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무위원회 예산소위가 국가보훈처 예산안을 심사하면서 장진호전투 기념비 건립 예산 3억 원과 유엔평화기념관 전시 예산 20억 원을 전액 삭감해 논란이 일고 있다. 박승춘 보훈처장이 정우택 정무위원장을 찾아가 항의하자 여야 의원들이 질타했고 결국 박 처장이 사과했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엔 정작 사과해야 할 당사자는 박 처장이 아니라 예산을 삭감한 여야 국회의원이다.
장진호전투는 625전쟁 중이던 1950년 11월 25일부터 12월 11일 사이 함경남도 장진호 부근에서 미군 제1해병사단과 중공군 간에 벌어졌던 전투를 말한다. 미 해병들이 병력면에서 10배나 많은 12만 명의 중공군을 상대로 싸우면서 이들의 남하를 저지해 193척의 군함으로 군인 10만 명, 민간인 10만 명을 남쪽으로 탈출시키는 흥남철수가 가능했다. 그 과정에서 7000여명의 전사상자가 발생했다. 미국은 장진호전투를 (미군 전사에서) 가장 고전했던 전투로 기념하고 있다.
여야는 미국의 다른 곳에 이미 3개의 장진호전투 기념비가 있다는 이유로 알링턴 국립묘지 소재 한국전쟁기념관에 세울 기념비 예산을 모두 삭감했다. 그러나 기존의 기념비들은 모두 미군이 성금을 거둬 세운 것이다. 부산의 유엔기념공원도 각국 정상과 625전쟁 참전용사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올해 11월 11일 인근에 유엔평화기념관을 세웠지만 변변한 내부 전시물도 갖추지 못했다. 장진호를 지역구로 둔 국회의원이 있다면 이런 홀대를 당했겠느냐는 탄식이 나올만하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가 어제부터 본격 가동했다. 예산안조정소위는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지역구 예산 위주로 각 상임위가 증액한 10조 원 가량의 예산안을 철저히 살펴 불요불급한 것은 모두 걸러내야 한다. 여야 간사가 약속한대로 의원들의 쪽지예산 카톡예산도 이번엔 완전히 근절해야 한다. 대신 장진호전투 기념비처럼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사업 예산은 반드시 반영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비서실이 신규 물품 구입과 관련해 감사원과 야당 의원으로부터 예산 낭비 지적을 받은 것은 창피한 일이다. 수백조 원의 예산 가운데 불과 몇 십억의 물품 구입 예산을 갖고 뭘 그러느냐고 여길지 모르나 예산 절감은 티끌모아 태산이다. 국가기관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되는 예산을 단 1원이라도 허투로 쓰지 않게 하려면 청와대부터 꼭 필요한 일에만 예산을 쓰는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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