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희

조건희 기자

동아일보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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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를 다루다가 지금은 사건팀 데스크를 맡고 있습니다. 정책이 사건이 되는 지점을 자세히 들여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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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4-03-27~20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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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獨, 중증 환자만 대형병원 응급실 이송

    ‘심장마비·외상→ 귀터슬로 병원→ 녹색(치료 가능한 의료진 및 병상 있음).’ 지난달 22일 독일 서부 귀터슬로시 중앙구조관리국 상황실에 들어서자 중앙에 설치된 대형 화면이 먼저 보였다. 심장마비나 외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비롯한 각 질환별로 어느 병원에 현재 이를 치료할 의료진이 있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병원 및 환자 이송 관리 시스템’이다. 이 화면에는 응급환자들이 탄 구급차가 어느 병원으로 가고 있는지 동선이 떴고, 심지어 상황실 아래 18대의 구급차 중 어떤 구급차가 현재 수리 중인지도 알 수 있었다. 상황실 직원 4명이 이 화면을 보며 분주히 통화를 했다. 독일 중앙구조관리국은 우리나라 소방재난본부에 해당한다. 이날 방문한 귀터슬로시 중앙구조관리국은 지역 주민 37만5000명을 대상으로 연평균 360여 건의 중증 응급환자 이송을 처리한다. 안스가어 칸터 귀터슬로 중앙구조관리국 센터장은 “응급환자 발생 시 환자 정보를 관할 지역 내 10곳이 넘는 병원과 구급차 18대에 빠르게 전파하고, 8∼12분 내로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한다”고 말했다. 기자가 이런 설명을 듣는 동안에도 ‘병원 및 환자 이송 관리 시스템’에 응급환자가 발생했다는 표시가 떴다. 응급환자의 가족이 112(우리나라의 119)로 전화를 걸었고, 곧바로 중앙구조관리국 상황실로 연결됐다. 심장마비 환자였다. 직원은 환자의 상태와 위치 등을 묻고 응급처치법을 조언하며 안심시켰다. 그사이 응급현장에 구급차가 도착했다. 응급구조사가 현장에서 보낸 환자 정보를 토대로 중증인지, 경증인지를 파악했다. 마침 환자의 집에서 가까운 귀터슬로 병원에 심장마비 환자를 치료할 병상과 의사가 모두 있었다. 환자를 실은 구급차는 바로 출발했다. 중앙구조관리국은 환자의 응급도를 엄격히 구분해 꼭 필요한 환자만 대형병원으로 보낸다. 나머지는 소형병원에서 진료를 받게 한다. 이 때문에 중증 응급환자의 진료가 지연되는 일이 드물다. 독일 전역에는 이러한 중앙구조관리국이 주민 10만∼60만 명당 한 곳씩 설치돼 응급환자 이송을 돕는다. 내과 전문의 볼프강 슈미트 씨는 “중앙구조관리국이 지역 내 병상이나 의료진을 관리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한국과 같은 ‘응급실 뺑뺑이’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국내 응급의료의 큰 문제 중 하나는 ‘응급실 과밀화’다. 중증환자와 경증환자, 보호자가 뒤섞여 시장통을 방불케 한다. 이는 컨트롤타워 없이 현장에서 임기응변으로 대응해야 하는 응급의료 시스템에 기인한다. 거리를 달리는 구급차 안에서 구급대원이 직접 전화를 돌려가며 환자를 수용해줄 병원을 찾다 보니 효과적으로 환자를 배분하기는 불가능하다. 또 구급대원이 이송하는 환자의 중증도를 판단했더라도 환자가 대형병원을 가겠다고 하면 거부하기가 어려운 구조다.獨, 컨트롤타워 허락 없인 응급실 못가… 韓, 환자 절반이 경증 獨 컨트롤타워, 최적 병원 찾아 안내병원, 환자도착 10분전 치료준비 마쳐韓, 구급대원이 환자분류-병원 문의‘경증, 응급실 이용 제한’ 진척 없어 ‘너무 늦게 발견한 건 아닐까.’ 지난달 21일 독일 귀터슬로시에서 만난 안드레 슈뢰더 씨(59)는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사연을 들려주며 연신 가슴을 쓸어내렸다. 5월 어머니 집을 찾았다가 바닥에 누워 있는 어머니를 발견했고, 독일 긴급구조 번호인 112(우리나라의 119)에 전화를 걸었다. 구급차는 도착하자마자 어머니가 사는 귀터슬로시 할레 지역에서 약 24km 떨어진 빌레펠트 시내 병원으로 내달렸다. 도시 외곽 지역인 할레는 주변에 병원이 부족한 의료 낙후 지역에 속한다. 하지만 독일의 중앙구조관리국의 신속한 안내로 어머니를 살릴 수 있었다. ● 응급실 ‘컨트롤타워’ 둔 셈 독일의 중앙구조관리국이 슈뢰더 씨의 어머니를 ‘골든타임’ 내에 이송할 수 있었던 건 지역 내 응급실을 관리하는 ‘컨트롤타워’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중앙구조관리국 상황실에선 관할 지역 내 응급실 병상 수뿐 아니라 증상별로 처치할 수 있는 의료진의 근무 여부, 배치된 구급차의 이동 상황까지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중앙구조관리국 상황실 직원은 응급구조사가 업데이트하는 환자의 상태를 보면서 인근 병원 병상 현황과 의료진 근무 여부를 확인해 ‘최적의 병원’으로 이송시킨다. 일단 구급차를 탄 환자는 어느 병원으로 갈지, 응급실에 갈지 등을 선택할 수 없고 중앙구조관리국의 안내에 따라야 한다. 병원과의 유기적인 협력도 이뤄진다. 안스가어 칸터 귀터슬로시 중앙구조관리국 센터장은 “환자를 어느 병원, 어느 의사에게 보낼지 결정하고 병원에 이를 공유하면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기 최소 10분 전에는 응급처치 및 치료 준비를 끝낸다”고 말했다. ● 중-경증 환자 분류로 응급실은 평온 병원에서도 환자 이송 전 중앙구조관리국이 △중증 △1차 처치가 필요한 중증 △경증 △도움이 필요한 환자(제 발로 걸어 들어온 환자)로 나눈 것에 맞춰 철저히 진료 동선을 분류하고 중증·응급환자부터 진료한다. 지난달 19일 찾은 함부르크시 아스클레피오스 병원 응급실에는 당뇨병 환자인 중년 여성이 발이 퉁퉁 부은 채로 구급차에 실려 왔다. 경증환자 전용 통로로 들어온 이 환자는 미리 대기 중이던 의료진의 진찰을 받고 10여 분간 통로에 대기했다가 경증환자 치료실로 이동했다. 이런 엄격한 환자 분류로 응급실은 붐비지 않았고, 중증환자가 먼저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아스클레피오스 병원 응급실 토비아스 슈트라파타스 총책임자는 “중앙구조관리국은 어느 병원에서 환자가 빠르게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한다”고 말했다. 또 중앙구조관리국이 환자를 보냈다면 독일 병원은 반드시 환자에게 1차 응급처치를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이 병원 응급실 토비아스 셰퍼 부과장은 “중앙구조관리국에서 넘어온 환자의 1차 응급처치는 병상이 있든, 없든 간에 의무”라고 말했다.● 구급대원이 ‘컨트롤타워’부터 운전-응급처치 다 하는 한국 독일과 달리 우리나라 응급실은 항상 포화 상태다. 중앙응급의료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중증환자를 치료하는 권역 및 지역응급의료센터를 방문한 환자는 525만171명이다. 그중 249만9728명(47.6%)이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KTAS)에서 가장 낮은 4, 5단계로 평가됐다. 증상이 경미하거나 아예 응급한 상태조차 아니었다는 뜻이다. 이런 환자들로 대형병원 응급실은 늘 ‘북새통’이다. 독일의 중앙구조관리국이 중증-경증 환자를 분류해 환자를 이송할 병원을 안내하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중증-경증 환자를 분류한다. 문제는 구급대원이 현장에서 운전, 응급처치를 하면서 동시에 환자 분류를 하고 전체 병상과 의료진 상황을 파악하는 ‘컨트롤타워’가 돼야 한다는 점이다. 구급대원들이 수십 통의 전화를 걸어 병상과 의사를 찾는 상황에서 체계적인 이송이 이뤄질 리 없다. 3월 19일 ‘대구 여학생 표류’ 사건 당시 응급환자 정보 공유 시스템의 부재로 경북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 중증 응급환자 3명이 동시에 몰렸던 것처럼 말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2018년 12월 ‘제3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에 “권역응급의료센터에 경증환자의 방문을 억제하는 시범사업을 벌이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올 5월에는 정부·여당이 다시 “경증환자의 대형병원 응급실 이용을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 이후 진척은 더디고, 느리다. ※ 이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귀터슬로=특별취재팀▽팀장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이지운 김소영 이문수 기자(이상 정책사회부)}

    • 2023-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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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캐나다, 구급대원에 ‘경증환자 응급실 이송 거부’ 재량권

    12일 캐나다 앨버타주 에드먼턴시 중심가에 자리한 앨버타대 병원 응급실 앞. 5분에 1명꼴로 환자가 구급차에 실려왔다. 하나같이 심각한 상처를 입거나 의식이 분명치 않았다. 지난해 앨버타주에서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을 찾은 환자 가운데 입원이 필요 없는 경증 사례는 약 10%에 불과했다. 이는 앨버타주 구급대원이 경증 환자의 응급실 이송을 사실상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급대원 출신인 이언 블랜차드 앨버타주 보건부 응급의료연구소장은 “응급환자이송지침(ATR)이 상세하고, 이를 토대로 이송했다면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형병원 응급실 환자 절반이 경증인 한국과 가장 대비되는 지점이다. 국내에선 일부 경증 환자가 119 구급차를 택시처럼 이용하거나 대형병원 응급실로 이송해 달라고 요구해도 구급대원이 이를 거부하기 어렵다. 앨버타주는 매년 응급환자의 최종 치료 결과를 분석해 ATR을 개정하고 있다. 최신 ATR에 따르면 저혈당 환자가 다른 증상 없이 어지럼증만 호소하면 동네의원 외래 진료를 안내해도 된다. 이런 환자 대다수가 별다른 처치 없이 회복했다는 분석을 반영한 것이다. 2016년 개정된 ‘보건인력법’에 따라 구급대원이 현장에서 최선의 판단을 내렸다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블랜차드 소장은 한국의 상황에 대해 “한국에도 (환자 치료 결과) 자료가 있지 않나. 왜 그걸 활용해 구급대원에게 권한을 주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앨버타주에선 현장 구급대원이 환자의 상태를 판단하기 어려울 때 최적의 이송 기관을 선정해주는 조직이 있다는 점도 한국과 다른 점이다. 앨버타주는 2009년부터 모든 구급차를 보건부 산하로 통합해 구급센터가 빈 병상을 찾아주고 있다. 에디 랭 캘거리대 의대 응급의학과 교수(앨버타주 보건부 응급의료과장)는 “우리(앨버타주)도 20년 전에는 응급환자가 거리를 떠돌다가 사망하는 일이 있었지만 실시간 연계 시스템을 만든 뒤 달라졌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특별취재팀▽팀장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이지운 김소영 이문수 기자(이상 정책사회부)}

    • 2023-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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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대학병원 응급실, 입구부터 중증-경증 나눠 설치

    지난달 12일 찾은 일본 오사카부 히라카타시의 간사이대 의대 고도구급구명센터(응급실). 대학병원 응급실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차분하고 조용했다. 응급실에 온 환자들이 초기 치료를 받는 공간에는 ‘초료(初療)’라는 글자가 붙은 침대가 3개뿐이었다. 이 중 1개 침대에만 대퇴골 골절로 실려온 환자가 누워 있었다. 나머지는 비어 있었다. 일본 대학병원은 환자의 중증도에 따라 갈 수 있는 응급실을 철저히 분리해 ‘응급실 과밀화’를 막는다. 간사이대 의대 고도구급구명센터는 입구부터 둘로 나뉘어 있다. 왼쪽 입구는 심정지, 외상, 뇌졸중 등 중증 응급환자를 실은 구급차만 들어갈 수 있는 ‘구급차 전용’이다. 오른쪽 입구는 구급차 대신 걸어서 응급실을 찾은 환자들이 가는 ‘구급 외래 전용’이다. 구급 외래 전용 입구로 들어온 환자들이 필요한 진료를 받는 공간이 따로 있어 구급차를 타고 온 환자들과 섞이지 않는다. 일본은 구급차에 탄 환자의 이송 병원을 선정할 때 구급대원의 판단을 존중한다. 한국처럼 경증환자가 무작정 대형병원 응급실로 이송해 달라고 요구해도 들어주지 않는다. 구급대원은 지역별로 지방정부, 소방, 병원이 함께 참여한 협의체에서 만든 ‘이송·수용 규칙’을 따른다. 고쿠시칸대 의대 다나카 히데하루 응급의학과 교수는 “뇌출혈, 화상, 절단, 심정지 환자 등은 대학병원 응급실 같은 3차 병원으로, 맹장염 폐렴 복통 구토 환자 등은 2차 병원 응급실로 보낸다”고 설명했다. 다나카 교수는 “동네 의원급 의료기관은 당번을 짜서 야간에 발생한 심한 감기 환자 등을 수용한다”고 말했다. 경증환자가 무작정 119를 부르지 않을 수 있는 이유다. ※ 이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특별취재팀▽팀장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이지운 김소영 이문수 기자(이상 정책사회부)}

    • 2023-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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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지금이 저출산 해결할 골든타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여성이 자녀를 키우면서 계속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24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소멸하고 있는 일본, 빠르게 추월하는 대한민국’ 세미나 참석차 방한한 야마다 마사히로(山田昌弘) 일본 주오대 문학부 교수는 한국의 저출산 해법으로 ‘일-가정 양립’ 정책을 강조했다. 일본에서도 일하는 여성의 자녀 양육을 돕는 정책이 도시 지역 위주로 효과를 거뒀는데, 이 점이 수도권에 인구가 집중된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 것이다. 일본 가족사회학회장과 후생노동성 인구문제심의회 전문위원 등을 역임한 야마다 교수는 일본의 저출산 등 인구 문제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저서 ‘가족 난민’으로 유명하다. 경제적 독립을 이루지 못한 채 부모에게 기대 사는 미혼자를 이르는 ‘패러사이트 싱글’과 ‘콘카쓰’(결혼 활동) 등 용어로 일본의 인구 구조 변화를 설명해 주목받았다. 야마다 교수는 한국의 빠른 경제성장과 과도하게 남의 눈치를 보며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물려주려는 문화, 그리고 극심한 경쟁이 저출산의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은 경제성장이 가파르게 이뤄지면서 ‘아이에게 돈을 더 써야 덜 부끄럽다’는 인식이 커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는 과다한 교육비가 저출산의 한 원인인 만큼, 이제 (정부가) ‘자녀 교육비를 많이 들일 필요가 없다’는 얘기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야마다 교수는 저출산 원인의 하나로 결혼이 어려워진 청년들이 가정을 꾸리려 하기보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생각하거나 연예인 등에 애정을 쏟으며 대리 만족을 얻는 점도 꼽았다. 그는 일본의 만 30∼34세 미혼 남녀가 4명 중 1명꼴로 “가상의 존재를 사랑한 적 있다”고 응답한 설문 결과도 언급했다. 야마다 교수는 “지금이 (한국의 저출산 문제 해결의)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일본과 달리 한국은 노인 인구 비율이 아직 10%대이므로 잘하면 반전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지금 당장 손쓰지 않으면 (고령화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일본을 추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1.26명으로, 한국의 0.78명보다 많았다. 이날 세미나는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출범 1주년을 맞아 열렸다. 정운찬 이사장은 “여야 구별 없이 저출산 정책에 힘을 싣고, 기업은 인구 감소 피해의 당사자임을 인식해서 출산과 육아에 친화적인 정책을 철저히 시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2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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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표류환자 받을 때까지 모든 병원에 경보

    ‘깡! 깡! 깡!’ 이달 6일 오후 7시 20분. 일본 오사카부 스이타시에 자리한 오사카대 의대 부속병원 고도구급구명센터(응급실) 내에서 크고 날카로운 경보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응급실에 있던 의료진과 환자 모두가 돌아볼 정도로 큰 소리였다. 이 알람은 오사카부에서 한 응급환자가 구급차에 탄 채로 30분 넘게 갈 병원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는 상황임을 알리는 소리였다. 알람이 울리자마자 의료진 책상에 놓인 단말기에는 현장에 출동했던 구급대원이 입력한 환자의 주요 증상과 혈압, 맥박, 산소포화도 등의 바이털 사인(활력 징후)이 바로 떴다. 응급실 의료진은 이 정보를 토대로 환자를 수용할지 여부를 이 단말기에 입력했다. 그제야 알람은 잦아들었다. 알람이 울리고 의료진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분이었다. 오사카대 의대 부속병원에서는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이 환자는 다른 병원 응급실로 옮겨져 치료받았다. 응급환자가 병원을 찾지 못해 구급차로 ‘뺑뺑이’를 돌고 있을 때 인근 병원의 모든 응급실에 알람을 울리는 이 시스템의 명칭은 ‘마못테(まもって) 네트워크’다. ‘마못테’란 일본어로 ‘지켜줘’라는 뜻이다. ‘지금 환자가 갈 병원을 찾지 못하고 있다. 1분 1초가 급한 상황이니 어느 병원이든 이 환자를 받아서 생명을 지켜달라’고 외치는 셈이다. 이는 구급대원이 병원 수십 곳에 일일이 전화해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면서 수용 여부를 문의해야 하는 한국의 응급환자 이송 과정과는 확연히 달랐다. 올해 3월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보도한 ‘표류, 생사의 경계에서 떠돌다’에서 뇌출혈 환자인 이준규 군(13)은 8개 병원에서 ‘수용 곤란’ 답변을 받으면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228분을 표류했다. 다리가 골절된 박종열 씨(39)는 23개 병원에서 수용 곤란 통보를 받고 378분을 떠돌다 다리를 잃었다. 생사(生死)를 헤매는 환자의 골든타임은 구급대원이 전화를 돌리는 사이 흘러가 버렸다. 일본도 한국처럼 필수의료 분야의 의사가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난달 11∼15일 기자가 오사카부 현지에서 만나거나, 이달 3∼18일 화상, 이메일 등을 통해 인터뷰한 의료진들은 “응급환자가 병원을 찾아 ‘표류’하는 일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 병원 고도구급구명센터장을 맡고 있는 오다 준 응급의학과 교수는 “응급환자를 빠르게 병원으로 이송할 수 있도록, 마못테 네트워크와 같은 기술을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환자가 구급차 뺑뺑이를 도는 일이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日, 앱에 이송 가능 병원 자동표시… 韓, 구급대원이 일일이 전화日, 구급대원이 환자증상 입력하면이송 병원 거리순으로 즉시 파악韓, 이달 발표 필수의료 개선책에도‘구급차-병원 연결 시스템’은 빠져 지난달 13일 오사카대 의대 부속병원 고도구급구명센터(응급실). 이곳에 실려 온 중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는 응급중환자실 안에 들어서자, 의료진 책상 위에 놓인 태블릿PC 크기의 검은색 단말기가 보였다. 이 단말기에는 ‘마못테(まもって) 네트워크’라고 적혀 있었다. 오다 준 응급의학과 교수는 “응급중환자실과 간호사 스테이션에 마못테 단말기가 1대씩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오사카부의 구급대원은 응급환자 수용 요청을 병원 4곳이 거절하거나 갈 병원을 30분 이상 찾지 못하면 이 마못테 네트워크를 이용할 수 있다. 구급대원이 마못테 네트워크에 환자의 주요 증상 등을 입력하면 단말기에서 알람이 크게 울리는 동시에 해당 환자에 대한 정보가 뜬다. ● 경보 울리는 일본 vs 전화 돌리는 한국환자의 정보를 보고 병원은 ‘수용 가능’ 또는 ‘불가능’ 버튼 중 하나를 누른다. 병원이 버튼을 누를 때까지 알람은 계속 울린다. 이 병원 나카오 슌이치로 응급의학과 의사는 “알람이 요란하게 울려 응급환자 수용 요청을 놓치는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2008년 처음 도입된 마못테 네트워크는 ‘구급차 뺑뺑이’라는 위기 상황에 처한 응급환자의 존재를 오사카부 전체 병원에 동시에 알리는 시스템이다. 구급대원이 응급환자의 수용 가능 여부를 병원에 한 번에 ‘일 대 다(多)’로 문의하는 셈이다. 그중 한 곳이라도 수용 가능 버튼을 누르면 환자는 더 이상 표류하지 않을 수 있다. 반면, 한국은 구급대원이 환자의 수용 가능 여부를 병원에 ‘일 대 일’로 문의한다. 병원에 전화를 걸어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고, 수용 여부를 묻는 과정을 환자를 받는 병원이 나올 때까지 반복한다. 그 사이 응급환자의 골든타임은 계속해서 흘러간다. 게다가 한국의 구급대원은 시시각각 변하는 응급실 상황을 바로 인지하기가 어렵다. ‘수용이 어렵다’고 통보했던 A병원에 구급대원이 다른 병원에 차례로 전화를 돌리는 동안 환자를 받을 여력이 생기더라도, 다시 A병원에 전화하기 전까지는 그 사실을 알 수가 없다. ● 환자 증상 입력→이송할 병원 자동 표시오사카부는 마못테 네트워크를 울리기 전에 구급대원이 환자를 이송할 병원을 빠르게 정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환자의 증상을 입력하면 현재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순으로 병원 목록이 자동으로 뜹니다.” 지난달 12일 일본 오사카부 히라카타시의 간사이대 의대 부속병원 고도구급구명센터에서 만난 가지노 겐타로 응급의학과 교수는 구급대원이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앱)을 소개했다. 2013년 도입된 오리온(ORION·Osaka emergency information Research Intelligent Operation Network system)이다. 이 앱을 켜자 환자의 성별, 나이, 주요 증상 등을 입력하는 화면이 떴다. 흉통을 호소하는 환자라면 심장병 병력 및 호흡 곤란 여부 등을 입력하는 식이다. 입력이 끝나자 환자의 증상과 정보, 현재 위치를 기반으로 이송할 수 있는 병원 목록이 거리순으로 떴다. 이 같은 정보를 바탕으로 구급대원은 병원에 전화를 걸어 환자 수용 가능 여부를 확인하고 있었다. 구급대원이 환자를 이송할 병원을 정하는 과정이 자동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이 과정이 구급대원의 ‘머릿속’에서 이뤄진다. 구급대원이 사전에 숙지한 각 병원의 위치와 병원별로 치료가 가능한 진료과목을 바탕으로 전화를 걸 병원을 직접 추리고 있다. ●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한국일본보다 정보기술(IT)이 발달한 한국에서 왜 이런 시스템을 쓰지 않을까. 정부가 이달 19일 발표한 필수의료 혁신전략에도 구급차와 병원을 빠르게 연결할 수 있는 시스템에 관한 내용은 빠져 있다. 국내서도 마못테 네트워크와 유사한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시도했지만, 끝내 시행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2019년 운영됐던 응급의료체계 개선 협의체서는 구급대원의 환자 이송을 병원 2곳이 거절하면, 시도 119 종합상황실이 단체 메신저로 인근 응급실에 수용 요청을 보내는 방안이 논의됐다. 만약 환자를 받겠다는 응급실이 없으면 지역에서 가장 큰 응급실로 일단 이송하는 방안도 함께 논의됐다. 하지만 의료계는 소방의 무분별한 이송을, 소방당국은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환자의 정보를 병원과 실시간으로 연동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면서 결국 최종 보고서에서 빠졌다. 오리온 같은 시스템을 개발할 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송경준 보라매병원 공공부원장(응급의학과 교수)은 “이송할 병원의 목록을 추려내는 건 사람보다 컴퓨터가 훨씬 더 잘한다”며 “그 알고리즘을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6월부터 충북도가 국토교통부 지원사업으로 오리온 시스템과 유사한 자동화 시스템인 ‘스마트 응급의료 시스템’을 개발해 운용하고 있다. 충북스마트시티챌린지 사업단장을 맡고 있는 김상철 충북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환자 이송 단계에서 병원과 소방 사이의 적극적인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시스템 구축을 위한 정부나 지자체의 재정적인 지원도 충분히 뒷받침돼야 민간 병원의 참여도 늘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이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오사카=특별취재팀특별취재팀▽팀장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이지운 김소영 이문수 기자(이상 정책사회부)}

    • 202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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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도 15년전 ‘표류’ 속출… 당번병원이 응급환자 무조건 받는 ‘도쿄룰’ 도입

    “일본 도쿄에는 구급대원의 응급환자 수용 요청을 병원 5곳이 거절하거나 갈 병원을 30분 이상 찾지 못하는 경우에 대비해서 당번 병원을 정해 반드시 응급환자를 수용하도록 하는 ‘도쿄 룰’이 있습니다.” 도쿄 고구시칸대 의대 다나카 히데하루 응급의학과 교수는 “15년 전 ‘구급차 뺑뺑이’로 응급환자들이 연이어 사망하면서 도쿄 룰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당번 병원은 ‘표류’ 환자를 받기 위해 미리 병상을 비워둬야 한다. 당번 병원이 환자를 받으면 정부에서 수가(건강보험에서 병원에 주는 진료비)를 지급한다. 일본도 처음부터 중증·응급환자 병원 이송 시스템이 지금처럼 잘 갖춰진 것은 아니었다. 일본에도 ‘구급차 뺑뺑이’와 같은 의미의 ‘구급차 다라이마와시(たらい回し·대야 돌리기)’라는 표현이 있다. 하지만 2008년 도쿄에서 구급차에 탄 임산부가 8개 병원에서 수용 곤란 통보를 받은 뒤 뇌출혈로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의료계와 협력해 응급의료체계 개혁에 나섰다. 같은 해 도쿄의 자택에서 흉통을 호소하던 90대 여성이 11개 병원에서 수용을 거부당해 사망한 일도 있었다. 당시 일본 응급의학회는 성명서를 통해 “일반적인 질병을 앓고 있는 응급환자들도 ‘구급차 뺑뺑이’를 당하고 있다. 그야말로 ‘응급의료 난민’이라고 불러야 할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후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대책 마련을 촉구했고, 정부가 화답하면서 지금의 응급의료체계가 구축됐다. 일본은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의료기관, 소방이 함께 참여하는 협의체가 발달돼 있다. 이 협의체에서 지역별 특성에 맞게 응급의료체계를 만들어 시행한다. 오사카부의 마못테 네트워크와 오리온 시스템, 도쿄도의 도쿄 룰 등이 그 예다. 지난달 12일 만난 간사이대 의대 부속병원 가지노 겐타로 응급의학과 교수는 “협의체에서 함께 응급환자 이송 규칙을 정하고 이송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평가도 내린다”고 말했다. 이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2008년과 2013년, 마못테 네트워크와 오리온 시스템이 각각 도입될 때도 반발이 있었다. 지금의 한국에서처럼 의료계는 소방의 무분별한 이송을, 소방은 환자의 정보를 병원과 연동하는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구급차 뺑뺑이로 사망하는 환자가 더 이상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대의를 위해 일본 소방당국과 의료계는 뜻을 모았다. 오사카대 의대 부속병원 가타야마 유스케 응급의학과 의사는 “소방과 병원의 합의가 이뤄진 지역부터 먼저 시스템을 도입하고 점차 오사카부 전역으로 확대됐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특별취재팀▽팀장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이지운 김소영 이문수 기자(이상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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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보다 의사 1.7배 많은 獨, 의사들이 “더 늘려라”

    지난달 19일 오전 독일 함부르크시 아스클레피오스 병원 응급실. 발작 증세를 보이며 쓰러진 50대 남성 환자가 구급차에 실려 오자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포함한 의료진 4명이 입구로 달려 나왔다. 의료진은 일사불란하게 응급 처치를 한 뒤 단 5분 만에 환자를 입원 병동으로 올려보냈다. 해외에서도 고되고 위험한 필수의료 분야는 의사들이 기피하는 분야다. 하지만 기자가 찾은 독일에선 응급 환자가 치료받을 병원을 찾아 헤매는 ‘표류’를 볼 수 없었다. 토비아스 셰퍼 응급실 부과장은 “우리 병원은 인근 권역에서 가장 위독한 환자를 주로 수용하지만, 일손이 모자라 중증 환자를 받지 못한 적은 거의 없다”고 했다. “그런 일은 독일 어디서도 일어나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고령화를 겪은 독일은 일찌감치 의대 입학 정원을 늘린 덕을 보고 있다. 2021년 기준 독일 인구 1000명당 임상 의사가 4.5명으로, 한국(2.6명)의 1.7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3번째로 많다. 그럼에도 독일 의사협의회는 지금도 ‘의대 정원을 더 늘리라’고 정부에 요구한다. 의사들의 근로 시간이 짧아지면서 실제 진료 여력은 오히려 줄었고, 이를 중증 응급환자 치료에 우선 배치하면서 경증 수술 등은 대기가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니엘 뢰르만 귀터슬로시 보건자문위원은 “독일인들은 여전히 더 많은 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도 상황이 비슷하다. 일본 정부는 2030년 전후로 의사 부족이 심해질 것을 2006년 예측했다. 이후 2007년 7625명이었던 의대 정원을 2019년 9420명으로 늘렸다. 그러나 필수의료 의사들은 “병상당 의사 수는 여전히 부족하다”며 추가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13일 일본 오사카대 의대 부속병원 고도구급구명센터에서 만난 오다 준 응급의학과 교수는 “의사가 늘었지만, 필수의료 분야 인력 부족 문제는 여전하다. 의사 증원만으로는 안 되고, 필수의료를 살릴 대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중증·응급 환자의 ‘표류’라는 국내 필수의료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 올 8월부터 10월까지 일본과 독일, 캐나다, 호주, 미국 등 5개국의 병원과 구급대 등 현장 15곳을 방문했다. 그 과정에서 현지 전문가 44명을 인터뷰했다. 해외에선 미리 의사를 확충해 오면서 중증·응급 환자와 의사를 실시간으로 연결해주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등 환자를 살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19일 의대 입학 정원을 확대하고 지역 국립대병원의 진료 역량을 키우는 ‘필수의료 혁신전략’을 발표했다. 졸속 추진으로 더 큰 부작용을 초래했던 역대 정부의 의료 개혁 실패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각국 의료 현장에서 만난 의사와 정책 당국자들은 “중요한 건 실행 의지와 세밀한 설계”라고 말했다.日, 의대생 18% 지역의무근무… 獨, 개원 제한해 수술실 이탈 막아 日 지역의사 장학생, 10년 의무근무獨 필수의료진, 개원의보다 큰 보상日-獨도 고된 수술의사 기피 늘어“의대 정원확대만으론 해결 어려워” 정부가 2025학년도부터 의대 입학 정원을 늘린다는 의지를 19일 분명히 했다. 하지만 늘어난 의사가 지역·필수의료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진짜 과제다. 이들이 서울로 몰리거나 피부미용 분야로 빠져나가면 중증 응급환자의 ‘표류’가 해결되기는커녕 국가 의료비 지출만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취재팀이 방문한 독일과 일본, 캐나다 등에서는 필수의료로 의사들을 유인하기 위한 각종 정책적인 지원이 있었다.● 수술 의사 이민 받고 ‘개원의 총량제’ 실시한 독일 독일은 ‘개원의 총량제’를 통해 진료 과목마다 해당 지역에서 문을 열 수 있는 개인병원의 수를 정해두고 있다. 무분별한 ‘개원 러시’로 대형병원 필수의료 의사가 부족해지는 일을 막기 위한 조치다. 실제로 독일은 인구 1000명당 수술 전문의는 1.47명으로, 한국(0.71명)의 2배가 넘었다. 지난달 19일 함부르크시 에펜도르프 병원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모나 린트샤우는 “대형병원 필수의료 분야 전문의는 개원의보다 통상 더 많은 보상을 받기 때문에 오히려 개원의 허가증이 잘 팔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동네의원을 열고 피부미용 시술이나 물리치료 등을 하는 게 수입이 훨씬 낫다. 수술 의사가 부족한 이유 중 하나다. 이런 정책에도 독일 내에서 의사들의 필수의료 분야 기피 현상은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한 화두이기 때문이다. 아스클레피오스 병원 토비아스 셰퍼 부과장은 “특히 뇌를 수술하는 신경외과 전문의는 일이 고되고 당직도 잦아 젊은 의사들이 꺼린다”고 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부족한 수술 의사를 해외에서 유치하고 있다. 한국계 독일인인 신장내과 전문의 한성국 씨는 “이민 의사를 위한 전문 어학시험과 자격시험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지역의사제로 급한 불 꺼 일본은 의대 정원을 대폭 확대하면서 ‘지역의료 확보 장학금’을 도입했다. 의대 정원 일부를 별도 전형으로 선발하고 장학금을 주되 통상 10년 안팎 병·의원이 부족한 지역에서 의무 근무하게 하는 제도다. 이는 2020년 7월 문재인 정부가 발표했다가 의료계의 거센 반발에 직면해 보류한 ‘지역의사제’와 유사하다. 제도 도입 첫해인 2007년엔 지역의료 확보 장학금을 받는 의대생이 183명으로, 전체 의대생의 2.4%에 불과했다. 하지만 2020년엔 1679명(전체의 18.2%)으로 크게 늘었다. 급격히 줄어들던 농촌 지역 의사도 2010년부터 반등해 2018년엔 8년 전보다 12.1% 증가했다. 하지만 현지 전문가들은 이 제도가 ‘지역 의료 붕괴’의 급한 불을 끄는 데엔 도움이 됐을지언정, 필수의료 과목 기피 문제까지 해결하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 도쿄 고쿠시칸대 의대의 다나카 히데하루 응급의학과 교수는 “일본에서도 피부과, 성형외과가 큰 인기를 끄는 반면 응급의학과, 산부인과 등은 ‘4K’(일본어로 ‘힘들다·더럽다·위험하다·멋없다’의 준말) 직업으로 여겨져 의사들이 기피한다”라며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대우를 높이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낙수 효과만으로는 필수의료 문제 해결 안 돼” 이는 의대 정원 확대의 ‘낙수(落水) 효과’만으로는 필수의료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필수의료 분야의 근무 여건을 개선하는 한편 응급 환자부터 진료를 받도록 해야 한다. 호주는 정보통신기술(ICT)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호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의 앤드루 제이미슨 지역의료국장은 “우리도 의사들이 소도시 근무를 꺼린다. 대신 대형병원의 숙련된 의사들이 ‘원격 협진’을 통해 부족한 지역 의료 인력을 보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대 입학 때 성적뿐 아니라 의사가 되려는 이유와 봉사활동 경력 등 인성 평가를 실시하는 캐나다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캐나다 앨버타주 캘거리 권역 급성기 분야 책임자 스콧 뱅크스는 “캐나다에서도 피부미용 분야 의사가 돈을 더 잘 벌기는 하지만 이 때문에 필수의료 분야가 인력난을 겪지는 않는다”라며 “만약 의대 졸업생 대다수가 소득을 위해 비필수의료 분야를 택한다면 그건 의대 입학생 선별의 실패다”라고 말했다. ※ 이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특별취재팀▽팀장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이지운 김소영 이문수 기자(이상 정책사회부) 오사카·함부르크·캘거리·퍼스·보스턴=특별취재팀}

    • 2023-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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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만, 의료사고 국가배상… 산부인과 지원율 74→94% 상승

    윤석열 대통령은 19일 필수의료 혁신 전략회의 말미에 필수과목 의료진이 겪는 ‘형사 리스크(위험)’를 완화시켜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이 올해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현직 의사의 15.8%가 필수의료 기피 현상의 주요 원인으로 ‘법적 보호 부재’를 꼽았다. ‘낮은 수가’에 이은 필수 의료 기피 사유 2위다. 취재팀이 8∼10월 방문한 5개국을 비롯한 해외 주요국은 의료사고로부터 의료진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한국에 비해 탄탄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의료배상 책임보험 가입 의무화다. 책임보험 의무 가입 국가인 캐나다의 경우 보험료가 연 500만 원 수준인데, 이 중 약 80%를 주정부가 부담한다. 의사가 부담하는 돈은 한 해 약 100만 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마이클 불러드 앨버타대 의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기자에게 “보험료 액수가 크지 않은 건 애초에 의료 소송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은 의사가 의사협회에 가입할 때 자동으로 책임보험에 가입되며, 보험료는 협회 가입비로 충당된다. 미국은 뉴욕 펜실베이니아 인디애나 등 일부 주에서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했고, 가입 의무가 없는 주에서도 대부분의 의료기관이 자발적으로 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의료기관에 책임보험 가입 의무가 없고, 가입률도 30%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예 국가가 의료사고 배상 책임을 지는 국가도 있다. 대만은 2014년부터 출산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선 의사 과실이 전혀 없더라도 국가가 환자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는 시범사업을 벌이고 있다. 대만은 이 제도 시행 이후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율이 74%에서 94%로 상승했다. 영국은 정부기관인 국가보건서비스(NHS)가 ‘소송국’을 운영하며 개별 의사나 의료기관을 대신해 의료소송에 대응하고, 거의 모든 배상 책임도 전적으로 국가가 진다. 취재진이 방문한 국가들에선 의료진이 현장에서 최선의 판단을 내렸다면 그 결과에 따른 책임을 묻지 않는 문화가 깔려 있었다. 가지노 겐타로 일본 간사이대 의대 부속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응급환자를 수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료진을 처벌하는 법률은 없다. 의사가 그런 식으로 처벌받게 되면 환자를 아예 받을 수 없고, 의료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이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특별취재팀▽팀장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이지운 김소영 이문수 기자(이상 정책사회부)}

    • 2023-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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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캐나다, 응급땐 옆병원 예약수술 미루고 우선 살려

    10일 캐나다 앨버타주 캘거리 응급관제센터. 벽을 가득 채운 모니터에 인근 모든 대형병원 응급실과 수술실의 포화도가 표시돼 있었다. 표시된 수치는 전부 100%가 넘었다. 모든 병상이 사용 중이고, 그보다 많은 환자가 대기 중이라는 뜻이다. 이 센터 제이미 나니아 선임은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캐나다는 한국과 비슷한 ‘의사 부족 국가’다. 인구 1000명당 임상 의사 수가 2.8명으로 한국(2.6명)과 비슷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5번째로 적다. 경증·비응급 질환으로 응급실을 찾으면 8시간 넘게 대기하기 일쑤다. 가벼운 수술 예약은 1년씩 밀려 있는 경우도 흔하다. 응급실 상황은 한국과 다를 바 없지만 캐나다선 중증·응급환자가 빈 병상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숨지는 일이 드물다. 11일 만난 앨버타주 보건성 수석의료책임자 마크 매켄지 씨는 2013년 도입한 ‘수술 전략 임상 네트워크(SCN)’를 비결 중 하나로 꼽았다. 앨버타주 병원은 전부 SCN에 소속돼 있어 수술 예약 환자의 응급도와 중증도를 인공지능(AI)으로 판단한 다음 더 급한 환자가 발생하면 의료진을 곧장 투입한다. 예컨대 A병원에 응급환자가 왔는데 그 병원에 전문의나 빈 수술실이 없으면 인근 B병원에 예정된 수술을 미루고 응급환자를 먼저 살리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수술을 받기 위해 직장에 휴가를 냈던 비응급 환자의 입원이 취소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수술이 미뤄진 일반 환자가 불만은 없는지 묻자 매켄지 교수는 “대다수 시민은 ‘나도 언젠가 생명이 위태하면 순서를 양보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연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특별취재팀▽팀장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이지운 김소영 이문수 기자(이상 정책사회부)}

    • 2023-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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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빵사 꿈꾸던 23세, 6명에 새 삶 주고 떠나

    제빵사를 꿈꾸던 20대 여성이 뇌사 장기기증으로 6명에게 생명을 선물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정희수 씨(23·사진)가 8월 19일 고려대안암병원에서 심장과 폐, 간, 콩팥을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23일 밝혔다. 유가족에 따르면 정 씨는 서울에서 2녀 중 막내로 태어나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정 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바리스타 일을 했는데 오전 7시인 출근 시간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을 정도로 성실했다. 최근엔 제과제빵에 관심을 두고 공부를 해왔다. 밖에서는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지만, 가족과 지낼 땐 정이 많고 쾌활했다고 한다. 정 씨는 7월 30일 집에서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끝내 뇌사 상태에 빠졌다. 정 씨의 어머니 김혜정 씨는 “딸을 살릴 수 있다면 제 심장이라도 주고 싶었다. 딸이 빛과 소금처럼 좋은 일을 한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란다”라며 기증을 결심했다. 문인성 한국장기조직기증원장은 “꿈을 미처 다 펼쳐보지도 못하고 떠난 정 씨와 다른 이들을 걱정하는 마음에 기증 결심을 해주신 유가족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23-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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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칭다오 맥주 원료에 ‘소변’… 中식품 위생 논란 또 확산

    직장인 김민우 씨(26)는 21일 중국 칭다오 맥주 공장에서 작업자가 원료에 소변을 보는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을 본 뒤 냉장고에 넣어둔 칭다오 맥주 네 캔을 즉시 버렸다. 김 씨는 “칭다오 맥주가 오줌 색깔로 보이기 시작해서 차마 먹을 수가 없다”고 했다. 중국 대표 맥주인 칭다오 맥주를 둘러싼 논란이 중국산 식품에 대한 불안으로 확산되고 있다. 영상 속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이 한국에 수입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알몸 김치’ 파동 등 중국 식품의 위생 상태에 대한 우려가 다시 수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논란은 19일(현지 시간) 중국 칭다오 맥주 제조 공장에서 한 작업자가 원료 위에 소변을 보는 듯한 모습이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웨이보(微博)에 영상으로 공개되면서 시작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영상 속 공장에서 만드는 맥주는 중국 내수용으로 국내에는 수입되지 않았다고 21일 밝혔다. 해당 공장은 중국 산둥성 핑두(平度)에 있으며, 국내에 들여오는 맥주를 생산하는 공장 3곳은 다른 지역에 있다는 게 식약처 설명이다. 하지만 해당 공장에서 만든 맥주의 국내 반입 여부와는 별개로 중국 식품에 등을 돌리는 국내 소비자가 다시 늘고 있다. 2021년 터진 ‘알몸 김치’ 파동을 비롯해 식품에 담배꽁초를 버리거나 맨발로 절임 식품을 만드는 모습 등 위생 논란이 반복돼왔기 때문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저 공장만 문제겠느냐” “중국산 식품은 우선 걸러야겠다” 같은 소비자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중국발(發) 위생 논란에 중국 현지에 공장을 둔 국내 식품업체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북에서 중국산 식자재를 직수입하는 한 업체는 “중국 현지 답사도 여러 차례 진행해가며 위생적인 물건만 받아 오더라도, 같은 중국산으로 묶이다 보니 위생 논란 때마다 매출에 타격을 받는다”고 했다. 이번 칭다오 파동으로 중국 맥주뿐 아니라 중국산 먹거리 수요 전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단 전망도 나온다. 국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알몸 김치’ 논란이 불거진 2021년 중국산 김치 수입량은 24만606t으로 직전 연도(28만1186t)보다 약 15% 줄었다.송진호 기자 jino@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2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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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응급외상-신생아’부터 국립대병원 인력 증원

    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19일 국립대병원 규제 완화 방안을 발표한 정부가 중증, 응급, 신생아와 분만 분야를 특정해 최우선적으로 인력 규제를 풀 계획이다. 생사(生死)를 헤매는 환자가 ‘표류’하다가 제때 치료를 못 받거나 지방에 사는 임신부, 신생아가 서울까지 ‘상경 분만’ ‘상경 치료’를 하러 오는 문제를 풀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20일 동아일보 취재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등 정부는 전날(19일) 발표한 지역·필수의료 공백의 후속 조치로 이 같은 내용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립대병원은 정해진 한도 안에서만 직원 인건비를 줄 수 있는 ‘총액 인건비’와 ‘정원 제한’이 모두 적용된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인력 확충은 필요조건”이라며 19일 규제 완화를 지시했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이 같은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최근 충북 청주시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갓 태어난 아기가 호흡 곤란 증상을 보였다. 하지만 지역에서 유일하게 신생아 중환자실을 갖춘 충북대병원은 병상이 포화 상태였다. 병상 25개를 모두 채우고도 베지넷(아기 바구니) 2개를 추가로 배치해야 할 정도로 위중한 신생아가 많았다. 결국 이 아기는 50km 떨어진 대전의 대학병원으로 이송됐다. 윤신애 충북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신생아 중환자실을 지키는 의사가 나를 포함해 2명뿐이라 365일 맞당직을 선다. 몸이 2개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국립대병원 중 총액 인건비, 정원 제한에 예외를 둔 곳은 어린이병원뿐이다. 정부는 이르면 내년 초 중증외상과 응급, 분만, 신생아 치료 등으로 이를 확대할 방침이다.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등 모든 의료인력에도 공통적으로 적용한다. 인건비를 높여 실력 있는 양질의 의료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정부 관계자는 “당장 환자 생명에 직결된 분야는 서둘러 인력을 확충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공언한 의대 정원 확대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20일 ‘지역의료 혁신 이행을 위한 관계장관 회의’를 열고 “지금 (의대 정원을) 증원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 더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올 것”이라며 “관계부처는 철저히 계획하고 추진해 달라”고 주문했다. ‘붕괴 위기’ 지방 응급-분만 인력 확충… 의사-간호사 모두 늘린다 [필수의료 개혁]국립대병원 정원제한 규제 개선지방 필수의료 인력 유출 심각소아과 의사 8명중 4명 그만두기도정부가 국립대병원 중증외상, 응급 신생아, 분만 분야의 의사 정원, 인건비 규제를 먼저 풀 계획인 가운데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 의사 외 의료 인력들도 여기에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급한 분야부터 인력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20일 ‘지역 및 필수의료 혁신 이행 관련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의사가 없어서 병원이 문을 닫고, 응급실을 제때 가지 못해 생명을 잃기도 하며, 지방에 사시는 환자분들이 서울까지 올라와 치료를 받는다”며 “무엇보다 의료 인력의 확충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인력 유출 심한 중증응급부터 규제 완화정부가 전날(19일) ‘지역·필수의료 공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발표했지만, 현실적으로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의대 정원 확대는 규모와 속도, 방식을 두고 각계의 견해차가 크다. 지역 국립대병원의 인력과 장비 규제도 여러 부처에 걸쳐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해소에 적잖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국립대병원은 현행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상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돼 직원 인건비의 총액과 연간 인상률(올해 기준 1.7%)이 정해져 있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 떠난 동료의 빈자리를 채우느라 매일 밤 당직을 서도 월급은 그대로다. 병원이 의사를 채용할 때 교수직을 제안하고 싶어도, 전임교원 정원은 행정안전부의 심사 대상이다. 최근 비수도권의 한 국립대병원에서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8명 중 4명이 연달아 사표를 냈다. 인근에서 소아 응급진료가 가능한 병원은 이곳뿐이었기 때문에 의사들이 한꺼번에 그만두면 말 그대로 ‘의료 붕괴’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병원장이 의사들에게 사정하다시피 요청해 사표를 거두게 했지만 병원 관계자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정부는 당장 중증 응급 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떠도는 ‘표류’부터 해결하기 위해 해당 분야 인력 규제부터 시범적으로 풀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권역외상센터와 권역심뇌혈관센터 등 ‘골든타임’이 짧은 응급환자를 주로 치료하는 부서는 격무에 시달리기 때문에 인력 유출이 심하다”라며 “응급 분야부터 인력을 더 채용할 수 있게 규제를 풀어주고, 그 효과를 평가해 다른 분야로 넓히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말했다.● 국고 지원, 낡은 의료장비 교체부터 정부는 국립대병원 시설과 장비에 국고를 지원할 때도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고가의 의료기기 등 필수의료와 직결된 분야부터 먼저 투자하기로 했다. 현재 국립대병원 의료 현장에서는 도입한 지 18년 돼 시술 도중 작동이 멈추는 심혈관 조영기로 환자를 진료하거나, 고압산소치료기가 없어서 응급 화상 환자를 수용하지 못하는 등 아찔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전국 국립대병원 17곳의 진료 적자는 지난해 4007억 원이었다. 환자를 진료해서 번 돈만으로는 새 장비를 구할 수 없어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다. 그런데 현재는 시설과 장비에 대한 국고 지원 비율이 25%로 묶여 있다. 한 대에 10억 원이 넘는 의료기기를 사기가 어려운 구조다. 올해 국립대병원에 배정된 시설 장비 예산 788억 원 가운데 상당액이 의료 장비가 아닌 주차장 개선 공사 등에 쓰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여당은 ‘의료 TF’ 가동- 야당은 “무책임, 무능” 정치권에서는 전날 발표된 의료 대책을 놓고 여야가 다른 행보를 보였다. 여당은 후속 조치에 드라이브를 걸었고, 야당은 의대 정원 확대 숫자를 제시하지 않았다며 실효성 없는 대책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20일 ‘지역·필수의료 혁신’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해 정부의 후속 조치를 뒷받침하기로 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지역 필수의료 혁신을 핵심 민생정책으로 선정해 당이 지닌 모든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TF는 유의동 정책위의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국회 관련 상임위 여당 간사들을 비롯해 의료인부터 일반 시민까지 참여해 제도 개선 등을 논의하는 방향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정부가 의대 입학 정원 확대의 구체적 규모 등을 발표하지 않은 것에 대해 “무책임하고 무능력하다”고 비판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의 구체적인 규모는 물론이고 제대로 된 로드맵조차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윤명진 기자 mjlight@donga.com주애진 기자 jaj@donga.com}

    • 2023-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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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증-응급 의료 수가 올리고… 하루 여러 번 물리치료 환자 본인부담 상향”

    이르면 내년부터 건강보험 재정은 중증·응급 질환 진료에 몰아주고 불필요한 외래 진료 이용에 본인부담금을 대폭 올리는 개혁이 추진된다. 정부가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의대 정원을 늘리고 지역 국립대병원을 키우는 한편, 현재 경증·비응급 질환에 치중된 건강보험 제도를 바꾸기로 한 것이다. 19일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지역·필수의료 강화에 초점을 두고 ‘제2차(2024∼2028년)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을 설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공청회에서 공개한 ‘건강보험 종합계획 수립연구 중간 결과’ 보고서는 정부 개혁안의 밑그림으로 평가된다. 연구진은 중증·응급 수술 등 생명과 직결된 의료 행위의 건강보험 수가(건강보험에서 병원에 주는 진료비)를 집중적으로 높이자고 제안했다. 현재는 매년 경증과 중증 질환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의료 행위의 수가를 똑같은 비율로 올린다. 하지만 앞으론 치료 효과 대비 가격이 비싼 감기 치료 같은 의료 행위의 수가는 동결시키고, 중증 외상 치료처럼 소외됐던 필수의료 분야의 수가를 대폭 올리자는 얘기다.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등 시장 논리로는 해결되지 않는 비인기 진료과목이나 암이나 희귀 질환을 치료하는 비수도권 병원도 지원 대상이다. 연구진은 응급 수술을 위해 의료진을 대기시키거나 병상을 비워두는 데 드는 비용을 보상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반면 무분별한 과다 의료 이용에는 본인 부담을 높인다. 복지부는 앞서 연 365회 이상 외래 진료를 받은 환자의 경우 현행 30∼60%인 건강보험 진료비의 본인 부담 비율을 90%로 대폭 올리는 방안을 밝혔다. 연구진은 본인 부담을 올릴 대상에 ‘하루에 여러 번 물리치료를 받는 환자’도 추가하자고 제안했다. 또 경증·비응급 질환으로 대형병원이나 응급실을 방문하면 추가적인 진료비를 부담하도록 불이익을 주는 방안도 제시됐다. 이번 연구보고서에는 노인층에 비해 건강보험료는 많이 내지만 진료비 혜택은 적게 받았던 청장년층에 대한 지원책도 포함됐다. 만 20∼34세 청년에게 매달 자기 부담 보험료의 10%를 적립해 주는 ‘청년 건강 계좌’가 그중 하나다. 여기 쌓인 돈을 원하는 의료서비스에 쓸 수 있게 해 준다는 구상이다. 중장년도 또래보다 의료비를 적게 썼다면 매년 10만 원 상당의 건강검진 바우처를 지급해 선택 검진에 쓸 수 있게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노인의 경우 본인 부담을 깎아주는 현행 방식보다는 스스로 건강 관리를 잘할 수 있도록 개별 지원금을 주자는 제안도 나왔다. 현재는 65세 이상은 ‘노인 외래 정액제’에 따라 총진료비가 2만5000원 이하이면 본인부담금을 깎아주는데, 이런 방식이 불필요한 병·의원 방문을 부추긴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연구를 맡은 신현웅 보사연 선임연구위원은 “현재는 병·의원이 의료 행위를 많이 할수록 진료비를 더 받는 구조인데, 장기적으로는 진료의 질과 결과에 따라 진료비를 차등해서 받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23-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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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가르칠 의사’ 없어… 지역 국립대병원, 전공의 정원 자진 반납

    최근 비수도권 A국립대병원은 보건복지부로부터 영상의학과 전공의(레지던트) 정원을 내년에 2배로 늘려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지역의료를 살릴 대책 중 하나였다. 하지만 A병원은 복지부가 전공의를 늘려준다고 해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영상의학과의 경우 병원 내 ‘가르치는 의사’(지도 전문의)가 전공의보다 최소 5명 더 많아야 하는데, 그만한 인력을 단기간에 구할 수 없었던 것. A병원 관계자는 “지역병원에선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말리기도 바쁜 상황”이라고 말했다.● 비수도권 전공의 30% ‘파격’ 증원에 곳곳 파열음 정부가 ‘2025학년도부터 의대 정원을 대폭 확대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그 ‘예고편’에 해당하는 전공의 정원 조정이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면서 의료현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복지부는 올 1월 ‘필수의료 지원대책’에 따라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전공의 정원 비율을 현행 6 대 4에서 내년 5 대 5로 조정하는 작업을 7월부터 본격적으로 벌여 왔다. 비수도권 병원은 현재 1300여 명인 전공의 정원이 1700명 이상으로 약 30% 증가하게 된다. 앞으로 늘어날 의대 입학 정원을 지역 ‘미니 의대’에 집중 배치하겠다는 계획과 전공의 정원 조정을 연계하면 지역에서 활동하는 의사를 늘릴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이번 전공의 정원 조정이 의대 입학 정원 확대의 기초 작업인 셈. 의료계에선 서울에 편중된 의사 인력을 재배치하기 위해 전공의 정원을 조정하는 방향 자체는 옳다고 본다. 문제는 올해 12월 전공의 모집부터 새 기준을 적용하기 위해 속도를 내다 보니 교육 여건을 미처 갖추지 못한 병원이 속출하고 있는 점이다. 실제 필수의료 분야 전공의를 늘리고 싶어도 가르칠 교수가 부족한 병원이 많다. 18일 교육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가 거점 국립대 부설 종합병원 본원과 분원 17곳의 필수의료 분야의 전임교수 재직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10월 기준 병원당 평균 전임교수는 응급의학과 3.5명, 흉부외과 4.1명, 산부인과 4.8명, 소아청소년과 6.7명이었다. 이 중 창원경상국립대병원의 경우 지난해 1월 1명뿐이던 응급의학과 교수가 퇴직한 후 응급의학과 전임교수가 없는 상태다. 제주대병원에 재직 중인 흉부외과 교수는 단 1명이다. 이에 의대 입학 정원을 확대해도 실습 기관인 대학병원의 교수가 부족해 충실한 교육이 이뤄지기 힘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수도권 외상센터 전공의는 삭감 반면 일부 병원은 ‘수도권’이란 이유로 필수의료 분야에서 활동할 전공의를 뽑지 못하게 될 위기에 처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신현영 의원(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인천과 경기 지역의 인구 10만 명당 전공의 정원은 각각 5.0명, 4.8명으로 전국 평균(6.8명)보다 적다. 하지만 복지부의 새 방침에 따라 내년부터는 약 240명의 전공의 정원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전국 중증외상 환자가 몰리는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은 최근 복지부로부터 정형외과 전공의 정원을 현행 4명에서 3명으로 줄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 병원 관계자는 “지금도 이미 중증외상 환자 대비 전공의 수가 부족한데, 단순히 서울과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더 줄이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 조치가 자칫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지원을 더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국립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필수의료 분야를 지망하는 의대생 상당수는 ‘인서울’ 대학병원의 교수직을 노린다. 전공의 비율 조정으로, 그 문이 좁아지면 아예 지망 과목을 바꿀 수도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의대생과 전공의를 지역에 안배하는 정책이 실제 지역의료 위기를 해소하는 효과로 이어지려면 세심한 조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병원이 교육 여건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고, 수도권 소재 병원이라도 필수의료 분야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크다면 오히려 전공의 정원을 늘리는 식으로 차등 지원해야 한다는 얘기다. 18일 부산대병원 등에 대한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의대 교수 등 인프라 확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민주당 강득구 의원은 이날 국감에서 “현재 의대 시설, 교수 인력 등의 조건에서 정원만 늘린다고 (필수 의료 확충이라는) 목표가 달성되는지 의문”이라며 “의대 교수 등 인프라 확보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국립대병원장들이 의견을 모아 복지부와 교육부에 건의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정성운 부산대병원장은 “의료분쟁이나 의료사고 위험성이 큰 점도 필수의료 진료과목을 회피하게 되는 이유”라며 “정원을 늘려서 의사가 많이 나와도 필수의료를 담당할 의사 확보와 비례할 것 같지는 않다”고 답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

    • 2023-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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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 연금제도 47개국중 42위… ‘납입자 혜택’ 적정성 최하위”

    해외 전문 투자기관이 전 세계 47개국의 연금제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42위에 그친 것으로 평가됐다. 납입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을 뜻하는 적정성 면에선 꼴찌로 나타났다. 자산운용업체 머서와 글로벌 투자전문가협회(CFA)가 17일(현지 시간) 발표한 ‘2023 글로벌 연금지수(MCGPI)’에 따르면 한국의 연금제도는 100점 만점 중 51.2를 기록했다. 우리나라는 중국(55.3), 멕시코(55.1), 남아프리카공화국(54), 인도네시아(51.8)보다도 점수가 낮았다. 머서와 CFA는 각국의 연금 시스템을 적정성과 지속가능성, 운용관리 등 3개 분야로 나눠 평가한 뒤 가중치를 적용해 합산하는 방식으로 순위를 매겼다. 네덜란드(85.0)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고 호주(5위), 미국(22위), 일본(30위) 등이 뒤를 이었다. 우리는 납입자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하는지를 따지는 적정성 분야에서 39점으로 최하위였다. 지속가능성(52.7)은 27위, 운용관리 부문(68.5)은 34위를 기록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연금제도를 C등급으로 분류됐다. C등급은 ‘전반적으로 유용하지만 위험성과 약점이 존재하고,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연금제도의 실효성과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앞서 7월에도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맥킨지가 국내 공적·사적연금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의 연금 소득 대체율은 47%에 불과해 국민의 충분한 노후 대책이 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인 58% 대비 11%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OECD는 연금의 소득대체율을 65∼75% 정도로 권고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 역시 국민연금 기금이 2055년 모두 소진될 것이란 추계가 나왔음에도 개혁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의 국회 제출 시한을 10여 일 앞둔 18일까지도 보험료 인상 방안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정부 내에서는 재정 안정에 필요한 보험료율을 아예 제시하지 않고 각종 노후소득 보장 제도를 아우르는 구조 개혁 방향성만 두루뭉술하게 담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보다 후퇴한 개편안이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23-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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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대 정원 한번에 1000명 늘려야” vs “매년 5%씩 점진 확대를”

    정부가 현재 3058명인 의대 입학 정원을 확대하는 방침을 분명히 한 가운데, 당장 이번 주 구체적인 증원 규모까지 밝히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17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19일 발표에선 기본적인 정원 확대의 필요성과 방향만 밝히고, 증원 규모는 논의를 거쳐 확정하기로 했다. ‘300∼1000명’ 등 증원 규모가 언급된 뒤 의사단체들이 강경 투쟁을 예고하자 정부가 속도 조절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의대 정원 확대 방안은 크게 우선 연 300∼500명을 늘리는 등의 점진적 방안과 1000명 이상을 한 번에 늘리는 급진적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이날 열린 보건복지부 산하 의사인력 전문위원회에서도 정원 확대 자체에는 이견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증원 규모와 속도에 대해선 전문가들 간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10년 뒤 2만7000명 부족… “특단 조치 필요”의대 정원을 단기간에 급격히 늘려야 한다고 보는 전문가들은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이 되면서 향후 10년 안에 의료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게 될 것이란 점에 주목한다. 신영석 고려대 보건대학원 연구교수는 2035년에는 활동 중인 의사 수가 필요한 인원 대비 2만7232명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런데 의대 신입생이 의사로 활동하기까지는 통상 10년 이상이 걸리는 만큼 하루라도 빨리 의대 정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의대 정원을 5500명 늘려야 30년 뒤 국내 의사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따라잡을 것이란 추계를 내놨다. 김 교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의대 정원을 최소 1000명 이상 즉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해 5%씩 늘리면 2030년 1000명 증원”반면 점진적인 증원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단기간에 급격히 늘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올 것이므로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권정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현재 3058명인 의대 정원을 2030년까지 매년 5%씩 늘려 나갈 것을 제안했다. 이 방안대로면 2030년에는 한 해 의대 정원이 지금보다 약 1000명 많은 4098명이 된다. 1000명 증원이라는 목적지는 같지만, 점진적으로 늘려 충격을 최소화하자는 취지다. 권 연구위원은 “점진적으로 의사 수를 늘리면 은퇴하는 의사가 증가하는 시점과 맞물려 의사 증원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라며 “의대 증원이 대학 입시에 미칠 영향, 이공계 인재 이탈 등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은철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갑자기 정원이 1000명 늘면 이때 입학생들은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졸업 후 취업도 어려워져 ‘버림받은 세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의대 정원을 한 번 늘린 뒤 계속 유지하는 게 아니라 언젠가는 정원을 다시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은 고령화로 의료 수요가 늘고 있지만 미래에는 인구 감소에 따라 수요가 차츰 줄게 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정부도 주기적으로 의대 정원을 재평가할 장치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의대 교수 1명당 학생 수 1.6명 정부는 이번에 늘리는 의대 정원을 한 해 정원 50명 미만인 ‘미니 의대’들에 우선 배분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의대를 신설하는 것보다 기존 의대의 정원을 늘리는 게 비용과 시간 면에서 효율적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실습 위주 교육이 많은 의대 특성상 최소한의 인원이 보장돼야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의대의 교수 1명당 학생 수는 평균 1.6명으로 나타났다. 교수당 학생 수는 한 해 정원이 적은 의대일수록 더 낮은 경향을 보였다. 한 해 정원이 40명인 울산대 의대의 경우 전임 교원은 650명인데 학생 수는 240명에 불과해 이 비율이 0.37명에 불과하다. 이 의원은 “일부 의대는 교수 대비 학생 수가 ‘개인과외’ 수준”이라며 “의대 정원을 지금 확대해도 늘어난 의대생을 교육하기 위한 역량은 충분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도 미니 의대들의 정원을 확대함으로써 전체 의대 정원을 500명가량 늘릴 수 있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

    • 2023-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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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병원 노사, 임금 협약 타결… 7일 만에 파업 종료

    서울대병원 노사 협상이 17일 타결돼 노동조합이 파업을 마치고 7일 만에 업무에 복귀한다.서울대병원은 이날 오후 8시 서울 종로구 대한의원 제1회의실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와 ‘2023년 임금 및 단체협약’에 합의하고 가조인식을 진행했다고 밝혔다.서울대병원 노사는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른 임금 인상 △근로조건 개선 △인력 충원 △의료공공성 유지 노력 등에 합의했다. 특히 서울대 어린이병원 병상을 축소하지 않고 유지하며, 서울대병원과 서울대병원 운영 보라매병원에 총 34명의 인력을 충원하기로 했다. 노사는 7월 11일부터 3개월 넘게 총 54차례의 교섭을 벌였다. 이달 11일부터는 노조가 의료 공공성 강화 등을 요구하며 약 1000명이 번갈아 가며 파업을 이어왔다. 하지만 이날 협약 타결로 노조는 파업을 종료하고 18일부터 업무에 복귀한다.서울대병원 관계자는 “협약이 타결됨에 따라 병원은 신속하게 운영을 정상화하겠다”라며 “노사 상생에 협력해 국가중앙병원으로서의 책무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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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대 정원 한번에 1000명 늘려야” vs “매년 5%씩 점진 확대를”

    정부가 19일 현재 3058명인 의대 입학 정원을 확대하는 방침을 발표할 예정인 가운데, 몇 명을 늘릴지 구체적인 규모는 이날 밝히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7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19일 발표에선 기본적인 정원 확대 방향만 발표하고, 증원 규모는 논의를 거쳐 확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300~1000명’ 등 증원 규모가 언급된 뒤 의사단체들이 강경 투쟁을 예고하자 정부가 속도 조절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의대 정원 확대 방안은 크게 우선 연 300~500명을 늘리는 등의 점진적 방안과 1000명 이상을 한 번에 늘리는 급진적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대대수 전문가는 정원 확대에 찬성하면서도 증원 규모와 속도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10년 뒤 2만7000명 부족, 특단 조치 필요” 의대 정원을 단기간에 급격히 늘려야 한다고 보는 전문가들은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이 되면서 향후 10년 안에 의료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게 될 것이란 점에 주목한다. 신영석 고려대 보건대학원 연구교수는 2035년에는 활동 중인 의사 수가 필요한 인원 대비 2만7232명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런데 의대 신입생이 의사로 활동하려면 졸업 후 인턴, 전공의 수련까지 통상 10년 이상이 걸린다. 하루라도 빨리 의대 정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의대 정원을 5500명 늘리고 30년간 유지해야 국내 의사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따라잡을 것이란 추계를 내놨다. 김 교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뜻”이라며 “의대 정원을 최소 연 1000명 이상 즉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해 5%씩 늘리면 2030년 1000명 증원” 반면 점진적인 증원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의대 증원이 시급한 건 맞지만 단기간에 급격히 늘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올 것이므로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권정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현재 3058명인 의대 정원을 2030년까지 매년 5%씩 늘려 나갈 것을 제안했다. 이 방안대로면 2030년에는 한 해 의대 정원이 지금보다 약 1000명 많은 4098명이 된다. 1000명 증원이라는 목적지는 같지만, 점진적으로 늘려 충격을 최소화하자는 취지다. 권 연구위원은 “점진적으로 의사 수를 늘리면 은퇴하는 의사가 증가하는 시점과 맞물려 의사 증원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라며 “의대 증원이 대학 입시에 미칠 영향, 이공계 인재 이탈 등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의대 정원을 한 번 늘린 뒤 계속 유지하는 게 아니라 언젠가는 정원을 다시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은 고령화로 의료 수요가 늘고 있지만 미래에는 인구 감소에 따라 수요가 차츰 줄게 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 지적을 받아들여 주기적으로 의대 정원을 재평가할 장치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박은철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10년간 의대 정원을 4000명으로 늘렸다가 다시 줄인다면 이 기간 입학한 의사들은 ‘버림받은 세대’가 돼 두고두고 문제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대 교수 1명당 학생 수 1.6명 정부는 이번에 늘리는 의대 정원을 한 해 정원 50명 미만인 ‘미니 의대’들에 우선 배분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의대를 신설하는 것보다 기존 의대의 정원을 늘리는 게 비용과 시간 면에서 효율적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실습 위주 교육이 많은 의대 특성상 최소한의 인원이 보장돼야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의대의 교수 1명당 학생 수는 평균 1.6명으로 나타났다. 교수당 학생 수는 한 해 정원이 적은 의대일수록 더 낮은 경향을 보였다. 한 해 정원이 40명인 울산대 의대의 경우 전임 교원은 650명인데 학생 수는 240명에 불과해 이 비율이 0.37명에 불과하다. 이 의원은 “일부 의대는 교수 대비 학생 수가 ‘개인과외’ 수준과 다름없다”며 “의대 정원을 지금 확대해도 늘어난 의대생을 교육하기 위한 역량은 충분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도 미니 의대들의 정원을 확대함으로써 전체 의대 정원을 500명가량 늘릴 수 있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

    •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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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대 증원분, 非서울 ‘미니 의대’ 우선 배정

    정부가 2025학년도부터 의대 입학 정원을 현재 3058명에서 300∼1000명 이상 확대하기로 하면서, 새 정원은 기존 소규모 의대에 집중적으로 배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공공의대를 신설하거나 별도 전형으로 선발된 의사를 병·의원이 부족한 지역에서 의무 근무하게 하는 ‘지역의사제’는 이번 대책에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기존 의대 정원 늘려야 즉각 효과” 16일 본보 취재를 종합해 보면 정부는 의대 입학 정원을 확대하는 방식을 두고 정치권을 중심으로 제기된 ‘지역-공공의대 신설’보다는 이미 운영 중인 비수도권 의대 중 정원이 50명 미만 의대의 규모를 키우는 방향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교육부 등에 따르면 국내 의대 40곳 가운데 17곳은 정원이 50명이 채 되지 않는다. 특히 인천과 충북, 경북 지역은 모든 의대가 정원 50명 미만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39개국 가운데 인구 대비 의대 졸업생 수가 38위로 최하위권이지만 인구 대비 의대 수는 미국의 2배 수준으로, 소규모 의대가 난립해 있다. 따라서 또 다른 의대를 신설하기보다는 의사가 부족한 서울 외 지역 소규모 의대를 중심으로 정원을 확대해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게 바람직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서울 소재 의대 8곳은 최소 76명에서 최대 135명까지 일정 정도 규모를 갖추고 있다. 의대를 신설하면 교육 환경을 마련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약 10년 후로 예견된 의사 부족에 대응하기 어렵다. 다만 윤석열 정부의 국정 과제인 ‘의사과학자 양성’을 목표로 KAIST나 포스텍 등에 예외적으로 의학전문대학원 신설을 허용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이 경우 지역구 내 공공의대 신설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던 의원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특히 의대가 없는 전남과 세종 지역에선 의대 신설에 대한 요구가 크다. 전남지역 국회의원, 시군의원 등 500여 명은 1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대 신설을 요구하기로 했다. 국회에 계류 중인 공공의대 설립 법안 가운데 발의한 의원의 지역구를 의대 설립 지역으로 명시한 법안이 9건이다.● 의협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 확대 시 총력 대응” 정부는 그간 확대되는 의대 정원 일부를 별도 전형으로 선발하고 장학금을 주되 일정 기간 비수도권 병원의 비인기 전문과목에서 의무 복무하게 하는 ‘지역의사제’도 검토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론 이번 계획에서 제외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간 의료 인력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지역 의사 몫으로 뽑힌 의사의 직업 선택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다른 의사들과 계층이 구분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감안했다. 의대 정원 확대에는 의료계 반발이 변수다. 2020년 7월 문재인 정부 당시 보건복지부가 의대 정원 확대 계획을 발표했지만, 의료계 파업에 따라 철회한 바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대의원회 운영위원회는 16일 성명서에서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을 확대할 경우 가용한 모든 수단으로 총력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의대 정원 확대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 정비를 생략하면 의료 체계를 망가뜨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할 거란 주장이다. 의협은 17일 전국대표자회의를 열고 총파업 돌입 여부를 포함해 대응 방향을 논의할 방침이다. 반면 친명(친이재명)계 좌장인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16일 페이스북에 “무능, 무책임, 무대책의 ‘3무 정권’이 드디어 좋은 일을 하나 하려는가 보다”라며 찬성 의사를 밝혔다. 이날 복지부는 “의대 정원 확대 규모는 확정된 바 없다”고 밝혀 이번 주 내 예상됐던 구체적 의대 증원 규모 발표가 미뤄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윤명진 기자 mjlight@donga.com}

    •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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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기피과목 지방 전공의 “서울로” 이탈 잇따라

    서울의 이른바 ‘빅5’ 병원 중 하나인 삼성서울병원에는 소아청소년과(소청과) 전공의(레지던트)가 23명 있다. 그런데 이 중 서울에 있는 의대를 졸업한 사람은 2명뿐이다. 나머지는 지역 의대를 졸업한 후 서울에 취업한 의사들이다. 대표적인 필수의료 과목이자 ‘기피 과목’으로 꼽히는 소청과와 산부인과 전공의들의 서울 쏠림 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1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이종성 의원(국민의힘)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 소재 수련병원 소청과 전공의의 65%, 산부인과 전공의의 63%가 지역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피부과 34%가 지역 출신인 것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이처럼 소청과, 산부인과 전공의들의 서울 유출이 심각한 탓에 지방의 필수의료 공백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응급의료기관 409곳 중 나이나 증상에 무관하게 모든 소아 환자 응급진료를 24시간 할 수 있는 곳은 22.5%에 불과하다.서울 병원 소청과 인력난… ‘지방의사 상경 → 지역 의료공백’ 악순환 병원 ‘기피과목’ 지방 전공의, 서울 쏠림 심화 대구 A대학병원은 지난해 말 소아 응급환자 진료를 대폭 축소했다. 밤에 소아 응급환자가 와도 기존에 이 병원에 다니던 환자가 아니면 더 큰 병원으로 돌려보내기로 한 것이다. 이유는 당직을 서고 입원환자를 돌볼 소청과 전공의가 없어서다. 원래 12명이 근무해야 하지만 남은 건 1명뿐. 그나마도 퇴직을 앞둔 4년 차여서 올해 말이 되면 이 병원엔 소청과 전공의가 한 명도 남지 않게 된다. 대학병원에서 전공의들은 입원 환자를 밤낮으로 가장 가까이에서 보살피는 일을 한다. 따라서 병원에 전공의가 없으면 응급실은 물론 입원병동 운영에도 차질이 생긴다. A병원은 현재 교수 7명이 번갈아 당직을 서며 소청과 병동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이 병원의 한 소청과 교수는 “교수들마저 업무 부담을 못 이겨 병원을 나가려고 ‘들썩들썩’ 한 것 같아 걱정”이라며 “소청과 야간 당직 자체를 없애자는 목소리마저 나오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대학병원에서 야간 당직이 없어지면 사실상 입원병동 운영이 어려워진다. 지난해 말 가천대 길병원이 소청과 입원병동 문을 닫았던 것도 전공의 부족을 버티지 못해서였다.● 서울에서 지역으로…인력 부족 악순환 소청과와 산부인과 전공의들이 서울로 쏠리는 가장 큰 이유는 서울에 있는 병원들도 자교, 또는 서울 소재 의대 졸업생들만으로는 필요한 전공의 수를 다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 소재 병원 중에서도 올해 초 전공의 모집에서 소청과 인력을 100% 충원한 건 4곳뿐이었다. 이른바 ‘빅5’ 병원 중에서도 성모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은 올해 소청과 전공의 정원을 다 채우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역 의대를 나온 새내기 전공의들은 더 좋은 시설과 예산을 갖춘 서울 병원으로 떠나고, 지역 대학병원들은 비어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한 번 전공의 모집이 미달된 병원은 이듬해도 전공의들이 지원을 꺼리게 된다는 점도 악순환을 강화하는 요인이 된다. 병원에 선배 전공의가 부족하면 그만큼 새로 들어가는 전공의가 맡아야 할 업무 부담은 커지고, 체계적인 수련을 기대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지역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소청과 전공의 2년 차 B 씨는 “12명이 하던 일을 3명이 하다 보니 환자 1명에 대해 치열하게 공부하기보다 시키는 일만 하기도 급급하다”고 털어놨다. 최근에는 소청과를 지망하는 전공의들이 전략적으로 서울의 대형 병원에 함께 손을 잡고 지원하는 경향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원하는 병원에 인력이 부족해 전공의 한 명이 떠안게 될 업무가 많아질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인기 과목 ‘피안성’은 정반대 현상 반면 대표적인 인기 과목인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에선 정반대 상황이 펼쳐진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피부과 전공의가 11명인데, 전원이 서울 소재 의대를 졸업한 사람이다. 안과(22명 중 20명)와 성형외과(19명 중 18명) 전공의도 90% 이상이 서울 소재 의대를 나온 의사들이다. 서울의 다른 병원들도 마찬가지다. 서울 소재 병원에서 근무하는 피부과 전공의의 66%는 서울 소재 의대 졸업생인 것으로 나타났다. 안과(60%)와 성형외과(65%)도 3명 중 2명꼴로 서울에 있는 의대를 나온 전공의로 채워졌다. 반면 소청과와 산부인과에선 이 비율이 각각 35%, 37%에 불과하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23-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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