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가 CCTV가 전장의 정찰병으로…러·우크라, 중동서 카메라 해킹전

최재호 기자2026-10-12 14:3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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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상관없는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주택가와 상점, 농장 등에 설치된 민간 폐쇄회로(CC)TV와 웹캠이 전쟁터의 정찰수단으로 변하고 있다. 인터넷에 연결된 카메라를 해킹해 병력과 군사시설의 움직임을 추적하고 공격 표적을 찾는 사례가 늘면서 민간 보안기기가 새로운 군사 정보 수집 수단으로 떠올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일(현지 시간) 정보기관과 사이버보안 전문가, 군 관계자, 해커 등을 인용해 보안이 취약한 민간 카메라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에서 실제 작전에 활용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각국 정보기관과 해커들은 인터넷에 연결된 카메라 가운데 보안 설정이 허술한 기기를 찾아낸 뒤 비밀번호를 대량으로 입력하는 방식 등으로 접속을 시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이 해킹으로 확보한 방대한 영상을 분석하는 데까지 쓰이고 있다. AI 알고리즘이 수많은 영상에서 병력 이동이나 특정 장비 등 주목할 장면을 자동으로 골라내면서 정보 수집 속도도 빨라졌다. 우크라이나군을 지원하는 국제 해커 그룹 ‘팀 원피스트’의 리더는 WSJ에 “AI가 모든 걸 바꿔놨다”고 말했다.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국경검문소 CCTV에서 찍힌 러시아군 침공 모습. X(구 트위터) 캡처

● 러·우 전쟁, 해킹 카메라가 ‘정찰 자산’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민간 카메라가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팀 원피스트는 2022년 말 러시아가 점령한 크림반도의 카메라에 침입해 군용 헬기의 이동을 추적했다. 이들은 헬기의 이동 경로를 토대로 러시아 공군기지의 위치를 파악해 우크라이나군에 전달했다고 WSJ은 전했다.

전쟁 초기에는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를 잇는 케르치 해협 다리의 카메라 영상도 감시했다. 러시아가 수중 공격을 막기 위해 다리 아래 동작 감지기를 설치한 사실 등을 파악해 우크라이나 측에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는 2022년 10월 이 다리에서 폭발물을 실은 트럭을 폭발시켰다.

러시아 측도 2024년 키이우 주택가 웹캠을 해킹해 표적과 미사일 공격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려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킹 대상에는 아파트 단지 관리조합이 감시용으로 설치한 웹캠도 포함됐다.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은 2022년 침공 이후 안보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 카메라 약 4만 대를 찾아 보안을 강화하거나 방향을 바꾸고 접속을 차단했다고 밝혔다.

● 닭장 카메라까지…중동에서도 이어진 해킹전

비슷한 일은 중동에서도 벌어졌다. 올해 초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했을 당시 이스라엘 북부의 한 양계장 농부는 스마트폰 웹캠 앱의 언어가 갑자기 아랍어로 바뀐 것을 발견했다. 당국 조사 결과 해커들이 중국산 카메라에 침입해 레바논 국경 인근 이스라엘 보안군의 움직임을 살펴본 것으로 파악됐다고 WSJ은 전했다.

이스라엘 사이버 당국 관계자는 “이란에서는 쌍안경으로 이스라엘을 볼 수 없다. 그래서 인터넷에 노출된 카메라를 감시 지점으로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역시 이란의 교통 카메라를 해킹해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0일(현지 시간) 사우디의 킹 칼리드 국제공항을 후티 반군의 탄도미사일이 공격하는 모습이 CCTV에 찍혔다. X(구 트위터) 캡처

● 유럽으로 번지는 카메라 해킹전

러시아의 카메라 해킹 활동은 전장 밖 유럽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네덜란드 정보기관 AIVD와 MIVD는 지난 7월 러시아 국가 해커들이 유럽과 우크라이나의 인터넷 연결 카메라를 조직적으로 해킹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군 수송 경로와 우크라이나에 전달되는 무기·장비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네덜란드의 군수 물류 경로에 설치된 일부 카메라도 해킹된 것으로 확인됐다.

사이버보안업체 클라우드SEK도 러시아어권 해커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서버에서 우크라이나 국방·에너지·통신 시설의 웹캠 이미지가 발견된 사례를 추적했다.

● 12억 대 연결된 카메라…전쟁터 밖도 안전지대 아니다

WSJ은 과거 항공 정찰이나 현장 첩보원이 맡던 표적 탐색과 공격 결과 확인 일부를 해킹된 카메라가 대신하고 있다고 전했다. 목표물 가까이에 이미 설치된 카메라를 이용하면 직접 침투하지 않고도 지속해서 현장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위협은 전쟁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인터넷에 연결된 카메라는 약 12억 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상당수는 보안 기능이 부족하거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기업이나 정부기관에서 IT 부서가 아닌 시설관리 부서 등이 자체 설치한 카메라는 조직의 보안 체계 밖에 놓이기 쉽다.

랜섬웨어 조직이 보안이 취약한 웹캠을 우회 통로로 이용해 조직 내부 네트워크에 침입한 사례도 보고됐다. 이 때문에 일부 서방 국가는 해킹 위험이나 중국 정부와의 연계 가능성을 이유로 특정 중국산 감시카메라 브랜드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최재호 기자 cjh12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