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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딸이 돌아올수 없는 문 오가는 모습 못잊어

두딸이 돌아올수 없는 문 오가는 모습 못잊어

Posted July. 13, 2009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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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서 160km 떨어진 해안가에 있는 케이프 코스트 캐슬. 1653년에 만들어져 노예제 시대에 악명을 떨친 요새다. 수많은 흑인이 족쇄를 찬 채 이곳 감옥에 갇혀 있다가 미국행 배에 강제로 태워졌다. 그래서 그곳은 돌아올 수 없는 문()으로 불렸다.

그곳에 12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섰다. 그는 두 딸과 아내가 요새를 둘러보는 걸 말없이 바라봤다. 몇 시간 후 그는 가나 의회에서 연설했다.

오늘 내 두 딸, 아프리카인의 후손이기도 한 내 두 딸이 돌아올 수 없는 문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되돌아가곤 하는 걸 봤다. 그 이미지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 요새는 세상에 악(pure evil)이 존재함을 일깨워줬다. 현재도 존재하는 그런 종류의 악에 대해 맞서 싸워야 함을 가르쳐줬다. 그리고 바람은 항상 인류의 진전을 향해 분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그는 또 나에겐 아프리카의 피가 흐른다며 부족의 존경받는 어른이었지만 영국인들의 요리사로 일하며 보이(boy)로 불렸던 할아버지, 염소를 치며 미국 유학의 꿈을 키웠던 아버지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면서 아프리카 국민에게 가난과 저개발, 전쟁에서 벗어나기 위한 책임감을 당부했다.

아프리카의 미래는 아프리카인에게 달렸다. 부패와 압제를 떨쳐버리고 가난과 질병에 맞서 싸워한다. 여러분의 걸음마다 미국은 동반자로, 친구로 옆에 함께 있을 것임을 약속한다.

이어 아프리카에 필요한건 철권통치자가 아니라 강건한 제도라며 한국에서부터 싱가포르에 이르기까지, 역사는 정부가 국민과 하부구조를 위해 투자했을 때 그 나라가 번영함을 보여 주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서 11일 이탈리아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 폐막 기자회견에서도 사실 내 아버지가 미국으로 유학왔을 당시(1950년대 후반)에는 케냐가 한국보다 잘살았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은 매우 발전하고 상당히 부유한 국가가 되었지만 케냐는 여전히 심각한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는 민간 부문 및 시민사회와 협력해 투명성과 책임성, 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일련의 제도적 장치를 창출할 수 있었으며 이는 아주 두드러진 경제적 발전으로 이어졌다며 아프리카 국가들이 똑같은 일을 못해낼 이유가 없다고 격려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가나 방문은 만 24시간도 안되는 짧은 일정이었지만 취임 후 첫 아프리카 방문답게 가나 국민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방송에선 아프리카의 빛나는 아들 오바마라는 멘트가 계속 흘러 나왔고, 의회 연설에 앞서 의원들은 Yes, we can(대선 때 오바마 캠프의 캐치프레이즈)을 연호했다.



이기홍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