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은총’ 롯데 노경은, 채식하는 야구선수가 나타났다

입력 2020-06-11 1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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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노경은. 스포츠동아DB

이제 ‘노경은총’이 아닌 ‘비건 은총’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어느덧 서른보다 마흔이 더 가까워진 노경은(36·롯데 자이언츠)은 올 시즌에 앞서 고기를 끊었다. 야구인생을 건 도전이었는데 지금까지 결과는 ‘대박’이다.

운동선수의 식단은 기본적으로 육류 위주다. 프로야구단은 선수 1명당 한 끼 2만~3만 원 수준의 식대를 책정한다. 좋은 재료로 식탁이 가득 채워지는데 고기반찬 두세 개는 기본이다. 육류의 동물성단백질이 운동능력을 증가시킨다는 이론은 프로 원년부터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다. 야구선수들이 고깃집에서 수십만 원 어치를 해치운다는 이야기는 꾸준히 회자된다.

노경은도 다르지 않았다. 여느 선수들처럼 고기 위주의 식단을 수십 년째 지켜온 그는 지난해 가을 강영식 롯데 투수 코디네이터의 추천으로 다큐멘터리 한 편을 시청했다. 채식의 필요성과 효과에 대한 내용을 접한 뒤 조금씩 고기 섭취를 줄였다.

올해 1월부터는 돼지, 소, 닭은 물론 생선까지 먹지 않는다. 다만 국수 등의 육수에 들어있을 고기 성분까지 피하진 않는다. 식단의 엄격함에 따라 채식주의의 기준이 매겨지는데, 노경은은 스스로를 ‘락토 오보 베지테리언(lacto-ovo-vegetarian)’으로 정의했다. 달걀, 우유 등 동물성 식품까지는 섭취하는 수준이다. 필수 단백질은 콩고기 등으로 섭취한다.

폭발적 힘이 필요한 운동선수에게 육식은 필수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노경은은 고기를 끊은 뒤 오히려 더 몸이 좋아졌다. 프리에이전트(FA) 계약이 불발되며 지난 시즌을 통째로 날렸지만 올해 6경기에서 33이닝을 책임지며 2승2패를 거뒀다. 노경은은 “육류에는 근육의 회복을 저해하는 요소가 있다. 회복이 더딘 나이 많은 선수들에게 (채식 위주 식단이)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며 “탄수화물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체중은 90㎏대 중반이 유지된다. 몸매는 한창 좋았을 때로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채식 스포츠선수는 드물지만 사례가 아예 없진 않다. 테니스 스타 서리나-비너스 윌리엄스 자매는 대표적 비건(vegan)이다. 미국 메이저리그 시절 스테이크 등 미국식 육류 섭취에 익숙했던 ‘BK’ 김병현(은퇴)은 KBO리그 복귀 후 성적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자 2년 이상 채식을 택한 바 있다. 지난 시즌까지 남자프로배구 대한항공에서 뛴 밋차 가스파리니(슬로베니아)도 채식 스포츠선수의 대표 사례다.

김대환 롯데 트레이너는 “보통 힘을 쓸 때 육식이 필요하다고 믿어왔지만 채식, 식물성단백질 섭취로 더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육류 자제는 몸의 통증을 유발하는 염증완화와 피로회복에 탁월하다”며 “지난해 마무리캠프부터 영양사와 상의해 식물성단백질, 채소 위주의 식단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적어도 롯데에서 편견은 깨졌다. 노경은, 그리고 롯데의 성적에 따라 이런 분위기가 리그 전반으로 퍼질지 주목된다.

사직 |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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