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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보다 워즈니악

Posted December. 16, 2013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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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TV에선 경제를 살립시다라는 개그 코너가 인기 있었다. 매회 경제라는 이름의 청년이 죽을 고비를 맞으면 아이고, 경제야 하며 뛰어나온 노모가 아들을 살려낸다. 어머니가 그를 부둥켜안는 순간 내레이션이 흐른다. 경제를 살립시다.

15년 전 급사() 위기를 벗어난 우리 경제가 몇 해 전부터 고사()의 길에 접어들고 있지만 당시의 유머 코드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 신문에 경제를 제발 좀 살려 달라는 기업인들의 광고가 연거푸 실려도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가 꿈쩍도 않는 걸 보면 지금의 민의는 경제 살리기에 관심이 없는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에선 여러 해 전부터 경제를 살려봤자 내 삶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퍼지기 시작했다. 나라의 살림살이는 좋아지는데 왜 내 형편은 나아지지 않는가를 고민한 끝에 내린 판단이었다. 그래서 경제를 살리려 금반지를 모으는 대신 99%의 편에 서서 부()를 독점한 1%에 분노를 쏟아내는 법을 배웠다. 2011년을 분노의 해로 만들었던 이런 민의는 경제민주화의 불길을 일으켰고 지난해와 올해 한국의 자본주의를 수정하는 많은 변화를 이끌어 냈다.

내년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 방향으로 흐를까.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두산그룹 회장)은 경기회복을 점치며 짜증 섞인 우려가 나오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진국 경기는 좋아지고 기저() 효과로 경제성장률도 쑥쑥 오르는데, 왜 나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냐는 분노가 터져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는 경제민주화는 경제문제에 정치적 수사()를 덧대 왜곡한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 정치를 벗어나는 경제문제란 극히 드물다. 어쩌면 내년 우리 경제는 체력을 회복할 시간을 갖지 못한 채 또다시 분노를 맞닥뜨려야 할지 모른다.

이런 난국은 우리가 같은 생태계에 몸담은 공생관계라는 걸 다시 깨달을 때 비로소 헤쳐 나갈 수 있다. 진화생물학자 마틴 노왁은 생태계의 진화에서 주목할 점은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경쟁 자체보다는, 경쟁적인 세상에 협력을 일으키는 자연협력에 있다고 했다. 내가 살려면 남도 살려야 한다는 공생 DNA가 우리 몸속에 숨어 있다는 거다.

얼마 전 본 영화 잡스에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성공을 좇는 승부의 화신으로 그려졌다. 그의 열정은 인류에 엄청난 혁신을 선물했지만 그사이 뒤처진 사람들에게 옆자리를 내어주지는 않았다. 잡스가 승부처에 설 때마다 곁을 지킨 사람은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이었다. 잡스가 승부에서 이기려 혁신을 해냈다면 워즈니악은 혁신에 힘을 보태다 보니 이긴 편에 함께 서게 되는 사람이었다.

지금 우리 경제의 살길은 공생 DNA를 되찾아 경제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는 데 있다. 이런 면에서 내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업인은 잡스보다는 워즈니악의 모습에 가까울 공산이 크다.nex@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