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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빠는 탁구공, 난 골프공으로 세상 호령

엄마아빠는 탁구공, 난 골프공으로 세상 호령

Posted September. 01, 2009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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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엄마는 2.7g의 가벼운 탁구공으로 세상을 호령했다. 그런 부모님의 피를 물려받은 아들은 다른 길을 선택했다. 크기는 비슷하지만 45g의 골프공으로 최고가 되고 싶었다. 탁구가 아닌 골프였어도 부모님이 전해준 유전자는 그를 강하게 만들었다. 타고난 경기 감각에 지고는 못 사는 지독한 승부 근성까지. 선천적인 자질에 땀이 곁들여지면서 이제 그는 누구의 아들이 아닌 자신의 이름 석자를 만방에 떨치게 됐다.

국경과 이념을 뛰어넘어 결혼한 한중 핑퐁 커플 안재형(44)과 자오즈민(46) 부부의 외아들 안병훈(18) 얘기다. 그는 31일 미국 오클라호마 주 털사의 서던힐스CC(파70)에서 36홀 매치플레이로 벌어진 제109회 US아마추어골프챔피언십 결승에서 벤 마틴(22미국)에게 7홀 차의 완승을 거뒀다.

17일 생일을 맞는 안병훈은 지난해 뉴질랜드 교포 이진명(19)이 세운 18세 1개월의 역대 최연소 우승 기록을 갈아 치웠다. 한국은 물론이고 아시아 국적 선수가 챔피언이 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프로 골퍼로 전향하지 않고 내년까지 아마추어 신분을 유지하면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와 US오픈, 브리티시오픈에 출전해 프로 스타들과 당당히 실력을 겨루게 된다.

PGA챔피언십 우승자 양용은(37)처럼 오전 18홀 경기 때 라벨에 메이드 인 코리아가 찍힌 흰 옷을 현지에서 사 입고 출전한 안병훈은 내가 한국 출신이라 주위에서 양 프로님에 대해 아는 척을 많이 해 신이 났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더 큰 목표를 향해 더욱 열심히 하겠다고 우승 소감을 밝혔다.

아버지 안 씨는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남자 복식 동메달을, 어머니 자오 씨는 은메달(복식)과 동메달(단식)을 목에 걸었다. 서울 올림픽을 통해 사랑을 키운 이들은 1989년 결혼 후 1991년 9월 17일 안병훈을 낳았다. 서울 올림픽 개회식 날이 바로 그의 생일이다.

화제의 스포츠 스타 2세인 안병훈은 아버지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없었더라면 오늘의 영광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아버지 안 씨는 2005년 안병훈을 미국 플로리다 주 브래든턴으로 골프 유학을 보냈다. 2007년 아들이 빈혈 증세를 보이며 건강이 나빠지자 대한항공 감독 자리까지 포기한 채 미국으로 건너가 운전사, 캐디, 매니저 등 골프 대디로 변신했다.

아직도 영어가 짧아요. 하루는 어떤 미국인이 집에 와 뭐라기에 무조건 노(No)라고만 했죠. 그랬더니 다음 날 전기가 끊어지더군요.(웃음)

안 씨 가족은 아내 자오 씨가 중국에서 이동전화 부가서비스 업체 대표이사를 맡고 있기에 68세의 노모가 미국에 건너와 함께 지내고 있다. 10년 넘는 구력을 지닌 안 씨의 골프 실력은 보기 플레이 수준. 늘 캐디를 맡는데 부담스럽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병훈이가 알아서 잘하는 편이다. 심리적으로 안정을 주는 정도라고 말했다.

중국 베이징에 머물다 이달 중순 아들 생일에 맞춰 미국으로 건너갈 예정인 자오 씨는 병훈이가 너무 잘했다. 당장 만나고 싶다며 기뻐했다.

1월 이후 처음 온 가족이 만나는 겁니다. 맛있는 것 실컷 먹고 싶어요.

어린 나이답지 않은 침착함으로 우승 트로피를 번쩍 들어올린 안병훈은 어느새 귀염둥이 외아들이 돼 있었다.



김종석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