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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인권의 역사

Posted March. 13, 2005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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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문화가 형성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리스인과 야만인의 구분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자유와 평등을 정당화했고, 로마인들은 혈통과 업적에 따라 권리를 배분했다. 인류 차원의 형제애라는 교리에도 불구하고 중세의 십자군은 인간과 이교도 개를 구별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생각은 근대에 이르러서도 낯설기만 했다.

인권사상은 차별질서를 타파하려는 18세기 혁명 과정에서 크게 발전했다. 제퍼슨과 라파예트는 인권의 절대성과 보편성을 진보의 상징으로 화려하게 내세웠다. 미국 독립선언문, 프랑스 인권선언, 영국 권리장전은 인권의 위상을 높인 역사적 기록들이다. 그러나 제퍼슨조차도 한편으로는 흑인 노예를 부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인간이 빼앗길 수 없는 권리를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았다고 믿었다. 진짜 인간과 가짜 인간의 구별은 이성적 주장과는 별개로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었다.

인권에 대한 세계적 관심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나타났다. 그 1차적 결실이 1948년의 세계인권선언이다. 초안 작성에 참여한 각국 대표들은 모든 인간의 천부적 자유와 평등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였다. 물론 망명의 권리와 관할권 문제 등을 둘러싸고 국가주권과 국제규약 간의 갈등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합의에 성공했다. 그 근거는 전쟁의 참혹함과 나치즘에 대한 경험이었다. 이처럼 인권에 대한 신념은 추상적 도덕이 아닌 실존적 고통의 기억 속에서 얻어진 것이었다.

인권은 주권과 긴장관계를 갖는다. 얼마 전 미 국무부의 연례인권보고서 발표와 이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대응을 보면 인권의 보편성 확보가 얼마나 난해한 과제인지 알 수 있다. 강대국들이 상호 견제를 위해 상대국의 인권 상황을 꼬집기 시작하면 인권이념은 권력정치의 도구로 전락해 버린다. 전쟁이 인권의 절실함을 일깨웠는데 인권이 이데올로기로 변질돼 갈등을 고조시키는 빌미가 된다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유홍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정치학

honglim@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