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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미당의 시

Posted December. 26, 2005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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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우리 시 가운데 널리 애송되는 국화 옆에서의 세 번째 연()이다. 장년 세대 중에 미당() 서정주의 시 한두 구절도 외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미당의 시들은 대학입시에서도 단골이었다. 한자 공부를 덜한 학생이 을 말당()으로 잘못 읽었다가 선생님한테 꾸중을 들은 것도 장년 세대의 추억이다.

미당 사후()에 그를 비판한 고은 시인도 한때 서정주는 정부다라고 찬미했다. 그만큼 미당은 우리 시단에 우뚝 솟은 봉우리였다. 미당 시의 영향력이 감퇴한 시기는 대체로 민주화운동에 불이 붙던 1970년대 후반 이후였다. 언제부터인가 국화 옆에서도 친일시() 논란에 휩싸여 교과서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미당의 시는 이제 국어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없고 선택과목인 문학 교과서에서 겨우 명맥을 잇고 있다.

그는 일제 말기에 호구지책으로 친일 문예지 국민문학의 편집일을 맡았고 가미카제() 자살특공대를 찬양한 마쓰이 오장() 송가 같은 시를 썼다. 미당은 1980년대 이러한 친일 행적이 불거지자 이를 변명하는 시를 발표했다. 자신은 친일파가 아니라 이것은 하늘이 이 겨레에 주는 팔자라고 생각한 종천순일파()였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는 한국인들이 일본식으로 창씨개명()하고 학교에 가면 아침마다 일본 국왕이 있는 곳을 향해 절을 하던 시대였다. 항일시()라도 두어 편 남겨 놓거나, 소극적 저항으로 절필()이라도 하지 그랬느냐고 미당을 나무랄 수는 있다. 그러나 살아 있는 한국 시사() 시선()으로 불리던 미당의 시를 교과서에서 모두 거두어 버린 것이 과연 최선인가. 그의 시는 한국시는 물론이고 우리말을 더 높은 단계로 끌어올렸다. 미당이 남긴 주옥같은 시편은 한 인간의 허물과 함께 우리가 되새겨야 할 유산이다.

황 호 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