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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인종 차별

Posted May. 01, 2014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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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반에서 친했던 여자아이의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우리 이가 사정이 있어서 소풍을 못 가게 됐는데 너도 우리 집에서 바나나 먹으면서 함께 놀면 안 되겠니? 즐거운 소풍과 맛있는 바나나 사이에서 고르라니! 삶이란 선택임을 그때 깨달았다. 유혹을 이겨내고 소풍을 가 김밥과 사과를 먹을 때 머릿속에선 바나나가 삼삼했다. 수입 과일이 흔하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미국의 유치원에서 운영하는 톱 바나나(Top Banana)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학습 활동에 적극적인 모범 어린이를 선정해 한 주일 동안 교실 벽면을 아이의 그림, 사진 등으로 특별히 꾸며준다. 어린이들의 동기 부여엔 제격이다. 톱 바나나는 주인공이나 조직의 리더 등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이와 달리 미국에 꽤 동화됐지만 모국의 정체성을 잃은 아시아계를 미국인들이 바나나라고 지칭할 땐 다분히 피부색을 염두에 둔 말이다. 겉은 노랗고 속은 하얗다는 비유가 유쾌할 리 없다.

바나나는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도구로 자주 쓰인다. 유럽과 러시아 등에선 축구 경기 때 관중이 유색인종 선수에게 바나나를 던지거나 원숭이 소리를 흉내 내며 야유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저급한 인종차별이다. 영국에 진출한 기성용 선수도 2010년 11월 스코틀랜드에서 상대팀 일부 응원단에게 인종차별을 당한 적이 있다. 그는 엉뚱하게도 2011년 1월 아시아컵 일본전 때 선제골을 넣은 뒤 원숭이 흉내를 내 구설수에 올랐다.

28일 스페인 바르셀로나팀의 다니 아우베스 선수가 관중석에서 날아온 바나나를 태연하게 주워 먹고 경기를 계속하자 세계 곳곳에서 격려가 쏟아지고 있다. 같은 브라질 출신인 네이마르 등 동료선수, 모델, 정치인 등이 잇달아 우리는 모두 원숭이다라는 글과 바나나를 먹는 인증 샷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면서 그의 편에 섰다. 바나나를 던진 이는 평생 홈구장 입장을 금지당했으니 개념 없는 인종 차별로 바나나 껍질에 미끄러지듯 망신만 당한 셈이다.

한 기 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