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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상 3남매 키운 10년, 지구 10바퀴 주행

Posted December. 26, 2013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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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경 씨(47)는 스케이트 종목에 피겨스케이트만 있는 줄 알았다. 학창 시절 밤을 새워 읽고 또 읽었던 순정 만화 사랑의 아랑훼스 때문이었다. 만화 속 주인공은 피겨 여왕 김연아(23)도 못하는 7회전 점프를 뛰었다.

경기 수원 소화초등학교에 다니던 큰딸 박승주(23단국대)와 작은딸 승희(21화성시청)가 빙상부에 들어가도록 권유했을 때만 해도 당연히 피겨스케이팅을 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찾은 이 씨는 깜짝 놀랐다. 만화에서처럼 우아한 몸짓으로 점프를 하는 줄 알았던 두 딸이 링크 바깥으로만 달리고 있는 게 아닌가.

이 씨는 그때까지도 실력이 어느 정도 돼야 피겨를 시켜주는 줄로만 생각했다. 나중에야 스케이트에는 쇼트트랙도 있고 스피드스케이팅도 있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막내 세영(20단국대)이도 누나들을 따라 자연스럽게 스케이트를 신었다.

이렇게 스케이트 선수가 된 삼 남매는 내년 2월 러시아 소치 겨울올림픽에 나란히 국가대표로 출전한다. 삼 남매가 올림픽에 동시에 출전하는 것은 한국 스포츠 사상 처음이다. 최근 경기 화성시에 있는 집에서 만난 이 씨는 얘들이 하도 좋아해서 스케이트를 시켰지만 이렇게 잘될 줄은 몰랐다.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를 것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40만 km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돌이켜 보면 그때가 참 행복하고 좋았어요. 그런데 그 생활을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아요. 삼 남매가 본격적으로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한 뒤 아이들도 이 씨도 고생이 많았다. 남편 박진호 씨(53)가 직장인이었기 때문에 운전은 고스란히 이 씨의 몫이었다. 이 씨는 경차 마티즈에 삼 남매를 싣고 매일같이 집이 있던 수원에서 과천 빙상장을 오갔다.

이 씨는 새벽 4시 반쯤 일어나 과천까지 가서 새벽 운동을 하고 다시 학교로 데려다 줬다. 수업이 끝난 뒤엔 또다시 과천 빙상장으로 아이들을 실어 날랐다고 했다. 아이들은 대개 차 안에서 아침밥을 먹었고,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양치와 세수를 한 뒤 학교에 갔다. 이 씨는 스케이트 선수라면 누구나 그 정도의 노력을 한다. 우리 아이들도 어린 나이에 인내를 배우면서 힘든 고비를 넘긴 것 같다고 했다.

이 씨는 이후 경기 성남시 분당과 서울 목동 등으로 이사를 했다. 그 무렵 큰딸 승주는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종목을 바꿨다. 쇼트트랙을 하는 승희와 세영은 집 근처 링크장으로 가면 됐지만 승주는 스피드스케이팅 링크가 있는 서울 태릉 빙상장으로 태우고 다녀야 했다.

수명이 다한 마티즈를 버리고 카니발로 차를 바꾼 이 씨는 이 차로 집 앞 빙상장과 태릉 빙상장을 오갔다. 이 씨는 어떤 날은 경부고속도로를 하루에 여섯 번 달린 적도 있다. 카니발로 10년간 아이들을 태우고 다니다 보니 어느덧 주행거리가 40만 km를 넘었더라. 아이들이 국가대표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이 40만 km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했다. 40만 km는 지구 10바퀴를 돈 것과 같은 거리다. 10년간 탄 카니발에 요즘도 가끔씩 아이들을 태우고 다닌다. 예전과 달리 가끔씩 저절로 멈춰버리곤 하지만.

얘들아, 맘껏 축제를 즐겨라

어릴 적부터 쇼트트랙의 샛별로 불렸던 둘째 승희는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 출전해 동메달 2개를 땄다. 소치 올림픽 출전은 두 번째 올림픽 출전이다. 막내 세영은 올해 초 열린 쇼트트랙 대표선발전을 2위로 통과해 소치행 티켓을 따냈다.

첫째 승주는 최근에야 소치 올림픽행을 확정지었다. 10월 말 전국남녀 종목별 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에서 국가대표로 뽑힌 뒤 최근 끝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에서 선전해 출전 자격을 따냈다.

이 씨는 승주 때문에 마지막까지 마음을 졸였는데 좋은 결과를 받게 됐다. 이미 밴쿠버 대회에 다녀온 승희가 올림픽에 가 보니 왜 올림픽이 전 세계인의 축제인지 알겠더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처음 올림픽에 출전하는 승주와 세영이는 결과에 욕심을 내기보다는 그 축제를 마음껏 즐기고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쇼트트랙 여자 500m에는 왕멍(중국)이라는 절대 강자가 있다. 둘째 승희는 왕멍을 한 번쯤 이겨 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며 웃었다.

화성=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