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크림 반도 관전법

Posted March. 24, 2014 03:23   

中文

크림 반도 상황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러시아와의 통합을 묻는 크림자치공화국의 주민투표 결과는 예상대로 압도적인 찬성으로 나타났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국제사회 지도자들의 우려와 제재조치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크림 반도 합병을 의결했다. 서방의 비난은 거세지만 그렇다고 당장 우크라이나를 지원해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낮다. 이번 사태는 장기간에 걸쳐 매우 힘겨운 조정과 협의 그리고 일부 국지적인 충돌 과정을 거쳐야 마무리될 것이다.

이번 크림 반도 사태는 우리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 핵문제 해법이 더 요원해질 수 있다. 1994년 우크라이나는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크림 반도를 포함한 영토 보전과 주권 보장 경제적 지원 등을 국제적으로 약속받았다. 일명 부다페스트 조약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이러한 약속은 휴지조각에 불과해졌다. 핵 포기 압력을 받고 있는 북한과 이란 같은 나라들에 이번 사태는 핵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자기 방어수단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북한의 경우 아무리 좋은 약속을 받아내도 핵을 포기한다면 우크라이나처럼 되거나 리비아처럼 내부 붕괴를 겪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번 사태는 국제 사회에 신냉전 시대가 돌아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크림의 러시아 병합은 크게 보면 지난 20여 년간 유럽미국과 러시아의 지정학 전략이 충돌한 결과다. 러시아는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이 초래한 위협에 대해 유라시아경제연합(EEU)과 영향력지대(Sphere of interest)라는 개념으로 맞서 왔다. 그리고 그동안 보이지 않던 긴장감이 2008년 조지아 전쟁과 이번 크림 사태로 폭발한 것이다.

이는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경쟁과 압력에 직면한 동아시아 국가들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경제권익의 충돌이 정치의 충돌로 이어지고, 이것이 외교안보 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다.

크림 반도는 흑해의 지정학적 요충지이다. 러시아 함대가 주둔할 정도로 전략적 중요도가 큰 곳이다. 이곳을 지배하는 국가는 흑해의 석유와 천연가스 같은 자원까지 지배할 수 있다. 러시아는 크림 반도를 지배함으로써 서방의 팽창을 저지하는 천연의 요새를 확보하는 셈이 된다. 합병을 비난하는 서방의 잇단 제재 경고에도 러시아가 꿈쩍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동북아의 경우 북한의 나진 항이나 러시아 동해안 항구의 전략적 가치가 점점 커지고 있다. 북극 항로의 현실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나진훈춘 간 직통도로가 개설되면서 중국 해군의 작전 반경은 한반도 동북부 해안으로까지 확대됐다. 이는 그동안 전통적으로 러시아, 미국, 한국 및 일본 해군의 배타적 작전반경이었던 곳에 중국이 뛰어드는 것을 의미하며 바로 이런 상황이 동북아의 영토분쟁이 격화될 가능성을 암시한다.

게다가 이번 크림 반도 사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기권을 통해 러시아를 암묵적으로 지지함으로써 앞으로 동북아 지역, 특히 동아시아 지역 분쟁에서 러시아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강력한 채권을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사태에 중국이 침묵했듯이 향후 중국의 동아시아 확대정책에 러시아가 침묵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태를 통해 서방은 무력해졌고 유럽은 안정적이라는 관념도 종식됐다. 크림 반도 사태가 최종적으로 어떻게 결론이 날지 아직은 미지수다. 확실한 것은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의 외교와 안보를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일이다. 튼튼한 외교와 안보의 밑바탕에는 국민 통합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