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헌

이승헌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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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승헌 부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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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1~2024-04-20
칼럼100%
  • [오늘과 내일/이승헌]프랜시스 후쿠야마의 2년 전 예언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5월 10일 오후. 몇 차례 e메일을 주고받고 역시 몇 번의 시도 끝에 기자는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와 통화할 수 있었다. ‘역사의 종말’ 등의 저서로 잘 알려진 국제정치학계의 스타이자 현대 정치의 문제점을 열정적으로 진단해 온 그에게 새 정부에 대한 조언을 듣고자 했다. 그런데 후쿠야마 교수는 인터뷰 1시간 중 절반을 협치(協治)와 적폐청산에 할애했다. 이런 내용이었다. ―문 대통령이 취임식 전에 야당을 방문한 것을 어떻게 평가하나. “꽤 좋은 징조(pretty good signal)이지만 그런 건 기본이다. 장담하건대 문 대통령이 야당과 지속적으로 소통하지 않으면 ‘거부 정치’(veto+cracy)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다.” ―누가 누굴 거부한다는 건가. “내가 몇 년 전부터 사용하고 있는 표현인데, 양당 체제에서 서로 반대만 하다가 정치적 교집합을 찾아내지 못하면서 자멸하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상 첫 대통령 탄핵이 이뤄졌는데 대화가 쉽겠나. “협치는 선택(option)의 문제가 아니다. 문 대통령은 승자다. 그렇다면 야당에 남은 건 반대할 권리(veto)밖에 없다. 그런데 민주주의에선 대통령 마음대로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서라도 몇 번이고 먼저 야당을 찾아가야 한다. 지금은 잘 모를 테고 나중에 절감하게 될 것이다.” ―문 대통령이 선거 기간 내건 적폐청산은 어떻게 생각하나. “대통령이 적폐청산을 국정 캐치프레이즈로 사용하면 상대방이 가만히 있겠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취임 전부터 ‘워싱턴의 오물을 치워버리겠다(drain the swamp)’고 했다. 그런데 지금 어떤가. ‘오물’이라던 정치권 협조 없이는 법안 하나 통과시킬 수 없다. 혁명이 아닌 이상, 협치를 통해 정치적 자산과 성과가 쌓여야 과거를 수정하고 시스템을 개혁할 동력을 얻는다. 이는 동서 모두 같은 이치다.” 문 대통령이 2일 사회 원로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선(先)적폐청산, 후(後)협치 가능’ 원칙을 선언하자, 뭐에 이끌리듯 떠올라 뒤적인 게 후쿠야마 교수의 2년 전 인터뷰였다. 당시만 해도 그냥 미래에 대한 전망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고수의 통찰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장면이 적지 않다. 원로 간담회에서도 후쿠야마 교수와 비슷한 조언이 있었다. 정치권의 오랜 책사 중 한 명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패스트트랙 정국 해법과 관련해 “이런 국면에서는 대통령이 나서지 않으면 문제를 풀기가 힘들다”고 한 게 그랬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여야 갈등과 협치 부재가 오롯이 문 대통령 탓이라고 할 수는 없다. 후쿠야마 교수가 2년 전 인터뷰에서 가장 강조했던 것도 ‘거부 정치’ 그 자체였다. 현대 정치가 좌우로 극단화되면서 서로 반목하는 게 하나의 현상(status quo)이 된 것이지, 누구의 잘못이 거부 정치의 1차적 원인은 아니라고 했었다. 하지만 이는 바꿔 말하면 거부 정치 현상을 그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제 아래선 결국 대통령밖에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10일 취임 2주년을 맞는 문 대통령이 이후 어떤 정치적 행보를 할지는 전적으로 본인의 선택이다. 그런데 한 가지. 2년 전 지금 상황을 예언했던 후쿠야마 교수는 거부 정치를 해소하지 못하면 그 후 어떤 일이 생길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거부 정치가 계속되면 결과적으로 정치권 전체가 자폭할 것이다. 그럼 기성 정치권 모두 정치 혐오의 대상이 된다. 선거를 앞두고 더 그럴 것이다. 이건 내가 개인적으로 장담할 수 있다(I personally guarantee).”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 2019-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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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이젠 정의용, 서훈만으로는 안 된다

    청와대가 4·11 한미 정상회담 이후 조용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공식 제안 이후 이렇다 할 북핵 메시지도 없다. 4·27 판문점선언 1주년 전후 보낼 것 같던 대북특사 이야기도 잠잠하다. 지금으로선 우리가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일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굿 이너프 딜’을 거절했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오지랖’ 운운한 상황이다. 왜 이런 국면이 벌어졌을까. 외부 요인은 우리가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내부라도 찾아야 한다. 기자는 이 중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이라는 ‘북핵 투톱’에 올인하듯 의존했던 문 대통령의 비핵화 해법이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2017년 문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외교안보 핵심이었던 정 실장과 서 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비핵화 프로세스를 책임져 왔다. 이들의 역할과 비중은 일반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정 실장을 두고 북핵 관련 정보의 입출구를 틀어쥐고 있다는 말이 정부 안팎에서 나온 지 오래다. 정 실장이 알려주지 않으면 모르는 정보가 많다는 얘기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올해 초 김의겸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미 행정부 핵심 인사가 방한 기간 중 청와대를 방문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고 언론에 보도됐다. 그런데 이 관계자는 정작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까지 만나고 갔다. 안보실에서 공유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었다. 서 원장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지나 해스펠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과의 ‘스파이 라인’을 통해 지금까지 물밑 대북 접촉을 지휘했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 생각을 읽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재료는 서 원장이 생산하거나 서 원장의 손길을 거친 것들이다. 게다가 서 원장은 정 실장의 서울고 후배. 최근까지 북-미 협상을 조율한 앤드루 김 전 CIA 코리아미션센터장도 서울고 동문이다. 서 원장은 앤드루 김을 “앤디”라고 부르며 호형호제한 지 수십 년이다. 이쯤 되니 외교부나 다른 부처는 북핵 문제에 있어선 두 사람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가 없게 됐다. 안보실과 국정원이 핵심 정보라도 주겠다고 하면 아이들이 산타클로스 기다리듯 서로 받아 가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하노이 결렬 전후부터 투톱에 대해 이상한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정 실장은 직접 듣지 못했겠지만, 폼페이오 장관 등은 정 실장이 전한 김정은 메시지의 신뢰성을 의심하는 말을 제3자에게 했다. 서 원장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워싱턴 사람들이 늘었다. 여기에 하노이 이후 김정은에 대한 한미의 정보 격차는 확 줄어들었다. 지난해만 해도 김정은을 만난 ‘정의용-서훈 콤비’의 북핵 정보가 하나라도 중요했지만, 이제 트럼프는 하노이에서 김정은의 속내를 한국만큼 잘 알게 됐다. 지금의 교착 상태가 정의용, 서훈 두 사람의 책임이라고 하긴 어렵다. 그렇다고 이들 투톱 체제를 그대로 유지한 채 하노이 이후 달라진 비핵화 판을 헤쳐 나갈 방도 역시 찾기 어렵다. 하다못해 김정은도 하노이 이후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뒤로 물리고 최룡해 국무위 제1부위원장,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투톱으로 전환했다. 다른 사람을 찾기 어렵다면 다른 사람의 지혜라도 끌어다 써야 하는 상황이다. 적폐로 몰린 대미 라인을 복원시키라는 게 아니다. 진영을 떠나 오래 북핵 문제를 고민하고 미국을 지켜봤던 다른 전문가들 의견이라도 폭넓게 들어 보라는 것이다. 아직까지 문 대통령이 역대 외교부 장관이나 주미대사를 청와대로 불러 차 한잔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상황이 변했는데 내 방식이 여전히 100% 옳다고 고집한다면 남북 정상회담을 몇 번 한들,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 2019-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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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태극기가 구겨져도 강경화는 멀쩡한 이유

    이쯤이면 여권에서도 책임론이 계속 나오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잠시 나오더니 들어갔다. 강원 산불이라는 초대형 이슈가 터졌다지만 예상보단 빨리 꺼졌다. 각종 외교 결례에 이어 이번엔 ‘구겨진 태극기’로 국제 행사를 치른 외교부의 수장 강경화 장관 얘기다. “5·24조치 해제 검토”로 상징되는 강 장관의 설화(舌禍)와 외교부의 실수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강경화 리스트’를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엔 태극기가 걸린 문제라서 좀 다르겠거니 했는데, 본격적인 책임론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 정도면 강 장관에겐 독특한 생존 비법, ‘강경화가 사는 법’이 있다고 봐야 한다. 대안 부재라든지, 새로 임명하면 또 다른 부실 검증 참사가 두렵다는 것 말고 본질적인 이유 말이다. 기자는 우연히 외교부 관계자를 통해 그 이유 중 하나를 짐작할 수 있었다. 강경화 외교부의 핵심이자 북핵 수석대표인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통해서다. 이 본부장은 4일 ‘문재인 정부와 한반도 평화 이니셔티브’ 국제학술회의에서 “(북-미) 대화가 재개될 때 ‘조기 수확(early harvest)’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기 수확’이란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지난달 17일 언론에 꺼낸 개념으로 완전한 비핵화로 가기 전에 제재 완화 같은 성과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외교부 내 북핵 전문가들은 청와대가 ‘조기 수확’을 거론했을 때 내부적으로 뜨악해했다.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 전 제재 완화 불가를 외치는 미국의 반발이 뻔하기 때문. ‘조기 수확’은 2005∼2007년 6자회담 때 사용했던 개념이라 “과거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받아들이기 어려워 한미 공조에 도움이 안 된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럼에도 수시로 워싱턴을 드나드는 이 본부장이 어느새 ‘조기 수확론’ 전도사가 된 것이다. 이는 청와대와 부처 간 정상적 수준의 호흡을 넘어, 어떤 상황에서도 청와대와 신속하게 코드를 맞출 수 있음을 보여준 강경화 외교부의 상징적 장면 중 하나라고 기자는 생각한다. 앞서 강 장관이 지난달 21일 국회에서 “미국이 북한에 요구한 건 핵 폐기가 아니라 핵 동결” “북한과 미국, 한국의 비핵화 개념이 같다”며 듣는 이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는데, 이 관점에서 보면 왜 이런 말을 하고 다니는지 미스터리가 풀린다. 무엇보다 강 장관의 이런 스탠스는 자기 색깔이 없는 외교부 장관을 선호하는 문재인 청와대 입맛에 잘 맞는다. 일찍이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좌하며 윤영관 반기문 송민순 등 그 나름대로 ‘한가락’ 하는 외교부 장관을 지켜봤다. 다들 한미 관계를 놓고 한마디씩 했고 노 전 대통령이 얼마나 피곤해했는지 잘 안다. 문 대통령으로선 이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갈수록 코드를 잘 맞추는 강 장관을 구겨진 태극기나 외교 결례 정도로 경질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언제까지 외교안보 이슈를 만기친람할 수 있을까. 집권 중반기를 넘어갈수록 외교 이슈는 더 많아진다. 그것도 구체적으로 각론을 다루는 경우다. 외교 전문가의 본격적인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때도 주파수가 맞는 ‘셀러브리티’형 외교부 장관으로 버틸 수 있을까. 외교부를 지금처럼 무슨 용역업체 비슷한 조직으로 두면 태극기 사태에서 보듯 기초 체력이 허약해지고, 나중엔 쓰려고 해도 쓸 수가 없게 된다. 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뒤 진지하게 강 장관과 외교부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한다. 마라톤 게임이 된 북핵 문제에 대처하는 것은 물론 문 대통령 자신을 위해서도 말이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 2019-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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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조명균에서 김연철로 바꾸려는 3가지 이유

    문재인 대통령이 각종 막말과 친북 발언을 파악하고서도 왜 굳이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를 발탁했는지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오늘(26일)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지만 김 후보자에 대한 비난만 하다가 끝날지도 모르겠다. 누구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기에 기자는 ‘플랜 B’를 사용해보기로 했다. 조만간 전임자가 될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김정은의 서울 답방도 못 보고 물러나게 된 이유를 파악해보면 김 후보자가 발탁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겠다 싶었다. 며칠 알아보니 청와대 등 여권에서 조 장관에 대한 비토가 생각보다 거셌다. ‘현 정부 출범과 함께해서 피로가 누적됐다’는 인사치레를 제외한 진짜 비토 이유는 대략 3가지였다. 첫째, 국제사회를 의식하느라 남북 경협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평이 많았다. 한 여권 관계자는 “조 장관은 경협 문제를 놓고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빨리 움직이지 않았다”고 했다. 비핵화 국면에서 한국 정부의 거의 유일한 레버리지가 남북 경협인데 주무 장관이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얘기다. 실제로 조 장관은 지난해 11월 방미 중 가진 동포간담회에서 “지금 상황에서는 남북 경협이 불가능하다”며 “미국의 제재(위반)에 걸리면 살아남을 수 없다. (남북 경협도) 국제적 합의가 있어야 가능하지 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할 수 없다”고 했다. 둘째, 노무현 정부 당시 2차 남북 정상회담의 실무 주역 중 한 명이라 ‘우리 편’인 줄 알았는데 자유한국당 인사들과도 대화가 잘된다는 평가가 많았다. 한국당의 한 중진 의원은 “문재인 정부 장관들 중 국회의원 출신을 제외하고선 조 장관과 비교적 이야기가 잘 통했다”고 했고, 또 다른 야당 중진은 “폭탄주도 종종 하는데 괜찮은 사람”이라고 했다. 여권 일각에선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의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란 발언이 야당 의원들의 국회 질의 과정에서 공개된 배경 중 하나로 조 장관을 의심하기도 한다. 셋째, ‘필요 이상’으로 미국과 주파수가 잘 맞는다는 점을 지적하는 사람이 많았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에는 통일부 장관이란 직제가 없어서 조 장관이 어떤 스탠스를 취하는지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본다”며 “치우치지 않고 안정적이라는 평가가 많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5·24조치 해제 검토’ 발언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리 승인 없이는 한국 정부가 대북제재 해제를 안 할 것”이라며 반발하자 가장 뚜렷하게 해명한 건 조 장관이었다. 그는 강 장관 발언 다음 날인 지난해 10월 11일 국감에서 “5·24 해제를 구체적으로 검토한 사실이 없다”고 못 박았고 논란은 잦아들었다. 이렇게 여권이 조 장관에 대해 갖고 있는 불만이나 아쉬운 점 3가지를 정리해보면 왜 김연철 후보자를 선택했는지 비교적 분명해진다. 야권과의 소통이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미국과의 주파수 맞추기에 신경 쓰지 않고 남북문제에만 올인할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문 대통령을 겨냥한 ‘군복 입고 쇼나 하고 있다’ 같은 ‘불경스러운’ 막말에도 “저희로서는 (김 후보자가) 최선이었다”(이낙연 국무총리 19일 대정부질문)는 고백이 나오는 것이다. 이번 개각에서 살아남은 외교안보부처 장관들은 이런 흐름을 눈치챈 듯 벌써부터 ‘김연철류’의 발언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강경화 장관은 “남북미의 비핵화 개념이 같다”(21일)고 했고,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천안함 폭침 사건을 “불미스러운 충돌”(20일)이라고 했다. 이러다가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라인이 삽시간에 ‘김연철화(化)’되지 말란 법도 없어 보인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 2019-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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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대통령 취재에도 ‘신예기’가 필요하다

    노딜로 끝난 하노이 회담에서도 몇 가지 성과는 있었다. 그중 하나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방 언론에 데뷔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단독 회담에서 김정은이 “협상을 타결할 자신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속단하긴 이르다고 생각한다. 예단하진 않겠다”고 ‘깜짝 답변’한 게 시작이었다. 확대 회담에선 “비핵화가 준비됐느냐”는 질문에 “그런 의지가 없다면 여기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노동신문, 조선중앙TV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을 전하던 것과 달리, 기자와의 즉석 일문일답을 통해 육성과 표정이 날것 그대로 전달됐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에서 어떻게 이런 장면이 가능했을까. 그건 기자들이 앞뒤 재지 않고 그냥 물었기 때문이다. 김정은에게 질문한 워싱턴포스트, 로이터통신 기자들은 백악관 출입기자들이다. 백악관 기자단은 대통령의 모든 공개 일정에 ‘풀 취재’(돌아가면서 대표 취재해 내용을 공유하는 시스템) 기자들을 보낸다. 이들은 대통령을 포함해 대상을 가리지 않고 가장 궁금한 것을 기습적으로 묻는 게 의무처럼 되어 있다. 트럼프가 주말에 골프 치러 갈 때도 골프장 앞 햄버거 가게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질문할 기회를 노린다. 이런 노력이 계속되는 건 가끔 질문에 답을 하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7일 북한의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복구 움직임에 대해 “(김정은에게) 실망스럽다”고 한 것도 체코 총리와의 회담 직전에 기자들이 쏟아낸 질문에 답한 것이다. 지난해 5월 트럼프가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도중 “북-미 정상회담이 안 열릴 수도 있다”며 전 세계를 뒤집어 놓은 것도 한 기자가 고함치듯 물어본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청와대에도 이런 시스템은 있다. 대통령 주재 각종 회의는 물론 정상회담에도 풀 기자가 들어간다. 그러나 질문과 대답은 거의 오가지 않는다. 주로 회의 모두발언을 기록한 뒤 회의장에서 빠진다. 이명박, 박근혜 청와대 때도 마찬가지였다. 기자도 이전에 청와대를 출입하면서 각종 회의를 풀 취재했으나 질문해 본 적은 없다. 딱히 질문이 금지된 건 아닌데 관행이 그렇다. 평소 대변인과 공격적인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청와대 기자들인데도 말이다. 여러 요인이 겹쳤을 것이다. 경호 문제도 있고, 대통령 일정 도중에 이런 질문을 ‘돌발 행동’으로 여기는 권위주의적 분위기도 아직 남아있다. 대통령을 ‘나라님’으로 여기는 유교 문화의 자장(磁場)에서 벗어나지 못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언론을 통해 현안에 대한 생각을 자주 밝히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을 마냥 피해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묻는 쪽이나 답해야 하는 쪽 모두 경험이 없을 뿐이다. 김정은과 트럼프의 경우에서 보듯, 팩트를 향해 날것 그대로 던진 질문과 즉석에서 나오는 생생한 답변은 종종 예상을 뛰어넘어 사람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킨다. 마침 문 대통령이 10일부터 동남아 3개국 순방에 나섰다. 80여 명의 기자도 동행하고 있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육성을 통해 듣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북-미 비핵화 중재를 어떻게 할 것인지, 미국의 반대에도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것인지, 올해도 소득주도성장 계속할 건지…. 간담회라도 한다면 정해진 영역의 질문만 받지 말고 격식을 깨고 시원하게 답했으면 좋겠다. 기자들도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류의 인사는 나중에 하고 송곳처럼 파고들어야 한다. 본보가 우리 속의 관행과 구습을 되돌아보기 위해 화제 속에 연재하고 있는 신예기(新禮記)는 제사나 명절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 2019-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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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그래도 북핵은 트럼프가 오바마보다 낫다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나 싶었다. 19일 오전 국회. 북한 영변 핵시설 등을 위성사진으로 분석해 유명한 미국 워싱턴의 ‘38노스’ 운영자 조엘 위트 미 스팀슨센터 수석연구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 말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도널드 트럼프를 99% 지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트럼프의 직감은 맞고 있다. 트럼프의 북핵 해법은 전임 미국 대통령들과는 다르다. 특히 버락 오바마와는 완전히 대조적이다. 오바마는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을 안 했는데 트럼프는 온전히 리스크를 감수하고 있다.” 위트는 워싱턴의 대표적인 대북 대화파 중 한 명. 트럼프보단 오바마와 더 인연이 깊다. 북한에도 널리 알려져 있어 북-미 ‘1.5트랙(반관반민)’ 대화에도 단골손님이다. 그런 그가 트럼프는 싫지만 트럼프의 북핵 해법은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위트의 이 말이 생각나는 것은 베트남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 성과에 대한 회의론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어서다. 트럼프가 회담을 하기도 전에 3차 회담을 예고하자 “김정은과 사이가 좋다” 등 트럼프 특유의 허풍 섞인 언행들에 대한 반감과 불신까지 더해져 비핵화 회의론은 요새 거의 정점을 찍는 분위기다. 그럴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무엇보다 시간이 너무 없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가 하노이에서 매일같이 실무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비핵화에 대한 개념 정의도 아직 분명치 않다. 그렇다고 회의론을 언급하는 국내외 인사들 중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인 솔루션을 제시한 경우는 별로 듣거나 보지 못했다. 대부분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교과서적 당위론이지 어떻게 김정은을 공략할지 방법론은 없다. 특히 미국에서 더 심한데,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야당인 민주당 계열이나 뉴욕타임스, CNN 등 반(反)트럼프 성향 매체 소속이다. 대부분 오바마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다. 그럼 트럼프가 아니라 오바마가 지금 백악관에 있다면 김정은에게서 더 많은 비핵화 조치를 끌어냈을까. 천만에. 위트의 ‘내부 고발’처럼 오바마 재임 8년은 대북 정책의 암흑기였다고 기자는 본다. 왜? 실질적 변화를 위한 도전을 감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아시아정책은 지금도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렵다. 대북 정책은 ‘전략적 인내’였고, 중국 정책은 ‘아시아 회귀’였다가 ‘아시아 재균형’으로 바꿨다. 물론 다 나중엔 흐지부지됐다. 그사이 김정은은 현재 핵 능력의 대부분을 완성했다. 북한은 여섯 번의 핵실험 중 오바마 시절 네 차례(2∼5차)나 했다. 오바마가 뒤늦게 유엔 대북제재에 나섰지만 북한을 변화시킬 레버리지는 없었다. 오바마는 소통에는 제왕이었지만, 북핵 문제에선 망설이다가 실기한 햄릿이었다. 트럼프가 하노이에서 김정은과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김정은을 몰아붙여 비핵화 테이블에 두 번씩이나 나오도록 한 사람은 트럼프라는 점이다. 건설적인 비판을 넘어 트럼프가 하는 모든 것을 비꼬는 미국 내 일부 목소리에 우리까지 덩달아 비관론에 빠질 필요는 없다. 트럼프도 이번에 성과를 못 내면 김정은과 함께 ‘비핵화 사기꾼’으로 몰릴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비핵화 논의를 이어가기 위한 몇 가지 새로운 조치에 합의하고 대화 모멘텀을 확보할 수 있다면 회담 실패라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 이 순간 자체가 오바마 시절엔 생각도 못 했던 장면들이다. 하노이 핵 담판의 성패는 회담이 끝나는 28일 이후 따져도 늦지 않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 2019-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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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해리스의 콧수염

    “외교관인지 군인인지 잘 모르겠다. 터프 가이인 건 분명하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10일 타결된 뒤 청와대와 외교부 주변에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해리스 대사가 지난해 12월 28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제시한 총액 10억 달러(약 1조1300억 원) 이상, 협정기한 1년이란 마지노선과 크게 달라진 것 없이 협상이 최종 타결됐기 때문이다. 몇몇 청와대 관계자는 해리스 대사가 워낙 강하게 밀어붙였다며 이름만 나와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다. 그런데, 해리스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우리가 북핵 외교에 다걸기(올인)하고 있는 동안 역대 최고위급 주한 미대사라는 해리스, 더 나아가 그를 선택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원래 모습을 한동안 잊고 있었던 것뿐이다. 취재차 수년간 해리스를 지켜본 기자는 그가 지난해 7월 콧수염을 기르고 서울에 나타났을 때 어색해 웃음이 나왔다. 현역 군인 시절 깔끔하다 못해 파르라니 면도한 얼굴에 해군 정복을 입고 미 워싱턴에 나타나 의원들에게 군사비 인상 필요성을 역설하던 해리스였다. 그는 부임 당시 콧수염을 기른 이유에 대해 “군인이 외교관이 됐다. 신선하지 않을까 싶었다”고 했다. 40년 넘은 그의 강성 군 이미지를 가리려 했던 것 같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로 잘 알려진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유독 튀어나온 앞니를 가리기 위해 콧수염을 길렀듯이 말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한국 사람들은 해리스를 편안해 보이는 동네 아저씨 같은 이미지로 인식하고 있다. 하긴 최근 주한 미대사들은 워낙 대중 친화적이었다. 칼로 얼굴에 테러를 당하고도 ‘같이 갑시다’를 외쳐 한미동맹의 영웅으로 떠올랐던 마크 리퍼트, 심은경이라는 한국 이름도 있는 캐슬린 스티븐스 등이 그랬다. 하지만 콧수염을 기르기 전 해리스는 ‘군인의 나라’인 미국에서도 이미 전설 반열에 오른 사람이다. 동양계 최초의 미 해군 4성 장군인 해리스는 대사로 부임하기 전까지 하와이에 본부가 있는 태평양사령부 사령관이었다. 지금은 인도-태평양사령부로 이름이 바뀐 이곳의 전력은 웬만한 나라 몇 개의 군사력을 한데 모아놓은 수준이다. 그는 캘리포니아 등 미 서부 해안부터 태평양을 거쳐 인도까지, 지구 면적의 52%에서 벌어지는 미군 작전을 관할했다. 거느린 병력은 37만5000여 명이었고, 지휘하던 항공모함만 5척.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도 주한미군도 해리스의 명령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왜 취임 후 1년 반이나 주한 대사 자리를 비워놓다가 애초 호주 대사로 가려던 해리스를 서울로 보냈는지에 대해선 다양한 관측이 나왔다. 태평양사령관 시절부터 대북, 대중 강경파였던 그를 통해 북한을 압박하면서 비핵화 협상에서 성과를 내려 한다는 게 다수설이었다. 주한미군 분담금을 더 얻어내려고 동북아 군사 전략에 능한 해리스를 낙점했다는 말도 있었는데 소수설이었다. 분담금 협상 과정과 결과를 보니 이젠 소수설이라고 할 순 없을 듯하다. 분담금 협정 기한 1년 원칙에 따라 한미는 곧 내년도 협상에 들어간다. 미국 사회에서 다년 계약은 이례적이고 1년 계약이 보통이다. 연봉이나 집 계약도 그렇다. 협정 기한이 1년으로 바뀐 것은 이젠 본격적으로 ‘아메리칸 스타일’로 협상하겠다는 뜻이다. 이걸 아는 청와대도 1년은 끝까지 막아보려 했다. 지금이라도 콧수염에 가려진 해리스의 진면목을, 그를 보낸 트럼프의 뜻을 간파하고 제대로 협상 준비에 나서야 한다. 한미동맹을 해치지 않으면서 한국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묘안 내기가 앞으로 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 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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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냉면집도 알고 있다

    #1. “어, 총장님 게 어디 갔지?” 얼마 전 청와대 인근의 한 음식점. 일행 중 한 명이 벽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서명이 담긴 액자가 안 보여서다. 이 식당 벽엔 유명 인사들의 서명 액자가 많다. 유엔에 가기 전부터 오랜 단골인 반 전 총장의 액자는 한동안 가장 잘 보이는 벽에 있었다. 직원에게 물으니 “(대선 주자로 거론되던) 2017년 초까지는 걸려 있다가 대선 후 ‘덜 잘 보이는’ 곳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2.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구속된 다음 날인 지난달 31일. 냉면 생각이 나서 서울 무교동의 한 노포(老鋪)를 찾았다. 반 전 총장 단골집 이상으로 유명 인사들의 서명 액자가 많은 곳이다. 계산을 하러 카운터에 갔더니 문재인 대통령의 서명 액자가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런데 바로 아래 누군가의 액자가 있었다. 다른 액자들은 옆으로 한 칸 정도 떨어져 있는데 이건 거의 붙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윤석열이라고 써 있었다. 직함은 따로 적지 않았으나,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서명이었다. “2017. 6. 17. ○○면옥은 마음의 故鄕(고향)입니다”라고 썼다. 동명이인이거나 윤 지검장을 ‘사칭’했을 수 있겠으나, 윤 지검장이 다른 공개 문서에 서명한 것을 보니 동일한 필체였다. 직원에게 물었더니 “잘 보이는 데 걸려있는 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서울 시내, 특히 청와대와 가까운 오래된 음식점에 가면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종종 짐작할 수 있다. 반 전 총장이야 대선 레이스에서 중도 하차했으니 그렇다 치고, 무교동 냉면집은 왜 윤 지검장의 서명을 이렇게 배치했을까. 집권 3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문재인 정부 하면 아직까지 적폐청산이 가장 먼저 떠올라서가 아닐까 싶다. 다른 수많은 유명 인사들보다 ‘적폐청산의 아이콘’인 윤 지검장이 적어도 냉면집에선 자주 회자된다는 방증. 소득주도성장, 2차 북-미 정상회담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파급력은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시작해 2018년 이명박 전 대통령, 2019년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으로 이어지는 적폐청산 드라이브가 한 수 위라는 얘기다. 김 지사의 구속도 여당은 ‘양승태 적폐세력의 보복 재판’이라고 주장하는 만큼, 넓게 보면 적폐청산 이슈에 들어있다. 하긴 대통령수석비서관 중 정무, 국민소통, 경제 등 다른 핵심 수석들은 다들 교체됐지만 새해 들어서도 조국 민정수석은 굳건하다. 적폐청산, 사법개혁 이슈를 계속 수행하라는 것이다. 김 지사 구속 후 정치권은 어느 때보다 강력한 적폐청산 이슈의 후폭풍에 휩싸이고 있다. 급기야 여당은 삼권분립을 무시하고 야당은 대선 무효를 언급하며 막가파식으로 충돌하고 있다. 정치 원로들은 ‘사법 폭풍’에 정치가 최소한의 자존심과 존재감도 못 지키고 있다며 절망하고 있다. 한 여권 중진은 “지금 우리는 전례 없이 검사와 판사가 온 나라를 휘젓는 사법 공화국에 살고 있다”고 했다. 야권 중진은 “여야가 툭하면 모든 이슈를 검찰 수사에 맡기며 자해행위를 하고 있다. 이러면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도 설 자리가 없다”고 했다. 지난해 7월 취임 후 “이젠 국회의 계절”이라며 그 나름대로 정치 복원을 위해 동분서주해 온 문희상 국회의장도 요새 좌절감을 토로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주변에 “곧 봄이 올 텐데, 국회에도 꽃이 필까?”라며 씁쓸해했다고 한다. 유감스럽지만 기자 생각엔, 지금처럼 청와대와 서초동에 휘둘리면 한동안 정치의 꽃은 못 필 것 같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 2019-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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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끝까지 거친 질문 당부했던 오바마

    이 장면을 문재인 정부에서, 그것도 벌써 꺼내보게 될 줄은 몰랐다. 2년 전인 2017년 1월 18일 오후, 미국 워싱턴 백악관 내 기자실. 이틀 뒤 퇴임하는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임기 중 마지막 기자회견을 하러 들어섰다. 밝지만 엄숙한 표정이었다. “그동안 감사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여러분이 쓴 기사가 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게 우리(권력과 언론) 관계의 핵심이다. 여러분은 대통령인 나에게 아첨꾼이면 안 된다(You’re not supposed to be sycophants). 회의론자(skeptics)여야 한다. 나에게 거친 질문(tough questions)을 던져야 한다. 사정 봐주고 칭찬(complimentary)해도 안 된다. 언론이 비판적 시각을 던져야 막강한 권한을 (국민들로부터) 부여받은 우리도 책임감을 갖고 일하게 된다.” 기자실이 술렁였다. “그런 당신들이 있어서 우리가 더 솔직해지고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었다. 국민들의 요구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이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가령 이런 거다. 여러분이 2014년 에볼라 사태 당시 ‘왜 아직까지 퇴치하지 못하느냐’고 질문할 때마다 나는 이를 근거로 백악관 참모들에게 ‘다음 회견 전에 (저런 질문이 나오지 않도록) 해결하라’고 다그칠 수 있었다.” 박수와 웃음이 나왔다. “이런 이유로 미국과 민주주의는 여러분을 필요로 한다.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서도) 집요하게 진실을 끄집어내서 백악관을, 미국을 최고의 상태로 만들어 달라. 여러분이 민주주의를 위해 보여준 노고에 감사를 표한다(I want to thank you all for your extraordinary service to our democracy).” 그러고는 다시 현안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일부 기자들은 만감이 교차한 듯 눈물을 글썽거렸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질문을 이어갔다. 이 장면이 다시 떠오른 것은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회견 중 김예령 기자의 질문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어서다. 김 기자가 “기조를 바꾸지 않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라고 질문하자 문 대통령이 “새로운 답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고 했고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비난을 퍼부었다. 이재정 원내대변인은 “싸가지 문제보다 실력 부족의 문제”라고,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술 한잔 먹고 푸념할 때 하는 얘기”라고 했다. 오바마라고 집권 8년 동안 기자들로부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같은 ‘싸가지 있는’ 말과 질문만 들었을까. 2014년 8월 당시 최대 골칫거리였던 ‘이슬람국가(IS)’ 격퇴를 논의하러 국가안보회의(NSC)를 소집한 뒤 회견장에 베이지색 양복을 입고 나서자 기자들은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가 나약해 보인다”며 옷차림까지 물고 늘어졌다. 2015년 4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 뒤 회견장에 나섰지만 기자들은 미일 관계는 뒷전인 채 당시 터진 볼티모어 소요 사태에 대한 정부의 무기력한 대처를 집중 질타했다. 그래도 오바마는 질문에 충실히 답했다. 마지막 회견을 한 날 오바마 지지율은 퇴임을 앞둔 대통령으로는 이례적인 60%였다. 집권세력이 불쾌해했다지만 기자들의 질문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언론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이런 일이 생긴 뒤엔 위축될 수 있다. 대통령의 어두운 얼굴이 떠올라 질문할 때 머뭇거릴 수 있다. 그럴 경우 분명한 건, 그에 따른 손해는 고스란히 문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몫이라는 점이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 2019-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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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지지층만 바라보면 트럼프와 뭣이 다른가

    처음 봤을 때 누구 것인지 헷갈렸다. 미국 여론조사기관을 한데 모은 정치분석매체인 리얼클리어폴리틱스(RCP)의 숫자를 보고서다. 지난해 12월 27일까지 집계된 누군가의 지지율 여론조사였는데 긍정 42.7%, 반대 52.2%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것이었다. 어디서 많이 봤나 했더니 매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 추이를 분석하고 있는 리얼미터의 최신 조사 결과와 비슷했다. 이 기관의 12월 27일 결과는 긍정 43.8%, 부정 51.6%였다. 한때 80%까지 접근했던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트럼프 대통령과 어느덧 비슷한 수준이 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도 하락이지만 이에 못지않게 놀라운 건 어떻게 트럼프가 지금까지 이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이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는 취임 후 현 수준의 지지율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미국 우선주의’를 주창하며 국제질서를 파괴해온 트럼프가 지지율을 유지하는 또 다른 ‘거래의 기술’은 뭘까. 기자는 초심(?)을 잊지 않았던 게 핵심이었다고 본다.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는 일성으로 대선 캠페인을 시작한 트럼프는 지금까지 백인 노동자를 축으로 한 콘크리트 지지층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왔다. 취임 후 단행한 무슬림 입국 제한 행정명령부터 최근 캐러밴(이주민 입국 행렬) 저지까지 ‘앵그리 화이트’의 분노를 더 태울 자극적 소재로 자신의 지지율을 지탱해 왔던 것이다. 문 대통령에게 현재 지지율 추이는 트럼프의 그것과 엇비슷하다는 것 외에 또 다른 중대한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2017년 대선에서 얻은 득표율(41.1%)에 근접하고 있다는 점이다. 열성 지지층만 남았다는 얘기다. 이런 문 대통령에겐 두 갈래 길이 있다. 지지층을 확장해 산토끼까지 잡을 것인가, 아니면 지지층을 사수하는 집토끼 지키기에 나설 것인가. 전자(前者)는 취임 초기 야당, 국민과의 소통을 약속했던 초창기 문 대통령의 길이고 후자는 트럼프의 길이다. 유감스럽게도 문 대통령의 요즘 모습은 취임 초와는 거리가 있다. 변할 듯하면서도 어느덧 고개를 돌려 지지층만 바라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으로 시장과 기업인들의 불만이 폭주하자 인상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했지만 정부는 지난해 12월 31일 국무회의를 열고 약정휴일시간과 약정휴일수당만 산입에서 제외키로 한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심의, 의결해 버렸다. 문 대통령 말만 믿었던 경영계는 “기업의 경영권이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됐다”고 하소연한다. 기업들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의 조속한 확대를 요구하고 있지만 청와대와 여당은 2월까지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논의를 일단 기다려보잔다. 그때까지 무슨 다른 뾰족한 수가 있다기보다는 지지층인 노동자층의 요구를 도저히 외면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은 31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를 만나서는 혁신적 포용성장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재천명하기도 했다. 정치인, 특히 대통령에게 핵심 지지층은 소중할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국정 동력을 유지할 마지막 버팀목 같은 존재다. 그렇다고 집권 3년 차인 문 대통령이 벌써부터 트럼프처럼 지지층만 보고 가는 건 너무 수세적이다. 더욱이 올해는 대형 선거가 없는 해. 집권 3년 차를 맞아 주요 국정 이슈의 성과를 내서 얼마든지 지지층을 확장할 수 있는, 문 대통령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해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들도 대통령이 트럼프의 길을 가는 건 원치 않을 것이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 2019-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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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대통령의 슬기로운 ‘나이트 라이프’

    얼마 전 한 식당. 계속 말을 하는데 밥은 기자보다 빨리 먹었다. 대개 숟가락질할 시간이 없어 남기거나 이야기를 마친 뒤 식사하기 마련인데 그는 달랐다. 하긴 술자리에선 막걸리 몇 통을 순식간에 비우는 것도 봤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얘기다. 그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요구하며 단식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잘못하면 큰일 나겠다”고 했었다. 알아주는 대식가인 손 대표가 곡기를 끊을 정도로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손 대표가 열흘 만인 15일 단식을 풀 수 있었던 건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가 컸다. 14일 문희상 국회의장을 만나 국회의 선거제 논의를 존중하겠다고 했고, 이걸 전달받은 손 대표도 선거제 개편의 모멘텀이 생겼다며 단식 중단의 명분을 찾은 것이다. 아무리 요새 지지율이 떨어진다고 해도, 대통령이 나서야 정치적 실타래가 풀린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그런데 이런 문 대통령이 종종 저녁에 외부 인사 없이 혼밥 또는 혼술을 한다는 이야기가 청와대 안팎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정도가 대작(對酌)하러 종종 관저에 들른다고 한다. 만나자는 사람이 없어서겠나. 누구나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여권 관계자는 “좋아하는 막걸리 한잔하면서 밀린 보고서를 읽거나 참모들에게 전화로 지시한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혼밥, 혼술 자체가 문제 될 건 없다. 중요한 건 왜 이런 말이 계속 나오느냐일 것이다. 아마 손 대표처럼 대통령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기회는 별로 없다는 방증 아닐까 싶다. 야권, 그중에서도 자유한국당 인사들이 문 대통령과 비공식적으로 저녁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말은 별로 듣지 못했다. 하긴 문 대통령도 사람인데 맨날 싫은 소리만 하고 지지층 중 일부는 자신의 탄핵까지 거론하는 정파 인사들을 굳이 만나야 하나 싶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전직 대통령도 비슷했다. 주로 관저에서 지냈다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차치하더라도, 이명박 전 대통령도 주변에 “야당 사람들은 말이 안 통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야당 협조 없이는 법안 하나 제대로 처리하기 어려운 게 현재 정치 지형. 이 구도는 2020년 총선 전까지는 바뀌지 않는다. 때문에 최소한 그때까지는 대통령이 야당을 설득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당직 맡으면 정무수석에게 난 들려 보내는 ‘영혼 없는’ 소통이나 얼굴 잊을 때쯤 모이는 여야정 협의체 말고, 대통령이 불쑥 저녁 번개를 제안하는 식의 ‘정치적 소통’ 말이다. 처음엔 쉽지 않을 것이다. 같은 법조인 출신인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야당 인사들을 자주 만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중엔 먼저 연락했다. 2014년 11월 중간선거 패배 후 기자들이 오바마에게 정국 수습책을 묻자 “(야당인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에게 버번위스키 한잔하자고 해야죠”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썩 내키지 않아 했던 그 표정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버번위스키로 유명한 켄터키주가 지역구였던 매코널은 영화 ‘스타워즈’의 악역 ‘다스베이더’가 별명일 정도로 워싱턴 바닥에서도 유명한 냉혈한. 하지만 둘은 나중에 백악관에서 그 위스키를 마셨고 종종 샌드위치 점심을 했다. 설득이 통했는지, 오바마 임기 중 공화당은 오바마케어(건강보험 개혁)를 폐기하지 못했다. 아무리 정치가 팍팍해졌다 해도 대통령이 양주도 아닌 막걸리에 저녁 하자는 데 마다할 사람은 별로 없다. 식사 한 끼 했다고 모든 일이 풀리지는 않겠지만, 이런 소통 노력 없이 큰일하기도 역시 쉽지 않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 2018-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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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전직 대통령이 수행한 마지막 임무

    이 정도면 원수지간이라고 보는 게 정상이다. 재선을 노린 ‘아버지’는 얼굴에 홍조가 가시지도 않은 애송이에게 졌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고 공격당했다. 자리에서 물러나자 4년간 이룬 많은 걸 부정당했다. 이에 아버지의 맏아들이 그 애송이가 키운 후계자를 물리치고 8년 만에 백악관 주인 자리를 되찾았다. 그러나 아버지와 애송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처럼, 종종 부자(父子)처럼 지냈다. 3, 4시간의 비행도 마다않고 종종 찾아 아버지와 대화하고 골프도 쳤다. 아버지의 아들도 전직이 되자 애송이와 형제 같은 친구가 됐다. 20년간 순서대로 미국을 집권했던 아버지 부시(조지 H W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이야기다. 노선도, 출신도 다른 이들이 어떻게 잘 지낼 수 있었을까. 아버지 부시가 먼저 손을 내밀었고 후임자가 이를 잡았기 때문이다. 퇴임하면서 클린턴에게 건넨 편지가 시작이었다. “빌에게…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할 만한 비판 때문에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겠지만 낙담하거나 경로를 이탈하지 마라. 당신의 성공은 미국의 성공이다… 조지.” 클린턴은 “우리는 모든 것에 동의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견엔 정당한 이유가 있었고 서로 인정했다”고 회고했다. 5일(현지 시간) 미 워싱턴 국립대성당에서의 장례식으로 마무리된 아버지 부시에 대한 미국 사회의 추모 열기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전직 대통령으로서 보여준 흔치않은 초당파적 품격도 크게 작용했다고 기자는 본다. 장례 기간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던 밥 돌 전 상원의원의 ‘마지막 경례’ 때 그의 뒤에는 백인뿐만 아니라 흑인, 아시아계, 히스패닉 등 다양한 인종의 일반 조문객들이 꽃을 들고 있었다. 미국이라고 전직이 다 존경받았겠나. 전직이 할 수 있는 일을 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지난해 10월 아버지 부시는 생존해 있는 미 전직 대통령을 대표해 텍사스, 플로리다를 강타한 허리케인 피해 주민들을 돕기 위한 자선 콘서트를 주도했다. 그는 “항상 우리 전직 대통령들이 곁에 있음을 명심하라”며 피해자들을 위로했다. 폐렴으로 병원 신세를 진 지 얼마 안 된 후였다. 5일 장례식을 집전한 러셀 레븐슨 신부가 “대통령 각하, 임무는 완료됐습니다”라고 한 것엔 국민 통합이란 마지막 임무를 잘 수행했다는 평가도 담겨 있을 것이다. 아버지 부시의 마지막 길을 전하는 미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너무나 대조적인 우리 전직 대통령들의 모습이 어쩔 수 없이 오버랩됐다. 한미의 역사적 차이를 무시한 채 수평 비교할 수 없겠지만, 우리 전직 대통령들이 재판받는 장면은 이제 일상의 풍경이 된 지 오래다. 한술 더 떠 요새 정치권은 재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내년 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판알 튕기기에 바쁘다. 자유한국당에선 비박계가 박 전 대통령의 불구속 재판 결의안을 추진하자 또다시 진박 싸움이다. 친박계는 원내대표 선거를 앞두고 친박 표를 얻으려고 비박계가 쇼를 한다고 비난한다. 비박계는 “보수 통합을 위한 것”이라지만 친박계의 주장을 뒤엎기엔 논리가 군색한 건 어쩔 수 없다. 여권에선 박근혜 효과로 한국당이 분열할지, 그래서 적폐청산 드라이브를 계속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정치권에 전직 대통령의 초당파적 품격이나 역할 정립을 기대하는 건, 아직은 사치인 듯싶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 2018-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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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경화, 멕시코서 김영남과 환담…“김정은 답방 조속히 이뤄지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일(현지시간)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 취임식에서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만나 환담했다고 외교부가 2일 밝혔다. 강 장관은 김 위원장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조속히 이뤄져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동력이 더욱 강화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김영남 위원장은 “남북관계가 잘 되도록 양측이 계속 힘을 합쳐 나가자”고 답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김영남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안부를 전하는 등 상호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대화가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강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체코, 아르헨티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뉴질랜드 국빈 방문 등으로 이어지는 순방을 수행하는 대신 파나마를 들러 멕시코 신임 대통령의 취임식 정부 경축 특사로 참석하기로 해 주목을 끌었다. 이 과정에서 김영남 위원장의 멕시코 경축 특사 참석 소식이 전해지면서 접촉 기회를 살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 장관은 김영남 위원장 외에도 취임식 직후 이방카 트럼프 미국 백악관 선임보좌관과도 잠시 만남을 갖고 대화를 나눴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 2018-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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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김동연이 건넨 봉투

    두툼했다. 2014년 7월 비 오는 어느 수요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워싱턴 특파원으로 발령이 나 인사차 들렀더니 김동연 당시 국무조정실장이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A4 크기였다. “내 보물이다. 나중에 보라”며 씩 웃었다. 그러더니 자신이 워싱턴 근무 시절 겪었던 각종 일화를 들려줬다. 하지만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봉투 안이 너무 궁금했다. 알고 지낸 짧지 않은 시간을 감안했을 때, 그동안 공개할 수 없었던 특종 자료라도 들어 있을 듯했다. 양해를 구하고 뜯었다. 그런데 안엔 자신이 몇 년간 언론 매체 등에 쓴 칼럼 사본들이 있었다. “경제 관료가 아닌 인간 김동연의 글”이라고 했다. 자신이 찍은 꽃 사진을 휴대용저장장치(USB메모리)에 담아 주변에 돌리는 박병원 전 경총 회장(전 대통령경제수석)을 빼고 이런 식으로 자신을 알리는 공무원은 처음이었다. 신선하기도 했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읽어 보니 실제로 연극 문화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썼다. 정치인들이 출마하기 전 엮어 내는 수필집보단 수준이 높았다. 아무튼 그를 ‘범생이’ 경제 공무원의 틀로만 해석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만간 짐을 싸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에피소드가 떠오른 건 그가 또 다른 논란의 한복판에 들어선 듯해서다. 이번엔 정치다. 벌써 2020년 총선 이야기가 나온다. 자유한국당의 러브콜은 노골적이다. 정진석 의원은 “2016년 새누리당 시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모시려 했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도 김 부총리의 고향(충북)을 중심으로 맞불 차원에서라도 영입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심지어 지역 정가에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안희정 전 충남지사 등이 잇따라 스러지면서 꺼져가던 ‘충청 대망론’을 김 부총리가 살려야 한다는, 다소 성급한 말까지 들린다. 김 부총리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정치엔 아무런 뜻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광화문과 여의도에서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왜 그럴까. 김 부총리는 그의 칼럼 봉투처럼 공무원이란 프리즘으로만 보기엔 복잡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한 고위 관료는 “자기애가 있다. 좋게 말하면 동기부여가 강하다”고 했다. ‘김&장’으로 시끄러울 때 청와대 주변에서 “김동연이 자기 정치를 한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런 맥락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독특한 두 가지 정치적 브랜드 때문에 김 부총리는 꽤 오랫동안 정치 참여를 고민할 것이라고 기자는 본다. 우선 흙수저 브랜드. 상고, 야간 대학을 거쳐 부총리까지 이어지는 신화는 식상하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스토리라인이다. 지금 정치권엔 이름만 대면 딱 떠오를 만한 스토리의 씨가 말랐다. ‘노무현의 유업을 잇는’ 문재인 대통령 정도가 유일하다. 또 하나는 ‘김&장’ 시절 꼬리표처럼 그를 따라다녔던 혁신성장 브랜드. 내년 경제도 우울하다면 향후 정치권의 핵심 어젠다는 경제, 그중에서도 소득주도성장(소주성) 관련 논란일 가능성이 높다. 야당이 2020년 총선에서 ‘소주성 심판론’을 내세우려면 그 대척점에 섰던 김 부총리만 한 선봉장이 없다. 거꾸로 민주당 입장에선 김 부총리를 영입하면 ‘소주성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김 부총리가 정치에 몸을 던질지는 전적으로 그의 선택이다. 여야에서 하도 말이 많으니 고민이 쉽게 끝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간만 볼 요량이라면 아예 발도 담그지 않는 게 낫다. 특히 정치 입문 20일 만에 하차한 고향 선배 반기문 전 총장 같은 행보는 안 했으면 좋겠다. 안 그래도 국민들의 정치적 냉소는 이미 차고 넘친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 2018-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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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임종석의 굿 샷 혹은 OB

    “야, 끝내주네….” 이전에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과 골프를 쳐 봤다는 사람들은 대개 이런 반응이다. 빨랫줄처럼 하늘을 가르는 드라이버 샷이 일품이라고 한다. 청와대 입성 전 이야기라 지금 샷은 어떤지 알 수 없다. 하지만 1, 2년 안 쳤다고 무너질, 그런 수준의 실력은 아니라고 한다. 정치권에서 임 실장의 골프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운동 능력이나 테크닉 못지않게 그의 젊음(52세)을 이야기한다. 재선 의원에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거쳐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내고 있는 사람이 어쩌면 그리 늘씬하고 힘도 좋냐는 것이다. 요즘 ‘DMZ 선글라스’로 촉발된 임 실장의 ‘자기 정치’ 논란도 사실 그의 젊음과 닿아 있다. 청와대 2인자이지만, 아직 정치 인생이 한참 남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임 실장은 최근 한국 정치에서 상당히 특이한 대통령비서실장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비서실장은 대부분 정치(또는 사회) 경력의 대미를 장식하려 그 자리에 갔다. 박근혜 정부 비서실장들은 모두 박 전 대통령보다 나이가 많았다. 비서실장 이후 또 다른 정치적 기회란 없었다. 하지만 임 실장은 청와대를 떠나도 50대 초중반이다. 이런 상황에서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미투 파문으로 재판 중이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배우 김부선 씨와 얽힌 논란으로 진창에 빠져 있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얼마 전 드루킹 파문의 첫 번째 재판에 출석했다. 이런 게 얽혀 임 실장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그를 둘러싸고 차기 대권 논란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젊다는 게 임 실장에게 마냥 유리한 걸까. 운동과 달리 정치는 그렇지 않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젊지만 어리지 않다’는 것을 보여줘야 젊음의 장점을 배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게 임 실장의 경우에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임 실장은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발탁해 처음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그때 34세로 여야를 통틀어 최연소 의원이었다. 국회의원이 되고서도 형, 누나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통령비서실장인데도 아직도 국회 안팎엔 “우리 종석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를 어리게만, 심지어 전대협 의장 시절의 임종석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임 실장으로선 탐탁지만은 않을 것이다. 특히 이런 시각은 종종 보수진영의 사상 프레임과 맞물려 임 실장을 후벼 파기도 한다. 꼭 1년 전 청와대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가 그랬다.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이 “주사파와 전대협 출신들이 청와대에 있으니 인사 참사가 발생한다”고 공격하자, 임 실장은 정색하면서 “그게 질의냐.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고 맞받았다. 얼굴까지 벌게졌었다. 임 실장이 오늘 딱 1년 만에 다시 국회 국감에 출석한다. 1년 전보다 임 실장은 더 야당의 타깃이 될 것이다. 청와대 2인자로서 일은 많아졌다. 남북공동선언이행추진위원장으로서 비핵화 협상과 남북 관계에 관여해온 만큼 또다시 주사파, 전대협 관련 질의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DMZ 선글라스’ 갖고만 몇 시간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임 실장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 1년 전처럼 한국당 공격에 쌍심지를 켜면 지지층은 속 시원하겠지만 보수는 다시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할 것이다. 2년 차 실세 비서실장의 이미지를 어떻게 그려낼지는 임 실장 몫이다. 그러나 청와대 2인자가 정치적 논란과 파장의 주인공이라면 여야 관계는 물론이고 본인에게도 그리 생산적일 건 없다. 머지않은 청와대 이후 삶에도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 2018-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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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강경화가 대통령대행 승계 5위인 현실

    어디 갔나 했더니 교황청에서 카메라에 잡혔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얘기다. 강 장관은 10일 국회에서 5·24조치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가 한미 외교가를 쑥대밭으로 만들더니 13일 시야에서 돌연 사라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유럽 순방을 수행했다 21일 돌아온 것. 기막힌 타이밍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강 장관은 유럽에서도 ‘한국 외교부 장관의 파워’를 실감했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우리 승인 없이 한국은 아무것도 못할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문 대통령은 프랑스, 영국 정상을 만나 대북제재 완화의 필요성을 설득했지만 보기 민망할 정도로 거절당했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제재 이행에 의구심을 갖고 있던 트럼프의 생각이 강 장관 발언을 계기로 유럽에 더 강력하게 전달됐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외교부 장관이 정권과 무관하게 애물단지로 전락해서 그렇지, 국제사회에선 대통령을 제외하곤 외교부 장관이 정권의 간판이다. 미국은 외교부 장관을 국무장관으로 부르면서 대통령의 세계 경영을 대리한다. 이 때문에 국무장관은 늘 잠재적 대선 후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힐러리 클린턴, 존 케리가 그랬다. 마이크 폼페이오도 차차기 공화당 대선 주자로 거론된다. 그의 상대인 외교부 장관도 ‘스펙’은 만만치 않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외교부 장관 공관은 대지 면적 1만4710m²에 건물 면적 1420m². 한국 장관 공관 중 가장 크다. 더 놀라운 건 대통령권한대행 승계 순위다. 헌법은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경우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 순서로 권한을 대행토록 한다. 이낙연 국무총리-김동연 경제부총리-유은혜 사회부총리-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 이어 강 장관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그 다음이고,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8위다. 강 장관이 외교안보라인과 군을 지휘하는 경우의 수도 있다는 얘기다. 폼페이오도 승계 서열 4위로 비슷하다. 강 장관의 5·24조치 해제 검토 발언 후 외교부 안팎에서 많은 이야기를 접했다. 가장 자주 들은 건 “장관님이 학습 속도는 빠른데…”였다. 북핵, 양자회담 등 강 장관이 유엔 근무 시절 잘 몰랐던 걸 그렇게 배웠는데 왜 이런 일이 자꾸 벌어지느냐는 하소연이다. 하지만 이런 진단은 잘못된 것이다. 강 장관의 문제가 콘텐츠 때문일까. 그보다는 국무위원으로서 어떤 메시지를 언제, 어떻게 발신하느냐는 전반적인 정무능력 부족이 핵심이라고 기자는 본다. 실제로 많은 장관이 이게 부족해서 옷을 벗었다. 김상곤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김영주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그랬다. 경질설이 끊이지 않는 장하성 정책실장도 머리보단 입이 문제다. 그런데 정무능력은 대치동 학원에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공적 영역에서 오래 부딪치며 단련해야 서서히 몸에 밴다. 혀로 하는 종합예술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등이 평가를 받는 것도 이런 능력 때문이다. 미 국무장관들이 역대로 상·하원 의원이거나 공직 경험이 있는 중견 학자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청와대 주변에서 연말, 연초 추가 개각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누가 집에 가고 남을지는 알 수 없다. ‘안전제일’이라며 공무원, 정치인만 장관 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의 정무능력이 없다면 자기가 몸담고 있는 국정에 리스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정치적 냉소만 키운다. 세금 낸 대가로 정부의 정책 서비스를 받아야 할 국민들이 물가에 내놓은 애 보듯 장관 걱정이나 하면 되겠나.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 2018-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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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대통령의 후진적 휴식

    “대통령이 차를 타는데 흰색 야구 모자를 썼다. 차량 뒤에는 골프백이 실려 있다. (중략) 대통령 차량은 버지니아주 스털링에 있는 ‘트럼프 내셔널 골프 클럽’에 도착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5시간 반이나 만나고 서울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를 설명한 직후인 7일 오후 11시 10분. 폼페이오에게 김정은 메시지를 보고받았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반응이 궁금해서 백악관이 보낸 풀(pool·기자단의 취재 공유 시스템) e메일을 열었더니 트럼프는 골프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논의하기 위해 참모를 평양에 보내놓고 자신은 태연하게 일요일 아침(현지 시간은 7일 오전 10시 10분)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던 것. 트럼프에게 비판적인 미 언론들도 트럼프 휴일 골프는 일상이어서 별문제 삼지 않는다. 이날도 그랬다. 트럼프의 골프장 나들이가 떠오른 건 문재인 대통령 휴식과는 유독 대조적이어서다. 워싱턴만큼 가을볕이 좋은, 같은 일요일이었지만 문 대통령은 7일 폼페이오 접견 때문에 청와대 밖을 거의 나가지 못했다. 좋아하는 등산도 그림의 떡이 된 지 오래다. 특히 최근 경남 양산 자택에서 찍은 사진은 ‘한국 대통령 휴식의 질’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추석 연휴를 뉴욕에서 보낸 뒤 양산 자택 인근 저수지에서 우산을 쓴 채 양말도 안 신고 쪼그려 앉아 있었다. 문 대통령은 양산으로 떠나기 전 뒤늦은 연휴를 참모들이 언론에 공개했다고 하자 표정이 밝지 않았다고 한다. 자기 집에서조차 마음대로 못 쉬는 처지가 스스로도 답답했을 것이다. 동아일보가 이 사진과 함께 제대로 된 대통령 휴식시설이 없다고 보도하자 엄청난 댓글이 쏟아졌다. 찬반은 날카롭게 갈렸다. 반론은 “하는 게 뭐라고 별도의 휴식시설이 필요하느냐”는 내용이었다. 사실 대통령 휴식시설은 전용기 도입 문제와 함께 정권과 상관없이 늘 뜨거운 감자였다. 논의만 하려고 해도 “일이나 열심히 해라”는 야당의 공세가 쏟아지고 이를 뚫을 창은 마땅치 않았다. 왜 그럴까. 주 52시간 근무제도를 도입하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외쳐도 공직문화는 ‘양질의 휴식’을 거론하는 것 자체를 여전히 금기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취미생활도 몰래 해야 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가끔 참모들과 골프라도 치려면 ‘거사일’을 정해야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테니스를 쳐도 청와대 밖을 거의 벗어나지 못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헬스트레이너를 고용해 경내에서 체조를 했다. 문 대통령도 상황은 비슷하다. 히말라야 트레킹까지 다녀온 ‘산악인’이 개와 고양이 집사 노릇을 하거나 참모들과 관저에서 ‘술 번개’하는 게 여가 활동의 대부분이다. 그나마 건강을 고려해 좋아하는 소주 대신 그리 즐기지 않는 와인 한두 잔 정도라고 한다. 정치문화가 우리와 같지는 않지만 역대 미 대통령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쉬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휴가 중이던 2014년 8월 이슬람국가(IS) 세력들이 미국인 기자를 참수했을 때도 골프장에서 엄숙한 표정으로 성명을 내고 다시 골프채를 잡았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텍사스주 크로퍼드 목장에 가서 픽업트럭을 몰고 목장 일을 했다. 이 칼럼이 나가면 또 많은 사람이 “경제가 엉망인데 무슨 쉴 궁리냐”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세계 11위 경제대국의 국정을 이끄는 대통령의 휴식은 효율적이고 전략적이어야 한다. 대충 쉬는 건 미덕이 아니다. 대통령의 컨디션은 국정 리스크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격에 맞는 대통령 휴식 시스템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 2018-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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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종전선언은 김치다

    고향을 더 편하게 여기는 건 미국 사람도 매한가지인 듯했다. 뉴욕 유엔 총회 기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표정이 딱 그랬다. 뉴욕은 트럼프가 나고 자라 부동산 재벌에 대통령까지 된 곳이다. 24일(현지 시간)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직전엔 자신의 펜트하우스가 있는 트럼프타워에 들러 몇 시간을 보냈다. 워싱턴을 벗어나 편안해진 트럼프는 유엔 총회 기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2차 정상회담과 관련해 ‘예술 작품’(김정은 친서에 대한 평가) 등 온갖 상찬을 쏟아냈다. 딱 한 가지, 종전선언(declaration to end of war)만 빼고 말이다. 한창 ‘업’된 상태였을 텐데 종전선언 대목에선 정신을 차렸다는 얘기다. 트럼프는 문 대통령이 회담 내내 설득했을 종전선언을 왜 언급조차 하지 않았을까. 갖가지 분석이 나오지만 진짜 이유는 하나다. 김정은이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에 나설 것이라는 확신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전하는 김정은 말은 아직 못 믿겠다는 것이다. 이건 야당인 민주당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미국 사람들을 만나 보면 정파를 떠나 자국 안보에 대해선 보수적이다.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지난해 김정은이 한창 미사일을 쏘아댈 때 대부분의 언론매체는 “북한 미사일이 미국에 닿을 수 있다”며 영토(territory)보단 흙(soil)이란 표현을 주로 사용했다. 땅 한 줌도 적에게 내줄 수 없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문 대통령의 뉴욕 방문 기간 중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 그중에서도 질문지를 통해 미국인들의 남북 정상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트럼프가 폭스뉴스를 유달리 편애해서 ‘보수꼴통’ 매체로 알려져 있지만, 문 대통령을 인터뷰한 브렛 바이어 기자는 폭스에선 상대적으로 균형감을 갖춘 언론인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질문은 △미국 일각에선 비핵화 조치가 이루어지기 전 너무 많은 것을 북한에 양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문 대통령이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건 통일인가 비핵화인가 △김정은은 어떤 인물인가 △문 대통령은 김정은을 신뢰하는가 등이었다. 나는 올해 비핵화 판이 벌어진 후 미국인들이 남북에 대해 궁금해하는 걸 이렇게 핵심만 추려 한데 모아놓은 걸 일찍이 보지 못했다. 트럼프의 종전선언에 대한 반응과 폭스뉴스 인터뷰를 보고 기자는 한 가지를 다시 한번 분명히 깨닫게 됐다. 남북미 종전선언으로 비핵화 논의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면 그 전에 미국이 이를 납득하고 관련 논의가 무르익을 만한 충분한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26일 회견에서 “비핵화까지 2년, 3년, 아니면 5개월이 걸리든 상관없다. 시간 싸움을 하지 않겠다”는 것도 시간표에 매달렸다간 제대로 된 비핵화가 어렵다는 걸 깨달은 결과가 아닐까 싶다. 문 대통령으로선 입술이 마를 수 있다. 간신히 복원시킨 북-미 대화 기조가 다시 언제 어떻게 뒤집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가급적 연내 종전선언 논의를 위한 시동만이라도 걸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뉴욕에서 내내 종전선언을 강조하고 다녔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원샷’에 종전선언까지 내달리려 했다가 종전선언은 고사하고 북-미 비핵화 협상이 뒤틀어진 장면을 목격했다.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그럴수록 종전선언까지 내딛기 위해 트럼프와 김정은에게 시간을 줘야 한다. 수석협상가로서 북-미를 다시 붙여 놨으니 지금은 다시 북-미의 시간이다. 조급함을 가라앉히고 분위기가 잘 익기를 기다려야 한다.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 2018-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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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이해찬은 이해찬이다

    #1. 2001년 4월 어느 날. 필자가 알고 지내던 한 기자가 밤늦게 서울 관악구로 향했다. 당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 중진 의원 집이었다. 그때만 해도 정치부 기자들은 유력 정치인들 집으로 종종 취재를 가곤 했다. 부인 허락을 받고 거실에서 1시간 기다렸더니 집주인이 왔다. ―안녕하세요? 저 ○○○ 기자라고 합니다. “미리 예고도 안 하고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대개 “안으로 듭시다”는 말을 들어왔던 기자는 집주인이 정중하지만 완강하게 인터뷰를 사양하는 바람에 별 소득 없이 집을 나서야 했다. #2.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며칠 전인 지난달 중순. 민주당 A 의원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자 표시 제한이란 문구가 떴다. 평소 아는 번호만 받는 터라 무시했다. 그런데 몇 차례 더 왔다. 하도 울려서 받았더니 당 대표 후보 중 한 명이었다. 다음 날 조찬모임을 하려는데 올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보안 문제 때문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숨겼다고 한다. A 의원은 “실명으로 전화하면 더 빨리 받았을 텐데 참 독특하다”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두 사례의 주인공은 민주당 이해찬 대표다. 30년 넘게 정치를 한 만큼 이 대표와 관련한 에피소드와 평가가 많은데 그의 성격이나 성향에 대한 게 적지 않다. 똑똑하고 전략적인데 너무 원칙주의자다, 까칠해서 접근하기 쉽지 않다, 보수 궤멸론을 서슴없이 입에 올린다…. 전대 경쟁자였던 김진표 송영길 의원이 “이해찬 대표로 협치가 되겠느냐”고 공격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런데 요새 이 대표가 변했다고 한다. 여의도 어딜 가도 “이해찬이 왜 그럴까”가 화제다. 취임 첫날 서울현충원에 가서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건 시작에 불과했다. 박 전 대통령 고향인 경북 구미에서 회의를 했고, 한때 동지였다 배를 갈아탔으니 더 미울 법한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을 만나서는 평소 보기 힘든 미소를 지었다. 얼마 전엔 측근들도 당황한 장면이 있었다. 총리까지 지낸 이 대표의 평소 지론 중 하나는 “서서 인터뷰 안 한다”는 것. 그런 이 대표가 국회 복도를 걸어가던 중 기자들이 질문을 쏟아내자 주요 이슈에 대해선 답을 했다는 것이다. 무엇이 ‘까칠 보스’ 이해찬을 달라지게 한 걸까. 처음으로 집권 여당 대표가 돼서 아드레날린이 샘솟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많다. 그러나 측근들은 이런 분석에 콧방귀다.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목표에 따라 움직이는 것뿐이다”는 것이다. 또 다른 측근은 “이 대표는 현실적 개량주의자”라고도 했다. 새로운 목표를 설정한 ‘이해찬 시즌2’를 보고 있을 뿐, 이 대표 자체가 달라진 건 별로 없다는 거다. 그럼 이 대표의 목표는 뭘까. 사실 이미 스스로 말했다. (최소) 집권 20년이다. 진보 지지층만으로는 20년 집권은 불가능하다. 중도보수까지 세력을 확장하고 새로운 ‘집권 먹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본질을 유지한 채 얼마든지 변하고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정치인은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가져야 한다.” 이 대표를 당 정책위의장, 교육부 장관으로 기용하며 유달리 아꼈던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주변에 자주 하던 말이다. 지금 이 대표는 DJ 말처럼 20년 집권이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정치인생 30년의 내공을 담아 변화무쌍한 춤을 추고 있다. 이 대표의 강성 이미지에 기대어 반사이익을 노렸던 한국당으로선 더 힘든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 2018-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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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내가 봤던 ‘보수’ 존 매케인

    방 벽을 휘감고 있는 대리석 조각이 한겨울 날씨만큼이나 차갑게 느껴졌다. 2015년 2월 4일 미국 워싱턴 의회 내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장. 애슈턴 카터 신임 국방장관이 인사 청문을 앞두고 있었다.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군인이 아닌 물리학 박사 출신 카터를 국방장관에 지명하자 의회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청문위원장은 집안이 3대째 해군 출신인 ‘전쟁 영웅’이자 야당인 공화당 소속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 시작부터 독설이 난무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의사봉을 두드리며 그가 말했다. “상원 군사위원회는 카터 박사가 그동안 보여준 국가에 대한 봉사와 이런 성과를 가능케 한 가족들의 희생에 감사를 표합니다. 오늘은 그의 직무수행에 대해 품격 있는 질문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귀를 의심했다. 오바마의 국방정책을 그토록 비난해 온 매케인이었다. 오전 내내 날카로운 질문은 있었지만 비아냥거림이나 신상 털기식 질문은 없었다. 잠시 정회. 뒤에 있다가 미국 기자들을 따라 매케인에게 다가갔다. 오바마와 맞붙었던 전직 대선 후보이자 워싱턴의 거물. 그런데 기자들은 팔짱을 끼며 질문했고 그도 웃으며 대답했다. ―왜 카터를 그냥 두는 건가요. “대안 있나?” ―그건 정부가 고민할 몫 아닌가요. “이봐, 내 나라이기도 하지. 몰랐어? 나 애국자야.(웃음) 이슬람국가(IS)와 전쟁을 하고 있는데 애시(카터의 예명) 정도면 오바마가 꺼낼 최상의 카드야.” 한국 정치 문화에 익숙한 기자에겐 너무 생소한 장면이었다. 2016년 9월 9일 그를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워싱턴 헤리티지재단에서 열린 ‘미국의 아시아 정책’ 특별좌담회. 매케인은 특별 게스트였다.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라 한국 기자인 나에게도 질문권이 주어졌다. ―최우선 대북제재는 무엇이어야 하나요. 한국에서 전술핵 재배치 등 핵무장론이 나오는데 미국은 여전히 수용 불가인가요. “좋은 질문이네, 친구. 우선 두 번째 질문부터. 미국의 핵우산은 효과적이고 이를 바꿀 용의는 없어요. 내가 알고 있는 한국인 친구들은 미국 핵우산에 만족하고 있어요. 그리고 대북제재는 결론부터 말하면 중국이 움직여야 해. 우리가 할 건 사실 별것 없어서 말이지.” 당시 들었을 땐 답답하게 느껴졌는데 2년이 지난 지금 물어봐도 같은 답 외엔 나올 게 없는 상황. 좌담회 후 잠시 따로 물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도 매케인은 내내 중국 역할론을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4일(현지 시간) 중국이 제 역할을 안 한다며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을 취소해 버렸다. 한 분야에 천착한 고수의 혜안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 뒤로 몇 번 더 매케인을 접했지만 별세 소식을 듣고 유독 두 장면이 떠올랐다. 요새 찾기 힘든 보수의 품격과 경쟁력을 보여줬다는 게 비슷해서 그런 것 같다. 미 정가에선 ‘흔들림 없는’ ‘굳건한’이란 표현을 쓸 때 ‘unwavering’이란 말을 즐겨 쓰는데, 매케인은 이 표현이 참 잘 어울리는 정치인이었다. 국가에 대한 흔들림 없는 충성을 판단 기준으로 삼고, 전문 분야(군사)에 대한 흔들림 없이 깊고 넓은 콘텐츠를 갖추면서 높낮이에 상관없이 소통하고 유머 감각을 두루 갖춘 사람…. 그는 보수라면 흔히 떠올리는 웰빙족이나 스타일리스트와는 거리가 먼 ‘전사 정치인(warrior politician)’, 양복 입은 군인이었다. 매케인의 이런 미덕은 사실 국적과 무관한 것이기도 하다. 궤멸됐다는 평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한국 보수가 이번 기회에 매케인의 삶을 돌이켜보며 부활의 힌트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 2018-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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