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밤 여기가 저의 오아시스입니다. 여러분들이 주시는 생명의 물을 마시고 다시 힘을 얻어 사막으로 떠나겠습니다.
제59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이창동(48) 감독. 수상식장에서 그는 문인()출신 감독답게 수사적인 표현이 돋보이는 짧은 소감으로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상을 받고난 뒤에도 그의 태도는 늘 그렇듯 덤덤하고 차분했다. 9일 전화 통화에서 그는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나쁘지는 않다고 말했다.
-수상을 예상했나.
시상식전에 본상 외의 비공식 상인 국제비평가협회상 가톨릭 비평가상 젊은 영화 비평가상을 차례로 수상해서 이게 좋은 신호인지, 나쁜 신호인지 헷갈렸다.
-오아시스가 이렇게 평가를 받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글쎄. 이곳의 반응도 한국의 반응과 거의 비슷했다. 다들 처음에는 영화를 불편하게 보더라.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자신의 마음속의 벽을 넘어가면서 영화의 메시지를 받아들였던 것 같다.
심사위원들은 오아시스에 대해 표피적인 영화의 기교들을 피해가면서 영화의 본질에 더 가깝게 다가간 영화 사랑 이야기를 통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더 심층적으로 보여준 영화라고 평했다.
이감독은 잘 알려졌듯 늦깎이 감독이다. 80, 90년대에 소설을 열심히 읽은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을 역량있는 소설가로 기억할 것이다. 경북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국어 교사로 교편을 잡고 있던 그는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전리()로 등단했다.
이후 그는 분단 소설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소지, 소시민의 보잘 것 없는 삶에서 희망을 찾아낸 녹천에는 똥이 많다 등 사회성 짙은 소설을 써서 호평을 받았다. 그러다 1993년 박광수 감독의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의 시나리오를 쓴 것이 계기가 돼 아예 박감독의 조감독으로 영화에 입문하게 됐다.
마흔 세 살(1997년)에 데뷔한 그의 필모그래피(Filmography)는 짧다. 그가 만든 작품은 오아시스까지 고작 세 편. 그의 소설은 인간 이해의 여러 도식들과 싸우며 그 도식을 넘어서 삶의 진실을 포착하는데 초점을 맞춰왔다는 평을 들었는데 이런 평가는 그의 영화에 그대로 적용해도 무리가 없을 듯 하다.
데뷔작인 초록물고기가 밴쿠버 영화제에서 용호상을 수상한데 이어 두 번째 작품인 박하사탕은 동구권의 명망있는 영화제인 카를로비바리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거머줬다.
만드는 영화마다 호평을 받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그는 제가 사기를 좀 열심히 쳤지요 하며 웃었다. 그는 농담으로 질문을 넘겼지만 이에 대한 대답은 그가 언젠가 쓴 자기 소개 글에서 찾을 수 있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삶에 대한 시각이 있어야 한다. 영화는 본질적으로 우리네 삶과 유리되어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영화란 진짜를 담아내는 것이며 진짜란 우리 삶의 숨겨진 진실들을 찾는 것이다.
강수진 sjkang@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