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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쫓는 러시아, 내쫓기는 미국

Posted April. 04, 2009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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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와의 전쟁을 빌미로 러시아 앞마당까지 영향력을 확대했던 미국이 최근 러시아의 파워에 밀려 내쫓기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3일 분석했다. 반면 러시아는 미국의 공백을 메우면서 옛 소련 회원국들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구조의 손길에 부응 못한 미국

옛 소련 회원국들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최근 글로벌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 친서방 노선을 걸었던 일부 회원국은 경제위기의 타격을 받게 되자 미국 등 서방을 향해 손을 내밀었지만 이들도 제 코가 석 자인 상황. 회원국들은 러시아에 구조의 손길을 보냈고 러시아도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미국이 중앙아시아에서 운용하던 마지막 기지인 마나스 공군기지에서 내쫓기게 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키르기스스탄은 미국에 원조를 요청했지만 원하는 액수를 얻지 못했다. 반면 러시아는 23억 달러 이상의 원조와 차관 등을 약속했다.

미국은 2월 초 180일 내로 이 기지를 비우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곳은 매달 1만5000명의 미군이 드나드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전초기지다. 이 기지가 폐쇄되면 아프간에 3만 명의 미군을 증파하려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전략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더욱 자존심이 상하는 일은 미군이 떠난 뒤 이 기지를 러시아 신속대응군이 차지한다는 사실.

러시아의 돈 보따리에 유혹된 국가는 키르기스스탄뿐만이 아니다. 2004년 오렌지혁명을 통해 집권한 뒤 친서방 노선을 고수하던 빅토르 유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지지율은 현재 3%에 불과하다. 다음 대선에선 친러파가 당선될 확률이 높다. 미국이 러시아의 안마당에서 배척되는 다른 이유도 있다. 한때 친서방 노선을 걷던 우즈베키스탄은 서방의 민주화 요구가 부담스러워지자 러시아에 시선을 돌렸다.

외환보유액 적극 활용하는 러시아

러시아는 미국이 아프간전을 빌미로 중앙아시아에 진출하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겨왔다. 최근 경제위기가 닥치자 이를 호재로 활용하고 있다. 한 손에는 원조를, 다른 손엔 군사적 우산을 펴든 러시아는 세계 3위인 3850억 달러의 외환보유액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러시아는 또 미국과는 달리 민주화는 당사국 국내문제라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친서방 노선의 선두주자인 유셴코 대통령의 몰락과 미국이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점은 다른 국가들에 이른바 유셴코 학습효과를 낳고 있다. 회원국들이 러시아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2월 초 러시아를 포함한 7개국이 모여 창설한 집단안보조약기구(CSTO)는 러시아의 줄 세우기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이 기구는 100억 달러짜리 긴급 구제펀드를 만들기로 합의했는데 이중 70억 달러를 러시아가 부담한다. 주변국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은 1991년 소련 붕괴 이래 최고점에 올라 있다고 FT는 분석했다.



주성하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