라가 차기 평창 동계올림픽 주최국인데도 그랬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발표가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는 게 해명이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참석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긴밀한 정상외교를 펼쳤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 주요국 정상들이 불참하는 바람에 이들은 더 깍듯한 대접을 받았다. 한국은 부랴부랴 폐막식에 정홍원 총리를 보냈다.

아베 총리는 4월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비동맹 반둥회의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일본은 식민 지배국인데도 60년 전 인도와 인도네시아의 도움으로 반둥회의에 참석했다. 반면 한국은 당시 중공(현 중국)의 반대로 참석할 수 없었다. 한국은 이번에도 초청받지 못했고 이 기간에 박 대통령은 남미순방을 떠났다. 아베 총리는 함께 참석한 시 주석과 깜짝 정상회담을 갖고 중일관계 개선을 시도했다. 우리 정부는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사태였다.

박 대통령은 그제 방한 중인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만나 조선인 강제징용으로 악명 높은 하시마 탄광 등을 일본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데 우려를 표명했다. 하루 전날 이미 윤병세 외교장관이 보코바 사무총장에게 똑같은 우려를 표명했기 때문에 굳이 대통령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유산위원회 결정은 회원국들이 내린다. 중립을 유지해야 하는 사무총장은 개입하기 어렵다. 효과는 기대할 수 없고 일본의 반발만 초래한 우려 표명이었다.

우리 외교관들은 일본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자체를 막기는 어렵다고 토로한다. 이들의 현실적인 목표는 등재 조건으로 과거 조선인 강제징용이 있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독일은 나치 시절 강제노동을 동원한 촐페라인 탄광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정부 차원의 추모시설을 지었다. 아베의 일본이라도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오늘 이 문제로 첫 한일협의가 열린다. 이 문제로 오래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송 평 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