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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북한의 권력서열 놀음

Posted November. 09, 2010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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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때 일이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만나는 자리에 북한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배석했다. 대외적으로 국가수반 역할을 하는 김영남은 2인자 대우를 받는다. 김정일이 영감, 앉으세요라고 하자 김영남은 어이구, 제가 어떻게라며 고사했다. 김정일이 다시 앉으라고 채근했으나 김영남은 말을 듣지 않았다. 김정일이 화가 난 듯 앉으라니까 그래라고 소리치자 김영남은 황송한 듯 자리에 앉았다.

조명록 북한 정치국 상무위원의 사망을 계기로 북한의 권력서열이 외부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핵심은 불과 40일 만에 권력 서열 6위에서 2위로 급부상한 김정은이다. 그는 9월28일 당 대표자회에서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임명되며 권력서열 6위에 올랐다. 김정은은 7일 발표된 조명록 장례를 위한 국가장의위원회 명단에서 아버지인 김 위원장 바로 다음 자리를 차지했다. 김영남도, 내각 총리 최영림도, 군 총참모장 리영호도 27세 애송이 김정은의 뒤로 밀렸다.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당 대표자회 같은 공식 행사가 열리면 새로운 권력서열 명단을 발표한다. 고위층 인사가 죽었을 때 공개되는 장의위원 명단도 좋은 참고자료다. 남한과 서방세계는 북한의 권력 판도를 파악하기 위해 권력서열 명단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권력층의 부침()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는 하지만 김영남의 사례에서 보듯 북한의 권력서열은 실제로는 뜬구름처럼 허망한 것이다.

사흘 전 사망한 조명록도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을 지내며 2인자 소리를 들었다. 지난해 장성택이 국방위 부위원장으로 임명되자 북한 전문가들은 장성택이 2인자가 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이번 장의위원 명단에서 장성택은 22위로 밀렸다. 김일성 시대에 그랬듯이 지금도 최고 권력자의 자의적 선택에 의해 인사()가 이뤄지기 때문에 김정일 부자 이외의 서열은 큰 의미가 없다고 봐야 한다. 두 사람이 공존하는 현재의 서열을 굳이 매기자면 김정일은 1, 김정은은 1-1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 북한 권력 내부에서는 1인자 김정일에서 잠재 1인자 김정은으로 권력 세습이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방 형 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