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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만원사례 극장의 추억

Posted February. 04, 201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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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추석을 나흘 앞둔 토요일 이른 아침 서울 을지로4가 국도극장(현 국도호텔 자리) 매표소에서 시작된 줄은 극장을 끼고 조명기구상점이 밀집한 골목으로 50m쯤 꺾어져 들어갔다. 이렇게 사람이 많이 올 영화가 아닌데. 의아하던 마음은 곧 풀렸다. 조조() 관객 100명에 한해 호화 팸플릿을 준다는 광고를 보고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방법을 쓰면서까지 영화사는 개봉일에 극장 앞이 사람으로 가득하길 바랐다. 극장 앞 장사진()을 봐야 제작자, 감독, 극장주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전화예매도 흔치 않던 1990년대 후반까지 관객의 행렬은 입소문의 주요 수단이자 흥행의 척도였기 때문이다.

서울 충무로의 대한극장은 지금처럼 한 영화관에 스크린이 여러 개인 멀티플렉스가 생기기 전까지 서울에서 가장 객석이 많은 극장이었다. 이곳에서 히트작이 상영될 때는 매표소부터 시작된 줄이 극장 뒤편으로 돌아 필동 한국의 집까지 늘어서거나, 극장 앞 지하도 입구로 내려가 왕복 8차로 건너편 극동빌딩 앞 지하도 출구로 나오기도 했다. 종로3가의 피카디리나 단성사는 주로 극장 앞 작은 광장에 똬리를 튼 줄이 몇 겹이냐로 흥행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었다. 개봉관이나 제작사는 이렇게 사람들이 들어찬 광경을 사진으로 찍어 신문에 광고를 냈다.

장사진과 더불어 영화가 요샛말로 대박이 터졌음을 알리던 말이 만원사례()였다. 1933년 2월 미국 감독 조지 힐의 작품 태평양 폭격대를 상영하던 단성사가 동아일보에 연일 만원사례 흥행이라는 1단 광고를 실을 정도로 역사가 길다.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서울 개봉관에서 100만 관객을 돌파한 서편제를 상영했던 단성사 문에는 100일 넘게 만원사례가 붙어있었다. 1970, 80년대만 해도 개봉 첫날 전 회가 매진되면 제작사는 커피 한 잔 값의 돈을 넣은 만원사례 봉투를 감독, 배우, 제작진에게 돌리는 것이 미덕이었다고 한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집계한 1월 입장권 통계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한국영화를 본 관객이 1198만4471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이제까지 최고였던 지난해 같은 달의 824만2562명을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외국영화를 포함한 관객 수도 역대 최다인 2036만1298명이었다. 지난해 한국영화 관객이 처음으로 1억 명을 넘고 총 관객도 사상 최다를 기록한 여세를 이어가는 셈이다. 하지만 많게는 1000개가 넘는 스크린에서 동시에 상영하고 인터넷 예매가 주를 이루는 요즘 극장가에서 장사진이나 만원사례 문구는 찾아볼 수 없다. 고구마튀김을 씹으며 언제 앞의 줄이 줄어드나 초조해하던 그 시절은 추억의 앨범이 됐다.

민 동 용 정치부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