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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비서실장의 17초 대독사과, 성의 안 보인다

[사설] 비서실장의 17초 대독사과, 성의 안 보인다

Posted April. 01, 2013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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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김용준 총리후보부터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까지 12명이 각종 의혹으로 낙마했다. 부동산 투기, 무기중개상 로비스트, 성접대 의혹, 해외 비자금 계좌 논란 등 도덕성과 공직자윤리 측면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인물들이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와 인사검증 책임자인 청와대 민정수석의 문책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지자 허태열 청와대 비서설장이 지난달 30일 사과했다. 새 정부 인사와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인사위원장으로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짤막한 내용을 김행 대변인이 대독()했다.

사과를 할 바엔 인사실패의 최종 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이 하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웠다면 비서실장이 대통령 의중을 담아 사과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비서실장이 얼마나 바쁘기에 두 줄짜리 사과문을 읽을 시간이 없어 대변인이 대신 읽는다는 말인가.

동아일보 창간93주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인사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59.8%로 긍정 평가(28.3%)를 배 이상 앞섰다. 그러나 아직도 대통령 선거 때 박 대통령 지지자들 중에는 기대를 접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다수다. 진심어린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했더라면 임기 1개월을 갓 넘긴 정부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어정쩡하고 무성의한 사과로 불통()리더십의 진수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사과는 타이밍과 진정성이 생명이다. 이번 사과는 사전 예고 없이 주말에 전격적으로 이뤄졌고 짧은 사과문을 대독케 함으로써 진정성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 사과할 때도 예의가 있고 기술이 필요하다. 무엇이 잘못이었는지를 분명히 밝히고 책임소재를 가려야 하며 재발방지 또는 잘못에 대한 개선의지를 담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읽는 데 17초밖에 안 걸린 대독 사과문은 내용을 따지기에 앞서 형식에서도 전혀 성의를 느낄 수 없었다.

청와대는 4강 대사 인사에 대해 포괄적 엠바고를 요청해 놓고 일부 인사를 보도한 언론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정작 알고 보니 4강 대사 명단을 청와대 블로그에 게재해 누구나 보도록 한 사실이 드러났다. 실수 연발이다. 청와대 비서실이 박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