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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피맛골 보존

Posted October. 20, 2009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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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유명 도시들은 대부분 올드 시티와 뉴 시티로 이원화돼 있다. 관광객들이 특히 매력을 느끼는 곳은 옛 모습과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올드 시티의 골목길이다.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느낀다. 서울은 600년 역사의 고도()지만 옛 모습이 남아 있는 곳은 고궁과 남대문 동대문, 박물관과 한옥촌 정도가 고작이다. 서울은 전쟁과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로 옛 정취를 잃었다. 남산에서 내려다보면 한강 양쪽으로 아파트의 숲을 이룬 모습이 너무 단조롭다.

서울 종로 1가에서 4가까지 대로변 건물 뒤편을 동서로 연결하는 좁은 골목길은 조선시대부터 피맛골로 불렸다. 말()이나 가마를 타고 종로를 지나가는 양반들을 피()해서 민초들이 걸어 다닌 길이라는 뜻이다. 피맛골에는 보부상이나 서민들이 허기를 달래고 목을 축이기에 제격인 국밥집과 목로주점이 즐비했다. 지금의 피맛골은 625 이후 새로 조성된 것이다. 나이든 세대는 하루 일과를 끝내고 피맛골에서 동료 친구들과 어울려 연탄불에 구운 생선이나 빈대떡 또는 파전을 안주삼아 술잔을 기울이던 추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2000년대 초부터 종로 일대가 본격 재개발되면서 서민의 애환이 깃든 피맛골이 사라져가는 것을 많은 사람이 아쉬워했다. 종로1가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1층 홍살문에 걸려 있는 피맛골이란 나무 간판은 그 아쉬움의 징표 같다. 재개발 건물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피맛골 식당들도 꽤 있지만 옛 정취나 세월의 맛을 느끼기는 힘들어졌다. 비싼 임차료 때문에 음식값은 올랐고 세련된 실내 장식에서는 예전의 푸근했던 정과 분위기는 찾을 길이 없다.

서울시가 재개발에 밀려 사라져가는 피맛골을 원래 모습대로 보존하기로 했다. 골목의 낡은 전신주들을 없애고 전선을 지하화하고 지저분한 간판들을 정비해 최대한 옛 멋을 살리겠다는 것이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전통과 개성을 무시한 막무가내 식 재개발에 대한 비판을 수용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직 재개발되지 않은 구간에서라도 피맛골의 전통을 살려냈으면 좋겠다. 피맛골의 거리와 음식에 관한 스토리텔링은 자랑스러운 문화관광 자원이 될 수 있다.

권 순 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