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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의 퇴장

Posted June. 26, 2017 09:37   

Updated June. 26, 2017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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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껌값’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라.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95)은 일본에서 1948년 운명의 껌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풍선껌은 마진이 50%에 이를 정도의 성장산업이었다. 껌 팔아 호텔도 짓고 백화점도 세운 셈이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껌이라면 역시’라는 말이 들리면 저절로 ‘롯데 껌’이란 말이 튀어나오고 그 광고 문구를 가사로 한 중독성 있는 멜로디가 입안에서 맴돌 것이다.

 ▷신 회장은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1년 스무 살 나이에 공부도 하면서 돈도 벌 목적으로 혈혈단신 일본에 갔다. 문학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징병을 피하려면 공학을 해야 한다고 해서 와세다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롯데라는 명칭은 그가 좋아하던 괴테의 작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속 여주인공 샤를로테(일본식 발음 샤롯데)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당시 패전으로 감정 과잉이었던 일본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 이 작품이 인기가 있어 껌의 주 소비층인 젊은 여성을 겨냥해 그런 이름을 택했다는 말도 있다.

 ▷신 회장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에야 고국인 한국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는 일본에 상주하면서 두 달에 한 번꼴로 귀국해 홀수 달은 한국에서, 짝수 달은 일본에서 지냈다고 한다. 일본인 첫째 부인과의 사이에 일본말밖에 할 줄 모르는 장남 신동주와 외국어 같은 한국말을 하는 차남 신동빈을 두고 있다. 그는 자발적으로는 매스컴에 거의 얼굴을 내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롯데그룹도 폐쇄적이고 사회 공헌도 적다. 그에게 한국은 어떤 의미일까.

 ▷그가 그제 한일(韓日)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 사임했다. 그룹 전면에서 공식적으로 손을 떼는 셈이다. 경영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위대한 영웅인 최고경영자가 치러야 할 마지막 시험은 얼마나 후계자를 잘 선택하는가와 그의 후계자가 회사를 잘 경영할 수 있도록 양보하는가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왕자의 난을 자초한 신 회장의 마지막 시험은 실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