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선

최지선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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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벌어지는 특별한 일들을 기록합니다.

aurinko@donga.com

취재분야

2024-03-21~2024-04-20
문화 일반81%
문학/출판10%
인사일반3%
음악3%
칼럼3%
  • 스크린속 피터팬, 일곱난쟁이… “디즈니 주인공들 찾아 보세요”

    누구라도 마음속에 빛나는 소원 하나는 품고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소원을 이룰 힘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것. 디즈니가 100년 동안 62편의 애니메이션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단 하나의 주제를 오롯이 담은 애니메이션 ‘위시’가 내년 1월 3일 개봉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설립 100주년 기념작으로, ‘겨울왕국’ 제작진이 참여했다. 영화는 올해 100년을 맞은 디즈니를 향해 보내는 한 편의 러브레터 같다. 소원을 이뤄주는 로사스 왕국에 사는 아샤(아리아나 더보즈)가 주인공이다. 로사스 왕국을 세운 매그니피코 왕(크리스 파인)은 마법사다. 왕국의 소년 소녀들은 18세가 되면 왕 앞에서 소원을 빈다. 왕은 이들의 소원을 구슬에 담아 첨탑에 보관하고, 한 달에 한 번 소원성취식을 열어 그날 자신이 선택한 사람의 소원을 이뤄준다. 소원이 구슬에 담기고 나면 사람들은 자신의 소원이 무엇이었는지 잊게 된다. 그 대신 왕이 언젠가는 자신의 소원을 간택해 이뤄줄 거라고 믿으며 평생을 살아간다. 어느 날 왕의 견습생이 되기 위해 면접을 보러 간 아샤는 매그니피코 왕의 비밀을 알게 된다. 그는 백성들 앞에서는 이들의 소원을 소중하게 보관하며 언젠간 이뤄줄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 자신의 왕좌에 조금이라도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소원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백성들은 스스로도 충분히 이룰 수 있는 아름다운 소원의 내용을 잊은 채 그저 왕이 이뤄주기를 바라며 살아간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샤는 소원 구슬들을 사람들에게 돌려주기로 결심한다. 영화는 여러 캐릭터는 물론이고 매 장면이 디즈니 작품에 대한 오마주다. 아샤의 모습은 ‘모아나’와 ‘포카혼타스’를 섞은 듯하고, 매그니피코 왕은 거울에게 “누가 누가 제일 잘생겼느냐”고 묻는다. 피터팬이 로사스 왕국 주민으로 카메오로 출연하고, 숲속엔 정글북의 곰 ‘발루’, 아기 사슴 ‘밤비’가 산다. 요정 대모 할머니가 막대기를 우아하게 휘두르면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지는 신데렐라의 시그니처 장면도 여러 번 등장한다. 아샤의 친구들은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의 일곱 난쟁이에게서 각각 특징을 따왔다. 디즈니 팬이라면 오마주 장면마다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울 것 같다. 40년 넘게 디즈니에서 몸담으며 ‘타잔’(1999년) ‘겨울왕국’ 시리즈를 연출한 크리스 벅 감독은 “우리가 사랑하는 디즈니라는 유산의 과거와 미래를 기리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는 ‘별’이다. 아샤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별은 말은 하지 못하지만 장난기 가득하고 귀엽다. ‘위시’에는 한국인 애니메이터들이 적잖게 참여했다. 별을 작업한 윤나라 애니메이터는 “한 살배기 둘째 딸을 자주 관찰했다. 기뻐할 때 온몸으로 꺄르르 웃는 모습이 별 모양처럼 보였던 날 영상으로 촬영했다가 별의 움직임을 작업할 때 참고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먼저 개봉한 북미에선 ‘헝거게임: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 등에 밀려 흥행 성적이 썩 좋진 않다. 작품성은 기존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뛰어넘지는 못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아샤가 ‘겨울왕국’의 안나나 엘사만큼 매력 넘치게 그려지지 않았고, 삽입된 노래들이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디즈니가 100년 동안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엔딩 크레디트가 모두 올라갈 때까지 기다려 볼 것. 아름다운 쿠키가 기다리고 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2023-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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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화려해진 ‘아쿠아맨2’… 가볍게 즐겨봐!

    복잡한 히어로 무비 세계관에 지친 관객이라면 반가울 DC스튜디오 영화 ‘아쿠아맨’이 5년 만에 속편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으로 돌아왔다. DC 세계관을 몰라도, 다른 히어로 이야기에 익숙하지 않아도 가벼운 마음으로 눈앞에 펼쳐지는 바다 세계를 즐길 수 있다. ‘아쿠아맨’ 1편은 2018년 국내 개봉 당시 500만 명 넘게 관람하며 흥행했다. 20일 개봉한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은 바닷속 아틀란티스 왕국의 왕으로 갓 태어난 아기의 아빠가 된 아쿠아맨(제이슨 모모아)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그 앞에 1편에서 그에게 아버지를 잃고 복수심에 불타는 블랙 만타(야히아 압둘마틴 2세)가 나타난다. 블랙 만타는 아쿠아맨의 모든 것을 앗아가겠다는 일념하에 지구를 파괴할 무기 ‘블랙 트라이던트’를 손에 넣고 아틀란티스를 공격한다. 아쿠아맨은 사막에 갇혀 있는 이부동생 옴(패트릭 윌슨)을 찾아가 손을 잡고 블랙 만타를 물리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쏘우’(2005년), ‘분노의 질주: 더 세븐’(2015년), ‘컨저링’ 시리즈 등을 만든 제임스 완 감독(46)이 연출했다. 말레이시아계 호주인인 완 감독은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나가는 공포영화 감독 중 한 명이다. ‘아쿠아맨’을 통해 블록버스터 영화로까지 저변을 넓혔다. 이번 영화도 완 감독 특유의 유머 감각과 리듬감이 돋보인다. 특히 바닷속 세계를 구현한 다양한 시각효과가 눈을 사로잡는다. 눈부시게 부서지는 파도와 형광색 바다 생물들,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아쿠아맨의 액션이 러닝타임 내내 쏟아진다. 1편 때는 배우를 공중으로 띄운 뒤 블루스크린을 배경으로 수중 장면을 촬영했다면, 이번에는 특수 제작된 원형 부스를 사용했다. 부스엔 총 136대의 고정식 카메라가 설치돼 배우의 세세한 움직임을 포착했다. 다만 영화 전체가 산만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등장인물의 서사나 감정 대신 육지와 바다를 오가며 벌이는 액션과 볼거리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아쿠아맨이 3편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의 제임스 건 감독이 지난해 DC스튜디오 새 수장이 되면서 DC스튜디오가 그동안 펼쳐왔던 DC 확장 유니버스(DCEU)를 끝내고 세계관을 재편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은 DCEU 라인업 마지막 작품이란 점에서 새 ‘DC 유니버스’에 아쿠아맨이 역할을 부여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2023-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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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의 봄’ 영화의 봄… 32일 만에 천만 관객

    12·12쿠데타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24일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지난달 22일 개봉한 지 32일 만이다. 올해 개봉한 작품으로는 ‘범죄도시3’에 이은 두 번째 1000만 영화다. 지난해 12월 개봉해 올 1월 1000만 관객을 넘긴 ‘아바타2’까지 포함하면 올해 세 번째 영화다. ‘서울의 봄’은 팬데믹 이후 비(非)시리즈물로는 첫 1000만 영화가 됐다. 역대 영화 개봉작 중에선 31번째, 한국 영화 가운데는 22번째 1000만 관객 영화다. 김성수 감독은 이번 영화로 처음 1000만 감독이 됐다. 1995년 영화 ‘런어웨이’로 데뷔한 김 감독은 ‘비트’(1997년) ‘태양은 없다’(1999년)로 주목 받았다. 배우 정우성(이태신 역) 역시 1994년 데뷔 후 처음으로 1000만 배우가 됐다. 전두광 역을 맡은 황정민은 ‘국제시장’(2014년), ‘베테랑’(2015년) 이후 세 번째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쿠데타를 벌인 전두광과 그를 막으려는 이태신의 9시간을 그렸다. 치밀한 각본을 바탕으로 “결말을 알고 봐도 스트레스 받아 죽을 것 같다”는 평가를 얻으며 중장년층뿐 아니라 10∼30대 사이에서 ‘심박수 측정 챌린지’가 유행하며 관람 열풍이 일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2023-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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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성경이라는 흥미로운 역사책

    영국 성공회 사제이자 성서학자인 저자가 성서(聖書)의 기원과 발전, 변화에 대해 상세하게 파헤치며 탐구한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은 독자를 기독교 신앙으로 개종시키거나 신자들의 믿음을 더 굳세게 하려고 쓴 책이 아니다”라고 했다. 책은 구약 성서가 태동했던 기원전 8세기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부터 여정을 시작한다. 이 시기부터 구약 성서의 거의 모든 책이 완성된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에 이르기까지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와 언어, 흥미로운 사실과 논란 거리를 짚어본다. 저자는 잠언의 저자가 누군지에 대해 다양한 이론이 있지만 솔로몬 왕이라고 보는 시각이 타당하다고 결론 내린다. 나아가 잠언을 직접 쓴 저자는 이스라엘 궁정의 서기관들이었을 것이라고 본다. 잠언 중 일부 속담이 궁정 내에서 통용될 지혜들을 담고 있고, 다양한 근거를 살펴봤을 때 이스라엘에 잠언 편찬 작업을 하는 서기관 교육 학교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왕은 이들을 후견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솔로몬 왕이 잠언에 관여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본다. 저자는 기독교가 등장했던 시기의 역사와 신약 성서의 발달 과정에 대해 자세하게 분석한다. 특히 기독교와 유대교가 성서를 바라보는 시각 차이에도 집중했다. 이 차이로 인해 시대를 거치며 성서가 어떻게 지금의 모습을 갖췄는지 설명한다. 방대한 분량이지만 역사 이야기책 같다. ‘인류 베스트셀러’인 성서에 대해 궁금했던 독자라면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흥미롭게 읽힐 것 같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202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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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뷔부터 입대까지… ‘BTS 10년’ 다큐멘터리로

    다큐멘터리 화면에는 독기 서린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일곱 소년이 있다. 앳된 얼굴에는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두려움과 기대감이 섞여 있다. 흐트러짐 없는 ‘칼군무’를 연습하는 몸짓에는 비장함까지 묻어난다. 이제는 세계가 인정하는 글로벌 스타가 됐지만 그들에게도 팬들을 만나 눈물을 흘렸던 ‘처음’이 있다. 데뷔부터 지금까지 방탄소년단(BTS·사진)의 10년을 담은 다큐멘터리 ‘BTS 모뉴먼트: 비욘드 더 스타’ 1, 2화가 20일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됐다. 1, 2화에선 데뷔 과정부터 미국에서 작업한 정규앨범 ‘DARK & WILD’ 등 여러 앨범 작업을 둘러싼 에피소드를 비롯해 멤버들이 중요한 순간들을 회상하는 인터뷰도 담겼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단독 콘서트를 앞두고 지민은 “사람들이 온대요? 이틀이나 할 수 있다고요?”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털어놓는다. RM은 여러 해외 시상식에 참석하던 때를 떠올리며 “또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었다”라고 말한다. 다큐멘터리는 BTS의 성공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겪은 멤버들 마음의 변화를 담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멤버들은 데뷔 전 막막했던 심정과 데뷔 후 찾아온 슬럼프까지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총 8화 분량으로 매주 수요일에 2회 차씩 공개된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20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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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리에’ ‘비비비’ 작품상 공동수상 영광

    국립정동극장과 극단 돌파구가 공동기획한 ‘키리에’와 우란문화재단의 ‘비비비(B BE BEE)’가 제60회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공동 수상했다. 동아연극상 심사위원회(위원장 이경미)는 20일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서 최종 심사를 진행해 수상작이 없는 대상을 제외하고 작품상 연출상 연기상 등 9개 부문 수상작과 수상자를 선정했다. 올해 본심에는 심사위원 추천작 19편이 올랐다. 이 위원장은 “올해만큼 심사위원 간에 의견이 갈린 적이 없었다. 전통적인 연극 형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과 새로운 미래 비전을 보여주는 작품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애썼다”고 총평했다. 이 위원장은 “수상자 상당수가 신인 때 신인연출상 등 동아연극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들이 꾸준히 좋은 작품 활동을 해서 더 좋은 상을 받았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작품상을 받은 ‘키리에’는 연기상(유은숙) 유인촌신인연기상(백성철)까지 거머쥐며 3관왕에 올랐다. ‘키리에’는 60대 한인 무용수인 엠마가 외딴 숲속에서 죽음을 결심한 사람들이 잠시 머무는 여관을 운영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등장인물들은 죽음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며 비로소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심사위원들은 “철학적인 내용이지만 죽음을 보는 흔한 방식에서 벗어나 삶을 관조하며 앞으로 나아가게 한 점이 좋았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갖춘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비비비(B BE BEE)’는 배우가 꿀벌 연기를 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실험적인 형식의 연극이다.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탈피하려는 인간의 사유를 그렸다. 심사위원들은 “작은 작품이고 실험적 시도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연극의 미래 담론을 향한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봤다”고 평했다. 연기상을 받은 유은숙 배우(‘키리에’)에 대해서는 “키리에에서 엠마 역을 맡은 유 배우는 작품의 중심을 확실하게 잡아줬다”며 “남편의 죽음이라는 화두를 집이라는 공간으로 가져와 등장인물 간의 다리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상자 이미숙 배우(‘싸움의 기술, 졸’)는 “사물과 인간을 오가는 연기가 주목할 만하다. 퍼포먼스가 강한 작품인데 이미숙이 없으면 연극이 불가능했을 정도로 이미숙 자체가 그 작품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키리에’의 백성철 배우와 ‘러브 앤 인포메이션’의 권은혜 배우는 나란히 유인촌신인연기상을 받았다. ‘키리에’에서 절망에 빠진 젊은 소설가 역을 맡은 백성철에 대해서는 “배우로서 중심이 잘 잡혀 있어 주목할 만하다”고 평했다. 권은혜는 “굉장히 파편적이고 서사가 없는 극 속에서 다양한 시공간을 넘어서는 캐릭터를 맡아 눈길을 끌었다”고 했다.희곡상은 ‘그게 다예요’의 강동훈 작가에게 돌아갔다. ‘그게 다예요’는 한국 현대사를 피가 섞이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 이야기로 풀어냈다. 강 작가의 데뷔작이다. “진정한 상생과 연대를 담아낸 묻히기 아까운 작품”, “좋은 구슬을 하나로 잘 꿰어 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고쳐서 나가는 곳’으로 신인연출상을 받은 박주영 연출가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연대하며 방향성을 찾아가는 여성들의 서사를 역동적으로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다. 새개념연극상은 다양한 오브제로 인간과 비인간이 모두 연결돼 있다는 주제를 표현한 연극 ‘다페르튜토 쿼드’의 ‘다페르튜토 스튜디오’가 받았다. “극장이라는 공간을 새롭게 구현해 미래적인 연극의 단초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엑스트라 연대기’로 무대예술상을 받은 김혜림 무대디자이너에 대해서는 “극장 공간을 시대와 공간을 넘어서서 입체적으로 사용했다”고 평가했다. 특별상에는 실험극 연출로 유명한 원로연출가 김우옥 씨(‘혁명의 춤’)가 선정됐다. 심사위원들은 “아흔의 나이에도 연극에 대한 열정으로 작품을 계속 무대에 올리고 있다. 한국 연극사에서 마땅히 주목하고 존경할 만한 연출가”라고 했다. 시상식은 내년 1월 29일 열릴 예정이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2023-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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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운 겨울, 무대 지키는 연극쟁이들에 감사”

    “내년, 후년에도 무언가에 휩쓸리지 않는 연출가가 되겠습니다. 까불어서 미움받았던 옛날 그 시절처럼 성깔 있는 작업을 해야죠. 하하.” 제60회 동아연극상 연출상 수상 소식을 들은 김풍년 연출가(48·사진)는 느릿하지만 단단하게 말했다. 그가 연출한 ‘싸움의 기술, 졸’은 제60회 연기상까지 받아 2관왕을 차지했다. 그는 “상이 응원도 되지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평가에 연연하기보다는 시간을 가지고 더 저에 가깝게, 더 ‘막’ 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며 웃었다. 2016년부터 극단 작당모의에서 작가 겸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수상 소식을 듣고 배우와 제작진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이렇게 추운 겨울, 지금 이 시간에도 소극장을 지키고 있는 건 그분들이다. 지금까지 연극판을 지켜온 건 촌스러운 그 연극쟁이들”이라며 “(제 수상이) 서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싸움의 기술, 졸’은 장기(將棋)를 소재로 한 실험적인 연극이다. 장기판 위의 말처럼 살기 위해 싸워야 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를 무겁지 않고 창의적이면서도 참신하게 그렸다. 줄자와 롤러스케이트, 진공청소기 같은 사물을 기발하게 사용해 한 편의 무용 공연을 보는 것 같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 연출가는 “지난해 대통령 선거 때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지는 걸 보면서 떠올린 작품”이라며 “사람들이 싸우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아니다, 싸워야 한다면 어떻게 싸워야 할지 이야기하자는 데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장기에는 문외한이어서 탑골공원은 물론이고 인터넷 강의, 유튜브 영상까지 봤다. 그는 “제작진 중 군대 내무반 장기 1등을 했던 이가 대국 시나리오를 짜주면서 장면을 만들어 나갔다. 저는 연출가지만 주로 앞에서 징징댔고 뒤에서 제작진이 문제를 해결해줬다”며 공을 돌렸다. 김 연출가는 2020년 동아연극상 신인연출상을 받고 이번에는 연출상을 받아 한 단계 발돋움했다. 그는 “운이 좋았다고 여기며 감사하고 겸허한 마음을 가지려 한다. 용기를 주고 응원해주는 동료들이 많아 앞으로도 더 많이 배운다는 마음으로 작품에 임하겠다”고 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2023-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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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순신 장군은 내 삶의 위안이자 힘과 용기”

    “놀랍게도 이순신 장군이 꿈에 한 번을 안 나와요. 나오실 만도 한데…. 장군이 보시기에 (영화에서) 거슬리는 부분이 있으면 꿈에 나와 혼내셨을 텐데 없어서 그런 걸까요?” ‘명량’(2014년), ‘한산: 용의 출현’(2022년)에 이어 20일 개봉하는 ‘노량: 죽음의 바다’까지 10년을 충무공 이순신에 천착한 김한민 감독(54)은 웃으며 말했다. ‘노량’으로 그가 계획한 ‘이순신 3부작’이 마무리된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19일 만난 그의 얼굴에서는 개봉을 앞둔 감독의 긴장보다는 후련함이 묻어났다. “이런(이순신 3부작을 마무리하는) 날이 오는구나 싶어요. 명량과 한산, 노량은 영화마다 만드는 의미를 분명하게 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영화를 만들어낸 것 같아서 뿌듯합니다.” 이순신 3부작 중 첫 편인 ‘명량’은 1760만 명이 관람해 한국 영화사상 가장 흥행한 작품이다. 김 감독은 “단지 후속작으로만 기능한다면 3부작을 만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해전을 반복해 보여주면서 속편 우려먹기식으로 영화를 만든다면 안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3부작 완성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했다. ‘노량’은 러닝타임 153분 중 약 100분을 해전에 할애했지만 김 감독의 말대로 시원한 전투 장면만을 담은 건 아니다. 장군, 동료, 아버지이자 나라를 향한 충심으로 가득했던 이순신의 모습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그의 삶을 풀어낸다. 그는 “이순신 장군이 왜 그렇게 모두가 반대하는 전쟁을 치열하게 수행하려 했는지가 제 화두였다”고 했다. 영화 속 이순신(김윤석)은 “이 전쟁을 올바로 끝내기 위해서는 (도망치는 왜군들을) 열도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김 감독은 “이순신 장군의 치열했던 정신을 설명하는 문구를 생각해 내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이 대사가 장군에게 절대 누가 되지 않을 거다. 오히려 잘 썼다고 격려해 주시지 않을까 하는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을 이 영화 시리즈에 쏟아부은 만큼 이순신의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마지막 작품에 대해서는 더욱 고민이 컸다. 그는 “영화 사운드가 가장 힘들었다”며 “언론 시사회 전날까지도 사운드 작업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이순신의 죽음이 있고, 해전이 100분이기 때문에 완급 조절이 있어야 관객들이 따라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하나의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들리도록 애썼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해전 장면이 길지만 장면마다 새롭다는 느낌을 준다. 10년을 함께했지만 김 감독은 이순신을 “(여전히) 놓을 수 없다”며 웃었다. 그는 이순신의 전쟁 7년을 담은 드라마를 기획 중이다. “이순신 장군은 저에게 삶의 위안과 힘, 용기예요. ‘노량’을 본 관객들도 저와 같은 경험을 하면 좋겠습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202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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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네시스-임형주-건축가 보타-佛소리꾼 로르 ‘한국이미지상’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이사장 최정화)이 제20회 한국이미지상 수상자로 현대차 제네시스(디딤돌상),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징검다리상), 팝페라 테너 임형주(머릿돌상), 프랑스인 소리꾼 마포 로르(꽃돌상)를 선정했다고 18일 밝혔다. 제네시스는 한국 고유의 정체성을 담은 럭셔리 브랜드로, 올해 8월 전 세계 누적 판매 100만 대를 돌파했다. 마리오 보타는 서울 리움미술관, 강남 교보타워, 경기 남양성모성지 대성당 등 랜드마크를 건축했다. 임형주는 팝페라를 대중화하는 데 기여했다. 마포 로르는 한국에 와서 판소리를 배우고, 프랑스어로도 번역해 부르며 판소리를 널리 알리고 있다. 한국이미지상 시상식은 내년 1월 10일 서울 강남구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2023-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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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봉 4주차에도 뜨거운 ‘서울의 봄’… 주말 1000만 찍을듯

    12·12쿠데타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1000만 관객을 바라보고 있다. 중장년·노년층은 물론이고 12·12쿠데타를 교과서로만 배운 10∼30대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개봉 4주 차에도 관람 열기가 뜨겁다. ‘범죄도시3’에 이어 ‘서울의 봄’이 올해 두 번째 1000만 영화에 오르며 팬데믹 이후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는 한국 영화계에 힘을 불어넣어 줄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18일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전날까지 ‘서울의 봄’은 관객 894만 명을 기록하며 시리즈물이 아닌 영화로는 팬데믹 이후 가장 흥행한 작품이 됐다. 개봉 4주 차에도 주말 관객이 120만 명을 넘어서, 이번 주말 1000만 관객을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봄’이 흥행에 성공한 건 화제성과 작품성, 입소문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서울의 봄’이 처음 화제를 모았던 건 정권을 탈취하려는 보안사령관 전두광을 연기한 배우 황정민의 대머리 분장이었다. 파격적인 모습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져 나갔고 관람객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특수 분장을 맡은 황효균 셀스튜디오 대표는 “다큐멘터리가 아니기 때문에 실제 인물을 완전히 닮게 재현하는 게 아니라 특징을 살려 느낌만 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했다. “러닝타임 내내 스트레스 받아 죽을 것 같았다”는 관람 후기가 쏟아질 만큼 속도감 있는 연출과 작품성은 젊은 세대를 극장으로 이끌었다. 전두광 노태건(박해준) 등이 이끌던 신군부가 1979년 12월 12일 벌인 군사반란과 이들에게 맞선 이태신(정우성)의 9시간을 마치 전략 게임처럼 스크린에 지도를 띄워 자세하게 보여준 연출이 젊은 세대에게 먹혔다는 것.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12·12사태는 젊은 세대에게 익숙하지 않지만 영화의 연출 방식과 속도감은 이들에게 익숙한 방식”이라며 “교과서에서 잠깐 본 내용의 뒷이야기를 긴박하게 전개해 젊은 세대가 깊이 몰입했다”고 말했다. SNS에는 영화를 본 젊은 관람객들이 스마트 워치로 스트레스 지수, 혈압, 심박수 등이 모두 오른 사진을 올려 인증하는 챌린지가 유행했다. 영화에 과도하게 몰입한 일부 관객이 전두광 포스터를 훼손하는 일도 있었다. 영화가 입소문을 타자 유튜브에는 실제 사건과 실존 인물들을 분석한 내용을 담은 ‘서울의 봄 관람 전 필수 시청 영상’ 콘텐츠들이 올라왔다. 이에 “예습하고 영화 보러 간다” “N차 관람하고 유튜브 영상도 찾아보고 있다”는 댓글도 여럿 달렸다. 황정민, 정우성 등 티켓 파워가 있는 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데다 영화 마지막에 실제 인물들의 사진을 공개해 역사를 돌아보게 함으로써 젊은 세대뿐 아니라 중장년·노년층도 계속 극장을 찾고 있다. 극장가는 ‘서울의 봄’ 성공으로 고무된 분위기다. 전통적으로 추석 뒤, 연말 전인 11월은 관객이 적어 대작이 잘 개봉하지 않는다. 팬데믹 이후 손익분기점을 넘은 한국 영화가 손에 꼽을 정도인 상황에서 ‘서울의 봄’이 틈새를 파고들어 훈풍을 불어넣었다. 20일에는 이순신 장군 3부작 마지막 편인 ‘노량: 죽음의 바다’가 개봉해 침체됐던 극장가가 되살아날 불씨가 될지 관심이 높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2023-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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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광-사랑꾼’ 두 얼굴의 나폴레옹… 현장 느낌 살린 워털루 전쟁신 압권

    “프랑스, 군대… 조세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겼다고 전해지는 말이자 그의 생애를 응축한 세 단어다. 죽은 지 20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혁명가인지 전쟁광인지 평가가 분분한 그의 생애, 그리고 그가 평생 집착했던 여성 조세핀과의 관계를 담은 영화 ‘나폴레옹’이 6일 개봉한다. 올해 나이 여든여섯인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했고, ‘조커’(2019년) ‘그녀’(2014년)의 호아킨 피닉스가 나폴레옹 역을 맡았다. 영화를 이끄는 두 축은 나폴레옹의 전쟁, 그리고 아내 조세핀에 대한 사랑이다. 정복자 나폴레옹의 생애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스콧 감독은 장대한 전투 장면을 영화 곳곳에 넣었다. 감독은 잘 알려져 있는 대로 이번 작품도 손수 스토리보드를 그렸다. 전투 장면도 미리 그림으로 그려 제작진과 공유했고, 최대 11대의 카메라를 사용해 풍부한 각도에서 촬영했다. 나폴레옹이 젊은 포병 장교로서 처음 존재감을 인정받았던 툴롱 전투와 그를 파멸하게 만든 워털루 전투 장면이 특히 압권이다. 마치 관객이 실제 전쟁터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영화가 지난달 북미 등 일부 지역에서 개봉하자마자 역사 왜곡 논란이 일기도 했다. 영화는 젊은 나폴레옹이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기록에 따르면 그는 당시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머물고 있었다. 나폴레옹이 이집트 피라미드를 폭파하는 장면 역시 허구다. 스콧 감독은 비판이 거세지자 “당신들이 그때 그곳에 있었느냐”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런 논란 탓에 앞서 개봉한 국가에선 영화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분위기다. 스콧 감독은 역사적 정확성보다는 나폴레옹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해석하는 데 더 집중했다. 나폴레옹을 알려면 조세핀과의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영화에서 나폴레옹과 조세핀(버네사 커비)이 처음 만나는 장면은 함축적이다. 나폴레옹은 사교 파티에서 조세핀을 만나 첫눈에 반하고, 자꾸 흘깃댄다. 눈치를 챈 조세핀이 바짝 다가와 “왜 자꾸 나를 쳐다보느냐”며 대담하게 유혹하고, 나폴레옹은 말을 더듬으며 어쩔 줄 모른다. 엄격한 어머니에게 애증을 갖고 있었던 나폴레옹은 연상의 조세핀에게 집착했고, 때로 폭력적이 되기도 했다. 황후가 된 조세핀이 아이를 낳지 못하자 결국 두 사람은 이혼했지만 나폴레옹은 죽는 날까지 그녀를 사랑했다. 나폴레옹이 조세핀에게 썼던 열렬한 사랑의 편지는 추후 공개돼 경매에 부쳐지기도 했다. 피닉스는 복잡하고 종잡을 수 없는 나폴레옹을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그는 사료로 남은 나폴레옹의 모습과 연기자로서 자신이 해석한 나폴레옹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고 한다. 다만 ‘조커’ 때만큼 매력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2023-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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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음악과 과학이 만나니 예술적 대화가

    “사람은 변하는 존재라는 전제를 세우면 지금 이 시간을 아주 소중하게 여길 수 있을 거예요.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와 다를 겁니다. 달라도 괜찮고요.”(히사이시 조) 세계적인 영화음악의 거장 히사이시 조와 저명한 뇌과학자 요로 다케시가 만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 대담집이다. ‘인간은 왜 음악을 만들고, 예술은 개인과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큰 주제 안에서 두 사람의 대화는 과학과 철학, 인문학과 사회학을 넘나든다. 저자들이 가장 먼저 집중한 주제는 감각, 그중에서도 특히 청각이다. 인간은 진화 과정에서 감각과 관련된 많은 기관이 퇴화했다. 하지만 귀만큼은 오래된 감각 기관인 반고리관을 유지하고 있다. 몸의 운동과 직접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반고리관은 뇌의 원초적인 부분에 직접 영향을 주며, 반고리관을 통해 들어온 소리는 다른 어떤 감각보다 정서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인간이 음악을 만들어 내는 이유다. 음악 외에도 인간의 감수성을 자극하고,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다양한 사회적 요소들을 과학적으로 해석한다. 저자들은 “사람의 일생은 하나의 예술작품과도 같다”고 말한다. 인간은 모두가 자신의 삶을 창작해 나가는 예술가라는 것이다. 자신의 일생을 풍요로운 작품으로 만들려면 감각을 더욱 예민하게 벼리고, 오감을 통해 삶을 생생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당부다. 인생이라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인생에 대한 존중도 생겨난다고 강조한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202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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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재 작곡가 번스타인의 사랑, 그리고 결혼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미국인 지휘자이자 스테디셀러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명곡들을 만든 천재 작곡가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의 생애를 담은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이 6일 개봉한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2년), ‘아메리칸 스나이퍼’(2015년) 등으로 잘 알려진 할리우드 배우 브래들리 쿠퍼가 주연과 각본, 감독을 맡았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을 주도했다. 영화는 번스타인이 어떻게 천재 음악가로서 명성을 쌓았는지에 집중하지 않는다. 영화가 그려낸 건 번스타인과 그의 아내 펠리시아(케리 멀리건)의 결혼생활이다. 번스타인은 칠레 출신 배우인 펠리시아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하지만 양성애자였던 그는 결혼생활 동안 남성들에게도 눈길을 돌리며 둘 사이는 삐걱댄다. 영화는 서로 사랑하며 빛났던 번스타인과 펠리시아의 젊은 시절로 시작해 관계의 위기를 맞았던 중년, 노년에는 평생을 사랑한 펠리시아 곁을 지키는 번스타인의 모습으로 끝맺는다. 공동 각본을 맡은 조지 싱어는 “관객들이 결혼의 복잡한 면과 사랑의 다양한 형태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는 ‘스타 이즈 본’(2018년)에 이은 쿠퍼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쿠퍼는 번스타인을 놀랍도록 비슷하게 재현했다. 영화 첫 장면인 노년의 모습은 쿠퍼가 아닌 번스타인의 자료 영상으로 착각할 만큼 싱크로율이 높다. 촬영 당시 매일 2∼5시간씩 특수 분장을 했다고 한다. 쿠퍼는 번스타인의 생애를 충실하게 복원하기 위해 그의 세 자녀를 인터뷰하고, 그가 살던 집도 방문했다. 번스타인의 아들 알렉산더는 “저희의 의견을 들어주는 태도, 언제나 호기심을 따라 움직이는 것까지 아주 많은 면에서 아버지가 연상됐다”고 했다. 영화 제작에는 총 6년이 걸렸다. 영화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요소는 번스타인의 음악이다. 영화 배경음악으로 실제 번스타인의 곡들을 썼다. 흑백 화면과 번스타인의 음악이 어우러져 리듬이 빠른 뮤지컬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장면들도 있다. 펠리시아 역을 맡은 케리 멀리건의 연기가 가장 눈에 띈다. 일생의 연인과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감정을 우아하게 표현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202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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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처럼 하늘나라 휴가 있어 엄마가 옆에 있다면…”

    “제 안에 뭐가, 얼마나 더 남아 있는지 저도 아직 다 모르겠어요. 그 무언가가 꺼내어질 수 있는 작품을 만나길 기대하며 연기하고 있습니다.” 다음 달 6일 개봉하는 영화 ‘3일의 휴가’에서 하늘나라에서 휴가를 얻어 딸을 만나러 내려온 엄마 복자 역을 맡은 배우 김해숙(68)의 말이다. 푸근하게 말을 이어가던 그가 새 작품 이야기를 하자 그를 둘러싸고 있던 공기가 달라졌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29일 만난 김해숙은 기대와 기분 좋은 긴장이 뒤섞인 목소리로 “아직도 새 작품 캐릭터를 연구할 땐 첫사랑을 했던 옛날처럼 설렌다”고 했다. 연기 경력 48년, 일흔에 바짝 다가선 배우에게선 여전히 연기를 향한 열망이 엿보였다. “‘국민 엄마’라는 타이틀이 처음엔 굉장히 부담스럽고, 죄송한 마음마저 들었어요. 저는 집에서도 그런 엄마가 아니거든요. 100점짜리 엄마는 못 돼요.(웃음)” 또 엄마 역할을 맡은 이유에 대해 그는 “엄마를 연기할 때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부모님이 먼저 떠난 사람은 누구나 그런(부모님의 영혼이 옆에 있다는) 생각을 할 것 같다. 이 영화에 동화돼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연기했다”고 말했다. ‘3일의 휴가’에서 복자는 한평생 딸 진주(신민아) 뒷바라지를 하며 살다가 갑자기 죽는다. 죽은 지 3년이 되는 날 복자는 이승으로 3일간의 휴가를 받는다. 귀신이기 때문에 딸을 만질 수도, 이야기할 수도 없이 바라봐야만 하지만 복자는 고민할 것 없이 딸 진주에게로 향한다. 오랜만에 만난 딸은 복자의 기대와 달리 미국 명문대 교수 자리를 포기하고, 돌연 엄마가 살던 시골집에 눌러앉아 엄마의 레시피로 백반집을 운영하고 있다. 딸이 자신처럼 살지 않길 바랐던 복자는 억장이 무너진다. 하지만 진주가 엄마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으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진주에게 “다 괜찮으니 즐겁게 살아라”는 당부를 하기 위해 하늘나라의 규칙을 어기기로 결심한다. 김해숙은 영화를 찍으며 돌아가신 엄마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홀어머니 아래서 무남독녀로 자란 그는 “제일 가까웠기 때문에 엄마에게 ‘고마워’ ‘미안해’라는 말을 못한 게 가장 큰 아픔이 됐다”며 “‘3일의 휴가’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와 겹쳐지는 지점을 찾으며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인간미가 없어지고 사회가 각박해져 가잖아요. 영화를 보는 동안이라도 가족의 따뜻함을 느끼면 좋겠습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202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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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대전화속 엄마의 단축번호는 몇번입니까

    2023년이 한 달여 남은 연말, 따뜻한 영화 한 편으로 마음을 데워보는 건 어떨까. 겨울을 맞아 눈시울이 촉촉해지는 힐링 가족 영화들이 잇달아 개봉하고 있다. 영화를 다 보고 극장을 나올 때면 엄마에게 전화를 한 통 하고 싶어질지 모른다. 22일 개봉한 영화 ‘아워 프렌드’는 할리우드의 신성 다코타 존슨이 시한부 엄마 역할을 맡아 화제가 된 작품이다. 급작스럽게 난소암 선고를 받은 니콜(다코타 존슨)이 남편 맷(케이시 에플렉)과 두 딸, 그리고 가족이나 다름없는 친구 데인(제이슨 시걸)과 마지막 날들을 보내는 이야기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암 환자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천천히 이별하는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일하느라 바빠 아내와 소원해졌다가 암 진단 소식을 들은 남편 맷은 심경이 복잡하다. 아내가 없는 집은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고, 사춘기에 접어든 딸은 “아빠랑 남겨지는 게 억울하다”며 고함을 지른다. 아내가 곁을 떠나는 게 두렵지만 병간호는 모든 걸 포기하고 싶게 할 만큼 고되다. 그를 일으켜 세워 주는 건 친구 데인이다. 데인은 삼촌처럼 니콜과 맷의 딸들을 돌보고, 니콜과의 이별을 누구보다 슬퍼한다. 무엇보다 다코타 존슨의 시한부 암 환자 연기가 눈에 띈다. 남편과 삐걱대는 현실적인 아내의 모습, 딸들에게 병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강인한 엄마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연기했다. 영원한 이별이라는 결말을 향해 가지만 영화는 마냥 슬프지만은 않다. 곁에 있는 가족들과 어떻게 하루를 더 꽉 채워 살아갈까 고민해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29일 개봉하는 영화 ‘레슬리에게’는 알코올의존증에 빠진 레슬리(앤드리아 라이즈버러)가 아들에게 떳떳한 엄마가 되기 위해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다. 영화는 2억 원이 넘는 복권에 당첨돼 흥분한 레슬리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작은 마을에서 곧장 관심의 대상이 된 레슬리는 당첨 사실에 취해 돈을 흥청망청 쓰기 시작한다. 술에 빠져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던 레슬리는 급기야 어린 아들 제임스(오언 티그)를 친구 집에 두고 떠나기에 이른다. 이후 레슬리는 술을 얻어먹기 위해 남자들을 유혹하고, 햄버거를 사주겠다는 옛 친구를 따라갔다가 성폭행당할 위협에 놓이는 등 밑바닥까지 추락한다. 아들은 자신을 다시 찾아온 엄마를 진절머리 치며 밀어낸다. 레슬리를 구원한 건 아주 작은 호의와 관심이었다. 모텔 매니저 스위니(마크 매런)는 레슬리에게서 자신의 과거 모습을 겹쳐 보고, 그녀에게 일자리를 준다. 알코올 금단 현상으로 괴로워하는 레슬리의 곁을 지키며 조용히 밥을 챙겨준다. 레슬리는 그에게서 힘을 얻어 작은 식당을 열게 되고, 아들 제임스와 재회한다. 두 사람이 울며 웃으며 함께 밥을 먹는 장면은 코끝이 찡하게 만든다. 배우 라이즈버러는 이 영화로 제95회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배우 케이트 윈즐릿은 “스크린에서 본 여성 배우의 연기 중 가장 위대하다”고 극찬했다. 따뜻한 모녀 이야기를 담은 한국 가족 영화들도 개봉을 앞뒀다. 다음 달 6일 개봉하는 영화 ‘3일의 휴가’는 ‘국민 엄마’ 김해숙이 하늘나라에서 휴가를 받아 딸 진주(신민아)의 곁을 맴돌며 추억을 쌓는 이야기다. 같은 날 개봉하는 ‘교토에서 온 편지’는 엄마가 50년간 간직한 편지를 따라 딸들과 함께 교토를 여행하는 가족 드라마다. 배우 한선화 한채아 송지현이 세 자매로, 배우 차미경이 엄마로 출연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202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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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에만 5년… ‘예술가’ 틀 거부한 ‘인간 백남준’의 삶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 ‘한국이 낳은 위대한 아티스트’ ‘괴짜 예술가’…. 백남준(1932∼2006)을 수식하는 표현은 많지만 그 어떤 것도 ‘인간 백남준’을 적확하게 묘사하지는 못한다. 그의 눈빛과 표정, 말투와 몸짓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인간 백남준’에게 다가가는 다큐멘터리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가 다음 달 6일 개봉한다. 그의 생애를 다룬 첫 영화로, 제작에만 5년이 걸렸다. “남준은 약 20개 언어를 하는데 실력이 형편없었어요. 전혀 못 알아 듣겠어요.(웃음)” 영화는 백남준의 조카 하쿠타 겐의 목소리가 나온 후 영어와 독일어, 프랑스어, 심지어 한국어까지 어눌하게 말하는 백남준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미국 휘트니미술관장을 지낸 데이비드 로스는 “그의 말을 듣는 법을 배우기까지 대화가 어려웠다”고 회고하며 웃는다. 백남준은 인터뷰 중 상대방을 향해 “제 영어를 알아듣는다니 정말 뜻밖”이라며 천진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서 풀밭을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화분에 심겨진 꽃의 향기에 심취하기도 한다. ‘기인(畸人)’ 같은 모습 뒤에는 번뜩이는 천재성과 혁명성이 있었다. 그는 ‘예술가’라는 이름에 갇히기를 원치 않았다. 그는 “틀에 박힌 예술에는 관심이 없다. 내 관심은 온 세상에 있다”고 말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백남준의 일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실험 음악가 존 케이지(1912∼1992)였다. 그는 1958년 독일 뮌헨에서 케이지의 전위적인 퍼포먼스를 보고 “공연이 끝날 무렵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그날 밤 내 인생이 시작됐다. 그는 내게 ‘파괴 면허’를 줬다”고 말했다. 케이지 공연을 본 후 백남준은 익숙한 방식을 탈피해 과감한 시도를 시작했다. 그 무렵 그의 관심이 텔레비전으로 옮겨갔다. 그는 영상을 일방향으로 전송하는 텔레비전의 원리를 전복하기 위해 브라운관에 자석을 갖다 대고, 텔레비전을 부수고, 개조했다. 영화는 백남준의 예술관에 집중하기보다는 그가 처음 대중으로부터 받은 저항, 그럼에도 꿋꿋이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갈 때의 표정 등을 생생히 보여준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예술가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백남준이 마음에 남는다. 한국계 미국인인 어맨다 김이 감독을, 할리우드 배우 스티븐 연이 내레이션을 맡았다. 주제곡은 백남준과 생전 친분이 있었던 사카모토 류이치(1952∼2023)가 작업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2023-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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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괴물보다 더한 인간, 인간다운 괴물… 돌아온 ‘스위트홈’

    “인간은 욕망에 가득 차서는 닥치는 대로 파괴하고, 다른 종들을 멸종시켜. 인간은 바이러스고, 괴물이 백신이다.”(‘스위트홈’의 임 박사) 괴물이 된 사람들과 그들의 습격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간의 처절한 사투를 그린 넷플릭스 드라마 ‘스위트홈’이 12월 1일 ‘시즌2’로 3년 만에 돌아온다. 스케일은 더욱 커지고, 컴퓨터그래픽(CG)은 한층 화려해졌다. 무엇보다 생존이 달린 상황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누가 괴물이고, 누가 인간인가?” 2020년 공개된 ‘스위트홈’ 시즌1은 한국이 제작한 시리즈 중 처음으로 넷플릭스 미국 ‘톱10’에 진입하며 K콘텐츠의 위력을 보여줬다. 총 8부작이 한꺼번에 공개되는 시즌2에 대한 팬들의 관심이 뜨겁다. 동명 웹툰이 원작이지만, 이번엔 원작 만화의 세계관을 확장시켜 원작과는 다른 이야기가 전개된다. 언론에 1∼3회를 미리 공개했다. 시즌2는 시즌1의 배경이었던 낡은 아파트 ‘그린홈’ 입주자들이 그곳을 벗어나 군(軍) 통제하에 ‘안전 캠프’로 이동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괴물화가 진행됐지만 다른 괴물들과는 달리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는 차현수(송강)는 자신이 이 사태를 끝낼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백신 개발 실험체가 되기를 자청한다. 시즌1이 제한된 공간에서 괴물과 맞닥뜨리는 방식으로 공포를 극대화했다면, 이번엔 황폐해진 서울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언제 어디서 괴물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더했다. 무엇보다 집중한 것은 ‘인간성’이다. 카메라는 괴물 출몰에 대처하는 정부의 무능과 정치인들의 위선, 질서를 세워야 한다는 명목하에 괴물보다 더 잔혹해진 군인들, 옆 사람이 죽임을 당하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이에 비해 아비규환 속 엄마의 손을 놓친 아이를 엄마에게 데려다주고, 자신의 새끼를 구하기 위해 군인들에게 미끼가 되기를 자청하는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괴물’도 등장한다. 성공한 ‘K크리처물’답게 CG는 더욱 화려해졌다. 오른팔이 가시로 된 큰 날개로 변하는 현수의 모습은 시즌1에서보다 훨씬 압도적이다. 자신의 욕망이 투영된 모습의 괴물이 된다는 설정으로, 외모에 집착하던 사람은 얼굴이 흘러내린 괴물로 변하고 투병하던 환자는 피만 보면 달려드는 괴물이 되는 등 여러 괴물의 모습이 눈앞에서 움직이는 듯 생생하게 구현됐다. 배우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송강과 이진욱(편상욱 역), 고민시(이은유 역)는 시즌1에 이어 시즌2에도 출연했다. 시즌1에서 선한 마음이 살아있는 살인청부업자를 연기했던 이진욱은 이번 시즌에선 괴물에게 몸이 갈취당한 것으로 설정돼 전혀 다른 연기를 선보인다. 광기 어린 눈빛이 정말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질 만큼 열연을 펼친다. 유오성(탁인환 상사 역), 김무열(김영후 역)이 서로 대립하는 군인 역으로, 오정세가 백신을 개발하는 임 박사 역으로 새로 합류해 팽팽한 긴장감을 더한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2016년), ‘도깨비’(2016년), ‘미스터 션샤인’(2018년)을 연출한 이응복 감독이 전작에 이어 연출을 맡았다. 이 감독은 “괴물은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내면에도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며 “하루아침에 인간이 아닌 모습으로 변해버린 연인, 친구, 가족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가까스로 살아남은 자들이 언제까지 그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2023-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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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자가 좋지만 늘 누군가 기다려” 로맨스로 돌아온 이동욱

    “나한테 딱 맞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혼자 삼겹살 구워 먹기, 경복궁 산책하며 사진 찍기, 남산타워에서 야경 즐기기…. ‘일타 논술 강사’이자 파워 인플루언서인 영호(이동욱)는 커플 부럽지 않은 싱글의 휴일을 보낸다. 연인에게 시간과 돈을 쏟는 대신 한강이 한눈에 보이는 고급 아파트에 혼자 살고, 카메라 LP판 와인 등 좋아하는 것들로 공간을 채웠다. 완벽한 생활을 즐기던 어느 날 영호는 출판사 편집장 현진(임수정)으로부터 서울의 싱글 라이프에 대한 책을 써 보자는 제안을 받게 되고, 평온하던 일상에 간지러운 변화가 시작된다. 혼자가 좋지만 온기를 나눌 누군가를 기다리는 ‘요즘 것들’의 연애를 담은 영화 ‘싱글 인 서울’이 29일 개봉한다. ‘로맨스 장인’으로 불리는 배우 이동욱이 까칠한 싱글남 영호로 2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21일 만난 이동욱(42)은 “영호가 인간 이동욱과 많이 닮았다”며 “제 일상은 완벽한 싱글 라이프 그 자체다. 혼자 지내는 게 너무 좋고 편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 제 시간과 감정을 공유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털어놨다. 영화는 첫사랑에 상처 입은 영호가 부족했던 20대 시절을 되돌아보고, 성숙해지는 과정을 담백하게 담았다. 그토록 미워했던 첫사랑이지만 자신이 기억을 왜곡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서툴렀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이동욱은 “저도 20대 때 지질한 모습이 분명 있었겠구나 싶어서 공감이 많이 됐다”고 했다. 그는 “영화를 찍으며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늘 열린 마음으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며 웃었다. 이동욱은 고운 피부에 훤칠한 키, 곱상한 이목구비로 로맨스 장르에 최적화된 배우라는 평가를 받지만 저승사자(‘도깨비’·2016년), 사이코패스(‘타인은 지옥이다’·2019년), 구미호(‘구미호뎐’·2020년) 등 필모그래피가 다채롭다. 그는 “도전하는 걸 좋아한다. 같은 캐릭터를 연속해서 하는 건 틀 안에 갇힌 느낌이 든다”며 “다음 로맨스물은 3, 4년 후가 될 것 같다”고 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2023-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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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56만 달러 주인공은 누구? 현실판 ‘오징어 게임’ 열린다

    “4번은 안 돼. 한국에서 4는 불길한 숫자야.” “우리 ‘깐부’ 할까요? ‘단짝’이라는 뜻의 한국말이에요.” 초록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외국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다. “깐부!”를 외치며 하이파이브를 하기도 한다. 머리가 하얗게 센 ‘302번’ 백인 여성은 함께 출연한 아들에게 “4번은 불길하다”고 조용히 속삭인다. 이들이 지내는 생활관엔 한글로 ‘출구’ ‘엘리베이터’라고 안내 문구가 쓰여 있다. 참가자들은 진행 요원들에게 제거당하지 않기 위해 흙바닥에 엎드려 열심히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우승자 ‘456번’(이정재)처럼 달고나를 핥는다. 세트장 한쪽엔 4.2m 높이의 여자아이 모양의 로봇 인형 ‘영희’가 서 있다. 456명의 참가자가 리얼리티 쇼 역사상 최대 상금인 456만 달러(약 60억 원)를 놓고 생존 게임을 벌이는 넷플릭스 예능 ‘오징어 게임: 더 챌린지’가 22일 베일을 벗는다. 지난해 미국 에미상에서 비영어권 드라마 최초로 남우주연상과 감독상 등을 수상한 ‘오징어 게임’ 콘셉트를 그대로 가져왔다. 전 세계에서 8만1000여 명이 지원했다. 참가자들의 암투 앞에 40∼50분 분량의 한 회차가 쏜살같이 지나간다. 총 10화 분량으로 22일 1∼5화, 29일 6∼9화, 12월 6일 최종화를 공개한다. 넷플릭스가 10일 공개한 영상에서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은 ‘오징어 게임: 더 챌린지’ 세트장을 방문해 “드라마 세트장과 정말 똑같다. 문 색깔과 벽 그림까지 같다. 디테일이 살아있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황 감독은 “(더 챌린지)제작팀이 세트장을 실제 드라마와 완전히 똑같이 만들고 싶어했다. 우리 제작팀에 세부사항을 굉장히 자세하게 질문했다”며 “둘러 보니 ‘오징어 게임 시즌2’ 세트장을 더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오징어 게임: 더 챌린지’는 영국 리얼리티쇼 제작사 ‘스튜디오 램버트’와 ‘더 가든’의 작품이다. 런던 워프 스튜디오에 세트장을 만들어 총 16일 동안 촬영했다. 총 6개의 세트장이 서로 연결돼 있고, 드라마 ‘오징어 게임’처럼 미로 같은 계단을 지나면 게임장에 입장하게 된다. 드라마 세트장을 거의 그대로 구현했다. 참가자가 제거될 때마다 천장에 매달린 돼지 저금통에 1명당 1만 달러씩 쏟아지는 것도 원작 그대로다. 다만 원작에서는 무게 때문에 이 장면을 컴퓨터그래픽(CG)으로 처리했는데, ‘오징어 게임: 더 챌린지’에서는 실물 돼지 저금통을 만들었다. 최종화에서 상금으로 가득 찬 돼지 저금통 무게가 800kg에 육박했다고 한다. 다양한 인종과 직업, 성별을 지닌 456명의 참가자는 ‘오징어 게임’처럼 철제 침대에서 먹고 자며 합숙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뽑기’ ‘구슬치기’ 등 원작에서 나온 게임과 함께 서양인들에게 익숙한 게임이 몇 가지 추가됐다. 참가자들이 탈락하면 셔츠 안에 입은 특수 조끼에서 오징어 먹물을 연상시키는 검은 잉크가 자동으로 터진다. 탈락한 참가자들은 그 자리에서 털썩 쓰러진다. 전례 없는 상금을 건 리얼리티쇼인 만큼 참가자 선발과 공정성에 만전을 기했다. 런던과 미국 서부, 동부에 허브를 두고 8만1000여 명에게서 지원서를 받았다. 이후 비디오 테스트와 면접을 거쳐 456명을 선발했다. 60대 뉴욕타임스(NYT) 전 편집자와 그의 아들, 내과 의사, 전직 군인, 수학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원초적인 생존 경쟁을 벌인다. 다만 참가자 중 한국인은 없다. 존 헤이 더 가든 최고경영자는 “인성을 테스트하는 게임, 믿음과 배신이 이끌어 가는 이야기 등을 기대해 달라”고 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202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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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년 만에 돌아온 ‘헝거게임’… 그는 어떻게 악인이 됐을까

    24명의 소년 소녀를 경기장에 몰아넣고 단 한 명의 승자만 살아서 나간다는 신선한 소재로 북미에서 크게 흥행한 판타지 액션 블록버스터 ‘헝거게임’ 시리즈. ‘헝거게임: 더 파이널’(2015년) 이후 8년 만에 프리퀄(기존의 작품보다 앞선 시기의 이야기를 다루는 속편)로 돌아왔다. 15일 개봉하는 영화 ‘헝거게임: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이다. 영화는 본편에서 6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뮤지컬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2022년) 주인공으로 주목받았던 배우 레이철 제글러가 헝거게임 참가자 루시 그레이 역을 맡았다. 영화는 헝거게임을 주관하는 독재국가 ‘판엠’의 코리올라누스 스노우 대통령이 18세 때 게임 멘토로 참여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스노우는 판엠의 부가 모두 몰린 곳이자 특권층들만이 모여 있는 ‘캐피톨’에 살지만 가난하다. 헝거게임 승자의 멘토가 되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스노우는 절박하게 게임에 임한다. 그의 멘티로 배정된 사람은 12구역의 루시 그레이. 스노우는 사람들을 홀리는 노래 실력과 대담함이 무기인 그녀를 최후의 1인으로 만들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영화는 인간적인 면모를 갖고 있던 청년 스노우가 점점 악인으로 변해가는 과정에 집중했다. 화려한 블록버스터 영화나, 전편에서와 같은 극한의 긴장감을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다. 루시 그레이 역의 제글러는 영화 중후반부 수동적인 모습으로 그려져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여전히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이라는 소재와 헝거게임 세계관은 러닝타임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202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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