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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10월유신 선포전 북당국에 2차례 알렸다

박정희 10월유신 선포전 북당국에 2차례 알렸다

Posted September. 24, 200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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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부가 1972년 10월 17일 오후 7시를 기해 계엄 선포와 헌법 폐지, 국회 해산, 대통령 간선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유신() 체제를 선포하기 전에 두 차례에 걸쳐 북한 당국에 이를 예고하고 배경을 설명한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북한은 같은 해 7월 4일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등 3원칙에 따라 남북통일을 이룬다는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뒤 동유럽 사회주의 우방국들에 한반도에서 미국과 일본을 몰아내 박정희 정권을 고립시키고 내부 혁명역량을 강화해 남북 연방제 통일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선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미국 정부연구기관인 우드로윌슨센터가 동독과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옛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보관하고 있던 당시 북한 관련 외교문서를 입수해 분석함으로써 밝혀졌다. 우드로윌슨센터는 2006년부터 한국의 북한대학원대와 함께 북한 국제문서 조사 사업(NKIDPNorth Korea International Documentation Project)을 진행해 왔으며 19711972년 당시의 북한 관련 문서 39개(총 164페이지)를 영어로 번역했다.

동아일보가 단독으로 입수한 문서들에 따르면 김재봉 당시 북한 외교부 제1부부장은 1972년 10월 19일 동유럽 6개국 외교관들을 만나 16일 남북 대표가 판문점에서 만났다며 남측은 (10월유신) 발표 1시간 전인 17일 오후 6시에 북측에 전화를 걸어 박정희 대통령이 라디오로 비상사태를 선포하니 주의 깊게 들으라고 알려왔다고 전했다.

문서들에 따르면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16일 판문점에서 박성철 북한 내각 2부수상을 만나 김영주 남북조절위원회 북측 공동위원장(노동당 조직지도부장)에게 현재의 남한 헌법은 국가의 평화적 통일에 부응하지 않고 있다며 우리 국내문제는 정상적인 수단으로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국가비상사태를 통해 새 헌법의 초안을 작성하고 받아들이려 한다고 전했다. 박 정권은 16일 오후 6시 필립 하비브 주한 미국대사에게 유신 발표 성명 사본을 전달했고 나머지 외교 사절들에게는 17일 발표 2시간 전에 발표를 예고했다. 당시 남한 언론엔 유신 선포 사실이 사전에 보도되지 않았다.

한편 김일성 당시 북한 내각수상은 1972년 9월 22일 정준택 부수상을 루마니아에 보내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대통령에게 대남 평화공세(peace offensive)의 목적과 배경을 설명했다. 김 수상은 남한과 전쟁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남한 내부의 혁명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길을 고민한 끝에 평화공세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또 여러 외교 채널을 통해 74남북공동성명이 한반도에서 박정희 정권을 고립시키고 남한 내 혁명역량 강화를 통한 연방제 통일을 관철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들은 1971년 이후 대화를 시도한 남북한이 10월유신을 전후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확인할 수 있는 사료()다. 당시 대남 평화공세에 대한 북한의 의도가 드러난 것은 북한이 표면적으로는 대화를 주장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한반도의 적화를 노렸다는 보수 진영의 시각을 확인해주는 것이다.



신석호 김영식 kyle@donga.com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