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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화장하는 남자

Posted September. 21, 2012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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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막 시작한 A씨(51)는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로 일하는 선배를 만났다가 당장 피부 관리부터 하라는 면박을 당했다. 요즘 세상에 푸석푸석하고 피로에 지친 얼굴로 돌아다니는 사장과 누가 거래를 하겠느냐는 얘기였다. 면도를 하고 스킨로션도 잘 바르지 않던 A씨는 선배와 헤어진 뒤 바로 화장품 가게에 들러 마스크 팩과 헤어용품을 구입했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은 지난해 한국 남성이 화장품 구입에 지출한 금액이 4억9550만 달러로 세계 남성화장품 시장의 21%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AP통신은 성인 남성의 수가 1900만 명에 불과하고 가부장적 문화를 가진 한국이 세계 남성 화장품 시장의 수도가 됐다고 경탄했다. 마초 한국 남자들이 달라진 건 1990년대 들어서다. 1997년 소망화장품의 꽃을 든 남자 컬러로션이 등장하고 2002년 월드컵 스타인 안정환과 같은 꽃미남 스타가 각광을 받으면서 화장하는 남자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요즘은 백화점 화장품 매출의 30% 정도가 남성용 제품이다. 남성 고객을 상대하는 남성 직원까지 등장했다.

깃털이나 갈기와 같이 화려한 치장을 한 수컷은 자연계에서 흔하다. 찰스 다윈은 공작 수컷을 화려한 꽁지깃을 성 선택(sexual selection)의 결과로 설명했다. 수컷이 짝짓기에서 선택받기 위해 암컷이 좋아하는 화려한 꽁지깃을 대물림했다고 설명한다. 수컷이 짝짓기를 위해 생존에 불리하고 거추장스러운 꽁지깃의 위험마저 감수한다는 핸디캡(단점)이론도 나왔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여성이 선호하는 외모를 갖추기 위해 남성이 화장을 한다는 논리와 맞닿아 있다.

한국 남자의 화장도 외모 지상주의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남성들의 생존 전략이다. 60대 한 공공기관 CEO는 사무실 밖을 나설 때면 자외선 차단 크림을 꼭 바른다. 자외선에 노출돼 검버섯이라는 생기면 은퇴해야 할 퇴물로 비춰질까봐서다. 젊어 보이기 위해서 염색을 하는 것은 기본이다. 한국 기업의 평균 정년 기준은 57.4세지만 실제 직원들이 퇴직하는 평균 연령은 53세다. 취업난과 조기 은퇴 압력이 상수()가 된 시대,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남성들의 진화가 화장하는 남성들의 시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박 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