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수

정원수 부국장

동아일보 편집국

구독 9

추천

안녕하세요. 정원수 부국장입니다.

needjung@donga.com

취재분야

2024-03-21~2024-04-20
칼럼90%
사설/칼럼10%
  • 이진동 前TV조선 사회부장 ‘성폭행 의혹’ 최종 무혐의 처분

    ‘성폭력 의혹’이 제기됐던 이진동 전 TV조선 사회부장이 검찰에서 최종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 전 부장을 ‘피감독자 간음죄’로 고소했던 A 씨는 검찰의 불기소가 부당하다며 재정 신청을 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달 14일 A 씨가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해 낸 재정신청에 대해 “이유 없다”며 기각했고, 기각 결정은 지난달 28일 확정됐다. 앞서 서울중앙지검도 이 전 부장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이에 불복한 A 씨가 항고했지만 서울고검도 이를 기각했다. 정원수기자 needjung@donga.com}

    • 2020-09-23
    • 좋아요
    • 코멘트
  • “당신들을 검사로 생각하지 않습니다”[오늘과 내일/정원수]

    “우리 ‘올드보이들’은 요즘 검찰을 후배들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전직 검찰총장에게 서울동부지검이 수사 중인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서모 씨(27)의 군 복무 당시 특혜 의혹 사건에 대해 묻자 예상 밖 답변이 돌아왔다. “주역에 ‘사출이율(師出以律·출정하는 군대에 기율이 없으면 이겨도 분란이 온다)’이라는 말이 있다”면서 “누가 뭐라고 해도 국가 기강을 지탱한 건 검찰의 힘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장관이 인사권을 갖고 있어도 검사가 사표를 낼 각오를 하고 수사를 해야 하는데, 그런 걸 기대할 수 있겠느냐”라고 후배 검사들을 질타했다. 특별수사 분야의 고위직을 지내고, 권력층 수사를 한 경험이 있는 또 다른 전직 검찰 고위 인사도 비슷한 말을 했다. “장관을 상대로 한 수사는 오버해서도, 모자라서도 안 된다. 경계선을 가야 한다. 검사장과 차장검사가 직접 챙겨야 하는데 이해가 안 된다.” 그동안 서울동부지검의 행보를 보면 선배 검사의 혹평이 지나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추 장관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관련 의혹이 해소되지 않자 나흘 뒤인 올 1월 3일 야당은 검찰에 추 장관 등을 고발했다. 일주일 뒤 서울동부지검장이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영전했다. 국방부로부터 휴가 연장과 관련한 자료를 처음 제출받은 것은 2월 25일이었다. 다시 두 달 뒤인 4월 28일 서울동부지검장이 법무부 차관으로 승진하면서 검사장이 한 번 더 바뀐다. 약 한 달 뒤인 5월 25일에야 첫 참고인 조사가 시작되고, 서 씨의 군 복무 당시 군 관계자 5명을 6월 26일까지 한 차례씩만 조사했다. 서 씨는 그때까지 조사하지 않았다. 전현직 검사들이 모두 “이번 고발 사건은 아무리 길어도 한 달이면 충분하다”고 평가하는데, 수사가 서 씨 출석 앞에서 갑자기 멈춘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 등의 변명이 수사팀에서 나오지만 궁색해 보인다. 서 씨의 진료기록 등에 대한 첫 압수수색은 현 검사장이 부임하기 닷새 전인 8월 초순에야 실시됐다. 수사 속도보다 수사 과정은 더 석연찮다. “추 장관의 보좌관이 전화를 걸어 휴가 연장을 문의했다”는 군 관계자 2명의 핵심 진술이 조서에서 빠진 것이다. “어떤 근거로 그런 얘기를 하느냐”고 묻고, “기억이 뚜렷하지 않다”고 답변하면 그대로 적으면 되는 기본적인 책무를 어긴 것이다. 조서 누락은 검찰 수사에 대한 불신의 상징과도 같은데, 장관을 상대로 한 수사에서 그런 결정적인 실수를 한 것은 수사 의지를 근본부터 의심하게 만들었다. 차일피일 수사 종결을 미루다가 늑장·부실 수사 의혹이 제기되자 조서 누락에 책임이 있는 검사를 다시 수사팀으로 불러들인 건 가장 황당한 일이다. “과거에는 조서 누락 경위가 허위공문서 작성인지를 수사하는 것으로부터 재수사가 시작됐다”는 선배 검사의 말이 무겁게 느껴진다. 서울동부지검이 뒤늦게 검사 수를 늘리고, 수사 속도를 내고 있지만 어떤 결과를 내놓더라도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검찰 안팎에서 특별수사팀과 같은 독립된 수사팀 구성에 대한 요구가 있지만 승인권자인 추 장관은 이를 자청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검찰개혁이 국민의 뜻이고, 저의 운명적 책무라고 생각한다. 기필코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는 엉뚱한 얘기만 하고 있다. 선배 검사 중 한 명은 “검찰을 삼류(三流)로 떨어뜨리는 게 목적이라면 검찰개혁이 맞겠다”고 힐난했다. 흠결은 있었지만 그래도 대통령의 아들과 대통령 등 살아있는 권력 수사에 두려움이 없었던 검찰이었다. 선배들의 고언을 현직 검사가 새겨들어야 한다. 국민적 의혹을 외면한 검찰에 미래는 없다.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0-09-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대법원장은 ‘법관 린치’에 침묵해선 안 된다[오늘과 내일/정원수]

    “100명의 시위를 허가해도 취소된 다른 시위와 합쳐질 것이라는 상식적 판단을 하지 못하고, 기계적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내세운 무능은… 왜 그들의 잘못은 어느 누구도 판단하지 않는가.” 광복절 당일 동화면세점 앞에서의 집회 2건을 허가한 서울행정법원 A 부장판사에 대한 해임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의 일부다. A 부장판사는 집회 전날 결정문을 통해 “8월 1, 7일 서울에서 2000명과 1만 명 규모의 집회가 각각 개최됐고, 각 집회로 인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확산되었다는 사정을 알 수 있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 등을 이유로 집회를 금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랑제일교회 교인 등을 포함한 광화문 집회발 감염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청원에는 34만 명 이상이 동의했다. A 부장판사뿐만 아니라 올 4월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담임목사의 조건부 보석을 허가한 서울중앙지법 B 부장판사의 프로필 등이 인터넷에 공개됐다. 두 부장판사는 요즘 동료 법관들의 위로 전화를 자주 받는다고 한다. 2017년 8월 청와대 국민청원이 생긴 이래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이나 정치인, 기업인 등에 대해 판결한 법관 10명 이상이 해임 대상으로 거론됐다. 2018년 2월 청와대는 “사법권은 다른 국가권력으로부터 분리된 권력이다. 청와대가 해결사가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답변했지만 해임 요구 청원은 그 뒤에도 멈추지 않고 있다. 여권에서도 법관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국회에서 “결과적으로 적절치 않은 결정이었고, 잘못된 판단을 한 것”이라고 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사법당국이 책상에 앉아서만 그럴 게 아니라 국민과 협조할 땐 해야 하지 않느냐. 사태를 안이하게 판단한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한 여당 의원은 감염병예방법상 집회 제한이 내려진 지역의 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해당 판사의 이름을 붙여 발의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첫 제동을 건 것은 변호사 단체였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달 31일 성명을 통해 “법원의 집회 허가 결정의 옳고 그름을 떠나 법관 개인에 대한 공격과 비난이 지속된다면 법관으로서는 소신을 지키기 어렵다”면서 “여론에 영합한 판단을 내리게 될 위험도 있다”고 밝혔다. 입장문을 공개해야 한다는 일부 회원들과 지방변호사단체의 요구가 있었다고 한다. 법관들은 김명수 대법원장의 침묵을 아쉬워하고 있다. 한 법관은 “법관의 독립 침해를 보호하는 것이 곧 사법부 독립 아니냐”고 했다. 법관이 린치를 당하고 있는데 방패막이 역할을 해야 할 대법원장이 가만히 있는 것에 대한 불만이다. 판사 개인이 곧바로 여론에 노출되면 법관이 재판을 할 때 여론을 의식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결국 사법부의 위기가 찾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사에서 “대법원장으로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온몸으로 막아 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여권의 법관 개인에 대한 공격에 김 대법원장은 아예 침묵하거나 한 박자 늦게 입장을 내놨다. 지난해 2월 김경수 경남도지사에게 실형을 선고한 1심 재판장에 대한 여권의 공격이 거세졌을 때 김 대법원장은 “개개 법관의 공격으로 나아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하지만 “판결 내용이나 결과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은 허용돼야 한다”는 취지로도 말해 법관들로부터 너무 원론적인 발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25일 임기 절반인 3년을 넘기게 되는 김 대법원장이 사법권 독립에 대한 단호한 메시지를 내놓길 기대한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0-09-0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국회의원은 예외적 국민이 아니다[오늘과 내일/정원수]

    “다소 억지스러운 검찰 수사 결과 발표를 납득하기 어렵다.” 손혜원 전 의원은 지난해 6월 부패방지권익위법 및 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자 강하게 반발했다. 두 달 뒤 1심 첫 공판에 출석한 손 전 의원은 “(부동산 매입에 활용된 문서들이) 보안자료가 아님을 재판을 통해 명명백백하게 밝히겠다”고 했다. 그의 언급대로 재판의 핵심 쟁점은 손 전 의원이 국회의원 재임 시절인 2017년 5월과 9월 각각 전남 목포시에서 받은 도시재생사업 관련 자료 2건이 보안자료에 해당하느냐였다. 12차례의 공판기록과 판결문 등을 보면 1심 재판부가 12일 손 전 의원에게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한 이유를 알 수 있다. 대통령선거 사흘 뒤인 2017년 5월 12일. 손 전 의원은 목포시장을 시장실에서 만나 “국토교통부가 주관하는 도시재생뉴딜사업에 목포시가 선정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다. 손 전 의원은 같은 해 4월 9일부터 대선 전날인 5월 8일까지 약 한 달 동안 더불어민주당의 대선후보 홍보부본부장 자격으로 ‘내 삶을 바꾸는 정권교체 시리즈’를 발표했는데, 그 첫 번째가 도시재생사업이었다. 손 전 의원은 같은 해 5월 18일 목포시장을 커피숍에서 만나 간담회를 가진다. 이때 ‘목포시 도시재생 전략계획’이라는 문서를 처음 받는다. 사업구역이 명시된 자료였다. 같은 해 9월 14일에는 목포시의 도시재생과 담당자로부터 ‘도시재생뉴딜사업’이라는 제목의 PPT 파일을 이메일로 받는다. 국토부에 제출할 예정이던 이 자료엔 구역계와 단위사업 내용 등이 들어 있었다. 손 전 의원이 보안자료 2건을 입수한 시점에 일반 국민의 정보 접근은 철저하게 차단됐다. 서울 거주 국민이 같은 해 6월 도시재생 관련 자료를 정보공개 청구하자 목포시는 “행정계획이 수립되고 있다”며 비공개했다. 2017년 9월∼2018년 2월 5차례의 도시재생사업 관련 자료 공개 요구에도 “투기와 매점매석 가능성이 있다”며 거부했다. 2017년 9월 목포시의 주민설명회에서는 관련 자료가 아주 예민하다면서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것을 금지했다. 2017년 11월에는 목포시가 외부 컨설팅 위원들에게 ‘일체의 내용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으며 철저히 비밀에 부치겠다’는 서약서를 받았다. 1심 재판부는 “2017년 12월 14일 국토부가 목포시를 포함한 도시재생사업 대상지 68곳을 선정해 발표하고, 거기에 사업의 내용과 구역계가 포함돼 있어 비밀성을 상실하였다”고 판단했다. 손 전 의원은 2017년 6월부터 2019년 1월까지 보안자료 구역 안에 있는 토지 23필지 등을 재단과 지인 명의로 매입했다. 1심 재판부는 손 전 의원이 보안자료의 비밀성이 유지될 때 매입한 6필지 등을 의정 활동 중 입수한 비밀정보를 활용한 투기로 분류해 몰수 명령을 내렸다. 1998년부터 시행된 정보공개법 5조는 ‘모든 국민은 정보의 공개를 청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되어 있다. 모든 국민에게 줄 수 없는 비공개 대상 8가지 중 하나가 ‘공개될 경우 부동산 투기, 매점매석 등으로 특정인에게 이익 또는 불이익을 줄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다. 국민이 받을 수 없는 자료라면, 국민의 대표도 예외 없이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1심 재판부는 “공직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한 사건”이라며 “수사가 개시된 이래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이 사건의 범행을 극구 부인하는 등 개전의 정이 보이지 않는다”며 손 전 의원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아직 불복 절차가 남아있지만 이율배반적인 행위에 대해 국민에게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다. 특권적 국민 같은 모습에 국민들은 더 화가 난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0-08-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국가인권위원회, ‘최후의 보루’ 될까[오늘과 내일/정원수]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69)은 지난달 12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했다. 발인 전날이었다. 1991년 한국 최초의 성폭력 전문 상담기관인 한국성폭력상담소를 만든 최 위원장은 2년 뒤인 1993년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의 공동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미국에서 상원의원 비서의 성희롱이 이슈가 됐다”며 의욕을 보인 건 당시 변호인단 중 한 명이었던 박 전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최 위원장은 “탁월하면서도 헌신적”이라며 박 전 시장을 극찬했다. 최 위원장은 국가인권위원장을 맡기 전 박 전 시장의 서울시와 자주 교류했다. 2012년 10월엔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이사를, 2016년 2월엔 서울시 인권위원장을 지냈다. 최 위원장이 빈소를 다녀가고 이틀 뒤인 14일. 국가인권위 홈페이지에는 박 전 시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경찰에 고소한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부르는 공지사항이 올라왔다. 서울시와 여권 등에서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불러 ‘2차 가해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진 시점이었고, 특히 인권 업무를 담당하는 국가인권위의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 다음 날 ‘피해 호소인을 피해자로 고쳐 달라’는 진정이 접수된 뒤에야 피해자로 용어를 바꿨다. 다시 보름 뒤인 지난달 30일 최 위원장과 상임위원 3명이 참석한 국가인권위 상임위원회에서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 사건에 대한 직권조사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보도자료의 제목은 ‘박 전 시장의 성희롱 등에 대한 직권조사 실시’였다. 직권조사팀의 조사 대상도 △서울시장의 성희롱 등 행위 △서울시의 성희롱 등 피해에 대한 묵인 방조와 그것이 가능하였던 구조 △성희롱 등 사안과 관련한 제도 전반과 개선 방안 등이었다. 신체적인 접촉을 의미하는 성추행이란 말이 사라진 것이다. 국가인권위법상 성희롱에는 위력에 의한 성추행 등이 포함된다는 것이 인권위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63개 조항의 국가인권위법 전체를 읽어봐도 성희롱에 성추행이 포함된다는 구절이 없었다. 일련의 과정은 국가인권위의 진정성마저 의심하게 만든다. 최 위원장뿐만 아니라 A 상임위원도 여성단체 활동가 출신이다. A 위원은 서울시의 인권위원을 지냈고, 실종 직전 박 전 시장과 통화한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 박 전 시장에게 ‘불미스러운 일’을 처음 보고한 서울시 임순영 젠더특보 등과도 가깝다. 피해자들이 제출한 직권조사 요청서에 ‘고소 사실이 박 전 시장에게 유출된 경위’도 포함돼 있는데 남 의원과 임 특보도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 직권조사 결과를 A 위원 소관인 차별시정위원회가 검토할 경우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제척 얘기가 전혀 없다.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 사건은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경찰 수사가 막혀 있고, 서울시의 자체 진상규명조사단은 출범조차 못 했다. 피해자 측이 고심 끝에 국가인권위를 최후의 보루로 생각하고, 진정을 낸 것이다. 1998년부터 국가인권위법 제정과 설립 과정에 참여하고, 국가인권위 초대 사무총장과 2기 상임위원을 지낸 최 위원장의 3년 임기는 국가인권위가 출범 20년을 맞이하는 내년 9월에 끝난다. 최 위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때 친여권 성향이라는 공격에 “저는 성폭력 문제도 처음으로 제기하면서 굉장히 많은 사회적 비난 그리고 의심을 겪으면서 지금까지 왔고, (앞으로) 차별 없는 사회를 위해 소신껏 하겠다”고 답했다. 이 발언으로 피해자보다 권력에 가깝다는 비판을 받았던 인권위를 정상화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이번에야말로 국가인권위가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길 기대한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0-08-0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청와대 直報 관행 바꿔야 경찰이 산다[오늘과 내일/정원수]

    “근거가 약한 점이 있어 근거를 새롭게 만드는 등 개선할 필요가 있다.” 김창룡 경찰청장 후보자는 20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소 사실을 청와대에 당일 보고한 근거를 묻는 야당 의원의 질의에 서면으로 이렇게 답했다. 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도 “경찰청에 외부기관 보고를 명시적으로 규정한 규칙은 없다. 향후 외부 보고 관련 사항은 규칙 등을 명확하게 정비하겠다”고 했다. 피해자 A 씨가 8일 오후 4시 30분경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하고, 경찰 조사를 받던 당일 오후 7시경 청와대 국정상황실에 관련 내용이 직보(直報)됐다. 박 전 시장은 같은 날 측근들과 대책회의를 했고, 그 다음 날엔 비서실장을 불러 “여성단체가 문제를 제기해 심각하다”고 언급한 뒤 실종됐다. 이 때문에 성추행 의혹의 본질보다 오히려 성추행 사건의 수사 기밀 유출 과정이 더 주목받고 있다. 김 후보자가 언급한 ‘약한 근거’는 정부조직법과 경찰청 훈령인 범죄수사규칙 등 두 가지다. 우선 정부조직법 제11조 제1항은 ‘대통령은 정부의 수반으로서 법령에 따라 모든 중앙행정기관의 장을 지휘·감독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국정운영 체계에 따라 하급 기관장이 상급 기관인 청와대에 주요 사건을 보고했다는 것이다. 경찰의 업무는 경비와 교통, 정보, 수사 등 다양하다. 관계 기관과의 공동 대처가 필요한 사항을 보고한 것이라면 몰라도 이 조항이 밀행성이 필수인 수사 기밀까지 청와대에 실시간으로 보고하라는 규정이라고 해석하기는 무리다. 그 다음 경찰청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465쪽 분량의 범죄수사규칙을 아무리 뜯어봐도 청와대 보고 조항은 없다. 이 규칙은 주요 수사 정보를 상부에 보고해 신속 정확한 지휘를 받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지휘 보고의 최종 종착지는 경찰청이다. 그런 측면에서 범죄수사규칙은 대검이 검찰 외부인 법무부에도 수사 내용을 보고하도록 하고 있는 법무부령인 검찰보고사무규칙과도 다르다. 검찰보고사무규칙은 전두환 전 대통령 재임 당시인 1981년 12월에 생겼다. 법무부가 검찰로부터 보고받은 수사 정보가 그대로 청와대로 전달돼 정권에 의한 검찰의 통제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비판을 받았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의 초대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검찰을 지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그 이후 청와대는 검찰 수사 정보를 보고받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경찰은 어떤가. 여전히 매일 수많은 팩스가 청와대 국정상황실로 전송되고, 여기엔 경찰에서 수집한 수사 기밀이 들어있다. 이 수사 기밀이 사정기관의 업무를 총괄하는 민정수석실 산하 반부패비서관실이 아닌 현직 경찰이 파견 중인 국정상황실로 먼저 보고되는 것도 정상적이지 않다. 경찰이 수사 기밀을 관행적으로 청와대에 보고해 구설에 오르거나 결국 지휘부가 형사처벌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24일 취임할 예정인 김 후보자는 평소에 법과 규정을 유독 강조한다고 한다. 본인의 소신대로 청와대 보고 관련 규정부터 재정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집회 시위나 민생 범죄 발생 등 치안 정보는 청와대와 공유하되 수사 기밀은 인사 검증 등 청와대의 요구가 있을 경우에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만 보고하도록 해야 한다. 경쟁 수사기관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검찰 등이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국민 요구를 따라가고 있는데, 경찰만 뒤처져서도 안 된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위상이 크게 높아진 경찰이 살 길은 청와대에 의존하지 말고, 국민의 편에서 수사해 국민의 신뢰를 더 얻는 것밖에 없다.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0-07-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명수 대법원장의 5번째 ‘대법관 독립 제청’[오늘과 내일/정원수]

    24일 대법원에서 열릴 예정인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에는 9월 8일 6년 임기가 끝나는 권순일 대법관(61·사법연수원 14기)이 참석한다. 선임대법관 자격으로 법원행정처장과 함께 당연직 대법관추천위원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2011년 7월 법원조직법 개정으로 선임대법관이 당연직 대법관추천위원을 맡게 되면서 10년째 퇴임을 앞둔 대법관이 자신의 후임을 뽑는 독특한 전통이 생겼다. 이번에는 국민 공모 등을 통해 45세 이상의 현직 법관 23명과 변호사 5명, 교수 2명 등 후보군이 30명으로 좁혀졌다. 대법관추천위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한 인사는 “자신의 후임에 대해 의견을 활발하게 개진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인사는 “대법원의 사정을 잘 아는 비중 있는 전임자 얘기여서 추천위원들이 귀담아듣게 된다”고 했다. 회의석상에서 선임대법관은 자격 요건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법조인 이름을 거명하면서 적격과 부적격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고 한다. 회의 막판에는 최종 후보군을 3∼5배수로 압축하는 과정에 투표권을 직접 행사한다. 이 때문인지 전임과 후임 사이에는 정통 법관, 고학생(苦學生) 신화, 여성 등으로 유사점이 적지 않은 경우가 많다. 권 대법관은 ‘민법의 대가’로 불린 양창수 전 대법관의 후임이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했지만 보수와 진보 성향을 넘나들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에 대한 일본 전범 기업의 배상 여부에 관한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다수의견이 아닌 소수의견에 섰다. 하지만 ‘성인지(性認知) 감수성’이라는 판결 기준을 새로 제시했고, 태어난 아이의 ‘출생 등록 권리’를 기본권으로 인정한 첫 판결도 했다. 2017년 9월 취임한 김명수 대법원장은 6년 임기 동안 13명의 대법관을 제청하게 된다. 김 대법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대통령의 뜻에 어긋나더라도 제청권을 독립적으로 행사하겠다”고 했고, 그 이후 “청와대로부터의 제청권 독립”을 수차례 강조했다. 그 결과는 어떨까. 김 대법원장은 2017년 11월(안철상 민유숙), 2018년 7월(김선수 이동원 노정희), 2018년 10월(김상환), 2020년 1월(노태악) 등 모두 4차례 대법관 임명 제청권을 행사했다. 첫 번째는 비서울대와 여성 법관, 두 번째는 재야 변호사와 비서울대, 여성 법관, 네 번째는 비서울대 등이었다. 이른바 ‘서오남’(서울대 출신 50대 남성) 출신인 김상환 대법관의 세 번째 제청만 예외였다. 이번에도 원칙과 예외 중 선택해야 한다. 우선 권 대법관의 후임인 만큼 정통 법관이 차지해야 한다는 법원 내부 여론이 있고, 재판 능력이 검증된 후보들이 몇몇 눈에 띈다. 김 대법원장이 사석에서 “내가 아는 판사 중 최고”라고 극찬했다는 우리법연구회 출신 법관, “김 대법원장에게만 사법부 개혁을 맡기지 말자”며 사법개혁의 새 주체를 자처한 진보 성향 법학자도 있다. 전체 법관의 30% 이상이 여성인 시대에 대법관 중의 여성 비율(23%)은 30% 미만이어서 여성 대법관이 추가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 대법원장은 제청 직후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를 요구하는 국민의 기대를 각별히 염두에 두고 선정했다”는 입장을 자주 밝혔다. 하지만 상징적인 다양성이 아니라 실질적인 공정함과 사회 변화를 이끌 수 있는 판결을 하는 대법관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법원 안팎의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올 9월 김 대법원장은 임기 반환점을 돈다. 공언했던 대로 이번에야말로 ‘좋은 (대법원) 재판’을 견인할 후보자를 선택해 대법원이 긍정적으로 바뀌길 기대한다.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0-07-0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검찰총장 임기제는 ‘김영삼-노무현법’이었다[오늘과 내일/정원수]

    “검찰총장의 임기제를 채택하는 것만이 검찰의 준사법적 기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이 되기 때문에 이 문제는 여러 각도로 검토해서 신중히 결정해야 될 문제라고 생각이 됩니다.” 1987년 5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한 야당 의원이 검찰총장 임기제 도입에 대한 의견을 묻자 당시 김성기 법무부 장관은 부정적으로 답변했다. 야당 의원은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안 보고 소신껏 일한다는 사실을 내외에 과시할 생각은 없느냐”고 했지만 김 장관은 “(임기제가 없는) 현행 제도는 (1949년) 검찰청법이 제정된 이래 40년 (가까이) 시행돼 온 제도”라고 강조했다. 그로부터 약 1년 6개월 뒤인 1988년 11월 여소야대 구도이던 제13대 국회에서 검찰총장의 임기를 2년으로 하는 검찰청법 개정안이 제출됐다. 타자기체와 손 글씨가 빼곡한 20쪽 분량의 당시 법률 제출안을 보면 “검찰에 대해서 권력으로부터 독립이 강력히 보장되어야 한다”는 제안 이유가 기재되어 있다. “총장 임기제를 도입해 검찰이 정치권의 풍향에 좌우되지 않고 검찰권을 법대로 행사하도록 하라”는 재야 변호사들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었다고 한다. 정부도 태도를 바꿔 검찰총장 임기를 2년으로 하되 중임이 가능하다는 내용의 법률안을 뒤늦게 제출했다. 하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중임을 금지하는 의원 입법안을 수정안으로 채택하기로 했다. 본회의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한 수정안은 1988년 12월 말부터 30년 넘게 시행되고 있다. 이 법안 발의에 누가 참여했는지 궁금해서 명단을 확인해 보니 여야 국회의원 299명 중 60명이 정파를 떠나 발의자로 참여했다. 공동 발의자 명단엔 당시 국회의원 신분이던 김영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름도 있었다. 그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검찰총장 임기제를 도입하자고 국회에서 제안하고, 이 법안의 통과를 주도한 정치인이 21대 국회 거대 양대 정당의 상징과도 같은 두 전직 대통령이었던 것이다. 만약 법안 발의자 이름으로 법안명을 정하는 미국 의회 스타일로 법률안을 다시 명명한다면 검찰총장 임기제 법안은 ‘김영삼법’이자 ‘노무현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른바 4대 권력기관으로 불리는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국세청 중 경찰은 검찰에 이어 두 번째로 경찰청장 임기제를 시행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12월 경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기 위해 경찰청장의 2년 임기를 보장하는 내용의 경찰청법이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다음 달 23일 제도 시행 이후 역대 네 번째로 임기를 채울 것으로 보인다. 정권교체기에도 임기를 지킨 이철성 전 경찰청장에 이어 문재인 정부에서만 두 번 연속 경찰청장 임기가 보장되는 이례적인 장면이 나오는 것이다. 민 청장을 제외하면 과거 10명의 경찰청장 중 3명만 임기제를 지켰다. 그런데 권력기관장 임기제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검찰 쪽은 경찰과 사정이 정반대다. 일부 여권 인사가 지난해 7월 취임해 아직 임기가 만 1년이 안 된 윤석열 검찰총장의 조기 사퇴를 노골적으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 대표까지 나서 “앞으로는 윤 총장의 거취를 당에서 거론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진화에 나섰을 정도다. 임기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권력기관장의 임기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검찰의 잘못에 대해서는 정치권이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인 1988년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당의 요구로 검찰총장 임기제가 도입된 취지와 배경 등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시대를 앞서간 그 입법정신을 유지하도록 정치권이 경쟁해야지, 앞장서 훼손하면 되겠는가.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0-06-2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정치 문화를 제대로 바꿀 수 있는 재판[오늘과 내일/정원수]

    “의원 아닌 사람 자꾸 의원이라고 하지 마세요.” 20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만료된 지 사흘 만인 이달 1일 서울남부지법의 형사법정. 선거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 통과를 위한 패스트트랙 지정을 저지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된 전직 야당 의원의 변호인이 ‘○○○ 의원’을 반복하자 재판장이 힐난하듯 이렇게 말했다. 4·15총선으로 기소 당시 현직 의원이던 27명 중 18명은 재판 도중 전직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재판부와 변호인의 신경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 2월 17일부터 이달 1일까지 세 차례 공판준비기일이 긴장감 속에서 진행됐다. 첫 기일에 변호인이 “총선 전까지 재판을 준비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하자 재판장이 “의원이라도 특권을 가질 순 없다”고 했다. 두 번째 기일에는 변호인이 “증거 영상을 분석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했지만 재판장은 “공판준비기일이 피고인들의 재판 지연의 도구가 되어선 굉장히 곤란하다”고 비판했다. 한국 정치의 1번지 여의도를 관할하는 서울남부지법에선 요즘 판결의 중요성이라는 측면에서 말 그대로 ‘세기의 재판’이 열리고 있다. 재판 당일엔 검사 10여 명과 그 2∼3배의 변호사가 마스크를 쓴 채 법정을 가득 채운다. 규모는 작지만 약 10년 전에도 비슷한 재판이 있었다. 2009년 1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상정에 반대하는 민주노동당 당직자들을 국회사무처가 강제로 해산하자 민노당 강기갑 전 의원이 국회 사무총장실을 찾아가 공중 부양을 하는 등 행패를 부린 사건이 있었다. 이듬해 1월 서울남부지법의 1심 단독 재판부는 “사무총장이 사무실에서 신문을 보는 행위는 공무라고 볼 수 없다”는 생경한 논리를 내세워 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된 강 전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과 대법원이 300만 원 벌금형의 유죄로 뒤집었지만 대법원 확정 판결 약 한 달 전인 2011년 11월 22일에는 같은 당의 김선동 전 의원이 국회 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리는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강 전 의원의 10년 전 재판과 올해 패스트트랙 관련 재판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우선 단독재판부가 아닌 합의재판부가 재판을 맡았다. 형량만 놓고 보면 단독재판부에 맡겨도 되지만 국회법상 회의방해죄에 대한 판례가 없다는 이유 등으로 합의재판부에 사건이 배당됐다. 판사 1명이 재판을 하는 것보다는 3명이 모여서 숙의하다 보면 더 좋은 재판을 할 수 있다. 여당 의원들이 패스트트랙 충돌 당시 폭력 혐의로 기소된 사건도 다른 합의재판부가 재판을 하고 있다. 또 하나는 국회법이 완전히 달라졌다. 2012년 5월부터 시행된 국회법은 의장석을 점거하거나 회의를 방해하는 행위를 윤리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징계하도록 했다. 하지만 폭력국회 방지법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에 2013년 8월부터 회의방해 조항이 국회법에 추가됐다. 벌금 500만 원 이상이 선고되면 피선거권을 박탈하는 등 형사 처벌을 강력하게 하도록 한 것이다. ‘과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입법 논의 때 있었지만 ‘국회가 다시는 폭력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상징적인 조치로 법안이 여야 합의로 통과돼 현재까지 시행 중이다. 지난해 4월 패스트트랙 충돌 사태는 회의방해죄 기소 첫 사례를 불러왔다. 올 1월 검찰 기소 이후 6개월가량 공판준비기일만 열릴 뿐 첫 공판이 열리지 않고 있다. 어떤 결론이 나오든지 국회 내에선 최후의 저항수단이 폭력이 아니라는 점이 법원 판결로 명확해졌으면 한다. 후진적인 정치 문화를 제대로 바꿀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법원의 재판은 투표만큼 중요하고, 강력하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0-06-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1005억 원[오늘과 내일/정원수]

    “제보자가 ‘내일 한강에 집채만 한 고래가 나타날 것’이라고 합니다.” 2013년 9월 4일 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징금 수사를 취재하던 후배 기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제보 내용을 알려왔다. 전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 씨가 그 다음 날 1672억 원의 잔여 추징금 완납 세부계획서를 들고 검찰에 출석한다는 내용이었다. 그해 7월부터 시행된 이른바 ‘전두환 특별법’(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으로 당시 검찰은 대규모 압수수색을 하며 전 전 대통령 측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었다. 하지만 ‘돈이 없어 못 낸다’며 1997년 확정 판결 이후 16년 동안 추징금 완납을 거부하던 전 전 대통령 측이 먼저 추징금 완납 의사를 밝히리라고는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마치 바다가 아닌 한강에 고래가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반신반의했지만 같은 달 10일 장남 재국 씨가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국민 여러분께 사죄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공개하면서 이 제보 내용은 사실로 밝혀졌다. 재국 씨는 “추징금 환수 문제와 관련해 그간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데 대해 가족을 대표해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했다. 이어 “부친은 저희가 할 수 있는 한 당국 조치에 최대한 협조하라고 말씀하셨고, 저희도 그 뜻에 부응하고자 했으나 해결이 늦어진 데 대해 대단히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머리를 숙였다. 재국 씨가 당시 검찰에 제출한 추징금 자진 납부 목록에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사저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매입 자금이 전 전 대통령의 불법 자금인지를 직접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고도 볼 수 있었지만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놓는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마지막에 목록에 넣었다고 한다. 당시 검찰 수사팀 관계자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정리하려고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아직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입장문 발표 이후에도 666억5000만 원의 추징금만 더 걷혔을 뿐이다. 지금까지 2205억 원의 추징금 가운데 54.4%인 1199억5000만 원만 추징됐고, 여전히 절반 가까운 1005억5000만 원이 미납 상태다. 시간을 끈다고 추징금 납부 의무에서 벗어날까. ‘전두환 특별법’으로 추징금의 소멸시효는 3년에서 10년으로 늘어나 있다. 추징금이 1원이라도 집행되면 그 시점으로부터 자동으로 시효가 10년 더 길어지는 것이다. 검찰은 재국 씨가 주주인 출판사에서 2022년 10월 30억 원을 추징하도록 예정되어 있다. 최소 2032년 10월까지 추징금 납부 의무가 유효하다는 의미다. 올해 89세인 전 전 대통령이 101세까지 생존하더라도 추징금을 내야 한다는 얘기다. 이것도 부족하다고 생각해서인지 국회에서는 전 전 대통령의 사후에도 추징금을 계속 환수하기 위한 ‘제2의 전두환 특별법’ 입법 움직임까지 있다. 전 전 대통령 측은 5·18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왜곡하는 내용의 회고록을 2017년 4월 펴냈다. 이듬해부터 추징금 완납 약속을 뒤집고 부인과 며느리, 전 비서 등의 명의로 된 연희동 사저에 대한 추징금 납부를 거부하는 불복 소송을 하고 있다. 궁지에 몰렸을 때 잠깐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예전처럼 고개를 든다면 누가 그 진정성을 믿어주겠나. 지금이라도 23년 동안 해묵은 과제인 추징금 완납부터 해결하고, 5·18 명예훼손 관련 법정에서 광주 시민들에게도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접을 수 있었던 기회를 여러 번 걷어찼던 전 전 대통령에게는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다. 자세를 더 낮추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수 있다. 옛말대로 ‘높은 곳에서는 추위를 이길 수 없다(高處不勝寒)’.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0-05-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초대 공수처장, 대통령의 ‘인생 인사’여야 한다[오늘과 내일/정원수]

    ‘부정부패를 엄정하게 수사하고, 청렴성과 공정성이 투철하며, 풍부한 법률 지식과 행정 능력을 갖춘….’ 대한변호사협회가 올 3월 16일 전국 2만3000여 회원들에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초대 처장 후보를 추천해 달라며 보낸 메일 내용 중 일부다. 이 문구만 보면 마치 전지전능한 법률 전문가를 찾는 것 같다. 게다가 임기 3년을 고려한다면 만 62세 미만, 15년 이상 경력의 판사 검사 변호사 등 조건이 까다롭다. 검사 출신 변호사는 퇴직한 지 3년이 지나야 한다. 추천 단계에서부터 “할 만한 사람이 고사한다”는 말이 나왔는데, 지난달 10일까지 1차 추천을 마감한 결과 변협에 접수된 명단은 두 자릿수에 불과했다. 변협은 7일 첫 회의를 했지만 아직 후보군의 면면은 베일에 싸여 있다. 당사자의 동의와 추가 추천, 검증을 거쳐야만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장은 대통령과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 6부 요인을 모두 수사할 수 있는 자리다. 행정부 소속인 검찰총장과 달리 공수처장은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다. 또 대통령과 대통령비서실은 공수처장에게 수사에 관한 보고나 자료 제출 요구, 지시나 의견 제시를 일절 못 하게 되어 있다. 이 때문에 공수처장 인사가 공수처의 성패를 좌우할 준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공수처가 독립성과 중립성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공수처장 인사 과정에서 다음 두 가지 원칙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무엇보다 야당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공수처장 추천위원은 7명인데, 법무부 장관과 법원행정처장, 변협 회장 외에 여야 교섭단체가 각각 2명을 추천하도록 되어 있다. 추천위원 7명 중 6명이 동의해 후보 2명을 대통령에게 추천하면, 대통령이 그중 한 명을 임명하는 구조다. 야당 추천위원 2명이 반대하거나 야당 몫 1명과 전문가그룹 1명이 다수에 맞서면 인사 절차가 멈추게 된다. 처장의 제청으로 차장이 임명되기 때문에 처장이 없으면 공수처의 사무를 지휘할 1, 2인자가 없는 불임 조직으로 남게 된다. 법관 출신의 변호사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명박 정부 당시 김황식 전 대법관을 국무총리로 발탁할 때 아이디어를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반대 성향의 양승태, 김명수 대법원장 인사청문 당시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장을 맡아 인사 검증을 원만하게 해낸 경험도 있다. 야당의 비토권 인정이 아니라 추천권까지 주더라도 일방적인 인사를 고집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 변호사단체의 광범위한 추천과 자체 검증을 존중해야 한다. “누가 되든 변호사단체 회원 중의 한 명”이라고 하는데, 그 단체의 의견을 듣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행히 변협 추천 과정에서도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 싶은 후보가 일부 추천된다고 한다. 미국도 연방대법관 등 중립성이 요구되는 법률가를 추천할 때는 가장 먼저 변호사단체의 의견을 듣고, 그렇게 추천된 인사는 의회의 인사 동의로 이어지는 전통이 있다. 국회 규칙으로 공수처 추천위 세부 절차를 정할 예정인데, 변협의 후보 추천 절차를 존중해야 한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1801년 존 마셜을 연방대법원장에 지명했다. 이후 마셜은 연방대법원의 위상을 정립한 인물로 추앙받았다. 애덤스는 숨지기 전 그 인사를 회고하면서 “‘내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행동(the proudest act of my life)’이었다”고 했다고 한다. 검찰개혁과 공수처 설치는 문재인 대통령의 인생 목표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문 대통령이 훗날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초대 공수처장 인사를 해야 공수처가 성공할 수 있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0-05-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전국민 고용보험이 복지국가 핵심… 21대 국회 1호법안 돼야”[파워인터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국내에서 처음 발생한 올 1월 20일 이후 11일로 113일째다. 수도 서울의 방역과 피해 대책 등을 지휘하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8일 서울시청의 6층 집무실에서 만났다. 이날보다 2일 전 이태원 클럽 방문자 가운데 처음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코로나19 방역 전선에 다시 긴장감이 감돌았다. 2011년 10월부터 8년 7개월 동안 서울시정을 맡고 있는 박 시장은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때는 이 정도 되면 끝나는 분위기였는데, 코로나19는 언제 어디에서 집단 감염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이게 코로나의 특징 중 하나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감염증 확산이 한순간이듯 차단 또한 신속해야 한다. 서울이 뚫리면 대한민국이 뚫린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역 감염 최소화와 함께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 시장은 “지금이야말로 전(全) 국민 고용보험 도입이 필요한 때”라며 “21대 국회의 1호 법안이 되도록 (가까운) 국회의원들과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 ―메르스 때와 비교하면 이번 대처는 어땠나. “메르스의 교훈이 우리에게 하나의 교과서가 됐다. 선제적 대응을 해야 한다는 것과 투명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당시 제가 ‘과잉대응이 늑장대응보다 낫다’, ‘투명성은 감염병의 특효약이다’ 같은 말을 했다. 이러한 원칙이 이번에는 현장에서 제대로 관철됐다고 본다.” ―그 이후 개정된 관련법의 도움을 받았나. “일부 있었지만 더 중요한 건 큰 철학과 원칙이 바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가 좀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 같은데, 우리는 첫 환자부터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가 긴장해서 초기부터 대응한 것이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크게 세 가지라고 보는데 첫째는 선별진료소를 만들어 누구나 검사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둘째는 확진자가 발생하면 주변 접촉자를 확인해 자가 격리한 것이다. 마지막은 이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시민들이 조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에선 그게 어떻게 가능했나. “밑바탕에는 국민건강보험이 있다. 민간보험에 의존하는 미국은 검사 한 번에 460여만 원을 내야 하기 때문에 검사를 함부로 못 한다는데 우리는 국민건강보험 덕분에 무료다. ‘K방역’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이미 우리 사회에는 선진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다.” ―코로나19 피해 최소화를 위한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대책도 잇따랐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정부보다 서울시가 먼저 준비했다. 소상공인의 고용 유지를 위해 70만 원씩 두 달간 지급하는 자영업자 생존자금은 전국적으로 서울 외엔 하는 곳이 없다. 특수고용직이나 배달대행 등 ‘플랫폼 노동자’ 지원도 서울시가 먼저 내놨다.”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대책은 대출, 금리 인하 등 간접적 지원책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서울시의 자영업자 생존 자금은 기존 정책과 달라 보였다. “항공사나 여행사처럼 피해가 큰 대기업은 정부가 신용을 공급해줘야 한다. 건실한 회사들이 위기여서 부도나는 것은 막아야 한다. 하지만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는 중앙정부가 일일이 도움을 주기 어렵다. 융자는 생명 연장에 불과하다. 그사이 고용 유지는 못 한다. 이들에게 고용 유지를 위해 70만 원씩 두 달 치를 지급하는 것은 지속적으로는 아니어도 생명 연장에는 상당한 도움이 된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소외된 프리랜서나 특수고용노동자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정치권 등에서 나오고 있다. “저는 이 자리에서 특별히 전 국민 고용보험을 도입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우리나라에 ‘나쁜 일자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 등은 고용보험도 안된다. 4대 보험이 보장되는 ‘좋은 일자리’와의 격차는 더욱 커진다. ‘당장 실현하기는 어렵다’는 반대 의견도 있지만 커다란 역사적 위기 속에서 기회와 변화의 에너지가 생긴다고 본다. 영국도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유명한 최초의 전 생애를 포괄하는 복지 시스템이 나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복지 수준이 가장 열악한 수준인 우리나라도 이번에 복지국가를 완성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핵심이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이다. 국민건강보험으로 K방역 모델을 만들었듯 사각지대에 있는 모든 계층을 끌어안는 ‘K고용’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재원 마련, 절차 등 난관이 많을 텐데….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우선 자영업자,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등으로 대상을 확대하고 징수 기준을 임금에서 소득 중심으로 바꾸면 가능하다. 징수 주체도 근로복지공단에서 국세청으로 바꾸면 된다. 이 세 가지만 실행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국회가 움직여야 한다. “저는 21대 국회가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을 1호 법안으로 추진했으면 한다. 이번에 들어간 저와 친한 의원들과 세미나도 하면서 밀어달라고 얘기해 보려 한다. 이번 총선의 민의는 ‘내 삶을 바꾸는 새로운 정치를 해 달라’는 요청이라고 생각한다. 광범위한 노동계층이 고용보험에서 배제된, 점점 더 차별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은 새로운 국회와 정부의 중차대한 임무라고 본다.” ―21대 국회에 ‘박원순계’로 분류되는 의원이 많다. “계라는 말은 구시대적 발상이고, 저와 서울시에서 비전을 가다듬었거나 그동안 삶의 궤적을 통해 함께한 의원이 많이 있다. ‘표준국가’를 향한 대전환의 길을 함께할 수 있는 분이 상당히 있는 것 같다.” ―지난달 27일 한 콘퍼런스에서 “민주화, 산업화를 넘어 표준국가의 시대로 가자”고 말했다. 표준국가론에 대해 설명해 달라. “몇 년 동안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의 사회는 어떠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했다. 표준국가는 우리가 표준을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자는 의미다. 우리는 늘 영국, 미국 등 서양을 따라가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세상을 보자. 뉴욕에서는 코로나19로 하루에 수백 명이 사망하는데 서울의 치사율은 (사망자 2명으로) 거의 제로에 가깝다. 중국은 도시를 봉쇄했고, 영국은 런던 지하철이 멈췄다. 하지만 우리는 개방적 체제와 민주주의 시스템, 시민들의 인식, 의료진의 실력이 아주 우수하다.” ―K방역 외에 다른 분야에서도 우리가 표준이라고 말하기는 이르지 않나. “어떻게 마음을 먹고, 결심하고, 노력하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한다.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이 최근 ‘서양 우월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글을 썼다.(본보 4월 11일자 A30면 참조) 값싸고 깨끗한 지하철, 와이파이 수준, 영화 ‘기생충’이나 방탄소년단(BTS)까지…. 이게 하루아침에 생긴 현상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이제 새로운 개념을 만들고 방향을 인도하는 선진국이 돼야 한다.” ―올 10월이면 시장 취임 만 9년이 된다. 서울시는 바뀌었는가. “과거 서울은 개발 시대를 거치면서 주로 하드웨어에 투자해왔다. 이제는 우리 시대의 담론이 토목이나 거대 하드웨어보다 삶의 질을 바꿀 수 있는 것에 있다고 본다. 빅데이터를 보면 소확행, 행복, 힐링, 치유 같은 단어들을 시민들이 많이 사용한다. 물론 제게도 개발주의 요구가 계속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난 8년간 시민 삶의 질을 바꾸는 게 서울시정의 중심이었다. 복지 예산은 취임 전의 3배 이상 늘었고, 나무 3000만 그루를 심는 게 목표였는데 이미 2500만 그루를 심었다. 지속가능한 미래도시를 위해 엄청난 투자를 했다. 시내를 걸어보면 안다. 다만 제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한 가지가 미세먼지다. 수천억 원씩 투자를 해도 아직까지 해결이 잘 안된다.” ―코로나19로 지역경제가 어렵다.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지방 없이 서울이 있을 수 없고 농촌 없는 도시가 있을 수 없다. 균형 발전이 대한민국을 더욱 건강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가처분소득을 늘릴 필요가 있다. 그 소득으로 소비를 늘려야 내수시장이 돌아가고 중소기업, 지방경제 등이 살아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정부 못지않게 지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가의 귀환, 정치의 소환, 지방자치단체의 발견’이라는 세 가지를 다시 보게 됐다는 사람들이 있다. 너무나 당연한 게 지자체는 주민들과 가까이 있고 현장에 있다. 무엇이 일어나는지 빠르게 파악할 수 있고, 문제가 무엇인지 간파하고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서 전 세계가 자치와 분권을 추진한다. 자치와 분권이 잘된 나라일수록 국가경쟁력이 높고 국민이 행복하다. 우리는 아직도 근본적으로 자치와 분권 실현이 잘 안되고 있다. 이것도 새 국회의 큰 과제 중 하나가 되리라고 본다.” 박 시장의 임기는 2022년 6월까지다. 다음 대선은 같은 해 3월에 치러진다. ‘만 10년인 내년 10월에도 시장 자리를 지킬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이 위기 상황에서 그런 생각을…. 서울시정을 이렇게 열을 토하면서 얘기했는데”라며 웃었다.● 박원순 서울시장△ 경남 창녕 출생(64세)△ 경기고, 단국대 사학과 졸업△ 제22회 사법시험 합격, 검사, 변호사△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2011년 10월∼현재 서울시장인터뷰=정원수 사회부장정리=박창규 kyu@donga.com·홍석호 기자}

    • 2020-05-1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라임과 삼지창 모자, 그리고 비밀대화방[오늘과 내일/정원수]

    잠적 100여 일 만인 24일 얼굴이 처음 공개된 라임자산운용의 전주(錢主)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46)이 썼던 모자엔 알파벳 7글자가 선명했다. VERUTUM. 낯선 브랜드여서 상호를 찾아보니 면세점 등에서 구할 수 있는 개당 8만 원 안팎의 모자라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람들의 눈에 더 띌 텐데, 지명수배자가 잠깐 외출할 때 굳이 고가의 이 모자를 착용해야 했을까. 투자자의 돈을 빼돌려 유흥주점 등에서 흥청망청하던 김 전 회장이 호화 도피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의혹에 설마 했는데, 이 모자 가격을 확인하고 의구심이 사라졌다. 모자 제조사의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브랜드 이름은 그리스 여신들이 몸에 지니고 다녔던 삼지창 모양의 무기를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부적처럼 쓰고 다니던 ‘삼지창 모자’에도 불구하고 김 전 회장의 도피 행각은 최근 중단됐다. 그와 함께 숨어있던 라임 이종필 전 부사장(42), 신한금융투자 심문섭 전 팀장(39)까지 이른바 라임 사태 3인방이 동시에 체포됐기 때문이다. 이들의 체포 과정은 첩보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했다. 무엇보다 라임 사태 전반을 6개월 이상 추적한 검찰이 아닌 경찰이 이들을 ‘일망타진’한 것부터가 반전이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수원여객 횡령 사건으로 김 전 회장의 오른팔로 불린 A 씨를 구속 수감했는데, 김 전 회장의 또 다른 측근 B 씨가 A 씨의 경찰 진술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A 씨 가족에게 접근한 것이다. 김 전 회장은 19일 B 씨와 서울 신촌의 한 음식점에서 만났고, 뒤늦게 이를 파악한 경찰은 주변 폐쇄회로(CC)TV 등을 모조리 추적해 김 전 회장이 서울 성북구로 이동한 것을 알게 됐다. 20명의 전담반을 구성한 경찰은 잠복 끝에 23일 오후 9시경 골목길에서 호출한 카카오택시를 타려던 김 전 회장을 현장에서 체포했다. 김 전 회장은 곧바로 수원의 경기남부경찰청에 호송돼 조사를 받았다. 경찰도 검거 작전이 끝난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1시간 정도 조사를 받던 김 전 회장은 갑자기 이 전 부사장 등과 함께 2주 정도 숨어 지내던 2층 단독 주택의 위치를 털어놨다. 황급히 서울 성북구로 되돌아간 경찰은 주택 안에 숨어 있던 이 전 부사장 등을 체포한 뒤 이들의 신병을 라임 사태를 수사 중인 서울남부지검에 넘겼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특이한 모자를 쓴 것이나 3명이 모여 있었던 것도 그렇고, 안 잡힐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 같다”고 했다. 라임은 사모펀드로 업종을 바꾼 지 3년 만에 자산 규모 5조 원이 넘는 국내 1위 헤지펀드 회사로 급성장했다. 이번에 붙잡힌 3명은 각각 라임의 전주, 설계자, 판매자로 역할을 나눈 주연급이다. 이들 외에도 서울 명동과 강남의 사채업자, 개미투자자를 울린 전문 기업사냥꾼, 연예기획사 대표 등 주연급 조연이 많다. 법조계에선 ‘1, 2년 정도 수사해야 할 정도’ ‘형사부 검사 4, 5명으로 수사할 수 없는, 예전 같으면 반부패수사부 2, 3곳이 투입될 사안’이라는 지적이 나오지만 아직 수사팀의 확대 개편 소식은 없다. 김 전 회장은 사업을 할 때 메시지 전달 과정 전체를 암호화하는 와츠앱, 텔레그램 등 보안 메신저를 통해 주요 인사들과 비밀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로비를 어마 무시하게 하는 회장님’으로 불린 김 전 회장의 로비 대상에는 분명히 정·관계 인사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이 꼬리를 물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 파견 행정관을 지낸 금융감독원 팀장급 간부 외엔 아직 드러난 게 없다. 김 전 회장의 행보를 알면 알수록 평범한 월급쟁이와 소상공인의 상대적 박탈감만 커질 것이다. 수사기관은 1조6000억 원대 투자 피해의 배후를 반드시 밝혀야 한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0-04-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수능의 공정성까지 도전받고 있다[오늘과 내일/정원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2005년 6월 시행된 200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모의평가 때였다. 수험생은 1교시부터 마지막 교시까지 OMR 답안지의 왼쪽 상단 필적 확인란 두 칸에 윤동주 시인의 ‘서시’ 한 구절을 한 글자씩 적어야 했다. 그해부터 지난해까지 수능 때마다 필적 확인란 기재는 유지되고 있다. 필적 확인란을 도입한 계기는 2004년 11, 12월 발생한 사상 초유의 수능 부정사건 때문이었다. 휴대전화를 이용한 부정행위와 대리시험 등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조직적 범행으로 314명의 성적이 무효 처리됐다. 수능 폐지 요구까지 나오자 이듬해 2월 당시 교육인적자원부는 “이 사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겠다”면서 수능 부정을 방지하기 위한 고강도 대책을 내놨다. 핵심은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시험 관리 감독 강화를 위해 시험실당 응시자 수를 기존 32명에서 28명으로 줄이고, 전자기기의 반입을 금지했다. 대리시험 응시 시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한 대책은 더 구체적이었다. 원서 접수 단계부터 본인 접수를 의무화하고, 기존 사진보다 큰 여권용 사진을 제출하게 했다. 1교시 시작 전에만 하던 본인 확인 절차를 3교시 전 한 차례 추가했다. 또 매 교시 감독관 2, 3명씩이 동일인 여부를 점검하게 해 수능 당일에만 수험생 1명당 감독관 9∼11명의 중복 검증을 거치게 한 것이다. 필적 확인란도 추후 필적 감정을 통해 동일인 여부를 가리려는 것이었다. 그 뒤에도 수능 부정은 매년 100건, 200건씩 불거졌지만 2004년과 같은 심각한 부정은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올 2월 국민권익위원회의 국민신문고에 수능 대리시험 공익제보가 접수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제보자는 공군 소속 병사 A 씨(20)가 부대 선임 B 씨(23)의 부탁을 받고 지난해 11월 수능에 대리 응시한 사실을 고발했다. 제보자는 국민신문고에 “대리시험은 몇 년간 최선을 다하여 수능을 준비한 인원들에 대한 모욕이자 대한민국의 수능을 기만하는 행위”라는 글을 남겼다. 서울시교육청이 1차 조사를 한 뒤 군과 경찰에 지난달 각각 수사를 의뢰하면서 베일 속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A 씨는 주변에 “시험장에 폐쇄회로(CC)TV 그런 것도 없고, 생각보다 관리 감독이 허술하다”고 했다고 한다. A, B 씨의 군부대 동료들은 군 당국 조사에서 “한 명은 둥글둥글하고 살이 찐 편이고, 다른 한 명은 날카로운 인상에 마른 체형으로 생김새가 너무 다르다. 선임 사진으로 수능을 치렀는데 적발되지 않았다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서울시교육청은 해당 시험장의 정감독관 4명에 대한 1차 조사에서 특이사항이 없었다고 9일 발표했다. 2004년 수능 부정 사건을 돌이켜보자. 수능 직전 교육청 홈페이지 등에 “유언비어라 생각하지 말고 엄정히 대처해 달라”며 구체적인 제보가 접수됐지만 당시 교육당국은 이 경고를 무시했다. 법조계에선 통상적으로 하나의 범죄에는 범죄예비군 10명, 100명이 있다는 말이 있다. 대리시험은 허술한 관리 감독의 빈틈을 노렸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군 당국의 수사 자료에는 A 씨가 대리시험에 대한 대가로 1500만 원과 1억 원 등을 언급한 내용까지 있다. 철저한 수사를 통해 15년 만의 대리시험 응시가 빙산의 일각인지부터 가려야 한다. 그런 뒤에 수능 부정행위 방지 대책을 전반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 이른바 조국 사태로 스펙 위주의 수시 전형에 대한 공정성이 크게 위협받았다. 교육당국이 수능 위주인 정시 전형 비율을 늘리는 것을 대안으로 추진 중인데, 이번에는 수능의 공정성까지 도전받고 있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0-04-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한국 시골 아파트와 세계 아동 성착취물[오늘과 내일/정원수]

    2018년 4월경 충남의 한 시골 마을 아파트에 경찰관이 들이닥쳤다. 한국 경찰청이 영국 국가범죄청(NCA),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 등과의 공조 수사 끝에 아동 성 착취물을 제공한 범인의 거주지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에서 20대 청년을 체포한 경찰은 피의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동한 뒤 이 청년의 방에 있던 다크웹의 서버를 압수수색했다. 함께 살던 가족도 몰랐지만 이 청년은 자신의 방에서 2015년 6월∼2018년 3월 ‘웰컴 투 비디오’라는 이름의 다크웹 사이트를 운영했다. 검거 직전에도 8테라바이트 분량의 영상 2만 개가 저장된 서버가 작동하고 있었다고 한다. CNN이 세계 아동 성 착취물의 ‘은밀한 소굴(a covert den)’이라고 한 곳이 20년 정도 된 아파트의 조그만 방이었던 것이다. 이 청년은 전 세계 4000여 명으로부터 7300여 회에 걸쳐 37만 달러(약 4억 원)의 가상화폐를 받고 아동 성 착취물을 제공했는데, 영상물에는 생후 6개월 된 기저귀를 찬 영아도 있었다. 이 사이트엔 한글이 한 글자도 없었다. 그래서 한국 수사당국이 이곳을 처음 적발한 게 아니다. 영국 NCA가 케임브리지대 출신의 소아성애자 매슈 팔더를 조사하던 중에 한국 IP주소를 찾아냈다. 한국 경찰도 처음에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범행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친구도, 직업도 없던 이 청년이 독학으로 다크웹과 가상화폐를 연구해 세계를 상대로 하루 24시간 불법 성 착취물 영업을 한 것이다. 그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성인 음란물이 아닌 아동 성 착취물만 취급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자신의 행위가 ‘아동 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지만 범행을 멈추지 않았다. 이 청년은 곧바로 수감됐고, 이어 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겨졌다. 이때부터 그는 다른 사람이 된다. 다른 범죄 경력이 없던 그는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하고, 불우한 성장 과정과 가정 형편을 강조했다. 2018년 9월 1심 재판부가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해 그는 풀려났다. 지난해 5월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의 형이 너무 가볍다면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하지만 항소심 선고 보름 전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해 부양할 가족이 생긴 점 등이 피고인에게 유리한 사정으로 감안되면서 형량이 깎였다. “성 인지 감수성 측면에서는 걸림돌 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피고인과 검찰 모두 상고하지 않아 그대로 형이 확정됐다. 한국 재판은 끝났지만 국제 공조 수사는 계속됐다. 미 법무부는 지난해 8월 한국 경찰청 등과 최종 수사 결과를 동시에 발표했다. 이때 한국에선 익명이던 이 청년의 실명 손정우를 미 법무부가 공소장과 함께 공개했다. 손정우는 27일 한국에선 만기 출소하지만 미국에서는 자국 피해자가 있는 만큼 미국 법에 따라 손정우를 처벌해야 한다며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른 송환을 요구하고 있다. 피해 아동의 국적은 미국과 영국, 스페인 등이었다. 미국에서는 손정우가 유포한 성 착취물을 1회 다운로드, 1회 접속한 혐의만으로도 징역 70개월이 선고됐다고 한다. 언제까지 반문명적인 범죄자에게 세계인의 눈높이에 훨씬 못 미치는 처벌을 하고도 자국민 보호만을 앞세워야 하나. 유엔 총회에서 아동 성 착취물 등에 관한 선택의정서가 채택된 것이 2000년이고, 이를 한국은 2004년 비준했다. 그 이후에도 우리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것이 악마를 자칭한 ‘박사방’ 조주빈을 다시 불러왔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야말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0-04-0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완치자의 첫 투병기로부터 얻은 교훈[오늘과 내일/정원수]

    “한 명의 완치자의 경험담이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약간이나마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자세하게 적어 보냅니다.” 부산에서 47번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박현 부산대 기계공학부 겸임교수(48)는 9일 동아일보에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다. 자신의 감염 사실을 실명과 함께 공개한 박 교수는 자신이 겪은 증상과 완치 과정을 자세히 적은 A4용지 8장 분량의 PDF 문서 파일을 이메일에 첨부했다. 그는 “저의 글이 의료진에게 감사를 나누고, 환자에게 용기를 주고, 사회적 불안감과 혼란 해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기사를 통해 나누어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라몬유대 마케팅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지난달 24, 26일 부산대에서 강의를 하기 위해 지난달 초 미국을 거쳐 고향 부산을 찾았다. 강의 사흘 전인 같은 달 21일 부산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고, 강의가 취소됐다. 취소 당일 그는 부산대 실습실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했고, 대학 인근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이틀 뒤인 23일부터 발열 증상이 나타났고, 그 다음 날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지난달 25일부터 9일 동안 음압병동에 입원했던 그는 퇴원 뒤 이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박 교수는 초기 증상에 대해 “가슴 통증은 갈수록 심해졌고, 호흡곤란도 왔다 갔다 했다”고 적었다. 이어 “처음에는 가슴을 철판이 누르는 듯한 통증에서 기왓장이 누르는 통증으로 차츰 변했고, 가슴을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에서 손으로 움켜쥐는 듯한 통증으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오늘 가장 아픈 정도가 어제 가장 아팠을 때보다 더 좋으면 되는 것이고, 최고점이 차츰 낮아지면 회복되고 있는 것이니 편하게 마음먹고 있으라”는 의료진의 조언으로 이 고통을 극복했다고 했다. 입원 당시 그는 생의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페이스북에 매일 글을 올렸다. 주 5일 헬스클럽에 다니던 그는 감염 초기에는 당혹스러워했다. “(수술 후 회복 중이던) 어머니 걱정 말고, 너만 걱정하라”는 누나의 조언에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사람이 될 것”이라며 자책하는 듯한 구절도 나온다. 하지만 입원 닷새째부터 조금씩 안정을 되찾기 시작한 그는 심장 박동 소리와 측정기의 그래프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 여기게 된다. 페이스북 댓글에 달린 지인들의 반응에 그는 “메시지와 응원에 감사하고, 이런 것들이 내가 정신을 차리는 데 진짜 도움이 되고 있다”며 위안을 삼는다. 그 다음 날에는 “나는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싸우고 있다. 초대 없이 불쑥 찾아온 바이러스를 몸 밖으로 보내겠다”고 다짐한다. 퇴원 전날 박 교수는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병원 이송을 기다리면서 혼자 방에서 불안한 순간을 저도 겪었습니다. 혼미해지는 정신 속에 불안해하면서 살기 위해 정신을 안 놓기 위해 발버둥치던 순간을 저도 겪었습니다. 힘내세요, 가족과 친구가 함께합니다. 저도 당신과 함께합니다. 우리 같이 이겨냅시다.” 17일 0시 현재 국내의 코로나19 완치자는 1400명을 넘었지만 실명을 밝히며 증상과 완치 과정을 공개한 것은 박 교수가 유일하다. 해외에서도 차별과 오명을 피하기 위해 공개를 꺼린다고 한다. 박 교수의 투병기는 최근 홍콩과 미국 언론에도 보도돼 반향을 일으켰다. 박 교수의 투병기와 페이스북 글을 자세히 보면 환자들에게 혼자만 싸우는 게 아니라는 것을 외부 메시지를 통해 끊임없이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박 교수는 스스로 그 해법을 찾았지만 그러지 못한 환자들이 병실 밖 가족이나 지인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하지 않을까.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0-03-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타다 재판의 학습효과와 출구전략[오늘과 내일/정원수]

    “검찰청사 주변에서 검사와 직원들은 타다 이용을 삼가 달라.”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검은 타다 운영사인 VCNC의 박재욱 대표와 VCNC의 모회사 쏘카의 이재웅 대표를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뒤 이 같은 내부 지침을 내렸다. 기소 주체인 검찰이 타다를 이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본 것이다. 약 9개월 전인 같은 해 2월 택시업계가 타다를 불법 택시 영업으로 처음 고발했을 때도 비슷한 고민이 있었다. 수사팀 검사 대부분은 “괜한 오해를 부를 수 있다”며 타다 이용을 ‘보이콧’했다. 당시 검찰 지휘부에도 이용 자제가 권고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 착수 8개월 만인 같은 해 10월 28일 검찰은 기소 결정을 내렸다. 혁신적 모빌리티 산업을 표방한 타다는 실제로는 불법 콜택시 영업이라는 것이 검찰의 시각이었다. 기소 당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의 부장검사들이 기소 여부를 놓고 회의를 했는데,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법에 저촉되거나 법률로서 보호해야 하는 다른 제반 이해관계와 충돌한다면 현행법 규정대로 판단을 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논리였다. 법원에선 검찰의 결론이 뒤집혔다. 유죄가 인정됐을 경우 형량이 상대적으로 낮아 합의재판부가 아닌 단독재판부로 사건이 배당됐다. 무작위 사건 배당으로 서울중앙지법의 형사18단독 박상구 부장판사(50·사법연수원 25기)가 재판장이 됐다. 정보기술(IT) 동향 등을 연구하는 정보법학회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그는 현재 이 학회의 감사를 맡고 있다. 1996년 4월 판사와 변호사, 교수 등이 설립한 이 학회는 정보 혁명과 법 제도의 변혁을 연구하는 곳이다. 학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정보사회에서 새롭게 대두되는 제반 법률문제를 분석 진단하고, 그 해법을 선도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주요 역할로 소개하고 있다. 박 부장판사는 2014년 가을 이 학회의 정기 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석했는데, 토론 주제가 공유경제였다. 세미나 자료를 보면 우버, 에어비앤비 등을 포함한 최신 공유경제 사례를 논의한 것으로 되어 있다. 법관들의 연구 모임인 사법정보화연구회의 간사를 지낸 적도 있다. 박 부장판사는 지난해 12월 1일 이후 결심과 선고를 제외하면 2차례 공판을 열었다. 그는 지난달 20일 불법 콜택시가 아니라 합법적 렌터카라며 박 대표 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1심 무죄 이후 항소 여부를 논의하기 위한 공소심의위원회를 열었다. 공소심의위엔 외부위원은 없었고, 검사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스타트업계 자문 변호사와 국토교통부 관계자, 택시업계 측 전문가 등의 의견을 약 40분씩 차례대로 청취한 뒤 전원일치로 항소를 결정했다고 한다. 2심에서 판결이 달라질 수 있는데 항소를 포기한다는 것도, 국회의 법 개정 방향이 타다 금지 쪽이라면 검찰로서는 사실상 공소 유지 외에 다른 대안을 찾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만약 검찰이 기소 단계부터 외부 전문가들이 위원으로 포함된 공소심의위를 열었다면 어땠을까. 부패 범죄와 달리 미래 신생 산업의 위법 여부를 판단할 때는 검찰이 좀 늦더라도 더 폭넓게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진짜 문제는 검찰과 법원이 4개월 간격을 두고, 정반대의 결론을 내리는 사이 정부 부처와 입법부 등 정책 결정권자가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1심 재판장은 항소심과 그 이상의 재판을 예상한 듯 선고 공판을 다음과 같이 끝냈다. “택시 등 교통이동수단, 모빌리티 산업의 주체들, 플레이어 규제 당국이 함께 고민해서 건설적인 해결책을 찾는 길이 계속될 재판의 학습효과이자 출구전략이다.” 현행법 해석에 대한 유무죄 다툼을 산업 주체와 정책 결정권자들이 하루빨리 뛰어넘어야 한다. 신생 산업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때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0-03-0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100명의 윤석열’, 그리고 추미애[오늘과 내일/정원수]

    “앞으로 ‘100명의 윤석열’을 누가 감당할까.” 추미애 법무부 장관 취임 직후인 지난달 두 차례 단행된 이른바 ‘검찰 대학살 인사’에 대해 전직 검찰 고위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등 ‘살아있는 권력’ 수사를 지휘하던 윤석열 검찰총장의 참모진과 수사팀 검사를 지방으로 좌천시켜 ‘제2의 윤석열’이 100명 정도 생긴 것 아니냐는 것이다. 윤 총장 1명도 현 정부가 감당하기 버거워하는데, 윤 총장처럼 타협하지 않는 검사 여러 명을 훗날 어떤 권력이 상대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섞여 있는 탄식이었다.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번 인사가 권력 수사에 대한 방해 아니냐는 비판에 “사표를 내는 분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본다”며 큰 반발이 아니라고 했다. 과연 그럴까. 좌천된 인사 중 일부는 지방으로 내려가면서 ‘위리안치(圍籬安置)’를 언급했다고 한다. 집 주변을 둘러싼 가시 울타리에 갇혀 지내야 하는 위리안치는 조선시대 당쟁으로 유배된 유학자에게 내려진 형벌 중 가장 강도가 높은 것이었다. 가혹한 처사라는 억울함에도 좌천된 검사는 왜 사표를 내지 않고, 검찰에 남아 있을까. 한 검찰 간부는 ‘윤석열 학습효과’라고 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 댓글 조작 사건 수사를 놓고 정권에 맞서다가 지방으로 좌천됐던 윤 총장은 옷을 벗지 않고 끝까지 검사로 남았다. 결국 정권 교체 뒤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해 적폐청산 드라이브의 최일선에 섰고, 검찰총장에도 발탁됐다. 권력에 치받다가 수모를 당하면 사표를 던지는 것으로 저항하던 선배 검사들과 달리 ‘제3의 길’을 연 것이다. 검찰개혁을 지상과제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검사(檢事)주의자’ 윤 총장을 요직에 발탁한 것은 동료 검사들에게 가장 큰 충격이었다. 윤 총장의 원칙 수사를 이겨낼 수 있다는 정권의 자신감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검찰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윤 총장은 취임 직후 “무슨 여한이 있겠냐. 직분에 최선을 다하자”고 했다. 조국 사태 등 권력층이 민감해하는 수사를 할 때 여권이 검찰을 비판하자 윤 총장은 “그간 정치권을 편들어 오면서 일한 적이 없다”며 후배들을 다독였다고 한다. 국정농단 사건 등을 떠올리며 “검찰이 정권을 감싸고돌면 정권이 진짜 민심과 멀어질 수 있다”며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그런데도 추 장관은 취임 이후 검찰 내부의 상실감은 무시하고, 강공 일변도로 밀어붙이고 있다. 윤 총장의 의견을 듣지 않고 검찰 인사를 단행했고, 전·현직 청와대 관계자에 대한 기소를 만류한 데 이어 공소장 공개까지 가로막았다. 21일에는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의 판단 주체를 분리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17년 만에 장관 주재 전국 검사장회의를 소집했다. 이 자리에 불참하는 윤 총장은 “수사와 기소는 한 덩어리”라며 이미 후배 검사장들을 향해 반대 메시지를 던졌다. 선거를 앞두고 장관과 검찰이 또 한번 충돌할 수 있다. 지난달 10일 대검에서 열린 검찰 신년동우회에서 한 전직 고위 간부는 “‘유경백별우신지(柳經百別又新枝·버드나무는 백번 꺾여도 새 가지가 난다)’라는 말이 있다”며 후배 검사들을 위로했다. “진짜 검사가 되라”는 조언을 주변으로부터 받고 있는 좌천 검사들은 결기를 더 키운다고 한다. 이런 시점에 검찰 사무의 최고 책임자인 법무부 장관이 검찰을 꺾고 또 꺾기만 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 여당 내부에서도 “시시비비를 떠나 권력에 맞서는 것 자체에 박수 치는 것이 보통 사람의 정서임을 왜 모르는가”라며 추 장관에게 더 낮아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0-02-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시대에 역행하는 靑의 검찰 직접 검증 확대[오늘과 내일/정원수]

    ‘A=내부에서 대표적으로 복지부동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도 중요 부서로 배치, B=승진을 시도하였다가 내부의 인사 라인 반대로 무산, C=정책 대응 실패에도 아무런 문책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례….’ 2016년 3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문화체육관광부 내 파벌로 인한 난맥을 점검하라”고 지시한 직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이 문체부 국·과장급 공무원들에 대해 수집한 세평(世評) 결과다.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1심 재판 때 그 내용이 공개됐는데, 1심 재판부는 세평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다른 공무원에 비해 빠른 승진을 시도했다거나, 복지부동이라는 주관적인 평가에 기초하고 있고, 정책 실패라는 사유 또한 정식으로 판명된 것이 아니었다.’ 헌법상 국민 전체의 봉사자인 공무원을 벼랑 끝으로 내몰 수 있는 청와대 인사 검증 자료가 얼마나 부실하고, 편파적일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검찰 중간 간부 인사는 청와대의 인사 검증 관행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걸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달 23일 단행된 검찰 중간 간부 승진 인사를 앞두고, 청와대 행정관들이 차장검사 승진 대상자에게 전화로 물었다는 질문 내용을 보면 실소가 나온다. 기존에는 차장검사는 법무부 담당이었는데, 이번에는 검찰을 잘 모르는 경찰 출신 행정관이 질문자로 나섰다. “검사 경력만 20년이 넘는데, 돈이 참 없으시다. 안타깝네요.” 20년 가까운 경력의 중견 검사에게 전화상으로 약 5분간 이 정도 수준의 질문을 한 뒤에 승진 여부를 가렸다는 것 자체는 코미디 같은 일이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사건 등에 참여한 검사에게는 “어떤 역할을 했고,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었다. 국정 철학에 대한 이해도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부적절한 것이다. 검사에게는 사실상 모범 답안이 뻔히 보이지만 소신에 반해 답변하기가 망설여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상 검증”이라는 지적에 청와대는 “내부 확인 결과 발견하지 못했다”고만 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질문의 수준이 아니라 청와대의 검찰 장악에 대한 과욕이다. 청와대는 관행적으로 검사장 승진 대상자에 한해 직접 인사 검증을 했는데, 이번에는 차장검사 승진 대상자까지 범위를 느닷없이 넓혔다. 법무검찰개혁위원회의 권고에 따른 것이라고 했지만 청와대가 일개 부처 개혁위의 말을 즉각 받아들인 게 석연찮다. 신속한 검증을 위해 청와대는 경찰에 하청을 줬고, 180명 이상의 검사 세평 기초 자료를 동시 수집한 경찰에선 “체감상 업무가 5배 정도 늘어난 것 같다”는 불만이 나왔다. 검사에 대한 청와대의 직접 검증이 늘면서 국세청 등 타 부처 인사 검증이 연쇄적으로 늦어졌다는 말까지 들린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부처에 위임하는 최근 추세와도 역행하는데, 청와대는 왜 그랬을까. 한 검사는 “청와대가 검찰의 중립성에 비수를 꽂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또 다른 검사는 “검찰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려고 한 것이다. 누가 인사를 하는지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실무 수사 라인까지 직접 통제하겠다는 의지를 청와대가 감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4년 전 문체부 공무원의 좌천 인사처럼 최근 검찰 인사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형사사법 절차대로 진행하다 보면 훗날 검사의 세평 결과가 공개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편파’ 세평 작성을 지시한 청와대 관계자는 그때 어떤 평가를 받을까. 이참에 청와대의 직접 인사 검증 대상과 범위, 절차, 검증에 참여할 유관기관을 공개적인 법령으로 정하면 어떨까. 그 과정을 점검해서 문책하는 조항까지 넣어야 불행한 인사 퇴행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 사회부장 정원수 needjung@donga.com}

    • 2020-02-0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검사 이성윤’의 거침없는 영전이 불안한 이유[오늘과 내일/정원수]

    이른바 ‘1·8 대학살’ 검찰 고위 간부 인사의 최대 수혜자는 단연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58)이다. 윤석열 검찰총장(60)의 사법연수원 23기 동기인 그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과 법무부 검찰국장에 이어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모든 검사가 단 한 곳만이라도 가길 꿈꾸는 ‘빅3 요직’을 모두 거친 검사는 1998년 박순용 전 검찰총장에 이어 22년 만이다. 야당에선 “1년 이내에 세 자리를 모두 역임한 것은 71년 검찰 역사상 전무후무한 특혜 인사”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여정부 청와대의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재직하던 2004∼2005년 그 밑에서 특별감찰반장으로 근무했다거나 문 대통령의 경희대 법대 후배라는 것 외엔 이 지검장에 대해 알려진 게 별로 없다. 검사들은 대체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만 기억하고 있거나 “알 기회가 없었다”고 답한다. 개인적으로도 인연이 없어 부득이 같이 근무했던 전·현직 검사들과 지인들에게 물었다. “저녁 자리를 하지 않고, 하루에 한 끼만 먹는 것으로 안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새벽 1, 2시까지 수사하고 늦게 귀가한 검사에게 아침 일찍 나와 공부하자고 한다. 주말에도 그렇게 하니 검사들이 좋아하겠나.” “젊었을 때 골프를 싱글까지 쳤는데, 목표를 달성한 뒤에 바로 끊었다고 하더라.” 밤늦게 술을 마시거나 또 그런 자리에서 권력층 인사를 만나 부당거래를 할 것 같은 영화 속 고정관념의 검사들과 너무 다른 모습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근본부터 검찰을 바꾸려는 문재인 정부와는 궁합이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서초동의 기류는 기대감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 현실이다. 상식 밖의 고집을 끝까지 피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우려다. 이 지검장의 한 지인은 “자기 생각에 꽂히면 밀어붙여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지인도 “좋게 말하면 원칙주의자인데, 교조적인 측면이 있다. 별명이 ‘탈레반’”이라고 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2010년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으로 근무하면서 개미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주식워런트증권(ELW) 부당거래 혐의로 12개 증권사 대표와 초단타 매매자인 스캘퍼를 기소한 일을 꼽는다. 1, 2, 3심에서 모두 무죄가 난 배경에 이 지검장의 고집을 기억하는 검사들이 아직 있다. 이 지검장이 수사팀 검사에게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하거나, 윤 총장의 의견을 반대할 경우 충돌 소지가 있다. 이 지검장이 2008년 민원인에게 흉기로 직접 피습당하고, 2012년엔 후배 검사가 성추문 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한직을 떠돌아 자기 상실감이 크다는 것을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그 상실감을 만회하기 위해 무리수를 둘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때는 민감한 수사를 하는 일선 지검에 법률 검토를 요구하면서 시간을 끌게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법무부 검찰국장 때에는 특별사면이나 검찰 인사를 맡아 현 정부의 기조를 뒤집는 결과를 내놨다. 서울중앙지검장 취임사에서는 절제된 검찰권 행사를 강조했지만 정작 후배 검사들은 “예전에는 집요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강의하더니…”라며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대다수 검사들은 요즘 두려운 마음으로 이 지검장의 거침없는 영전을 지켜보고 있다. 요직을 맡은 검사가 권력에 굴종하거나, 그 반대로 권력을 치받은 대가를 치르는 두 장면을 주로 지켜봤기 때문이다. 권력이 검찰의 힘을 제도적으로 뺏고, 정권을 향한 수사까지 원천봉쇄하려고 하는 이때 이 지검장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이 인사의 결말이 궁금하다.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 2020-01-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