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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길진균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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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7~20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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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흰 더했잖아”라는 민주당… ‘싸가지 없는 진보’로 회귀하나[광화문에서/길진균]

    “국회 역사상 최대, 최악의 이해충돌 당사자다. 국회 국토교통위에서 6년이나 활동하게 한 국민의힘 책임이다.”(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최고위원) 21일 오전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는 본인과 가족이 대주주로 있는 건설사가 피감기관으로부터 1000억 원대의 공사를 수주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박덕흠 의원과 국민의힘에 대한 성토장에 가까웠다. 신 최고위원은 박 의원을 겨냥해 ‘부패방지법 위반’ ‘제3자 뇌물수수죄 해당’ 등 격한 발언을 쏟아냈다. 민주당은 비판의 속내를 감출 생각도 없었다. 노웅래 최고위원은 “전화로 휴가 승인을 특혜라고 장관직 내놓으라더니 부패정당, 적폐정당이 이름만 바꿨다고 정의와 공정을 논할 자격 생기는 것 아니다”라고 했다. 국민의힘을 정조준한 것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전화 한 통화 했을 뿐이고, 박 의원은 1000억 원대를 부당하게 챙겼다는 의혹이 있으니 ‘너희 국민의힘은 더했잖아’라는 얘기였다. 건설업체 대주주인 박 의원이 20, 21대 국회에서 5년 넘게 국토교통위원을 지낸 것은 다분히 이해충돌의 소지가 있다. 이를 두둔할 생각은 없다. 다만 여당인 민주당이 늘 이런 식인 것은 다른 문제다. 민주당은 악재가 터지면 ‘깜도 안 되는 의혹’ ‘소설을 쓴다’며 의혹을 일단 부인하고 뭉갠다. 그러다가 실체가 하나둘 드러나면 ‘검찰 수사 또는 재판 결과를 보고 판단하자’며 한발 물러선다. 그래도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마지막엔 ‘국민의힘은 더했다’고 다시 치고 나온다. 이런 민주당의 ‘너희는 더했잖아’ 식의 정치는 핵심 지지층을 결집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일시적으로 당 지지율 하락세도 멈추게 만든다. 하지만 겉으론 멀쩡하고 속으론 멍들고 있다는 것을 민주당은 잊은 듯하다. 2014년 민주당이 야당이던 시절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싸가지 없는 진보―진보의 최후 집권 전략’이란 저서에서 진보 진영의 문제점을 ‘무례함, 도덕적 우월감, 언행 불일치’ 등 세 가지로 꼽은 적이 있다. ‘싸가지 없는 진보’에 대한 반성론은 당시 끊임없이 회자되던 화두였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펴낸 저서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서 “우리가 이른바 ‘싸가지 없는 진보’를 자초한 것이 아닌지 겸허한 반성이 필요한 때”라고 했다. 하지만 어느덧 집권 4년 차에 접어든 민주당은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있다. 18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에서 ‘무당층’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33%로 4월 총선 이후 최대치였다. 갤럽 측은 “4월 총선 이후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라고 했다. 무당층은 20대가 55%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38%로 나타난 30대였다. 민주당의 주요 지지층이 점차 등을 돌리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은 “너희는 더했잖아”라고 외치지만 대다수 국민 눈에는 ‘싸가지 없는 진보’의 모습이 보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자해적 싸움에서 더 큰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국정 운영의 책임이 있는 여당일 수밖에 없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 2020-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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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우리당 반성’은 어디에… 증오 막말 쏟아내는 민주당[광화문에서/길진균]

    4·15총선이 끝난 뒤 여권엔 ‘열린우리당 전철을 밟지 말자’는 주의보가 내려졌다.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말씀과 행동에 더욱 신중을 기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런데 그 고삐가 확 풀렸다. 부동산 문제, 코로나19 재확산 등으로 위기감이 고조되면서부터다. 지난달 만난 여권 핵심 인사는 “고비다. 코로나 방역이 최우선이다. 정권 후반기 지지율은 물론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의 성패도 여기서 결정 날 것”이라고 했다. 정권 핵심부의 위기감이 크다는 얘기였다. 얼마 뒤 김원웅 광복회장은 고(故) 백선엽 장군을 향해 “사형감”이라며 자극적인 발언을 쏟아냈고, 여권 인사들은 곳곳에서 ‘방역 방해 세력’을 향해 강경 발언을 이어갔다. 이후 민주당 지지율은 반등했다. 여권 지지층의 결집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제기된 ‘정권말 위기론’은 진화됐다. 정치인의 막말은 다분히 의도된 경우가 많다. 증오와 배제 프레임은 위기에 몰린 집권세력의 단골 메뉴다. 권위주의 시절 집권세력은 ‘색깔론’ ‘종북’을 앞세워 야권을 탄압했고, 여론의 반전을 유도했다. 지금 여권의 ‘친일파 척결’ 주장도 야당은 비슷한 논리로 바라본다. 하지만 최근 여권발 증오의 막말은 정치권 밖, 보통 사람들까지 겨냥하며 무차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 부동산 문제로 여권이 수세에 몰렸을 때는 다주택자가 제물이 됐다. 소병훈 민주당 의원은 국회에서 “범죄로 다스려야 한다” “국민의 행복권을 뺏어간 도둑들”이라고 했다. 집값 상승에 떠는 보통 사람들의 불안을 다주택자들의 탓으로 떠넘긴 셈이다. 요즘 여권의 주 타깃은 의료계다. 지난달 31일 열린 국회 예결위에서 김한정 민주당 의원은 최대집 의협 회장을 “제2의 전광훈”이라고 불렀다. 1일 예결위에선 허종식 민주당 의원이 사회부총리에게 “어차피 지키지도 않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대학병원에 권고해 다 폐지시키면 어떻겠냐”며 의사들을 비꼬았고, 최민희 전 의원은 2일 페이스북에서 “어느덧 의사선생님 호칭이 ‘의새’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했다. 일부 극성 지지자들은 “시원하다”고 환호한다. 김종민 민주당 최고위원이 1일 라디오에서 ‘조국 흑서(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두고 “흑서를 100권 낸다 해도 바뀌지 않는다. 40%는 (검찰 수사가) 문제 있다고 본다”고 자신한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그렇지만 민주당은 그런 말들이 자신을 찌르는 칼이라는 것을 모른다. ‘국난 극복’에 동의하다가도 막말이 터져 나오면 “너희가 더 꼴 보기 싫다”며 고개 돌리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2004년 총선에서 승리한 뒤 많은 초선 의원들은 자극적인 발언을 쏟아냈고, 이는 ‘증오의 정치’로 비쳤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는 고립됐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 체제가 시작됐다. 그는 총선 직전 “미움의 정치를 청산하지 않는 한 막말은 계속된다”고 경고했다. “지도자들부터 마음에서 미움을 털어내야 한다. 저부터 더 노력하겠다”고도 했다. 그의 다짐이 ‘열린우리당 반성’처럼 잠깐의 레토릭으로 끝나지 않기를 기대한다.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 202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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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통합당 새 당명에 ‘민주’ 들어가면 어떤가[광화문에서/길진균]

    “당명은 민주당이 괜찮은데 저쪽이 가져가 버려서….” 지난달 9일 미래통합당이 당명 개정 계획을 공식 발표한 직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기자들 앞에서 불쑥 던진 말이다. 언론의 조명을 많이 받진 못했다. 정치적 무게가 실린 발언이 아니라 김 위원장 특유의 시니컬한 위트쯤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얼마 뒤 김 위원장은 “백종원 씨는 어때요?” 한마디로 차기 대선 후보의 이미지에 대한 새 화두를 던졌고, 다른 주자들은 동요했다. ‘당명은 민주당이 괜찮은데’ 역시 그냥 웃고 넘길 발언은 아닌 듯하다. 대체 왜 민주당을 거론한 것일까. 김 위원장이 탐내는 ‘민주(民主)’라는 당명은 우리 정당사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이름 중 하나다.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2028년이면 창당 200주년을 맞는 미국 민주당은 물론이고, 상당수 국가 정당에서 ‘민주’라는 당명을 단독으로 혹은 다른 단어와 함께 사용한다. 국민을 위한다는 당의 이상적 이미지와 ‘민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3김(三金) 시대 때 김영삼(YS)은 통일민주당, 김대중(DJ)은 평화민주당, 김종필(JP)은 신민주공화당을 만들어 한 시대의 정치를 이끌었다. 1990년 1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민주정의당과 YS, JP가 3당 합당을 통해 탄생시킨 정당이 민주자유당이다. 통합당은 그 후신이다. 통합당의 변신 작업이 한창이다. 얼마 전 2년 만의 당사 여의도 복귀 계획을 발표했다. 다음 달 초 당사 이전과 맞물려 새 당명과 당색, 로고도 발표한다. 대통령 탄핵과 4차례에 걸친 전국 단위 선거 패배의 사슬을 끊어내고, 영광의 시대를 되찾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게다. 하지만 비슷한 시도가 예전엔 없었던가. 새누리당 문을 닫고 2017년 출발한 자유한국당은 3년을 넘기지 못했다. 올 2월 문을 연 통합당은 다음 달까지 6개월 시한부다. 본질적 변화 없는 잦은 포장 바꾸기는 ‘저 사람들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겨도 될까?’ 하는 중도 진영의 불신만 더 키울 뿐이다. 김 위원장 리더십의 키워드는 ‘실용’ ‘변화’ ‘속도’다. 때때로 ‘반전’의 카타르시스가 더해진다. 보수정당이 위기에서 탈출하는 활로는 세상 사람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 만큼 놀라운, 그런 ‘혁신적 변화’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겉모습은 물론이고 시대에 맞게 당의 골수까지 송두리째 바꿔야 한다. 당 내부를 관통하는 노선과 정체성까지 다시 정립해야 한다. 김 위원장이 당 정강·정책에 민주화, 5·18민주화운동 정신 계승 등의 내용을 넣으려는 것도 그 일환일 것이다. 역사적 평가와 별개로 구도의 관점에서 볼 때 3당 합당을 통한 민주자유당의 탄생은 반공과 성장을 최우선 가치로 여겨 온 ‘구시대 보수’가 YS의 ‘중도 개혁’ 세력과 손잡은, 보수진영의 외연을 중도까지 확장시킨 놀라운 변신이었다. 김 위원장이 이끄는 보수정당의 새 당명에 다시 ‘민주’가 등장하면 또 어떤가. 분명한 건 우리 정치에선 보수건 진보건 외연을 더 넓히고, 의제를 선점하고, 상대 진영의 가치를 과감히 수용하는 쪽이 더 번성했다는 점이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 2020-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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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합당, 7월 임시국회 첫날 국회 복귀…여야 신경전은 ‘계속’

    미래통합당이 7월 임시국회 첫날인 6일 국회에 복귀하면서 여야가 국회 정상화를 두고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 야당 몫 국회부의장을 거부하던 미래통합당 정진석 의원은 이날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상황이 변했으니 (부의장 수락을)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부의장을 맡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 이에 따라 박지원 신임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맡은 국회 정보위원회도 조만간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법상 정보위원장 선출 등 정보위 구성은 국회부의장과 협의를 거쳐야 한다. 다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후속법안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탄핵안,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해임건의 등을 둘러싸고 팽팽한 대치를 이어가고 있는 여야는 이날도 의사 일정을 합의하지 못한채 공방전만 반복했다. 통합당은 이날 오후 국회 상임위원회에 강제 배정됐던 의원들을 다시 배정하는 보임계를 박병석 국회의장에게 제출하고 원내로 전격 복귀했다.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등에서 ‘원내 투쟁’을 통해 야당의 존재감을 보여주겠다는 당의 전략에 부응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위해 통합당은 청와대를 피감 기관으로 두고 있는 국회 운영위에 3선 김도읍 의원과 재선 곽상도 의원 등 핵심 ‘공격수’를 배치했다. 운영위에서 민주당 1호 당론인 ‘일하는 국회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후속 법안이 논의된다는 점도 고려했다. 법사위에도 20대 국회에서 간사였던 김도읍 의원을 다시 ‘위원장급 간사’로 내세우고 3선의 장제원 의원과 검사장 출신의 유상범 의원 등을 배치했다. 외통위에는 여권에서 안보 관련 상임위 불가론을 주장한 탈북민 출신 통합당 태영호 지성호 의원을 배정했다. 국회 18개 상임위는 가동 준비를 마무리했지만 여야는 7월 임시국회 첫 본회의 날짜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다. 7월 임시국회에서 21대 국회 개원식을 열고 국회의원 선서와 문재인 대통령 연설 등 통상적 절차를 밟자는 여당과 단독 원 구성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개원식 없는 국회를 주장하는 야당은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네 탓 공방 속에 여야 지도부는 여론전에 집중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지금은 민생을 위해 일할 때”라며 “(야당은) 특검이니 국정조사니 무리한 정쟁거리만 말 할 것이 아니라 민생과 개혁을 위해 일하는 국회를 함께 해주시길 다시 한 번 부탁드린다”고 강조했고,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일하는 국회법’을 두고 “제목만 그럴듯하지 야당을 무력화하는 독재 고속도로 법”이라고 비판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 20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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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 여당 초선들의 슬기로운 의원 생활[광화문에서/길진균]

    “다들 그냥 착하고 성실한 공무원 같아.” 더불어민주당 중진 A 의원의 당 초선 의원들에 대한 평이다. 민주당 소속 의원 176명 가운데 초선은 82명으로 절반에 육박한다. 대대적인 물갈이 요구에 부응해 원내로 진입한 초선들을 바라보는 당 안팎의 기대가 컸다. 참신하고 개혁적인 마인드로 구습에 젖은 정치를 바꿔 줄 것 같았다. 개원 한 달이 지났다. 그런데 그들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 개혁적 정치모임이 꾸려졌다는 소식도 없다. 들리는 얘기는 그 반대다. 지난달 25일 민주연구원 주최 포럼 강연자로 나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초선들에게 “(여러분들이) 야당 역할을 하면 안 된다. 장관 밀어내기, 두드리기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앞으로 행정부를 건드리지 말라는 훈계였다. 추 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지휘랍시고 일을 꼬이게 만들었다”며 약 100분 동안 무용담 섞인 조언을 이어갔다. 초선들은 박수갈채를 보냈고, “국회의원 계속 하셨으면 최초의 여성 국회의장이 되셨을 것” “다음엔 총리를 하시라” “대통령을 하시라” 등의 덕담이 이어졌다. 전날 같은 자리에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초선 때는 자기를 죽이면서 전체를 위해 함께 가는 방법, 이런 것에 할애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현직 장관의 노골적인 입법부 ‘군기 잡기’에 대해 초선들은 그때도 이후에도 일언반구가 없다. 여당 정치인은 정부가 잘못해도 일단 옹호해야 할 때가 있다. 양심과 원칙이 떠올라도, 쉽고 편한 길은 그냥 입 꾹 다물고 사는 것이다. 괜히 나섰다간 찍히기 십상이다. 금태섭 전 의원에 대한 징계는 그 본보기일 게다. 중진 의원 B는 “17대 열린우리당 때는 열정이 넘치는 초선이 많아서 걱정이었는데, 21대는 반대로 다들 무난한 정치를 하는 듯해 걱정”이라고 했다. 금 전 의원 징계, 윤미향 의원 관련 의혹,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대책 헛발질 등에 대해 초선들은 꿀 먹은 벙어리다. 심지어 21대 국회 들어 정치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8번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초선 발언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금 전 의원은 최근 “토론과 비판정신을 강점으로 하던 민주당이 어쩌다 이런 모습이 되었는지 안타깝다”고 했다. 하지만 권력이 주는 따뜻한 자리와 보호를 누리기 위해선 그저 말없이 웃어주고 따라주는 것이 ‘슬기로운 의원 생활’이라는 것을 민주당 초선들은 이미 깨친 듯하다. 돌이켜보면 잇따른 선거 승리와 콘크리트 지지율이 보수정당에는 병세를 느끼지 못하게 막은 마취제였다. ‘선거의 여왕’으로 불렸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04년 ‘천막 당사’와 함께 당의 전면에 나선 이후 보수정당은 총선·대선에서 12년 동안 승자의 자리를 누렸다. 당은 부지불식간에 고인 물이 됐고, 2012년 19대 총선에서 당선된 새누리당 의원 153명 중 절반에 달한 초선 76명은 ‘존재감 제로’라는 평을 받았다. 2016년 20대 총선 이후 펼쳐진 상황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잇따라 선거에서 승리한 민주당과 이어지는 초선들의 침묵. 민주당은 예외가 될 수 있을까.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 2020-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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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대로 일하는 국회 만들려면 의원 입법도 규제 심사해야[광화문에서/길진균]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경제 부처 고위공무원은 국회 얘기가 나오자 분통을 터뜨렸다. 국회에서 의원입법 형태로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법안 중에 상당수는 규제개혁위원회의 규제심사를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였다. 법안 하나를 국회에 제출하려면 당정 협의, 공청회, 규제심사,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등을 거쳐야 하고 그 때문에 공무원들은 세종시에서 정부서울청사와 국회를 수없이 오가고 있는데 의원들이 뚝딱 만들어내는 황당한 법안들을 볼 때마다 맥이 탁 풀린다고 했다. 법을 만드는 일은 국회의원 본연의 업무다. 일을 열심히 하겠다는 걸 탓할 수는 없다. ‘일하는 국회’가 강조되면서 의원입법 건수도 크게 늘었다. 20년 전인 16대 국회만 해도 1651건에 불과했던 의원입법은 20대 국회에선 2만1594건을 기록했다. 의원입법이 늘어나는 것은 다양한 입법 수요에 대한 국회 차원의 적극적 대응으로 볼 수 있다. 성과도 나쁘지 않다. 20대 국회 의원입법 가결 법안은 1437건이었다. 정부입법 가결 법안 305건의 네 배가 넘는다. 문제는 커지는 국회의 ‘규제 본능’이다. 정부 규제정보포털에 따르면 20대 국회에서 의원입법 형태로 발의된 법안 2만1594건 가운데 20%에 가까운 3924건이 규제 법률이다. 정부의 규제심사를 거쳤다면 발의 자체가 어려웠을 수 있는 법안들이다. 의원입법은 광범위한 의견수렴 절차를 밟아야 하는 정부입법과 달리 손쉬운 발의가 가능하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176명 전원이 참여하고 있는 법안 발의용 단체 텔레그램방도 운영하고 있다. 한 의원이 법안 요지서를 띄우고, 이에 다른 동료 의원 10명 이상만 동의하면 1시간도 채 안 돼 법안 발의가 가능하다. 이는 편리하기는 하지만 동시에 졸속 입법 논란을 부르기도 한다. 20대 국회에서 통과된 ‘n번방 사건방지 후속법안’(전기통신사업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네이버 등 기업에 온라인상의 불법 촬영물에 대한 차단과 삭제 의무를 부과했다. 업계는 “마치 택배기사에게 배달 물건 중 폭탄이 있는지 확인해 폐기하라는 것과 같다”며 반발하고 있다. 게다가 n번방 사건을 불러온 텔레그램과 같은 해외 사업자를 단속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의원들도 입법 과정에서 이 같은 문제를 익히 알고 있었지만 폭발하는 민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일단 규제부터 강화한 법을 통과시켰다. 앞으로가 문제다. 21대 국회 시작과 함께 11일까지 이미 340건의 의원입법이 제출됐다. 20대 국회 같은 기간 187건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된다. 여기에 176석 슈퍼 여당으로 거듭난 민주당은 개원과 동시에 ‘일 욕심’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규제 혁파의 필요성을 연일 강조하고 있지만 의원입법만큼은 사각지대다. 의원입법에 대한 규제영향평가를 실시할 때가 됐다. 민주당은 국회법을 바꿔 법안의 체계·자구 심사를 국회사무처 또는 입법조사처 내 전문 검토기구에 맡기겠다고 한다. 이와 별개로 법안에 대한 규제심사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법안 발의 건수가 많다고 ‘일하는 국회’라고 칭찬받기 어렵다. 일하는 국회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제대로 일하는 국회’다.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 20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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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 탓’하는 의원 때문에 ‘파리 목숨’ 국회 보좌진[광화문에서/길진균]

    “사람을 자를 때는 그래도 그럴듯한 이유와 예의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총선 이후 오랜만에 만난 김모 보좌관이 울분을 터뜨렸다. 10년 넘게 국회에서 함께 먹고 자며 지내온 A 의원실 보좌관 친구가 선거 직후 하루아침에 백수가 됐다고 했다. 보좌진 자주 바꾸기로 유명했던 A 의원. 그는 낙선 직후 보좌진에게 일괄 사표를 요구했다. “선거 때 지역에서 신세진 사람들 챙겨줘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가까운 지인 또는 그 인척들에게 한 달 남짓 남은 임기 동안 보좌관 자리를 나눠주기 위해서였다. 급여도 급여지만 4급 또는 5급 ‘국가직 공무원’ 타이틀에 목을 매는 이가 부지기수인 게 현실이다. 현재 의원회관 A 의원 사무실엔 전화 받는 보좌관 1명만 남아있다. 김 보좌관은 “선거 때 시골에서 다 같이 죽도록 고생했는데 선거 끝난 지 며칠이나 됐다고 준비할 시간도 안 주고 사표를 받습니까. 보좌진을 동료, 아니 사람으로 본다면 이럴 수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국회를 출입하다 보면 보좌진을 수시로 느닷없이 갈아 치우는 의원들을 여럿 만난다. “의원들에게 찍히면 다른 의원실도 못 간다”며 반드시 익명 처리를 부탁한 보좌진 대표자 단체의 한 보좌관은 “20대 국회 4년 동안 20명 이상 보좌진을 바꾼 의원이 30명은 족히 넘을 것”이라고 전했다. 8명(인턴 제외)이 일하는 사무실에서 해마다 4, 5명의 보좌진이 새로운 얼굴로 바뀌는 의원실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일을 하다 보면 서로 안 맞을 수 있다. 그런데 한두 명도 아니고 1년마다 스태프의 절반을 새로 바꾼다면 과연 정상이라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런 의원들의 특징은 전형적으로 ‘남 탓’을 많이 한다. 본인 실력은 생각하지 않는다. 국회의원 보좌진은 사표 제출과 같은 면직 절차를 따로 거칠 필요가 없다. 법적으로 이들의 해임에 대한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보좌진 면직 30일 전에 통보하는 면직예고제 도입은 20대 국회에서도 의원들의 ‘허가’를 받지 못하고 폐기됐다. 심의 과정에서 의원들은 “굳이 법률로 만들어야 하느냐” “각 의원이 자율적으로 면직예고제를 운영하면 된다” 등의 이유로 반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자율적 시행과는 거리가 있다. 한 보좌관은 그동안 자신이 사표를 쓴 횟수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모시던 의원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터질 때마다 ‘공동책임’이라며 보좌진에게 일괄 사표를 쓰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의원의 지시를 받고 대리점에서 새 휴대전화를 개통해 의원에게 가져다 줬는데 전화번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날 바로 잘린 보좌관도 있다. 좋은 정치인을 골라내기는 쉽지 않다. 10년 넘게 국회를 출입한 기자들도 국회의원 300명 개개인의 사무실 내부 속사정까지 속속들이 알기는 어렵다. 대개는 주변의 풍문이나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을 참고할 뿐이다. 어느 국회의원에 대한 인간적 평가가 궁금할 때는 임기 중에 보좌진을 얼마나 갈아 치웠는지 살펴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 2020-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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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수 1차 패인, 현실 부정-인지부조화부터 치료해야[광화문에서/길진균]

    “에이, 설마….” 4·15총선 기간 동안 보수 진영 사람들에게 가장 자주 들었던 말 중 하나다. 각종 언론사 여론조사는 물론 정치권의 자체 분석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이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과 함께 절반이 넘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오면 조건반사적으로 이런 말이 나왔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가장 많이 들었던 근거는 ‘여론조사를 믿을 수 없다’였다. 친문 성향 유권자가 ‘과대 표집’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래통합당의 한 핵심 관계자의 말이다. “여론조사를 할 때마다 여권 지지자들은 똘똘 뭉쳐 답변을 한다. 점잖은 노년층은 상대적으로 숨는다. 투표에서는 1인당 1표씩이니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요즘 여론조사는 젊은 층에게 익숙한 휴대전화 비율이 너무 높다.” 그래서 통합당이 제시한 대안은 노년층의 응답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질 가능성이 있는 유선전화를 조사 과정에 더 많이 섞는 것이었다. 이번 21대 총선부터 여론조사업계는 조사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안심번호’(특정 선거구에 사는지 확인된 사람들의 휴대전화번호)를 도입했지만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결국 통합당 여의도연구소의 여론조사는 유선전화 조사 비율이 30%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선거를 치러보면 실제 의석수는 더 많이 나올 것’이라고 믿었다. 이 같은 현실 부정, 다시 말해 믿고 싶은 것만 보는 인지부조화 현상은 투표 당일까지 이어졌다. 곳곳에서 통합당의 폭망 가능성이 제시됐지만 통합당 내부에선 ‘투표율 65%’가 승패의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투표율 65%가 넘으면 여론조사에서 잡히지 않은 샤이 보수가 대거 투표장으로 나온다는 뜻’이라는 설명이었다. 투표율은 66.2%로 65%를 넘었고, 결과는 우리가 아는 대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보수 일각에선 투개표 조작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보수 스스로 ‘지려야 질 수 없는 선거’라고 했던 이번 총선에서 통합당이 이런 패배를 당한 것은 이처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 병폐가 결정적이었다고 본다. 실제로 보수 당 앞에 놓인 현실은 과거와 달리 보수 진영이 정치 지형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4년 전 20대 총선까지 여론조사 시 응답자 비율은 보수 35%, 진보 25% 정도였지만, 3월 2일 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진보 28.7%, 보수 26.1%였다. 중도는 36.5%였는데 그 중도층에서 민주당과 통합당의 지지가 37.3% 대 18.8%로 두 배 정도 차이가 났었다. 하지만 선거 기간 일부 극우 유튜버들은 ‘빅 마우스’가 되어 보수 진영 전체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양 목소리를 높였고 결과적으로 진영 전반에 ‘정치적 마취제’로 작용했다. 그러다보니 보수의 합리적 인사들도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는 노력보단 ‘우린 할 수 있다’는 ‘정신 승리’ 모드에 빠져들었다. 황교안 전 대표는 물론이고 ‘혁신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당 공천관리위원회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 보수 진영에선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백가쟁명식으로 쇄신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무엇이 됐든, 우선 보수진영의 ‘정치 시력’을 현실에 맞게 교정하지 않으면 다음 선거도 제대로 내다 볼 수 없을 것이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 2020-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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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난 극복’ 힘실은 민심… 與 압도적 과반

    4·15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과 함께 단독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국난 극복’에 힘을 실어 달라는 호소에 국민은 다시 한번 집권 여당의 손을 들어줬다. 개표가 87.4% 이뤄진 16일 오전 2시 현재 민주당은 전체 253개 지역구 중 159곳에서 1위에 올랐다. 미래통합당은 88곳에서 선두를 지키고 있다. 또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과 열린민주당은 각각 17석과 3석을, 미래한국당은 19석을, 국민의당은 3석을 가져가는 것으로 예측됐다. 정의당은 비례대표 5석과 지역구 1석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6일 비례대표 당선자를 최종 확정한다. 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 열린민주당 등 민주당 계열 3개 정당은 총 170석 이상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정의당과 진보 성향 무소속 의원을 포함한 범진보 진영이 총 180석 이상을 얻을 가능성도 있다. 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은 모두 110석 안팎을 얻는 데 그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에 이어 이번 총선까지 네 번의 전국 단위 선거에서 4연승을 거두는 정치권 초유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됐다. 또 집권 후반기를 맞이한 문재인 정부는 임기 말까지 정국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원내 기반을 마련했다. 다만 범진보 진영이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할 수 있는 5분의 3 이상 의석을 확보하면 정부 여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등 각종 쟁점 정책과 법안을 ‘일방통행’ 식으로 밀어붙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낙연 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은 “국민께서 코로나19가 몰고 온 국가적 재난을 극복하고 세계적 위기에 대처할 책임을 정부 여당에 맡겼다. 국민의 명령을 받들어 집권 여당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통합당은 ‘폭주 견제론’을 띄웠지만 제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특히 선거 막판 터진 김대호 차명진 후보의 ‘막말 논란’으로 수도권 중도층이 대거 이탈했다. 종로에서 패한 황교안 대표는 15일 오후 11시 40분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총선 결과에 책임을 지고 모든 당직을 내려놓겠다”며 당 대표직 사퇴를 선언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통합당은 각종 프레임 전쟁에 집중한 반면 여당은 긴급재난지원금 정책, 마스크 공급 안정화 등 문제 해결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승패를 갈랐다”고 분석했다.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 2020-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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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0도’ 머리 숙이는 후보들… 그 조아림의 초심 잊지 말길[광화문에서/길진균]

    “안 해 본 사람은 몰라. 정말 다시 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고민이야.” 2016년 4월 총선 직후다. 국회 입성에 성공한 관료 출신 초선 의원 A는 “유세는 할 만했느냐”는 질문에 너스레를 떨었다. “길 한가운데 서서 지나는 사람, 오토바이, 자동차를 향해 끊임없이 ‘90도 인사’를 하는데, 눈이라도 마주쳐 주면 그나마 다행이지…. 그렇게 매일 수십 km를 걸었다.” 그는 당시의 당혹스러움과 고통을 이같이 전했다. 4·15총선에 출마한 후보들의 공식 선거운동이 2일 시작됐다. 후보들은 이번 총선 유세를 두고 “조용하지만 가장 치열하고 힘든 선거운동”이라고들 한다. 여느 선거 때와 다름없이 후보들은 아침 출근길 인사로 일정을 시작한다. 다만 유세 분위기는 예전과 사뭇 달라졌다. 귀를 맴도는 선거 로고송이나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마이크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떼로 줄지어 다니는 선거운동원들과 율동을 곁들이며 지지를 호소하는 젊은 응원단의 모습도 눈에 띄게 줄었다. 명함을 들고 조용히 후보를 따르는 한두 명의 수행원이 전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때문이다. 지역구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후보들은 대체로 오전 4∼5시에 일어나 그날 일정을 점검하고 오전 6∼7시 출근인사를 한다. 이후 시장 종교시설 등 지역구 주요 거점 돌기, 유세차 타기, 토론회 간담회 등 행사 참석의 일정을 반복한다. 다시 오후 6∼7시 퇴근인사 그리고 밤늦은 시간까지 지역구 거점 돌기의 일과가 이어진다. 이동 중 검은색 승용차 이용은 금물이다. 골목골목을 직접 걸어야 한다. 유세 과정에서 “먹고살기 힘들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상인과 취객의 면박은 일상이다. 과거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심리적, 물리적으로 느끼는 피로감이 예년보다 더하다고 후보들은 입을 모은다. 후보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유권자들과 1m 이상 거리를 둔 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경기 침체 속에서 선거 분위기가 가라앉으면서 명함 한 장 나눠주는 것도 쉽지 않다. 길모퉁이에서 유권자들에게 둘러싸여 공약을 설명하며 주민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선거운동을 병행하지만 유권자도 수행원도 응원단도 없는 ‘3무 유세’ 속에 후보들은 웬만해선 힘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렵게 잡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아침저녁으로 피켓을 몸에 두르고 샌드위치맨으로 변신해 쉬지 않고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다. 후보들은 6g에 불과한 금배지만 달면 바뀔 것 같은 생활, 장관급 대우를 받는 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의 신분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눈길 주지 않는 이들에게 보내는 ‘90도 인사’, 상인과 주민들의 면박 등 유세 기간 동안 후보들이 겪는 이런 고통들이 의미 있는 결실로 맺어졌으면 한다. 다만 싸늘한 민심을 향한 수만 번의 머리 조아림의 의미와 그 초심도 꼭 기억하길 바란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 20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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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불어시민당’ 공식 출범…정개련 “처음부터 위성정당 계획한 것”

    더불어민주당이 플랫폼 정당 ‘시민을 위하여’와 함께 4·15 총선에 내세울 비례대표 연합정당 ‘더불어시민당’을 18일 출범시켰다. 민주당이 ‘개싸움 국민운동본부’(개국본) 출신들이 주축인 ‘시민을 위하여’를 앞세워 연합정당이라기 보단 사실상 친문(친문재인) 성향 ‘비례민주당’을 만들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과 연합정당 창당을 논의했던 정치개혁연합(정개련)은 “민주당이 선거연합 정당의 취지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렸다”며 반발했고, 미래당과 녹색당은 결별을 선언했다. ‘시민을 위하여’ 우희종, 최배근 공동대표는 1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자환경당, 기본소득당, 시대전환, 평화인권당, 더불어민주당 등 6개 정당은 ‘단 하나의 구호, 단 하나의 번호’로 21대 총선 정당투표에 참여할 것”이라며 “21일까지 (후보 신청) 공모를 받고, 다음 25일까지 심사해 후보자 등록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불어시민당의 비례대표 후보는 시민, 소수정당, 민주당 추천 후보 등 세 축으로 구성된다. 민주당 추천 후보들은 비례대표 10번 이후부터 후순위에 7명만 배치된다. 우 대표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민주당 중진 의원 당 대표추대설에 대해 “그런 것은 없다. 당 기호 등 현실적 문제로 민주당 의원들이 파견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들이 대표 결정 권한에 들어올 순 없다”고 못 박았다. 이어 “민주당은 말 그대로 ‘원 오브 뎀(one of them)’”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시민당의 독립성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민주당이 녹색당 미래당 등 기성 정당을 빼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신생 원외정당들로만 연합정당을 구성했다는 점에서 더불어시민당은 사실상 ‘비례민주당’이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을 위하여’ 최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연합정당 참여를 결정한 민생당에 대해서도 “최고위원회에서 공식 결정을 했다고는 못 들었다. 답변할 사안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이날 관훈토론회에서 “민주당이 함께 하겠다고 발표한 작은 정당들은 사실 이름도 이번에 처음 본 정당들이 많이 있다”고 했다. 하승수 정개련 집행위원장은 민주당 측 협상 채널이었던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이근형 전략기획위원장을 거론하며 “순수한 마음으로 미래한국당이란 꼼수를 막고 정치개혁 성과를 지켜내고자 만들어진 정개련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이용한 것”이라고 성토했다. 또 “친문, 친조국으로 불리는 ‘시민을 위하여’와 처음부터 위성정당을 계획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안에서도 반발이 터져 나왔다. 이날 비공개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남인순 최고위원은 “왜 굳이 갈등 상황을 만드나. 민주화 운동 원로들과 충분히 얘기하고 결정했어야 한다”고 했다. 이에 이해찬 대표는 “정개련과 의견이 맞지 않는다. 같이 가기 어렵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민주당 중진의원은 “비례연합정당 창당 명분을 만들어 준 원로들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모르겠다. 진보진영 내 분열만 증폭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길진균 기자 leon@donga.com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 202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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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쏭달쏭 여론조사, 더 위험한 집단사고[광화문에서/길진균]

    “여론조사 결과를 믿어도 될까?” 요즘 여야 의원들에게 자주 듣는 질문이다. 체감하는 정부 여당에 대한 민심은 바닥인데 각종 조사에서 나타나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지난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는 민주당 지지율 39%, 미래통합당 22%. 다른 조사에서도 민주당은 통합당을 꽤 앞서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문파들이 여론조사에 적극 응답하고 있다”는 설을 자주 접한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의 답변이 과도 표집, 다시 말해 여론조사에 더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침묵의 나선 이론’ 등을 언급하며 야당 지지자들은 자신의 의견을 감추려 한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가능성 있는 얘기다. 다만 “매우 이례적이진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처음 나온 주장도 아니다. 박근혜 정부 때도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응답한 비율이 실제 박 전 대통령 득표율보다 꽤 높았다. 그렇다면 체감 민심과 다른 여권 지지 여론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우선 이전과 정치 지형과 구도가 달라졌다. 20대 총선까지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비율은 대체로 보수 35%, 진보 25% 정도였다. 보수 성향 유권자가 10%포인트가량 더 많았다. 중도는 약 30%였다. 지금은 다르다. 3월 2일 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진보 28.7%, 보수 26.1%, 중도 36.5%다. 목소리가 크지 않은 중도가 상대적으로 많이 늘었다. 극심한 진영 대결 구도 속에서 핵심은 중도층의 응답인데, 이 중도층에서 민주당과 통합당의 지지가 37.3% 대 18.8%로 두 배가량으로 벌어진다. 정치 현장에서 체감하기 어려운 두꺼운 여권 지지층은 또 있다. 30, 40대 화이트칼라 사무직이 대표적이다. 한국갤럽의 13일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는 ‘잘하고 있다’가 49%, ‘잘못하고 있다’가 45%로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화이트칼라는 ‘잘하고 있다’ 60%, ‘잘못하고 있다’가 36%로 차이가 벌어진다. 각종 데이터를 보면 화이트칼라 응답자는 전체의 20∼30%로 직군별 비중이 가장 크다. 자영업자(15% 안팎)의 두 배 수준.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조국 사태’ 직후에도 화이트칼라의 민주당 지지는 영남에서도 여전히 견고했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19일 한길리서치의 부산시민 1002명 상대 여론조사에 따르면 당시 문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는 ‘부정’(46.2%)이 ‘긍정’(38.6%)보다 많았지만 화이트칼라의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32.4%, 통합당 10.5%였다. 이들은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등으로 문재인 정부의 혜택을 상대적으로 많이 본 계층. 여기에 과거보다 2배가량 높아진 여권에 대한 호남의 지지율도 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이 같은 데이터를 간과하게 만드는 건 보수층 일부의 집단사고가 아닐까 싶다. 특정 인터넷 포털의 댓글들과 극우 성향 유튜브 뉴스들은 현 정권을 거의 저주하다시피 하고 있다. 반문(反文) 정서가 대다수인 것으로 인지하게 만드는 환경이다. 캐스 선스타인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토론하고 나면 평소 생각보다 더 극단적인 생각을 갖는 경향을 보인다”고 했다. 여든 야든 선거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함정은 충성도 높은 지지자들의 목소리를 전체의 여론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 2020-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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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무 다른 20대와 21대 여야의 총선 리더십[광화문에서/길진균]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공천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다. 당시 민주당은 안철수 의원의 탈당으로 진영의 분열이라는 위기에 봉착하자 ‘김종인 카드’를 승부수로 띄웠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쇄신 공천을 앞세우며 총선을 진두지휘했다. 친노의 좌장 이해찬 의원과 정청래 의원도 공천에서 배제됐다. 당사 앞에 모인 지지자들은 “정청래 의원을 살려내라”고 외쳤다. “(당락을 결정한) 정무적 판단은 정무적 판단으로 끝나는 것.” 김 대표의 답변은 간결했다. 그는 “정무적 판단이면 정무적 판단인 거지, 다른 이유가 뭐가 있느냐. 물어보지 마라”며 기자들의 질문을 끊었다. ‘자의적 판단’ ‘관심법(觀心法)’ 등 신랄한 비판이 쏟아졌지만 그는 거침없는 행보와 간결한 답변으로 이를 정면 돌파했다. ‘차르’라는 그의 별명이 더욱 공고해졌다. 당시 민주당 공천은 당 구성원조차 놀라게 만든 김 대표의 리더십, 총선 패배는 곧 2017년 대선 필패라는 친문 핵심들의 절박함이 결합해 빚어낸 결과라고 본다. 결국 20대 총선은 변신을 꾀한 민주당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반면 ‘진박 공천’과 ‘옥새 들고 나르샤’ 등 당내 공천 파동을 극복하지 못한 새누리당은 2당으로 전락했다. “지금 당 선거를 누가 이끌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최근 당 상황을 두고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이 같은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임미리 교수 칼럼 고발 사태, ‘조국 내전’을 촉발시킨 김남국 변호사의 서울 강서갑 출마 등으로 위기감이 당 안팎에서 커지고 있지만 이를 해결해야 할 이해찬 대표의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4년 전과 너무나 다른 민주당의 모습은 또 있다. 당내 후보들의 반발이다. 오제세 의원 등 중진은 물론이고, 김 변호사 등 원외 후보들도 “이게 이 대표가 말하는 시스템 공천이냐”라며 공공연하게 이 대표의 리더십에 반발하고 있다. 반면 미래통합당은 4년 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이 주도하는 통합당의 ‘조용한 물갈이 공천’은 정치권의 총선 전망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김 위원장은 공천 배제 대상 의원들을 은밀히 접촉해 스스로 불출마를 선언하게 하는 방식으로 잡음을 최소화하는 새로운 리더십을 선보이고 있다. 통합당의 텃밭인 대구경북 지역의 경우 후보자들 공천 면접 일정을 2차례나 미뤄가면서 현역 의원들을 향한 불출마 압박을 이어가는 뚝심도 보여줬다. 그러다 보니 ‘스텔스 공천’이라는 비유까지 나온다. 이 역시 김 위원장의 리더십과 이번 총선 패배는 이어지는 2022년 3월 대선 필패라는 보수 진영의 절박감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4년 전과 정반대 모습인 두 정당. 결전의 시간이 50일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의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이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 결과가 총선 결과로 이어진다고 확신하는 정치 전문가는 별로 없다. 2016년 4·13총선을 앞두고 2월 말 실시한 대다수 여론조사는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제1야당인 민주당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결과는 달랐다. 투표일까지 구성원들이 절박함을 유지하고 이를 엮어낼 수 있는 리더십을 잃지 않는 당이 마지막 승자가 되지 않을까.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 2020-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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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레이크 없는 친문 오만인가 전략인가[광화문에서/길진균]

    “지금까지 이런 정치는 없었다. 이것은 오만인가 전략인가.”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의 행보를 두고 최근 여의도에서 들은 우스갯소리다. 영화 ‘극한직업’에 등장한 대사를 패러디한 것이다. 집권세력, 특히 친문 진영의 행태가 과연 선거를 앞둔 정치 세력의 모습이 맞는지 의아하다는 것이다. 정치권이 죽기 살기로 싸웠던 ‘패스트트랙 전쟁’이 지난달 13일 유치원 3법까지 통과되면서 민주당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총선을 93일 앞둔 시점이었다. 집권세력이 철저히 힘으로 밀어붙인 결과다. 협상이나 정치 모두 상대가 있는 싸움이다. 상대 진영이 느낄 상실감과 상처를 생각할 때, 고개를 숙이는 척이라도 하는 것이 상식이고 전략이다. 하지만 보여주는 모습은 반대다. 다음 날인 지난달 14일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향해 ‘마음의 빚’을 언급했다. 이후 청와대는 “조 전 장관 수사 과정에서 인권 침해가 발생했으니 조사해 달라”는 국민청원을 국가인권위원회에 보냈다고 밝혔고, 지난달 20일 조 전 장관의 정책보좌관을 지낸 김미경 변호사는 대통령균형인사비서관에 임명됐다. 전직 청와대 출신들의 ‘묻지도 따지지도 마’ 식의 총선 출마를 두고 당 안팎에서 ‘문돌이의 공습’이라는 따가운 시선이 팽배하지만 여권 내 누구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윤건영 전 대통령국정기획상황실장은 오히려 “총동원령 내려야 한다” “다시 돌아가도 조 전 장관을 임명한다” 등 자극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중도 진영을 포함해 상당수 유권자가 느낄 수 있는 두려움이나 반발에 대한 거리낌은 전혀 없는 듯하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과 정봉주 전 의원은 당의 권고도 무시하고 있다. 김 전 대변인은 ‘조국 교수에게’로 시작하는 편지글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아예 조 전 장관을 공천 정국으로 소환했다. 국민도 당도 아닌, 친문 지지자들만 보고 가겠다는 것을 명확히 한 셈이다. “우리가 이른바 ‘싸가지 없는 진보’를 자초한 것이 아닌지 겸허한 반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문 대통령의 책 ‘1219 끝이 시작이다’에 나오는 그 유명한 구절이다. 2012년 대선 패배 이후의 이 같은 반성은 이제 ‘흘러간 과거’다. 도대체 고개를 숙일 줄 모른다. 심지어 잘못을 해도 반성이라곤 찾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실책을 지적하면 “그럼 이명박근혜 시절로 돌아가자는 거냐?”고 역정부터 낸다. 박정희 정권의 독재를 비판했을 때 “그럼 김일성 밑에서 공산주의 하자는 거냐?”며 대뜸 입부터 틀어막았던 군부세력에 대해, 그들은 뭐라고 했었던가. 야권의 분열 속에 친문 진영은 40% 안팎의 지지층만 다지면 1당이 된다고 믿는 듯하다. 여의도 속설 중 하나는 ‘좋은 놈 밀어주자는 것보다 미운 놈 응징하자고 해야 표가 더 잘 뭉친다’는 것이다. 이 같은 표심을 선거에 능한 친문 진영이 읽지 못할 리 없다. 그래서 극단적 지지층만 바라보고, 남 탓을 하고, 편을 가르는 것일 게다. 그럼 문재인 정부는 성공하나. “오직 승리밖에 모르는 자들이 과연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을까.” 설 연휴 때 본 중국 드라마 ‘사마의2: 최후의 승자’에 나오는 대사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 20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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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짝 ‘청년인재’ 영입… 좌절하는 ‘청년 정치’[광화문에서/길진균]

    4·15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외부 인사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각 당은 총선 주요 화두로 떠오른 ‘변화’ ‘세대교체’ 등을 의식한 듯 영입의 초점을 ‘청년’에 맞추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 최혜영 장애인식개선교육센터 이사장(40·여)을 1호로 영입한 이후 시각장애인 어머니와의 이야기로 화제를 모았던 원종건 씨(27)를 2호로, 5호로 청년소방관 오영환 씨(31)를 잇달아 영입했다. 한국당은 탈북자 인권운동가 지성호 씨(39)와 ‘체육계 미투 1호’로 알려진 전 테니스 선수 김은희 씨(29·여)를 데려왔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이들을 비례대표 안정권이나 텃밭 지역구에 배치해 미래의 ‘젊은 리더’로 키우겠다고 한다. 젊은 인재 영입 경쟁을 주도한 민주당에선 “흥행 성공” “계파 간 갈등 없는 성공적 영입” 등 호평이 자주 들린다. 하지만 우려도 없지 않다. “한국 정당 정치 수준이 딱 드러난 인재 영입”이라는 한 젊은 정치인의 독설이 유독 귀를 맴돈다. ‘꽃가마’를 타고 여의도에 등장하는 ‘청년 인재’의 모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각 당은 선거 때만 되면 각종 명분을 앞세워 청년을 소환하고, 이를 ‘청년을 위한 청년의 정치’라고 포장한다. 하지만 이렇게 영입된 청년 인재들이 ‘늙은 정당’의 정치적 회춘을 위한 사진 모델로 소모되고 잊혀지는 경우를 허다하게 지켜봤다. 좋은 캐릭터와 스토리를 갖춘 것과 정치를 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더 큰 문제는 진짜 청년 정치인들의 좌절 아닐까 싶다. 영입된 깜짝 인사들은 사실 정치를 잘 모른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정치 꿈을 키워온 젊은 보좌진이나 당직자들이 궂은일은 다 하고 외부 영입 청년들이 ‘젊은 영감’ 노릇을 하는 경우가 많다. ‘공정’을 외치는 2030세대에게 외부에서 온 젊은 영입 인사들이 “내가 이제부터 여러분들의 대표가 되겠다”고 얼마나 자신 있게 외칠 수 있을까. 이렇게 발탁된 또래 인사들을 향해 당직자 등 동년배 젊은 정치인들은 과연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낼까. 보좌진 당직자 등이 익명으로 글을 올리는 ‘여의도 옆 대나무숲’엔 지금도 “각 당은 감성팔이 이슈팔이 상징성팔이 그만 좀 하라” “당신들 밑에서 밤낮 주말 안 가리고 일하는 노예들은 눈에 안 보이나” 등 비판의 글이 이어지고 있다. 요즘 총선을 앞두고 한국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나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 같은 30대 정치 리더를 가질 때가 됐다고들 한다. 하지만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유럽의 젊은 정치 리더들은 어느 날 ‘꽃가마’를 타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이들은 10, 20대 때부터 기초단체, 정당 조직에서 정치를 보고 배웠다. 나이는 어리지만 10년이 훌쩍 넘는 정치 경험과 거기에 더해진 젊음이 자유롭고 실용적인 노선을 추구하는 기반이 됐고, 구습을 깨뜨리는 ‘세대교체’의 주역이 될 수 있었다. 우리도 광역·기초 단체 의회에서 젊은 정치 리더의 꿈을 키우며 뛰고 있는 청년 정치인들이 적지 않다. 각 당의 경쟁적인 깜짝 ‘청년 인재’ 발탁이 되레 오랫동안 정치를 준비한 이들의 꿈을 키워주기는커녕 희망을 꺾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 2020-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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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靑 참모 70명 출마 러시… 누구를 위한 인적 쇄신인가[광화문에서/길진균]

    “결국 몇 명이나 공천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최근 만난 ‘문재인 청와대’ 출신 인사는 이런 질문을 했다. 최근 여의도, 특히 더불어민주당 안에선 내년 총선에 나서는 청와대 참모 수가 화제다. 정부 출범 직후부터 “21대 총선에 40명 안팎의 청와대 출신이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있긴 했다. 그런데 그 규모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 예비후보 등록을 시작한 17일 하루 만에 20명이 넘는 전직 수석, 비서관, 행정관 등이 후보 등록을 마쳤다. 이 수는 계속 늘고 있다. 출마 시기를 재고 있는 현직 참모도 여럿 있다. 민주당 최재성 의원은 한 방송에서 “청와대 출신 중 총선에 나올 분들이 60명을 훌쩍 넘어 70명 정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청와대 출신 인사의 총선 출마는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같은 정부 안에서 이렇게 많은 대통령 참모들이 직을 던지고 한꺼번에 출사표를 낸 적은 없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치러진 19, 20대 총선에 출마한 전직 청와대 참모는 각각 10명 안팎이었다. 노무현 정부가 끝난 뒤인 2008년 4월 치러진 18대 총선 때도 노무현 청와대 출신 인사들의 출마는 30명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야당은 “청와대가 총선 준비 캠프냐”고 비판하고 있다. 청와대 참모들의 대거 출마는 어쩌면 필연적 수순이다. 문재인 정부는 내년이면 집권 4년 차다. 서서히 정권 후반기에 접어든다. ‘4년 차 증후군’이 찾아올 가능성이 크다. 그 예후인 권력형 비리 의혹, 인사와 정책 실패에 대한 내부 비판 등은 이미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내년 총선은 본격적인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김대중 정부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의원은 “청와대의 시간은 총선 공천까지”라며 “내년 총선이 끝나면 대통령의 시간은 끝나고, 국회의 시간이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집권 세력의 위기의식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청와대 참모들의 여의도 이동 배치는 그 연장선으로 봐야 한다. 정권 후반까지 국정 동력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선 국회에 진짜 친문(친문재인) 의원이 더 많이 포진해야 한다. 후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볼 것이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을지는 다른 문제다. 상대적으로 젊은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이 1969년생, 내년이면 51세다. 대다수가 50대 중후반의 이른바 ‘386’이다. 이들에게 다음 기회는 2022년 지방선거 또는 2024년 총선 때나 온다. 현 정부 이후다. 나이도 환갑을 바라보게 된다. 결국 ‘이번이 아니면 다음 기회는 없다’는 개인적 사정과 욕심, 정권의 필요가 맞아떨어진 결과로밖에 볼 수 없다. 당내 시선이라고 따뜻할 리 없다. 이들 상당수는 민주당 지역구 현역 의원 116명 중 79명이 포진하고 있는 수도권 출마를 예고했다. 현역 의원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청와대 친문들을 위한 ‘물갈이’ 시도 아니냐”는 반발은 총선 화두로 떠오른 ‘세대교체론’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도 있다. 옥석 가리기 없는 청와대발 대규모 인적 쇄신 시도는 부작용만 키울 뿐이다.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 참모들의 총선 출마를 둘러싸고 벌어진 진박(진실한 친박) 논란은 새누리당의 총선 패배로 이어졌다. 불과 3년 전 이야기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 2019-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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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낙연 “내가 日지도자라면 국익 위해 한국 끌어당길것”

    이낙연 국무총리(사진)는 한일 갈등과 관련해 “이번에 경제 마찰을 겪으면서 한일 양국이 서로 깊게 끼어들어 있는 톱니바퀴 같은 관계라는 점을 (양국 모두) 깨닫게 됐다”며 “양국 경제계는 이를 잘 살려나가는 게 서로에게 이익이란 점을 충분히 인식했는데 아직 일본 정부가 인식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퇴임을 앞두고 2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일본의 지도자라면 때론 한국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한국을 끌어당기려고 할 것 같다”며 “정부를 떠나도 일본 정부와 신뢰를 회복하고 우호를 두텁게 하기 위해 (현재 양국에 드리워진) 정치라는 더께를 벗겨내는 일을 할 것이다. 몇 번의 계기가 있을 것이며 그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께도 간단히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20일 일본의 수출규제 부분 완화 조치가 나온 뒤 24일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는 만큼 이 총리가 퇴임 후에도 양국 관계 정상화를 위해 모종의 역할을 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장수 총리(23일로 937일째)이자 강한 내각 장악력으로 ‘책임총리’ ‘군기 반장’으로 통했던 그는 “각론이 없는 정치, 행정이나 정책은 공허할 뿐이다. 마치 신발을 신고 발바닥을 긁는 격” “국민들이 묻기 전에 미리 답을 드릴 수준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내년 총선과 관련해선 말을 아꼈다. 이 총리는 인터뷰 내내 “당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겠다”는 말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이낙연의 정치적 미래’를 ‘실용적 진보주의’로 규정하며 구체적인 구상을 감추지 않았다. 이 총리는 “세상이 더 공정하고 정의롭게 발전해야 한다는 믿음이 진보주의라면, 그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성과를 내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실용주의”라고 강조했다. 길진균 leon@donga.com·황형준 기자}

    • 2019-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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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세대 국회 진입의 벽 허물어야”

    5선의 더불어민주당 원혜영 의원(경기 부천오정·68)이 내년 4·15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원 의원은 “돌아서는 모습이 초라하거나 추하지 않게 정치를 마무리하는 게 나를 선택해준 유권자에 대한 예의”라고 했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세대교체’가 핵심 화두가 된 데 대해 그는 “소장파 청년 세대의 국회 진입 벽을 허무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다선이니까, 나이가 많으니까 물러나야 한다는 도식은 해법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3선의 백재현 의원(경기 광명갑·68)도 이날 원 의원과 함께 내년 총선 불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다음은 원 의원과의 일문일답. ―내년 총선에서 6선이 되면 국회의장 후보 중 한 명인데 아쉽진 않은지. “20대 총선에 출마할 때부터 여기까지만 해야겠다고 생각해왔다. 은퇴자 1000만 명 시대를 맞아 ‘제2의 인생’ 모델을 많이 만드는 것도 사회적으로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국회가 바뀌려면 20, 30대가 많이 들어와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소장파 청년 세대의 국회 진입 벽을 허무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청년, 여성의 진출 기회를 확대하는 제도는 필요하지만 단지 다선이니까, 나이가 많으니까 물러나야 한다는 도식 역시 해법은 아니다.” ―대다수 유권자는 각 당의 인적 쇄신을 원하는 듯하다. “사실 그동안 국회는 뿌리도 기둥도 안 남기고 휙휙 쓸려갈 정도로 세게 물갈이가 이뤄져왔다. 그게 바람직한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현재 국회 내 5선 이상은 15명으로 전체의 5%다. 경쟁적인 물갈이가 꼭 근본 해법은 아니다. 21대 국회는 상임위원회별로 월 2회 이상 반드시 법률 심사를 하도록 하는 등 일하는 국회가 되도록 해야 물갈이 대상이 보인다. 관련 준법 캠페인을 불출마 선언한 자유한국당 김세연, 김영우 의원 등 다른 의원들과 구상하고 있다.” ―총선 예비후보등록일(17일)을 앞둔 지금이 물러날 적기라고 했는데, 어떤 후배들이 정치판에 들어왔으면 하는지. “우리 사회를 바꾸는 데 정치가 가장 중요한 영역이란 걸 인정해야 한다. 그런 인식 없이 내 존재를 실현하고 인정받기 위해서라는 사적 동기가 주가 돼선 안 된다. 시대정신을 읽고, 이를 갖추기 위해 평소 노력해온 사람이 정치로 들어와야 한다. 그리고 공부하는 자세가 국회의원에게 가장 중요하다.” ―차기 국무총리 후보군으로도 거론된다. “선출직은 내 결단이지만 그런 일(임명)들은 내가 결정할 건 아니다. 내 의지로 물러나는 정계 은퇴와 그건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길진균 leon@donga.com·김지현 기자}

    • 2019-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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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 영입” 외치는 의원들 청년 막는 장벽부터 허물라[광화문에서/길진균]

    “돈이죠.” A 씨는 수도권 지역구에서 내년도 총선 출마를 선언한 40대 정치 신인이다. 얼마 전 만난 그에게 “가장 힘든 점이 뭐냐”고 물었다. 그는 1분도 머뭇거리지 않고 이같이 답했다. 영남 지역에서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30대 정치 신인 B 씨는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한 창의적인 홍보와 열심히 몸으로 뛰는 모습으로 지역에 나를 알리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도 “작은 사무실도 임대료 및 유지비로 한 달에 100만 원 이상은 든다”며 “수천만 원에 이르는 당 경선 후보 기탁금, 중앙선관위 기탁금 등 돈 문제를 생각하면 걱정이 많다”고 했다. 대한민국엔 많은 종류의 정치인이 있다. 선출직만 해도 군수, 시장, 국회의원, 대통령 등 그 직역이 다양하다. 하지만 이 많은 정치인 중에서 언제든 후원금을 모아 정치 활동에 쓸 수 있는 정치인은 딱 한 종류밖에 없다. 국회의원이다. 중앙선관위도 이 같은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개선 의견을 내고 있지만 공직선거 입후보 예정자의 선거 관련 비용 모금 허용 등을 담은 정치자금법 개정안은 10년 넘게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 현역 의원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A 의원(초선)=젊은 세대의 정치 진출 통로인 기초의회 의원들에게도 후원금 모금 기회를 확대해 줘야죠. B 의원(3선)=정책이나 자기의 식견을 가지고 승부를 걸어야지 후원금 받아 가지고 돈 많이 쓰는 사람이 당선되게 해서 되겠어요? 선거제도 개혁과 정치자금법 개정을 위해 2017년 하반기 국회에서 열린 정치발전특별위원회 1소위 회의록에 나타난 한 대목이다. 한 해 최대 3억 원까지 후원금을 모을 수 있는 현역 국회의원은 모금한 정치자금으로 자신의 얼굴과 이름이 들어간 현수막을 많게는 수백 개씩 지역구에 내걸면서도 잠재적 경쟁자들에 대해서는 한사코 “후보 개인의 정책과 실력이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법적 선거비용 안에서의 후원금 모금조차 그 시기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중앙선관위에 내야 하는 기탁금(총선의 경우 1500만 원)도 경제적 기반이 약한 청년들에겐 큰 진입 장벽이다. 후보자 난립을 막기 위해 만든 규정이지만 사실상 ‘청년 진출 방지법’으로 악용되는 측면이 있다. 선관위에 따르면 미국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등은 기탁금 납부제도가 없다. ‘고액 기탁금’이 필요한 곳은 한국과 일본이 유일하다. 청년 후보에게는 선거구 주민 몇 % 이상의 서명으로 후보 등록 자격을 준다든지, 기탁금을 대폭 감면해 준다든지 얼마든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청년의 ‘정치 활동’을 온갖 규제로 묶어 놓고 한국에서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같은 젊고 참신한 정치 리더가 나올 때가 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선거 때마다 영입된 새로운 청년들은 대부분 ‘깜작 홍보’ 대상으로 활용되고, 소모된 뒤 잊혀진다. “청년 영입”을 외치기 이전에 청년들이 정치권에서 스스로 뜻을 펼칠 수 있는 현실적인 시스템부터 구축해야 한다.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 2019-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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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희상 “내년 총선후 개헌해야… 여야 막론하고 찬성세력 3분의2 됐으면”

    《“내년 총선 후 구성되는 21대 국회에선 개헌을 해야 한다. 개헌에 찬성하는 세력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체 의석의 3분의 2가 됐으면 좋겠다.” 문희상 국회의장(74)은 14일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지핀 개헌 논의에 대해 “21대 국회가 열리고 대통령 임기가 끝나기 전까지 그때밖에 할 수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지난해 7월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된 문 의장은 연내 개헌 처리를 목표로 삼았지만 동력을 얻지 못했다. 문 의장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터져 나오는 세대교체 요구에 대해선 “어느 때나 세대교체 요구가 있었지만 제대로 하기 위해선 시대정신과 국민 요구에 맞는 선명한 깃발과 그에 맞는 기수가 중요하다. 그렇지 않은 세대교체론은 인위적일 수 있다”고도 했다.》 문 의장은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장을 거쳐 열린우리당 의장과 민주통합당·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낸 6선(경기 의정부갑) 의원이다. 인터뷰는 임기 반환점을 돈 문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향후 과제, 총선 전망, 한일 갈등 해법,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처리 등에 대한 생각을 듣기 위해 14일 국회의장실에서 1시간 10분가량 진행됐다. 다음은 문 의장과의 일문일답.○ “개헌, 고칠 수 있는 것부터 고쳐야” ―문 대통령이 10일 여야 5당 대표 만찬회동에서 “내년 총선 공약으로 개헌 공약을 내걸어서 민의에 따르자”고 했다. “그렇게 될 거라고 본다. 역대로 ‘정치가 꽉 막혀서 더 나아갈 길이 없다’고 했을 때 이를 뒤집어 놓은 게 국민이었다. 4·19혁명과 6월 민주항쟁이 끝나고 제도적으로 마무리 지은 건 개헌이었다. 개헌의 기본 원칙은 제왕적 대통령제에 집중된 권력을 분화시키고 지방자치를 활성화해서 지방자치단체가 자립할 근거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개헌에 대한 공감대는 이미 있다. 방법론이 중요해 보인다. “21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대통령 임기를 2년쯤 남겨둔 그때밖에 할 수 없다. 개헌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체 의석의 3분의 2가 됐으면 좋겠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에서 세대교체 요구가 빗발치고 있는데…. “불진즉퇴(不進則退)라고 나아가지 않으면 퇴보한다. 퇴계 이황의 말씀이다. 늘 앞으로 나가야 하고 교체되고 변화돼야 된다. 교체는 두 가지 의미다. 하나는 깃발이고 하나는 기수다. 시대적 정신과 국민 요구에 맞춰 깃발을 늘 닦고 있어야 한다. 구깃구깃한 옛날 깃발을 그대로 신줏단지처럼 가지고 있으면 제대로 된 정당도, 제대로 된 국민도 아니다. 그 다음이 기수다. 그 (범주) 안에 세대교체가 들어간다.” ―일각에선 세대교체가 반드시 새로운 정치를 뜻하는 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혁명이 아닌 이상 (인적 교체가) 작위적이어선 안 된다. 문제는 (새로운 사람들이 내거는 깃발이) 시대정신에 맞거나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면 하지 말라고 해도 바뀌게 된다. 인위적으로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억지로 하는 건 정략적 주장일 뿐이다. 세대교체에 대한 최종 판단은 결국 국민이 하게 될 것이다.” ―각 당이 2030세대에게 비례대표 50% 할당하자는 주장이 있다. “일리가 있다. 여성할당제를 하는 멕시코는 의원 50%가 여성이다. 그런 식으로 청년도 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정확한 배분 비율은 각 당에서 정하는 것이다. 제도적으로 점진적으로 그쪽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본다.” ―보수 통합 논의는 어떻게 평가하나. “특정 정당을 가정하고 얘기하진 않겠다. 중요한 건 기수가 기수답지 않다면 모래알처럼 안 모인다. 깃발과 기수가 맞아떨어져야 된다. 보수통합도 깃발부터 선명해야 된다. 우선 통합이건 연대건 선거연합이든 세력끼리 뭉치자고 할 땐 대의명분이 뚜렷해야 한다. 대의명분이 없으면 시너지는커녕 마이너스가 된다. 둘째, 공개적으로 논의를 해야 한다. 비밀로 해서 마지막에 터뜨리는 것과 공개하는 게 있는데 성공 확률은 후자가 더 높다. 밀실에서 하면 야합이 된다.”○ “국민통합에서 실패하면 0점” ―문재인 정부가 반환점을 돌았다. 청와대 참모를 교체해야 할 타이밍이라는 지적도 많다. 어떻게 평가하는지…. “문 대통령이 반은 성공했다고 본다. 그런데 이제부터다. 이제부터는 핑계 댈 일이 없다. 이제부터 결과로 책임져야 된다. 평가의 시간이 시작됐다. 시간이 재깍재깍 흐르고 있는 것이다. 나는 (현 정부의 정책) 방향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방법론에 있어서 생기는 문제점은 개선하겠다고 해야 한다. 아주 실용적인 접근으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예상하면서 민생, 경제 위주로 전략을 맞춰야 한다.” ―반은 성공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대목이 성공했다는 것인가. “(임기) 반을 지났는데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한다는 비율이 절반가량 나오니까 하는 말이다. (적폐청산 등) 기본 방향 설정이 잘못됐다고 얘기할 수 없다. 그런데 앞으로는 민생, 경제, 통합과 협치가 중요하다. 아무리 안보와 경제에 유능한 대통령이라고 해도 국민통합에서 실패하면 빵점(0)이다. 대통령의 능력은 국가경영과 국민통합의 곱셈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임기 하반기엔 (문재인 정부가) 민생과 협치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어떻게 평가하나. “대통령의 독특한 캐릭터를 보완하는 측면에서 효율적이다. 현명하고 말을 맛깔나게 한다. 방어에 아주 제격이다. 정권의 대외창구로서의 총리의 임무는 방어다. 최일선에서 말로 막아야 하는데 내공도 있고 논리에서도 지지 않는다. 차기 주자에 대한 기대와 특정 지역(호남)에서 절대적 지지를 확보한 사람으로서 여유가 있다.” ―검찰 개혁 법안을 부의하기로 한 12월 3일이 얼마 안 남았다. 향후 패스트트랙 처리는 어떻게 전망하면 되나. “12월 3일 부의된 뒤 본회의가 언제 열리느냐에 따라서 다르다. 나는 그때까지 여야에 시간을 줬으니 합의를 해오라는 거다. (부의되면) 상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 타이밍에 예산, 사법개혁, 정치개혁 법안 일괄해서 처리될 거라고 예측하는 것이다.” ―여야 간 합의가 안 되면 상정이 불가피하다고 하는데 한국당은 ‘게임의 룰’을 합의 처리를 안 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건 거짓말이다. 역대 선거법을 합의해서 결정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대부분 과반수로 밀어붙였다. 합의한 것은 선거구 획정이다. 그것도 안 하면 돌아버린 국회, 미친 국회다. 시간이 많지 않다. 12월 17일부터 예비후보자 등록을 해야 된다.” ―의원 정수 늘리자는 논의가 있었는데…. “이제 묵은 쟁점이다. 여당과 제1야당이 반대하니까.”○ “지소미아 종료 뒤집을 명분 없어” ―이달 초 한일 기업의 자발적 기부금과 양국 국민의 성금으로 기금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하루아침에 뚝 떨어진 안이 아니다. 여기서 만날 수 있는 사람 다 만났고 그쪽에서도 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 다 만났다. 내가 꼭 전해야 할 말은 두 사람이 의장 특사 자격으로 세 번에 걸쳐 일본에 가서 전달했다. 나 나름대로는 점검을 한 안이다. 현재 안은 만들었다. 법안 형태로 제출할 것이다.” ―일각에선 ‘문희상 이니셔티브’라고도 하는데 일본 측 반응은 어떠한가. “지금까지 나오는 게 절대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겠나.” ―지소미아 종료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대로 종료되면 (한미일 관계에) 후폭풍이 일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지소미아를 종료한다고 얘기했고 그걸 뒤집을 만한 명분이 없는데 어떻게 이를 취소한단 말인가. 그건 주권 국가가 아니다. 일본이 먼저 화이트리스트 배제할 때 안보를 이유로 삼았다. 우리를 못 믿겠다는데 우리가 왜 정보를 줘야 하나.” ―미국은 적극적으로 일본을 설득하고 있다고 보나. “일본은 우리보다 10배의 압력을 (미국으로부터) 느끼고 있을 것이다.” ―여당 중심으로 과도한 방위비 분담금 요구에 대해 국회 비준 동의에 반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어떻게 만들어진 한미동맹인데 이를 돈으로 계산하자는 건 나로선 이해가 안 된다. 우리가 돈을 주니까 주한미군이 와 있는 것이냐고 미국에 되묻고 싶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국회 동의를 얻어야 되기 때문에 정부가 들고 오는 안을 우리가 동의 안 해 줄 일은 없다. 정부가 합의될 정도로 (협상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한미동맹을 서로 깰 순 없지 않은가.”인터뷰=이승헌 정치부장 / 정리=길진균 leon@donga.com·황형준·김지현 기자}

    • 2019-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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