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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장화홍련전

Posted November. 03, 2021 07:29   

Updated November. 03, 2021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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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들은 고전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해 전유하는 경향이 있다. 강화길 작가의 고딕호러소설 ‘대불호텔의 유령’은 좋은 예다. 소설은 말미에 고전설화 ‘장화홍련전’이 미학적 기반이라는 것을 암시하는데 이것이 ‘장화홍련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장화홍련전’은 익히 알려진 것처럼 계모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가엾은 자매에 관한 이야기다. 자매의 원한 서린 유령 때문에 수령들이 번번이 죽어 나가자 관리들은 그곳에 부임하기를 꺼리게 된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이 자청해서 수령으로 부임하더니 유령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한을 풀어준다. 그들은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간다. 이 지점에서 ‘장화홍련전’이 끝나고 강화길 작가의 창조적인 재해석이 시작된다.

 지금부터는 자매의 유령 때문에 줄줄이 횡사한 수령들이 중심이다. 그들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억울하게 죽었다. 그들도 유령이 된다. 자매의 원한이 또 다른 원한으로 이어진 것이다. 문제는 원한의 대상인 자매가 이승을 떠나고 없다는 데 있다. 그러자 수령들의 원혼은 악의로 가득해져 아이든 행인이든 마구잡이로 죽게 만든다. 자매의 한을 풀어줬던 수령은 어느 때부턴가 그들의 억울한 이야기를 들어주기 시작한다. 그러자 그들의 원한이 풀리고 마을은 평온을 되찾는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복수가 아니라 억울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었다.

 여기에서 수령은 한스러운 얘기를 들어줌으로써 이 세상 타자들을 위로하는 예술가에 대한 은유가 된다. 비록 ‘대불호텔의 유령’이 한국전쟁 직후 원혼들에 관한 이야기라서 조선시대가 배경인 ‘장화홍련전’과는 거리가 있지만, 원혼들의 이야기를 듣고 풀어냄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들을 달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예술가는 타자의 억압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종의 수령인지 모른다. 장화와 홍련만이 아니라 모든 타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수령. 그래서 타자에 대한 환대는 예술의 본질이다.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